제 380장. 꼼수
하인들이 사육사의 수단을 보려고 둘러쌌고 양응봉도 엄숙한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 두성백의 기분은 긴장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였다. 한참 휘파람을 불었지만 금우응은 듣지 못한 척 모르쇠를 했다. 두성백은 입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힌 두성백은 어색한 얼굴로 목을 가다듬으며 양준에게 말했다.
“공자님,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앞으로 다가가더니 양준의 어깨 위에 있는 금우응을 잡으려고 했다.
“위험할 텐데.”
양준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두성백은 영문을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금우응이 갑자기 급박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금빛을 번쩍이며 두성백을 공격했다. 두성백의 실력은 높은 편이 아니었다. 나이가 꽤 있었지만 진원 경지 7단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금우응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충분했다. 다급히 손을 휘두른 그는 진원으로 장벽을 만들어 금빛의 공격을 막았다.
두성백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금우응을 바라보았다. 그는 금우응을 오랫동안 키웠지만 이제껏 공격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멍한 얼굴로 금우응을 한참 바라본 두성백은 금우응의 눈에서 적의를 보았다. 양씨 가문의 사육사가 십 년 이상 키운 독수리를 다루지 못한다니. 이것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순간 두성백은 매우 난감하여 당황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의 난감함을 눈치챈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몰래 검은 책 공간에서 만약영액을 짜내고는 독수리의 부리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사람을 공격하지 마!”
독수리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내키지 않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말 들어!”
양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우응은 바로 날개를 접으며 얌전하게 변했다.
두성백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자님께선 독수리와 소통이 가능하십니까?”
“얼추 하지.”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두성백의 얼굴에 동경 어린 기색이 드러났다. 그들 두씨 가문은 선조로부터 전해지는 노수법결(奴獸法訣)로 양씨 가문에 들어와 금우응을 사육하는 사육사가 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노수법결이 세상에서 유일하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양준의 신기한 수단과 비교하니 천지차이였다.
두성백은 양준처럼 해낼 자신이 없었다. 노수법결을 정상까지 수련한다고 해도 이 정도에 다다를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순간, 두성백은 놀라면서도 경악했다. 세상에 요수와 이 정도로 소통하는 사람이 있다니!
양응봉의 두 눈은 더욱 밝아져서 정기를 내뿜었다. 그의 표정은 뿌듯함이 가득했다. 양준은 그의 아들이니 양준이 출중할수록 그는 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다. 요수와 소통하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재주이긴 했다.
“두 선생!”
양준은 두성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성백은 흠칫 놀라더니 다급히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도련님께서는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업종이 다르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법이지만 금우응을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두성백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양준이 금우응을 이토록 고분고분하게 길들였으니 그의 존중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이 독수리를 가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양준은 두성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녀석 말입니까?”
두성백은 깜짝 놀라더니 의아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래, 가문이 아닌, 내 소유로 했으면 하는데!”
양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성백은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양씨 가문 직계 제자들 중에서 금우응을 탐낸 사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금우응은 길들이기 어려운데다 5급 요수밖에 되지 않았기에 고작해야 진원 경지 무인 정도의 실력이었다. 금우응을 소유한다고 해도 크게 쓸데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굳이 힘들게 금우응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넷째 나리의 저택에 있는 막내 공자는 달랐다. 그는 직접 금우응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요수를 소유한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이다. 적어도 서신을 전달하기에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두성백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 양해해 주십시오. 이 독수리는 가문의 소유입니다. 저 또한 독수리를 돌보는 사육사에 불과하여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점은 나도 알아. 그래서 어찌하면 이 독수리를 얻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다. 네가 양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독수리를 돌봤다고 했는데 네게 독수리를 달라고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두성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락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문에서 허락한다고 해도 독수리가 조롱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양응봉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다른 때였다면 내가 가문에 쌓은 공로로 네게 독수리 한 마리를 내어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안 된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곧 열릴 계승 싸움에서 가문은 공자들의 가족들이 도와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두성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넷째 나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문에 쌓으신 업적으로 독수리를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다 곧 말을 멈추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공자님께서는 이제 막 양씨 가문에 돌아오셔서 공로라고 할 것이 없겠지요.”
“공로?”
양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어떤 공로가 있어야 독수리 한 마리를 바꿀 수 있느냐?”
이 점은 양응봉도 잘 알지 못했다. 그도 두성백을 바라보았다.
두성백이 대답했다.
“가문에 이득을 가져다주셔도 공로로 치지요. 예를 들자면, 세력 하나를 통째로 끌고 와서 양씨 가문에 충성을 바치게 한다거나 비보, 무공, 진귀한 양단묘약, 천재지보 등을 바치는 겁니다!”
양준은 눈앞이 반짝이는 기분이 들었다.
“현급 무공도 되나?”
그 말이 나오자 두성백뿐만 아니라 양응봉도 깜짝 놀랐다. 그는 아들이 밖에 있는 몇 년 동안 현급의 무공을 익혔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능소각의 유일한 현급 하품의 무공도 전부 능태허와 몇몇 장로들 손에 있는 것으로 기억했다. 평소에 제자들은 수련할 수조차 없었다.
“준아, 너 설마…….”
양응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닙니다. 전 종문에서 무공을 전수받은 적이 없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양응봉이 종문의 비밀을 유출할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양응봉은 더욱 깜짝 놀랐다.
‘종문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얻은 거란 말인가? 설마 이 몇 년간 밖에서 떠돌아다녔다는 말인가?’
옆에 있던 두성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급 무공이면 충분합니다.”
현급 무공은 보통 각 세력의 대표 무공으로, 차기 후계자가 아니면 습득할 수 없었다. 현급 무공으로 5급 요수인 금우응을 바꾸려고 하는데 가문에서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공자님, 제가 공자님 대신 가문에 요청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보통 금우응에 관한 일은 전부 제 손을 거치고 있습니다.”
두성백이 나서며 제안했다.
“그래, 그러면 두 선생이 수고 좀 해줘.”
“공자님, 별말씀을요.”
두성백은 얼굴을 붉히며 공수했다.
“저는 그저 공자님께서 여유가 되실 때, 노수지법(奴獸之法)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두씨 가문의 노수법결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노수인의 위력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라.’
두씨 가문이 양씨 가문에서 사육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요수를 길들이는 방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낼 수 없는 재주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양씨 가문에서 진작 노수법결을 빼앗았지 어찌 계속 두씨 가문에게 금우응을 맡기겠는가?
“그럼 전 이만 돌아가 이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으면 하루 이틀, 길어도 대엿새 안으로 소식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두성백은 양준의 허락을 받고 기쁜 얼굴로 기대에 차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적의로 가득한 금우응을 바라보며 난감한 안색으로 말했다.
“공자님, 이 독수리는 잠시 저와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가문에서 이 일을 추궁한다면 제가 감당할 수 없어서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금우응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금우응은 날개를 펼치고 조롱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가두어 두지 마. 매일 여기에 한 번씩 들를 테니.”
“알겠습니다.”
두성백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이 나서 떠나갔다.
“너 제법이구나.”
양응봉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칭찬했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꼼수일 뿐입니다. 저는 먼저 북성구로 가 보겠습니다. 며칠 안에 돌아오지 않을 테니 어머니께 전해주십시오.”
“그래, 다녀오거라.”
양응봉은 붙잡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도는 너무 컸다. 걸어서 간다면 적어도 며칠 걸려야 북성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도에서는 눈에 띄게 날기도 불편했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저택에서 답운구 한 마리를 끌어내 타고 떠났다.
밤이 되자 외출했다 돌아온 동소죽은 양준이 이미 떠난 것을 알고 양응봉에게 원망을 늘어놓았다. 아들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열흘이 넘게 방에 틀어박혀 약을 제련하고, 나오자마자 또 북성구로 갔으니 동소죽이 서운할 만했다.
양응봉도 그녀의 원망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소죽이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준이가 벌써 약을 만들어 왔소. 매일 한 방울씩 먹으라고 당부하더군.”
그는 말하면서 양준이 가져온 만약영액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한 방울이라고요?”
동소죽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당신 치료용이잖아요. 저도 마셔요?”
“준이가 자주 마시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마실래요!”
동소죽은 흥분된 얼굴로 양응봉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의 우울한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두 사람은 양준이 만든 약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의 성의가 담긴 것이니 물이라고 할지라도 달게 느껴졌다.
잔을 가져온 양응봉은 먼저 부인에게 조심스럽게 한 방울 따라 주고 또 자신의 잔에 한 방울 따랐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 번에 한 방울이라… 입술을 적시고 나면 없어질 양이라 뭔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