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1장.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많이 따르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독도 없을 테니. 냄새도 좋은데요.”
동소죽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제안했다.
“그러지.”
양응봉도 이견이 없었다. 그는 부인의 잔에 약을 가득 따르고, 또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가득 따라요. 당신 몸속의 사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하니 많이 마셔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부인의 뜻에 따라 양응봉은 약을 잔에 가득 따랐다.
두 사람은 잔을 들었다. 동소죽이 장난스럽게 남편과 팔을 교차하자, 양응봉은 미소를 지었다. 부부는 첫날밤을 보내던 날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먄약영액을 마신 두 사람은 입맛을 다시며 맛을 음미했다. 이 약은 냄새도 좋고 맛도 좋았다.
‘아들이 어떻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군. 맛있네!’
동소죽과 마주 보고 피식 웃은 양응봉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안색이 크게 변했다. 이내 그의 얼굴 전체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동소죽도 몸속의 진원이 미친 듯이 운행하더니 그와 동시에 복부에서 갑자기 무시무시한 기운이 솟구쳤다.
방 안에 광풍이 휘몰아치며, 두 사람의 안색이 급변했다. 탁자와 의자는 모두 가루가 되었고, 벽은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진원이 기승을 부리며 남긴 흔적이었다. 두 사람은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공법을 운행했다. 그들은 몸속에서 떠도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경맥 안으로 옮겼다.
*중도 북성구, 통천객잔.
양준은 청색 경장을 입고 뒷짐을 진 채,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약간 살집이 있는 주인이 눈을 반짝이며 웃는 얼굴로 공손하게 맞이했다.
“공자님께서는 식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묵고 가시겠습니까?”
양준의 옷차림이 평범하지 않은데다 또 답운구까지 타고 온 것을 보고, 사람을 많이 보아 온 주인은 그의 출신이 낮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런데 어찌 대충 접대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찾으러 왔네!”
양준은 침착하게 죽절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죽절을 본 주인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계산대 뒤로 뛰어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양준은 죽절을 챙기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인의 뒤를 따랐다. 통천객잔은 보통의 객잔처럼 장사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위장에 불과했다. 사실 이곳은 죽절방의 본거지였다.
중도에는 8대 가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면에 오르지 않고 있을 뿐, 수많은 세력들이 있었다. 이 크고 작은 세력들의 뒤에는 모두 8대 가문이 뒤를 봐주고 있었다. 그들은 8대 가문이 처리하기 곤란한 일들을 대신 수행해 주는 역할이었다. 죽절방은 그중의 하나로서 다른 세력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통천객잔 전체를 통과하자 거대한 마당이 나타났다. 뜰 안에는 많은 무인들이 무술을 겨루고 있었다. 단독으로 겨루는 사람들도 있었고, 삼삼오오 무리 지어 떠들썩하게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준은 몰래 그들을 힐끗 살펴보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들 실력이 높지 않았는데 높아 봐야 진원 경지 정상 정도였다. 대부분은 이합 경지였고, 심지어 기동 경지도 있었다. 중도에서 괜찮다 싶은 무인들은 전부 8대 가문에 거두어졌으니, 나머지는 당연히 옥석이 섞여 있는 수준이었다. 양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겨루고 있던 무인들은 가게 주인이 양준을 데리고 들어오자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며 양준을 평가했다.
커다란 마당을 가로지른 두 사람은 대전 앞에 도착했다.
대전 앞에는 인상이 매우 사나운 무인들이 경계 어린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타나자 그들은 일제히 시선을 보내왔다. 발걸음을 멈춘 주인이 그들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넷째 나리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방주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무인 중 한 명이 위아래로 양준을 훑어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아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봐도 낯선 이인데 정말 넷째 나리의 사람이 맞는가?”
주인은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 분께서 넷째 나리의 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제야 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시게.”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걸어 나오며 양준에게 말했다.
“방주께선 먼저 편전에서 쉬고 있으라 하셨네. 일을 다 보고 나면 오신다 했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문전박대를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거 재미있게 굴러가는군.’
대전 안에서는 다툼이 일어난 듯했다. 몇 사람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양준이 신식을 펼치자,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경지가 한눈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소리도 들렸다. 양준의 안색은 점점 더 차가워지더니 코웃음을 쳤다.
“공자님, 편전으로 가셔서 잠시 기다리시지요.”
주인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됐어. 내가 직접 들어가지!”
양준은 고개를 젓고 나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멈추세요!”
좀 전에 말을 전했던 무인이 다급히 양준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위로 솟구치더니 진원이 폭발하며 경맥 안에서 요동쳤다. 그는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기절했다.
퍽- 퍽- 퍽-
대전 앞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주인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양준은 이미 대문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삐걱-
굳게 닫힌 대문이 열리면서 양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열 명이 넘는 무인들이 기다란 책상에 둘러앉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목에 핏대를 세운 것이 방금까지 격렬한 다툼을 벌인 것처럼 몸속에서 진원이 요동쳤다.
양준은 시선을 돌려 가장 위쪽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점잖은 분위기와 마른 몸집을 볼 때 학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옅은 우울함과 답답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이 자가 바로 죽절방의 방주 방지였다. 그는 호기로운 이름에 걸맞지 않은 우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양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양준이 들어오는 순간, 격렬하던 다툼 소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멈추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몇 명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두려운 기색이었다. 양준의 신분은 양응봉이 파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방지는 다급히 일어서며 따라 들어온 주인에게 손을 내저어 그를 내보냈다. 그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은 채, 공수하며 물었다.
“각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양씨 가문의 양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은 양응봉이 기껏해야 부하를 보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동안 죽절방과 양응봉 사이의 일은 모두 양응봉의 수하가 처리해 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양준의 이름이 나오자 그들은 이번 일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 젊은이는 양씨 가문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직계 공자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양응봉의 아들이었다.
양준의 존귀함과 비범함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벌떡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지도 위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며 공손하게 말했다.
“이 방지가 공자님께서 오신 줄 미처 알지 못하여 제대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지요!”
“용서해 주십시오!”
대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양준은 덤덤하게 손을 내저으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방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는 양준이 온 줄 모르고 그에게 먼저 편전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만약 양준이 그걸 탓했다면 방지는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순간, 방지의 등에는 식은땀이 새어 나왔다.
“공자님, 앉으시지요!”
방지는 다급히 자리를 권했다.
양준도 사양하지 않고 제일 위쪽 자리에 가서 대범하게 앉았다. 방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옆에 섰다. 그는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못 박힌 듯, 제자리에 멈춰 서서 불안한 마음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와 접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속으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양준이 이번에 어떤 목적으로 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방금 전의 다툼을 떠올린 몇몇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해했다.
양준은 탁자 위의 과일을 집더니 의자에 기대앉아 두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편한 자세로 먹기 시작했다. 그가 망나니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은 하나둘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들의 출신은 매우 낮았다. 양준이 이토록 편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자 마음속의 긴장감도 사라졌다.
“맛이 괜찮네.”
양준은 과일을 몇 입 베어먹고는 탁자 위로 던졌다. 그는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모두 앉으세요.”
사람들은 일제히 방지에게 시선을 보냈다. 방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방지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 죽절방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넷째 나리께서 지시라도 내리신 겁니까?”
“아니요.”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놀러온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중인 것 같던데 계속 하세요. 난 그냥 듣고 있을 테니.”
말을 마친 그는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하며 고개를 숙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