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86화 (386/853)

제 386장. 곽씨 가문, 곽성진

금우응은 며칠간 줄곧 방지가 있는 곳에서 지내면서 전문 사육사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만 양준을 찾아와 만약영액을 받아먹던 금우응이 야심한 밤에 홀로 날아왔다는 것은 죽절방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게 분명했다.

죽절방은 세력이 크지도 않고 사람들의 실력도 들쑥날쑥하여, 굳이 죽절방을 탐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밤은 좀 달랐다.

며칠 전에 일어난 죽절방 내부의 다툼을 떠올린 양준은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진원을 아낌없이 소모하며 날아간 덕에 양준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북성구에 도착했다.

죽절방 본거지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렸다. 방지와 몇몇 고수들은 웬 무리의 포위 공격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주변에 각종 무공과 비보가 번쩍이며 나타났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비에 씻겨지지 않을 만큼 선혈이 바닥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죽절방은 원래 사람 수가 많지 않았는데, 상대편은 그들의 두 배 남짓했다. 게다가 상대편의 고수들 중 일부는 아직 나서지도 않은 상태였고, 심지어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죽절방은 막대한 사상자를 냈고, 곧 패할 기미를 보였다.

방지도 상처 가득한 몸으로 이를 악문 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는 적들이 쳐들어오는 동시에 금우응을 날려 보냈다. 그는 양준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들을 구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양씨 가문의 공자인데 수하에 고수들도 제법 있겠지?’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은 양준이 오기나 할 것인가였다.

“오천(伍仟)!”

방지는 적진 중의 한 중년 남자에게 소리쳤다.

“지금까지 현광회(玄光會)와 죽절방은 서로 도리를 지키며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이러는 것이냐?”

오천은 그 말에 냉소를 짓더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방지, 너야말로 알면서 묻는 것 아니냐? 우리 공자님께서 투항하지 않는 자는 죽음뿐이라고 하셨다!”

“우리 죽절방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이렇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냐?”

방지는 공격을 막아 내며 분노했다.

오천은 그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

“우리같이 작은 세력 간의 다툼은 8대 가문에서 간섭하지 않아. 네가 오늘 죽는다고 누가 복수라도 해 줄 것 같으냐? 꿈 깨!”

그 말의 방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천의 말이 틀린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8대 가문에게 있어서 이러한 작은 세력들은 사라지든 말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하나 더 지원해 키우면 그만이었다. 해마다 수많은 세력들이 사라졌지만, 작은 세력들은 사라졌다가도 우후죽순처럼 또 싹을 피우며 생겨났다. 방지는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에 양준이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통천객잔의 지붕에서 젊은 공자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꽤나 괜찮은 공연을 보는 듯,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그의 옆에는 현광회의 다른 고수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면서 진원을 아낌없이 내뿜어 그에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막아 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지붕 위에 서 있는 데도 옷이 젖지 않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장면이 나올 때면 그는 심지어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고수들은 조심스러운 얼굴로 자리만 지킬 뿐,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곽 공자님, 죽절방은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저 자들을 죽일까요, 아니면… 거둘까요?”

현광회의 책임자인 목남두(沐南鬥)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곽 공자라 불린 젊은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짓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내가 먼저 가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갖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지.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목남두는 흠칫 놀라더니 다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현광회는 곽 공자가 단지 심심해서 지원해 주는 곳이었다. 그러니 목남두가 어찌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곽 공자는 죽절방을 거두어들이려고 했으나 방지에게 거절당했다. 그리고 기분이 상한 그는 더 이상 죽절방을 남겨 두려 하지 않았다.

목남두는 몸을 살짝 구부린 채 신형을 두어 번 흔들더니 청색 빛을 감싸고 빠른 속도로 아래쪽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가 방지 무리의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또 다른 빛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그 공격에 담긴 파괴적인 기운을 감지한 목남두는 안색이 급변하더니 다급히 방향을 틀어 옆으로 피했다. 그와 동시에 지붕 위에서 현광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조심하십시오!”

착지하고 뒤를 돌아본 목남두의 눈은 저도 모르게 가늘어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젊은이가 현광회의 고수들을 물리치며 가운데 둘러싸여 있던 곽 공자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잠깐 정신을 놓았다가, 곧바로 위로 날아올랐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인의 안위였다.

하지만 곧 목남두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나타난 젊은이는 생각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빨간색 장검을 손에 쥔 채, 검기로 무수한 꽃잎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현광회의 고수들은 꽃잎에 대응하지 못해 다들 도망쳐 버렸고, 지붕 위에는 순식간에 곽 공자 혼자만 남게 되었다.

‘류경요가 온 건가?’

목남두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젊은이는 곽 공자의 앞까지 다가가 그를 손쉽게 제압했다. 곽 공자는 반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제야 두 줄기의 강한 신식이 젊은이를 덮쳤다. 곧이어 위엄 있는 모습을 한 두 사람이 나타나더니 공중에 우뚝 선 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양준은 곽 공자의 손목을 움켜쥔 채, 검을 그의 목에 겨누었다. 그는 현광회의 무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소 띤 얼굴로 공중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신유 경지 8단계의 고수로서 혈시들과 실력이 비슷했다.

곽씨 가문은 8대 가문 중 하나로, 곽 공자의 옆에 고수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런 작은 세력 간의 다툼에 두 고수는 모습을 드러내기 머쓱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감히 공자를 해코지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자부한 탓에 몰래 한쪽에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양준이 그들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곽 공자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쫓아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두 신식은 양준의 주변을 맴돌다가 잠깐 머뭇거린 뒤,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릿속으로 들어간 신식은 바다에 잠긴 돌처럼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

양준은 더욱 차갑게 웃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상대가 보통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진원 경지의 무인으로서 두 사람의 신식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면 몸에 신혼 비보를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등급의 비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분이 절대 낮지 않았다. 다행히 두 사람은 곽 공자를 구하려고만 했을 뿐, 살기를 품지는 않았다. 젊은이가 공격을 당해도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을 터였다.

다시 양준을 바라보는 두 고수의 시선은 무거워졌고,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바로 이때, 곽 공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히 내 목에 칼을 겨누다니,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군!”

양준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그래?”

“넌 내가 누군지 아느냐?”

곽성진은 가볍게 웃으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시길래?”

“곽씨 가문의 곽성진(霍星辰)이다!”

곽성진은 곽씨 가문 가주인 곽정(霍正)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곽정도 어찌 보면 불쌍한 사람이었다. 8대 가문 중 하나로, 가주인 그에게는 첩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딸은 많아서 군대도 만들 수 있을 정도였지만, 여태까지 아들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그는 혈전방 방주인 호만과 비슷했다. 다행히 호만보다 운이 좋았는데,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가문의 독자로서 곽성진은 어려서부터 총애를 받으며 자랐고,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었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중도로 돌아오기 전, 중도의 젊은 세대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세 명이었다.

첫 번째는 류씨 가문의 류경요. 그는 실력이 가장 강하고 자질이 가장 뛰어났다. 두 번째는 추씨 가문의 추억몽. 그녀는 용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질과 수완 모두 월등했다. 이토록 매력이 넘치는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세 번째는 바로 곽성진. 중도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공자였다. 주색잡기는 그의 장기였고, 강한 가문을 등에 업고 약자를 괴롭히며 문제를 일으키고 싸움질하는 것은 그의 일상이었다.

남들은 지하 세력을 지원하면서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없었고, 이런 세력 간의 다툼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곽성진은 너무 심심한 탓에 수하의 세력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반드시 직접 찾아가 안전한 곳에 서서 싸움을 구경했다. 그의 옆에는 두 신유 경지의 고수가 지키고 있었기에 곽성진은 안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뜻밖에도 두 고수의 눈앞에서 목에 칼이 겨누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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