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8장. 하나로 합쳐
죽절방 대전 안,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몸의 진원을 모아서 정체기를 돌파하려고 애썼다.
한 시진 후, 몸속의 속박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들끓던 진원이 점차 잦아들었다. 그의 경지는 한 단계 올라가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진원 경지 8단계!
경지를 돌파하는 순간, 양준은 오색찬란한 연꽃이 반짝이는 빛을 내뿜으며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오색 온신련!
온신련을 얻은 다음, 양준은 그것을 다시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머릿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또 항상 그의 신식을 키워 주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식해가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이런 광경이 나타나자 양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전의 온신련의 모습이 보였다는 건 식해가 곧 형성될 거라는 징조인가?’
양준은 자신의 신식의 힘에 대해 그저 대충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일반적인 신유 경지 8단계의 무인들보다 강한 것이 아마도 신유 경지 9단계 고수의 실력과 비슷한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진원 경지인데 이러하니 만약 신유 경지까지 오르게 된다면 식해의 뒷받침을 받은 신식의 힘은 어디까지 강해질까? 양준은 점점 더 기대되었다.
신유 경지는 항상 무인들에게 있어 가장 힘든 문턱이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신유 경지를 돌파해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신유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강자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무인들은 침식을 잊어 가며 수련했고, 밤낮으로 탐구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오랫동안 깊은 산속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중에서 기운의 진리를 터득하고 경지의 오묘함을 엿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무인들은 평생 연구해도 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들은 아쉬움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운이 좋아 신유 경지를 돌파한다고 해도, 신유 경지는 모두 9단계이므로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게다가 그 위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경지도 있었다.
진원 경지 8단계를 돌파한 양준은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 앉은 채, 새로운 경지가 가져온 변화를 자세히 느껴 보았다.
만약영액으로 벌모세수를 거친 그는 경지를 돌파할 때마다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돌파하기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았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의 그는 돌파하기 전의 자신을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뒤, 양준은 드디어 눈을 떴고, 눈에는 정기가 감돌았다.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대전 밖에는 열몇 명의 사람들이 두 줄로 나눠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준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자 다들 예를 올렸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사람들을 훑어본 양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왼쪽에는 방지를 필두로 한 죽절방의 고위층 몇 명이었다. 그런데 오른쪽에는 목남두를 필두로 한 현광회의 고위층들이었다. 얼마 전에 그들은 방지의 무리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심지어 하마터면 방지를 죽일 뻔했던 오천도 그중에 끼어 있었다. 양쪽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양준에게 인사를 올렸다. 다만, 목남두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방지는 얼굴에 윤기가 돌면서 심지어 기가 살아난 것 같기도 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아한 얼굴로 목남두를 힐끗 보며 물었다.
“현광회는 어째서 아직도 이곳에 남아 있는 거지?”
목남두가 얼른 대답했다.
“공자님께 아룁니다. 오늘부터 현광회는 공자님의 명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어째서지?”
양준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자님, 사실은 이러합니다…….”
이를 본 방지는 서둘러 다가가 양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젯밤, 양준이 폐관 수련하며 경지를 돌파할 때, 곽성진과 그의 두 고수는 몸에 지닌 은표를 전부 모았지만 몇십만 냥밖에 안 되었다. 방지는 곽성진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차용증을 쓸 것을 제안했다. 어쨌든 상대는 곽씨 가문의 공자이니 도망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좋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곽성진은 그 말에 따르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 방지를 흠씬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결국 생각을 거쳐 곽성진은 현광회를 저당 잡히기로 했다. 그는 양준에게 귀순하라는 명령을 목남두에게 내리고는 곽씨 가문의 두 고수를 데리고 떠나갔다. 결국 현광회 사람들은 난감한 얼굴로 이곳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광회에는 천 명이 넘게 있었는데 모두 곽성진이 스스로 키운 세력이었다. 평소에도 그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쓰이다가 이렇게 물건처럼 남에게 넘겨지니 목남두 무리도 기분이 씁쓸했다. 하지만 아무리 씁쓸하고 내키지 않아도 목남두는 불평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양준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방지가 말을 마치자, 목남두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몰래 양준의 반응과 안색을 살피며 양준이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 기다렸다. 하지만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그의 얼굴에서 아무런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목남두는 당황해서 얼른 말했다.
“사실 곽 공자님께서 이렇게 처리하셨지만, 양준 공자님께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왜지?”
목남두는 속으로 기뻐했다. 그는 자신의 말이 통한 것을 알아채고 다급히 말을 이었다.
“현광회는 지난 몇 년간 적지 않은 재물을 쌓았습니다. 저당을 잡힌다면 어젯밤의 손실을 만회하기에 충분합니다.”
“얼마나 되는데?”
“몇백만 냥은 확실히 있습니다. 몇 년간 곽 공자님이 상금으로 내린 것도 모두 모아 두고 있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현광회는 중도의 다른 세력에 비해 어떠하지?”
“큰 세력과 비교하면 모자라지만, 작은 세력에 비해서는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목남두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큰 세력은 아닙니다.”
“만약 죽절방과 하나로 합친다면?”
“그럼 분명 세력 순위 15위 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목남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하나로 합쳐. 오늘부터 현광회는 없다!”
양준은 방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자는 그대의 조수로 쓰도록 해!”
“예!”
방지는 크게 기뻐했다. 목남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감히 불평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현광회가 이렇게 많은 돈을 모으다니. 작은 세력들을 너무 얕보았네. 작은 세력들이 모두 죽절방처럼 가난한 건 아니었군.’
양준은 씨익 웃은 뒤 말했다.
“서로 친해진 다음… 실력이 약한 작은 세력들을 흡수하도록 해.”
“네?”
방지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하지만 목남두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건…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죽절방은 남을 공격하겠다는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갑자기 다른 세력을 공격하라고 하자 방지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양준이 목남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목남두는 얼른 대답했다.
“못할 것은 없지요. 약육강식의 세계니까요. 어젯밤에 공자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죽절방은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런 작은 세력 간의 다툼은 흔한 일입니다. 방지, 자네가 너무 고지식한 거야.”
그 말에 방지는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실룩였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현광회는 이런 일을 자주 했나 보군.”
양준은 의미심장하게 목남두를 바라보았다.
목남두는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곽 공자의 지루함을 달래느라고 지금까지 두어 번 싸웠을 뿐이지요. 하지만 흡수할 수 있는 세력에 대해서는 미리 알아보았습니다. 어느 때건 곽 공자가 심심하다고 하면 그분을 모시고 구경거리를 만들어 드리려고요. 하하…….”
목남두는 새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양준이 흥미를 보이자, 그는 다급히 말을 늘어놓았다.
방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왠지 이대로라면 방주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바로 끼어들며 말했다.
“목 형의 도움이 있다면 다른 세력들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얻은 재물 중에서 일부는 세력을 흡수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전부 단약과 무기를 제련하는 데 쓰일 재료로 바꿔 와. 최소 지급 상품으로.”
“예!”
방지와 목남두는 공손하게 대답하며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양준이 계승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작별을 고한 다음 각자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대전 안으로 상의하러 갔다.
제자리에 잠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던 양준은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곽성진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군. 부하도 늘어났으니, 앞으로 눈덩이 굴리듯이 점점 규모가 커질 거야.’
*양응봉 저택.
양준이 돌아오자 집사는 서둘러 그를 맞이했다.
“도련님, 나리께서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바로 서재에 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네.”
양준은 대답하고 나서 얼른 서재로 향했다. 그도 아버지가 무슨 일로 찾는건지 매우 궁금했다.
서재 앞에 도착한 그는 문밖에서 동소죽의 목소리를 들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준이는 금방 돌아올 거예요.”
양응봉이 불평하며 말했다.
“어미라는 사람이 아들이 언제 자리를 비웠는지도 모른단 말이오?”
동소죽이 대답했다.
“당신도 모르잖아요. 지금이 어느 땐데 원망이나 하면서, 참 억지세요.”
양응봉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방 안에서는 그들 외에 다른 두 사람의 웃음을 힘겹게 참는 끅끅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살짝 놀라며 미소를 지은 채,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양준이 돌아온 것을 보자, 동소죽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이 녀석, 어젯밤엔 어디 갔었어? 외박이나 하면서 이제야 들어오다니. 너 때문에 내가 네 아비한테 한 소리 들었잖아.”
그녀는 말을 하면서 양준에게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를 맡는 것이오?”
양응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밤새 술을 마신 게 아닌가 하고요!”
동소죽은 진지한 얼굴로 한참 냄새를 맡더니 한시름을 놓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술냄새도 안 나고, 분가루 냄새도 안 나네…….”
“장난치지 마세요!”
양준은 난감한 얼굴로 옆을 가리켰다.
“사람도 있는데.”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