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89화 (389/853)

제 389장. 또 조건이 있나요?

서재 안,

양응봉은 진지한 얼굴로, 동소죽은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었다. 옆에는 훤칠한 남자와 귀여운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바로 양준을 중도로 데려온 도봉과 당우선이었다. 양준이 돌아온 것을 보고 그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수했다.

“공자님!”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앉아 있어.”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양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준이 또 한 단계 돌파하여 진원 경지 8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제 얼마나 지났다고. 지난번에 돌파하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빠르잖아?!’

지난번 양준이 진원 경지 7단계를 돌파했을 때, 그들도 자리에 있었다. 그땐 처음 만나는 자리인지라 두 혈시는 양준의 자질이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출중했다.

‘그런데 왜 공자님이 화룡지에서 반나절 만에 뛰쳐나왔다는 소문이 돌까?’

이 사실을 떠올린 두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이 너도 앉거라.”

양응봉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잠시 할 얘기가 있다.”

“예.”

아버지가 엄숙하게 입을 여는 것을 보고 양준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서둘러 동소죽과 함께 옆에 앉았다.

다들 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양응봉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어제 장로원에서 각 직계 집안으로 지령이 내려왔다. 계승 싸움과 관련된 일이지.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승 싸움에 혈시당의 혈시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구나!”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혈시당의 혈시들은 하나같이 실력자들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신유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대적할 만한 사람이 드물었다. 혈시의 도움을 받는다면 계승 싸움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좋은 일이네요.”

양준은 왜 도봉과 당우선, 그리고 아버지까지 표정이 좋지 않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좋은 일이지.”

양응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장로원에서 명하길, 혈시당의 혈시들은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있으나 그들의 임무는 공자들의 안전을 책임질 뿐, 다른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양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공격을 받았을 때, 반격할 수는 있지만 선공은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맞다. 혈시들의 무력이 너무 강력하다 보니 선공한다면 손쉽게 적수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거지.”

양응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또 너희들이 제대로 된 지원 세력을 끌어들이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그렇군요.”

양준은 웃는 얼굴로 도봉과 당우선을 힐끗 보았다.

“혈시의 도움을 얻으려면 또 조건이 있나요?”

둘은 깜짝 놀랐다. 양준이 이것까지 알아맞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응봉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있다. 반드시 가문에 일정한 등급과 일정한 수의 공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너희들이 다른 문파에서 배워 온 무공 같은 것 말이다!”

장로원에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양씨 가문 직계 자제들이 문파에서 배워 온 비전 공법을 죄다 바치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이 또한 매번 계승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절차로 이를 핑계로 가문에서는 천하에 있는 비전 공법들을 수집했다. 그래서 양씨 가문이 보유한 무공과 공법이 그토록 많고 풍부했던 것이다. 세상에서 공법과 무공을 보유한 양으로 따지자면 양씨 가문이 단연 일등이었다. 다른 7대 가문은 이 점에서 양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었다.

“가문에 바친 것이 많을수록, 강한 혈시를 얻을 수 있고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는 거지!”

혈시는 다들 강했으나 혈시당에서도 실력이 나뉘었다. 도봉과 당우선은 그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들 위에는 더욱 강한 혈시도 있었는데, 무려 신유 경지 9단계에 이르기까지 했다.

“혈시는 공자마다 두 명까지만 선택할 수 있다.”

양응봉이 덧붙였다.

“아버지, 혹시 제가 가문에 바칠 것이 없을까 봐 걱정하고 계시는 겁니까?”

양준이 기괴하게 웃으며 물었다.

양응봉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양준은 금우응 한 마리를 얻기 위해 가문에 현급 무공을 바쳤었다. 양응봉은 아들이 바깥에서 현급 무공 한 가지를 얻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제 더는 여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비해 둔 게 있습니다.”

양준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남도 아니니 그도 굳이 숨길 생각이 없었다.

양응봉은 갑자기 만약영액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설마 그 물건을 바칠 생각이냐?”

만약영액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만약 양준이 그것을 바친다면 분명 두 혈시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가문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소란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아버지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준이 고개를 젓자, 양응봉은 끝내 안색이 변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밑천이 도대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준은 도봉과 당우선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도봉, 우선. 보아하니 이번에도 함께할 것 같구나.”

그는 두 혈시가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찾아온 줄로 알았다. 앞서 중도로 돌아오면서 도봉과 당우선은 혈시가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것을 가문이 허락한다면 반드시 양준을 따르며 충성을 다할 것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양준이 말을 마치자, 도봉과 당우선은 오히려 우울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양준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내 양준 얼굴의 웃음기가 점차 사라졌다.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나서 물었다.

“아무 핑계라도 대 보지 그래?”

두 사람의 표정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도봉과 당우선 모두 약속을 어길 사람들이 아니었다. 양준은 기분이 언짢았으나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준아.”

양응봉이 아들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분위기를 완화시켰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라.”

동소죽도 조급해졌다.

“그래, 아들. 그렇게 말하지 마. 나와 우선이는 사적으로 친분도 있고, 함께 무공에 대해 토론도 하는 사이란다. 이번에 우선이가 널 데리고 왔다고 해서 어미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양준이 화를 내려고 하자 동소죽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한 번도 아들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더없이 고분고분하던 아들은 지금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동소죽은 속으로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아들이 진정으로 성장해 스스로의 생각과 안목을 갖춘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사정하자 양준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는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 오해했다면 진작 너희들을 내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지.”

잠시 뜸을 들이던 양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변명할 기회를 줄게.”

도봉과 당우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주 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무릎을 반쯤 꿇었다. 도봉이 부끄러운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희가 공자님께 충성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몸, 공자님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가시밭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양응봉은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도봉이 준이 앞에서 저렇게까지 얘기하다니! 게다가 당우선도 반박하지 않잖아!’

혈시당은 양씨 가문의 특별한 조직이었다. 혈시는 신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영예와 충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충성은 양씨 가문 전체를 향한 것이지, 절대 개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 양응봉을 데리고 돌아온 두 혈시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다. 오는 길 내내 그저 본분을 지키며 임무를 완수했을 뿐이었다. 예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양응봉은 그 어떤 혈시의 존중도 받지 못했다. 혈시들 중 그에게 충성을 표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아들이 해낸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전혀 으쓱한 기색이 없었다. 순간, 양응봉은 자신이 아들보다 못하다는 좌절감이 들었으나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도봉과 당우선이 급하게 우리 집으로 온 이유가 있었군.’

“그럼 도대체 왜 나를 따르지 못하겠다는 거지?”

양준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충성을 바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봉이 어두운 얼굴로 주저하며 말했다. 그러자 당우선이 얼른 말을 받았다.

“단지 그전에 저희가 공자님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문득 도봉과 당우선이 머뭇거리는 게 자신에게 부탁할 일과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금세 기분이 풀어졌다.

‘역시 두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아니었어. 내가 방금 전에 너무 조급했던 거야.’

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들에게 건 기대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했다.

도봉과 당우선은 천천히 일어났다. 두 사람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당우선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본래는 이 일로 공자님께 폐를 끼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의지할 곳이 없어서, 부끄럽지만 공자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도봉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방금 전에 이 일을 넷째 나리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나리께서 대신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봉은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양준은 양응봉에게 시선을 돌렸다. 양응봉은 차를 홀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준아, 넌 형제들 중 몇 명이 중도로 돌아왔는지 아느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양준은 의아했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큼 알고 있습니다.”

“그럼 넷째 양신무의 일도 알고 있느냐?”

양준은 지난번 술집에서 양소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습니다.”

양응봉은 조금 놀랐다. 양준이 겉보기엔 바깥 세상 일에 깜깜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소식이 빠를 줄 몰랐던 것이다.

‘스스로 각종 소식을 알아보면서 사전 준비를 하고 있나 보군.’

양응봉은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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