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0장. 너희는 나와 적이 되고 싶으냐?
양씨 가문의 공자들 중 넷째인 양신무는 중도로 돌아오는 길에 기습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그의 곁을 지키던 두 혈시는 패혈광술을 펼쳐 전력으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양신무를 지키지 못했다.
양신무는 가문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영단, 묘약들도 효과를 보지 못해 결국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까지 중도로 돌아온 양씨 가문 공자들 중 다섯 명이 불행히도 기습을 당했었다. 양준, 양신무를 제외하고 첫째 양위, 다섯째 양항, 일곱째 양영(楊影). 그중 양항과 양영이 작은 부상을 입었고, 양위와 양준은 전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양신무와 비교했을 때, 나머지는 행운이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문의 자제가 죽은 것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양씨 가문은 대노하여 반드시 범인을 찾아 구족을 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도봉과 당우선이 이번에 양준을 찾아온 것은 양신무를 데려온 두 혈시 때문이었다.
“가문에서 그 둘을 죽이려 한답니까?”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양응봉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전력을 다해 싸웠고, 크게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 완치되지 못했단다. 혈시로서 책임을 다한 것이니 가문에서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혈시를 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씨 가문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 또한 깊었다. 장로전 사람들도 생각이 있다면 절대 이런 이유로 두 혈시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면 다른 혈시들이 실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벌은 면치 못했지.”
양응봉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도봉은 울적한 얼굴로 말했다.
“그 둘은 부상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곤장을 각자 백 대씩 맞아 온몸의 경맥이 다 으스러졌습니다. 아마 이번 생에서 이룰 수 있는 무공은 끝난 것 같습니다…….”
양씨 가문에서 사람을 때리는 곤장은 보통 곤장이 아니라 따로 제작한 비보였다. 곤장 백 대는 전성기의 혈시들도 견디기 힘들었다. 하물며 그들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양응봉도 이전에 곤장 서른 대를 맞고 몇 달간 침대에 누워 지낸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당우선도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넷째 공자님을 보호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자책감에 시달릴 텐데 이런 일까지 겪고 나니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차게 식은 것 같습니다.”
도봉은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일도 견디지 못해서야 어떻게 혈시라고 할 수 있어?”
양준이 코웃음을 쳤다.
“준아, 넌 혈시가 가문에 얼마나 충성하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게다. 그들은 실력이 정체된 것 때문에 마음이 식은 것이 아니다. 넷째를 지키지 못하고 가문이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하지 못해 그러는 것이다. 만약 넷째가 죽지 않았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텐데 지금은… 휴…….”
양응봉이 나지막하게 호통쳤다.
양준은 양응봉을 힐끗 보더니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혈시들의 충성심을 과소평가한 것 같군요.”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날 찾아온 거야? 그 둘을 치료해 달라는 거야? 난 그렇게까지 큰 능력은 없는데.”
“그게 아닙니다.”
도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와 우선은 계승 싸움에서 그 둘이 공자님을 위해 힘쓰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분명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 계승 싸움에서 누구도 그들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무공을 폐하고 은퇴할지도 모릅니다.”
두 혈시는 양신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에 양씨 가문의 공자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부상까지 입어서 언제 다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번 계승 싸움에서 그들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가문에서 혈시를 키우기 위해 재력으로나 물자로나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데,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를 해? 정말 양씨 가문에 충성한다면 그들의 경지도 양씨 가문의 것이니, 그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양준의 말은 거칠었으나 도봉은 그 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듣고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공자님께서 그들을 선택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우선도 조급해져 한마디 거들었다.
“그들이 스스로 아직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면 비관적으로 지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도봉이 틈을 타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챈 양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는 도봉과 당우선이 무슨 일로 그를 찾아왔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 그들이 왜 가능하다면 자신의 옆에서 견마지로로 충성을 다하고 싶다고 하는지도 깨달았다. 만약 정말로 도봉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자신은 그 두 혈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도봉과 당우선은 분명 다른 공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공자님들 중에서 저와 우선이 그나마 잘 알고 있는 분은 막내 공자님뿐입니다. 다른 혈시들은 공자님들과 얘기도 몇 마디 나눠 보지 못해서 친분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러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게 누가 너희 혈시들더러 그렇게 고고하게 굴랬어?”
양준이 입을 삐죽거렸다.
도봉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공자님들은 저희를 감복시킬 수단도, 능력도 없지 않습니까?”
양응봉과 동소죽은 이 말을 듣고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에서 놀라움과 기뻐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양준은 이미 도봉과 당우선을 감복시켰다는 말이었다.
“공자님……!”
도봉이 손을 비비적거리며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당우선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가볍게 의자 등받이를 두드렸다.
탁, 탁.
방 안은 더없이 조용했다. 도봉과 당우선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양준을 바라보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양응봉은 찻잔을 들고 홀짝였다. 동요가 없는 낯빛을 보아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동소죽도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들은 아들의 결정에 간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참이 지나고, 양준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었다. 도봉과 당우선은 순간 얼굴을 굳히며 숨을 죽였다.
“만약 내가 그들을 쓰기 싫다고 하면?”
양준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도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심사숙고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적어도 저와 우선은 공자님께서 저희가 따르기를 더욱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영광입니다.”
당우선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을 표했다.
양준은 두 사람을 노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나와 적이 되고 싶으냐?”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공자들에게 선택받지 않기를 기도해.”
양준이 씨익 웃었다. 곧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가득 넘쳤다.
“하지만 너희들이 선택된다 해도 내가 다시 빼앗아 올 거야!”
양준의 말뜻을 알아들은 도봉과 당우선은 기뻐하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자님, 허락하신 겁니까?”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 두 사람이 눈에 안 차긴 하지만, 너희가 와서 이리 부탁하니 어쩔 수 없지.”
“혈시당 전체를 대표하여 공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공자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당우선도 얼굴에 홍조를 띠며 기쁘게 웃었다.
“가 봐. 내가 내일 장로전에 가서 얘기할게.”
양준은 손을 저었다.
“네!”
두 사람은 흥분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기쁜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혈시당에 전해주고 싶었다. 입구까지 걸어갔던 도봉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 공자님. 그 두 친구는 중상을 입어서 도련님께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자질은 아주 뛰어납니다.”
“뛰어나다고? 너희하고 비교하면 어떤데?”
양준이 놀라서 물었다.
“저희보다 뛰어납니다.”
도봉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당주께서는 만약 그 둘에게 충분한 기연이 주어진다면 분명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어.”
양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기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도봉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당우선과 함께 떠나갔다.
방 안에 세 사람밖에 남지 않자, 양응봉이 입을 열었다.
“그 둘의 이름은 나도 들어 본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혈시당에서 자질이 가장 훌륭하다고 하더군. 그들이 이번 일로 혈시당에서 물러나 은퇴한다면 가문에도 큰 손실이다.”
여태껏 혈시당에서 신유 경지 이상을 돌파한 혈시는 한 명뿐이었다. 지금 그는 양씨 가문의 태상 장로가 되어 지위가 아주 높았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께서 싫어하시겠지만 한 말씀 올리자면 가문에 손실이든, 아니든 전 관심 없습니다.”
양응봉은 실소했다.
“이해한다.”
양씨 가문은 가문의 명성이 지나치게 큰 탓에, 가족 간의 정이 메말라 있었다. 따라서 이제 막 가문으로 돌아온 직계 자제들은 가문에 귀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준아, 네가 이번엔 아주 큰 득을 보았단다.”
양응봉은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양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그래도 도봉과 우선이 저를 따르는 게 더 좋습니다. 서로 익숙하기도 하고요.”
“득을 보다니요? 둘이서만 알아듣게 얘기하지 말아요.”
동소죽이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준이가 손해를 보는 거잖아요.”
이름 모를 두 혈시는 중상을 입어 단기간 내에 양준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설령 회복한다고 해도 도봉과 당우선보다 더 낫다는 보장도 없었다.
양준과 양응봉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양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설명해 드리세요. 전 먼저 돌아가서 준비 좀 할게요. 내일 또 장로전에도 가 봐야 하니까요.”
“그래, 가 보거라.”
양응봉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아들의 건장한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꿈만 같은 기분이었다.
‘컸구나, 정말 다 컸어! 지략, 수완 모두 이 아비보다 훨씬 낫구나. 몸에 대단한 것도 많이 지니고 있고. 도대체 몇 년간 밖에서 무슨 일을 겪었던 거야?’
“말해 봐요. 준이가 도대체 무슨 득을 본다는 거예요?”
동소죽이 재촉하자, 양응봉은 미소를 지으며 그 속에 담긴 뜻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