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91화 (391/853)

제 391장. 후회되지?

양씨 가문 장로전.

장로전 내부는 크고 널찍했다. 바닥에는 두꺼운 융단이 깔려 있고, 벽에는 정교한 산수화가 새겨져 있었다. 장로전 가운데 놓인 향로에서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영신향(寧神香)이 타오르고 있어 따뜻했다. 또 천장에 박힌 보석들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검소한 옷차림으로 앉거나 서서 앞에 놓인 책자를 연구하거나 공법의 오묘함을 터득하며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온몸의 기운을 거두고 있어, 겉으로 보기엔 보통 노인들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이들 모두, 대단한 무공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장로전 중앙에는 양진(楊鎮)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고희가 넘었으나, 아직 젊은 시절의 풍채가 남아 있었고, 여전히 동안을 자랑했다. 그는 장로전의 책임자 중 한 명이었지만, 나이가 많아 밖에 돌아다니기 불편했다. 또한 젊었을 때처럼 세상을 휘저으며 양씨 가문을 위해 공을 세우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나이 든 장로들과 함께 장로전에서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양진은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소매 안에 넣은 채, 앞에 앉은 청년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한참 뒤, 청년은 말을 마치고 물끄러미 양진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양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혼탁하던 두 눈에는 정기가 감돌았다. 그는 차갑게 청년을 노려보더니 귀찮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못난 놈! 밖에서 몇 년간 있으면서 겨우 그깟 폐물을 가져온 것이냐? 그까짓 걸로 혈시를 배정받겠다고? 노망은 내가 아니라, 네가 났구나.”

야단을 맞은 청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돌아가라. 이 공로는 내가 기록해 두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혈시를 배정받지는 못한다.”

양진은 손을 내저으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충분한 공을 세우고 다시 얘기하거라. 하지만 계승 싸움이 곧 시작되니 준비할 시간이 없겠구나. 남의 비웃음을 사기 전에 일찌감치 계승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청년은 낙담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장로님, 한 명만 부탁드립니다. 실력이 가장 낮은 혈시라도…….”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진이 말을 잘랐다.

“공로가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지, 썩 나가지 않고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양진이 호통치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청년을 덮쳤고, 청년은 장로전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장로전 전체가 시끄럽게 윙윙 울렸지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다른 장로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전부 귀라도 먹은 것처럼 이곳의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장로전 밖, 청년은 초라한 몰골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수치를 당해 창피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떠나갔다.

장로전 입구에 도착한 양준은 이 광경을 보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청년은 양씨 가문 공자들 중 서열 3위인 양철(楊鐵)로, 양준의 셋째 형이었다.

가문에서 혈시들의 계승 싸움 참여를 허락한다는 말을 각 저택에 전한 뒤로 공자들은 모두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그동안 밖에서 얻은 것들로 혈시들을 배정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양철은 몇 년간 밖에서 그다지 가치 있는 물건을 얻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장로에게 쫓겨난 것이다.

“셋째는 안 되겠네.”

아쉬움이 섞인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양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둘째 형님!”

양준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준아.”

양소가 웃으며 대답했다.

양준은 양소의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조용히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듬직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무덤덤한 표정은 시종일관 바뀐 적이 없었다. 양소가 양준을 부를 때 이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큰형님!”

양준은 흠칫 놀랐다.

그는 양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 유일하게 신유 경지에 오른 양위였다.

“준이?”

양위의 시선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양준이 인사를 할 때부터 이상하게도 그의 진원이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압박감을 느낄 때에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양위는 갓 터득한 신식으로 양준을 훑어보고 나서 그의 경지가 겨우 진원 경지 8단계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진원이 왜 양준 때문에 불안정해졌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이다. 준이도 많이 성장했구나.”

양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두려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5, 6년 전까지만 해도 막내 동생은 수련할 수 없는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동생은 이미 진원 경지 8단계가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 경지가 두 단계 낮았지만, 수련한 시간은 7, 8년이나 짧았다.

‘방금 전엔 미처 이 점을 떠올리지 못했어.’

양위는 양준에게서 압박감을 괜히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언젠가 나를 뛰어넘을 수도 있겠군!’

“너도 뭔가를 바치러 온 것이냐?”

양소는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쓴웃음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하는 수 없죠. 가문에서 이렇게 나오니까 안 올 수가 없더라고요.”

양소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친근하게 양준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는 가문의 그 많은 보물들이 다 어디서 난 것 같으냐? 다 우리가 밖에서 훔쳐 온 것들이지.”

“모두 가문의 것이니 언젠가 너희들도 사용할 날이 올 거다.”

양위는 항상 차가운 표정이었다. 양준은 그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또한 말수도 적어 답답해 보였지만 일을 처리할 때는 날카롭고 결단력이 있었다. 그의 말에 양소와 양준도 더 이상 이 일을 논하지 않았다.

“너는 너를 데리고 왔던 두 혈시를 뽑으려는 거지? 그들도 널 제법 따르던데.”

양소는 무심결에 질문을 툭 던졌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을 뽑으려고 합니다.”

양소는 깜짝 놀랐다. 그는 양준이 도봉과 당우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원할 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다섯째 형님은요? 다섯째 형님이 보이지 않네요.”

양소와 양항은 친형제여서 항상 붙어 다녔고, 떨어져 있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양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있는데 다섯째가 감히 나타날 수 있겠느냐?”

양소와 양준은 서로 마주 보며 목을 움츠렸다. 양항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 모두, 냉담한 표정의 큰형님에게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먼저 들어가 보마.”

양위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뒷짐을 진 채, 장로전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걸어 나와 성큼성큼 떠나갔다.

양소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큰형님은 여전히 말수가 적다니까. 동생들이 친해지려고 해도 친해질 수가 없네.”

“성격이 그러시니까요.”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는 양위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질척대지 않으며, 할 말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단호한 모습이 좋았다.

“먼저 들어간다. 넌 조금 더 기다려야겠구나.”

“네.”

또 한참 지나자, 양소가 웃으며 걸어 나왔다. 이번 결과에 만족하는 듯했다.

양준은 그가 장로전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양준이 들어오는 것을 본 양진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양준이 가까이 다가가서 예를 올리자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널 기억하고 있다. 지난번 현급 무공으로 금우응을 바꿔 갔지.”

“예.”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금우응을 바꿀 때에도 양진이 그에게 문서를 내어 줬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므로 양진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소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후회되지? 하하하하! 그때 난 네가 후회할 줄 알았단다. 현급 무공으로 쓸데도 없는 짐승 한 마리를 데려가다니. 손해가 엄청나겠어! 그거면 혈시 한 명을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는 양준이 후회하는 것을 보게 되어 무척 기쁜 듯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한다고 해도 머리만 아플 뿐이니 굳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양진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삐죽거렸다.

“입만 살아서는!”

그는 양준이 일부러 대범한 척 연기를 할 뿐이지, 사실은 후회로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네가 이번에는 어떤 걸 가져왔는지 봐야겠구나!”

양진은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말해 보거라. 혈시 몇 명을 바꾸러 왔느냐?”

“많아 봤자 두 명 아니겠습니까? 그럼 두 명 데리고 가겠습니다!”

양진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점차 사라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은 점차 엄숙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옆에서 귀가 먹은 듯이 있던 백발의 장로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장로전 안의 모든 시선이 양준에게 쏠렸다. 장로들은 흠칫 놀라더니 곧이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들이었다.

혈시 한 명을 배정받으려면 적어도 현급 무공 하나 또는 천급 상품의 무공 세 개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양준은 지난번에 이미 현급 무공 하나를 써 버렸다. 그런데 또 혈시 두 명을 바꾸겠다니? 그 말인 즉, 그에게 적어도 현급 무공 두 개가 더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급 무공이 그렇게 얻기 쉽다면 가치도 높지 않을 것이다.

장로전 안의 모든 사람들은 양준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양준이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높게 평가한 것뿐이라고 짐작했다.

한참 뒤, 양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네가 준비해 온 것을 꺼내 보아라. 혈시를 두 명 배정받을 수 있는지 내가 보고 판단하마.”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새하얀 옥 두 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양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소매에서 손을 꺼내 그중의 하나를 들고서 신식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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