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92화 (392/853)

제 392장.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

진원으로 옥에 무엇인가 새겨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정보를 전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재주가 아니었다. 진원을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가능했다. 그래서 양준이 옥 두 개를 꺼내는 것을 보고 양진은 분명 이 안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신식으로 옥을 살펴보던 양진은 미간의 주름이 점점 더 깊어지더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뒤, 그의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해졌다가 또 놀라움으로 변했다. 눈빛의 변화에 따라 그의 표정도 다채롭게 변했다.

재미있는 구경을 하려고 기다리던 장로들은 양진의 표정을 보고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속으로 양진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게 아닌가 짐작했다.

한참이 지나고, 양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옥에 침투했던 신식을 서서히 거두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며 다른 옥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옥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또다시 방금 전과 같은 변화무쌍한 표정이 떠올랐다.

장로전 안에 있던 장로들은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 같이 양진이 있는 쪽으로 조용히 모여들었다.

잠시 뒤, 양준은 가장 바깥으로 밀려났다. 장로들은 한데 모여서 양진이 신식을 거두기를 기다렸다.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건가?”

장로 한 명이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양준이 가져온 물건이 이토록 양진의 관심을 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옥을 집어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양진이 홱 채 가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리 오너라!”

양진은 손을 내저어 고개를 기웃거리는 장로들을 한쪽으로 밀어 냈다.

“네.”

양준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굳이 따지자면 양진은 그의 할아버지뻘 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양씨 가문에서는 사이가 가깝지 않은 이상, 서로를 친척의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양진은 옥을 들고 미간을 찌푸린 채, 얼굴이 벌게져서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인가?”

한 백발의 장로가 놀라며 말했다. 다른 이들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한순간에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듯했다.

“영진 두 개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양진이 나지막하게 호통쳤다.

“당연히 영진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물은 것은 무슨 용도로 쓰이는 영진이냐, 이 말이다.”

말을 하는 사이, 그의 얼굴은 더욱 벌게졌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식견과 경험 모두 풍부했다. 하지만 지금 손자뻘의 젊은이가 가져온 물건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으니 창피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연단할 때 쓰는 영진입니다.”

양진은 깜짝 놀랐다.

“연단할 때 쓰는 거라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연단용 영진은 적지 않게 봐 왔지만 네가 가져온 것처럼 복잡하고 오묘한 영진은 처음이다. 이런 영진은 약 가마에 새기기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이 영진으로 연단한다면 연단사의 체력과 진원을 더욱 많이 소모할 텐데 쓸모가 있다고 확신하느냐?”

“확신합니다.”

“말해 보거라.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

양진은 미간을 구긴 채 물었다. 그는 연단에 대해 잘 모르기에 영진에 담긴 현묘함을 깨닫지 못했지만, 두 영진이 모두 복잡하고 오묘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좋은 물건인 것은 틀림없으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는 연단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양준은 평온한 얼굴로 설명했다.

“만약 연단사의 평소 연단 성공률이 6할이라면 이 영진을 사용했을 경우, 9할로 올릴 수 있습니다.”

양진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바뀌었다.

9할! 그가 아무리 연단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연단 성공률 9할을 보장할 수 있는 연단사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보통 연단사는 연단 성공률이 6, 7할에 불과했다. 열 개의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연단 재료로 예닐곱 개의 단약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조금 더 실력 있는 연단사라고 해도, 연단 성공률은 8할 정도였다. 약왕곡 출신의 제자들이 대부분 이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지금 영진 하나로 성공률을3할이나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수준 있는 연단사가 이 영진을 사용한다면 무조건 연단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재료와 시간, 인력을 절약할 수 있단 말인가?’

순간 양진은 영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물론 이는, 양준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했다.

“그럼 다른 영진은 무엇이냐?”

양진은 마음속의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애써 평온한 말투로 물었다.

“단약의 질을 향상시킵니다!”

양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냐?”

양진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다급히 캐물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가 이해한 것이 정확하다면 이 영진은 방금 전의 영진보다도 가치가 더욱 어마어마했다!

“천급 중품 단약을 제련할 수 있는 약 가마에 이 영진을 사용한다면, 천급 상품의 단약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양준은 인내심 있게 다시 한번 설명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 확률이 높지 않을 뿐, 분명 가능합니다!”

장로들은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영진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이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

“만약 현급 상품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약 가마라면?”

양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영급의 단약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겁니다.”

영급! 이 두 글자는 북 소리처럼 사람들의 귓가에 울렸다. 장로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다.

양준은 침착하게 그 시선들을 마주했다.

이 두 영진은 그가 연단진결에서 터득해 낸 것으로 쓸모가 없을 리 없었다.

장로전은 정적에 잠겼다. 장로들은 제자리에서 넋을 잃은 채 서 있었다. 다들 영진의 가치를 떠올리며 양준이 한 말이 사실인지 열심히 진위를 판단하려 했다.

한참 뒤에야 양진은 정신을 차리고 엄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장로전을 우롱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르느냐? 네가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라고 해도 이곳에서 망발을 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롱인지 아닌지는 전문가를 불러서 확인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간도 크구나!”

양진은 냉소를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가서 단약방의 정백련(程百煉)을 모시고 오게.”

“네.”

뚱뚱한 장로가 대답하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정백련은 양씨 가문의 수석 연단사였다. 연단술의 조예가 깊기로 유명했지만, 소부생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소부생은 대한 전체에 단 한 명뿐인 유일한 현급 상품의 연단사였다. 그리고 정백련은 현급 중품의 연단사였다.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이 때문에 정백련과 소부생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생겼고, 정백련은 그저 소부생의 연단술을 흠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어서 말하거라. 정백련이 온 뒤에 말을 바꾼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양진은 음산하게 엄포를 놓으며 마지막으로 양준을 떠보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장로님, 제가 영진 두 개를 바친 것은 첫째로 혈시 두 명을 배정받기 위해서이고, 둘째로 이 물건을 양씨 가문에 바침으로써 가문에 이득을 가져다주기 위함입니다. 이곳은 제가 태어난 곳인데 혈시만 필요했다면 영진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두 개를 가져왔겠습니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장로님께서 잘 판별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양진은 순간 당황하다가 자세히 생각해 본 다음, 양준의 말이 옳다고 여겼는지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굴었구나.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기다려 보자. 진짜라면 가짜일 리가 없고, 가짜라면 진짜로 변할 리도 없으니 말이다. 하하!”

말을 마친 그는 또 미간을 찌푸리고 손에 든 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족히 한 시진을 기다리자, 뚱보 장로가 쉰 살이 되어 보이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왔다.

정백련은 기분이 좋지 않은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는 장로전에 들어서자마자, 양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고래고래 소리쳤다.

“양진! 뭐 하는 짓이야? 현청단(玄靑丹)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단 말이야. 곧 약 가마에서 꺼내야 하는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사람을 끌고 오다니. 그 단약을 물어내지 않으면 석 달 동안 양씨 가문에 단약을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이야!”

“암암, 물어주겠네!”

양진은 어두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이에 사람들 앞에서 이름으로, 그것도 노기 띤 말투로 불렸지만 양진은 화를 낼 수 없었다. 눈앞의 사람은 양씨 가문의 수석 연단사였다. 수많은 고품질의 단약들이 모두 그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 때문에 양진도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연단사, 그중에서도 실력이 강한 연단사는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정백련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천급 상품 단약이라 그리 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적지 않게 심혈을 기울인 것이라고. 자네 체면을 봐서 오십만 냥만 받지.”

양진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꾹 참으며 말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것부터 봐 주게.”

정백련은 그제야 옆에 서 있는 양준을 보더니 말했다.

“오는 길에 들었어. 이 녀석이 영진 두 개를 가져왔다고?”

“맞네. 정말 쓸모가 있는지 확인해 주시게.”

양진은 그에게 옥을 건넸다.

정백련은 옥을 받아 들고 경멸에 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연단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많은 영진을 연구해 왔지만, 그런 신기한 효능을 가진 영진은 듣도 보도 못했어. 내가 보기엔 자네가 늙어서 노망난 거야. 사기당한 게 분명한데 나까지 끌고 오다니. 이 일이 알려지면 자네나 나나 크게 망신을 당할 거야.”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우선 확인해 보게!”

양진은 정백련의 말을 듣고 화가 났다. 하지만 화풀이할 데가 없어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 이 애송이가 날 속인 것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정백련은 그제야 느긋하게 한쪽에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식을 펼쳐 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장로전에서 양준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물끄러미 정백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그가 두 영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한 얼굴로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 정백련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다들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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