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3장. 가치를 헤아릴 수 없네!
“왜 그러는 건가?”
양진이 나지막하게 꾸짖으며 언짢은 얼굴로 정백련을 바라보았다.
“그 나이 먹고 호들갑이라니. 체통을 지키시게!”
정백련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의 시선에는 흥분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는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몸을 날려 양준의 앞까지 날아가서는 어깨를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양준이 도망칠까 두려운지 무쇠 같은 팔로 꽉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이 영진… 어디서 난 건가?”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짚이는 데가 있어 덤덤하게 대답했다.
“약왕곡 운은봉에서요!”
정백련은 잠시 휘청거리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
말을 하던 그는 또 그윽하게 양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네는 소 대사와 무슨 관계인가?”
“별 관계는 없습니다. 그저 운은봉에서 두어 달 지낸 것뿐입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정백련의 안색이 순간 음산해졌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양준을 보더니 섬뜩한 한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럼 이 영진은 훔쳐 온 것인가?”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소 대사께서 전수해 주신 겁니다.”
정백련은 그만 멍해졌다. 그는 눈앞의 젊은이가 소부생과 무슨 사이여서 영진을 두 개나 전수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연단술에 관련된 물건은 훔쳐서는 안 되지. 소 대사가 전수한 것이라니 문제없겠어.”
그는 양준이 거리끼는 게 있어 사람들 앞에서 소부생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두어 마디밖에 주고받지 않았지만, 장로전의 장로들은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보아하니 저 영진의 내력이… 범상치 않은 모양이군!’
“선배님께서는 이 영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양준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정백련이 이 영진을 모른다면 이런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연단진결에서 알아낸 것인데, 어떻게 아는 거지?’
양준이 이렇게 묻자, 양진과 다른 장로들은 시선을 정백련에게 돌렸다. 정백련은 실망한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빛은 추억에 잠긴 듯했다.
“말을 좀 해보게. 젠장!”
양진은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었다. 한참 기다렸지만 정백련이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자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평소라면 정백련은 진작 표정을 굳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정백련은 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30년 전, 약왕곡에서 열린 연단 대회에서 본 적이 있네. 하지만 그때 봤던 것은 반쪽짜리 영진이었지.”
양준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문득 어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그때의 연단 대회는 유독 인재들이 많았다네. 나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꺾고 기세 좋게 결승전까지 올랐지. 하지만 결국 한 사람에게 패배했네. 그게 바로 소부생이라네!”
정백련은 쓴웃음을 지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소 대사는 하늘이 내린 천재로 연단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네. 그에게 패한 것이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지.”
양진은 옆에서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는 연단술을 잘 알지 못했다. 또한 연단사들 간의 숭배와 유대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우리 젊은 연단사들은 단성봉에 배치되어 단성 유상을 통해 연단의 도를 깨우치곤 했네.”
정백련은 계속해서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와 소부생은 동시에 단성 유상에서 반쪽짜리 영진을 발견했지만, 완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네. 천추의 한이었지. 시간이 지나 나는 양씨 가문으로 오게 되었고, 소부생은 약왕곡으로 들어갔네. 허허.”
정백련은 미소를 지었다.
“30년간 나는 소 대사와 많은 서신을 주고받았네. 시간이 날 때마다 약왕곡으로 가서 그와 함께 반쪽짜리 영진을 연구하며 복원하려고 시도해 보았지. 하지만 결국 30년의 세월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네. 이후 창운사지에서 약왕곡을 공격했을 때 단성 유상이 파괴되었다는 말을 듣고, 평생 이 영진의 온전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랬는데… 하하하하, 오늘 드디어 소원을 이루는구먼!”
정백련은 고개를 젖히고 미친 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소부생은 역시 소부생이구먼. 언제나 나보다 앞서가더니 결국 이 영진을 완성했군. 천하제일 연단사의 이름은 명실상부 그의 것이로구나!”
양준은 자신이 내놓은 영진에 이런 옛이야기가 있을 줄 몰랐다. 소부생 같은 인물도 예전에 영진을 반쪽짜리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니. 연단진결의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영진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두 연단사의 30년 된 소원을 이루어 준 셈이었다. 이 가운데 오해가 좀 있었지만, 양준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원래부터 소부생의 명의로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두 영진이 도대체 쓸모가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양진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당연한 소리를.”
정백련이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 쓸모가 없을 수 있겠어? 단성 유상에서 나온 영진인데. 단성이 남긴 보물이라고. 당연히 쓸모가 있지!”
“가치는?”
양진은 숨을 들이쉬며 물었다.
“헤아릴 수 없네!”
정백련은 엄숙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이내 장로들의 표정이 모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양준이 이러한 영진을 두 개나 내놓았으니 양씨 가문에 바친 공헌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양진도 어떻게 공로를 적으면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영진은 내가 가져가서 자세히 연구를 좀 해봐야겠네.”
정백련은 고목에 꽃이 피듯 활짝 웃었다. 그는 보물을 얻은 것처럼 옥을 손에 꼭 쥐었다.
“가져가는 것은 좋은데, 외부에 흘려서는 안 되네. 양씨 가문의 규칙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양진이 엄숙한 얼굴로 당부했다.
정백련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가 양씨 가문에 30년을 있었고, 가족들도 다 여기 사는데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아?”
양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백련은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경멸과 조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양준입니다.”
정백련은 친근하게 양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우리 집으로 오게. 차를 대접하지!”
말을 마친 그는 뒷짐을 지고 강한 기세를 내뿜으며 사라졌다.
장로전 안에 있던 장로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순간 그들은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백련이 차 한잔하자고 얘기를 하다니…….’
양씨 가문의 수석 연단사는 장로들을 대할 때도 이처럼 예의를 차린 적이 없었다. 집에 초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심지어 중년 세대들에게도 이것은 특별한 영광이었다. 소문이 난다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것이 분명했다.
정백련이 나간 지 한참 되었지만, 장로들은 여전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양준이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소부생 같은 인물과 인연을 맺고, 가치가 엄청난 영진을 두 개나 얻어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장로님! 지금 확인되었으니 혈시 두 명을 배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양준이 물었다.
양진은 눈을 흘기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럼! 하지만 먼저 일깨워 줄 것이 있다. 혈시마다 실력이 다르므로 네가 바쳐야 하는 공로도 다르다.”
“그럼 제가 바친 공로로는 어떤 혈시를 배정받을 수 있습니까?”
“음…….”
양진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혈시당 모든 고수들 중 마음껏 고르거라. 당주와 부당주도 포함된다!”
“당주와 부당주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래, 그들 둘은 모두 신유 경지 정상에 오른 고수들이지! 그들의 보호를 받는다면 계승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널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양준이 세운 공이 너무 커서 양진은 빨리 그가 이 공로를 써 버리기를 바랐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당주와 부당주를 추천하며 그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양준에게 설명해 주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그들을 원치 않습니다.”
양진은 깜짝 놀랐다.
“이런 고수들도 싫다고? 그럼 넌 누구를 원하는 것이냐?”
“곡고의(曲高義)와 영구(影九)입니다.”
양준은 두 혈시의 이름을 댔다. 바로 넷째 양신무를 데려온 혈시들이었다.
장로전 안에 있던 장로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이상하게 변했다. 그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곡고의와 영구는 혈시당에서도 자질이 가장 뛰어나고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장로들도 두 사람을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양신무의 일로 가문의 문책을 당하면서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장로들도 두 사람의 일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양씨 가문의 규정이 정해져 있는 터라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계승 싸움에서 그들을 쓸 공자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막내 양준이 이 두 사람을 고른 것이다.
양준이 혈시당의 당주와 부당주를 원한다고 했어도 장로들은 이 정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양준은 하필이면 침대에 앓아 누운 채, 실의에 빠진 혈시들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