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95화 (395/853)

제 395장. 누가 세 번째로 탈락할 것인가

혈시들을 훑어본 양준의 낯빛이 살짝 떨렸다.

‘하나같이 강하고 듬직하군.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가 강자 중의 강자야. 가장 실력이 낮은 자도 신유 경지 5단계. 신유 경지 5단계라고 해도 일등 세력의 신유 경지 8단계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야. 양씨 가문의 혈시들은 역시 대단하군!’

스무 쌍이 넘는 시선이 자신을 주목하자, 양준도 순간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다. 이런 압박감은 혈시들이 일부러 풍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전투 경험으로 남겨진 분위기 같은 것이었다. 진양결을 운행하자 순수한 진원이 몸 밖으로 흘러 나왔고, 양준은 그제야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혈시들은 그 모습에 눈앞이 환해졌다. 주봉도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수하며 말했다.

“주봉이 혈시당 전체를 대표하여 양준 공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양준 공자님!”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준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제야 도봉이 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선택이 득도 있고 실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자신의 예상보다 득이 많을 것 같았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봉의 뒤에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마흔 정도 되어 보였는데, 모두 신유 경지 8단계 수준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다른 혈시들보다 더욱 무거웠다. 심지어 그들의 눈빛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통증으로 몸을 떨며 힘들게 서 있었다. 몸에 달라붙은 옷 곳곳에서 빨간 핏자국이 보였고, 그들의 발밑에는 피가 가득 고여 공기 중에도 옅은 피비린내가 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었다. 다른 혈시들도 핏자국을 신경 쓰지 않았다.

“너희가 곡고의와 영구냐?”

양준은 그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 반쯤 무릎을 꿇었다.

“제가 곡고의입니다.”

“제가 영구입니다. 막내 공자님을 뵙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라. 내 사람이 되었으니 실제 행동으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거라!”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시선에 담긴 강인함에는 매서운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양준은 곡고의와 영구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크게 다쳤다 해도 혈시는 여전히 혈시였다. 그는 다른 이들도 한번 둘러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다음에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저는 자비를 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봉이 정색하며 답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양준은 여유롭게 돌아서서 나갔다. 곡고의와 영구는 무거운 표정으로 혈시당의 동료들에게 공수했다. 동료들은 숙연하게 답례했다. 다시 만나게 되는 날, 혈시들 간의 싸움은 불가피했다.

문밖에 나서자, 풍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양준이 십여 장을 걸어간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양준 공자, 못난 두 부하를 부탁드립니다.”

양준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곡고의와 영구는 걸음마다 핏자국을 남기며 양준을 따라 나섰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모두 중도로 돌아왔고, 가문에서는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준비 시간을 주었다. 공자들이 각각 혈시를 선택한 다음, 모두가 바라 마지않던 계승 싸움이 드디어 막을 올리게 되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중도가 들끓었고 나라의 정세가 급변했다. 천하의 크고 작은 세력들이 거대한 축제에서 작은 이득이나마 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중도로 모이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세력들이 중도에 미리 도착해 계승 싸움이 하루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어느 공자의 손을 잡아야 할지 뜨겁게 토론하고 고심했다.

양씨 가문 공자들은 더욱 바삐 움직여 다른 7대 세가의 낭자, 공자들에게 연락하며 동맹을 확보해 나갔다.

중도 8대 가문으로는 양씨 가문, 추씨 가문, 류씨 가문, 곽씨 가문, 강씨 가문, 고씨 가문, 엽씨 가문, 맹씨 가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강씨, 고씨, 엽씨, 맹씨 가문은 각각 양씨 가문의 서로 다른 공자와 동맹을 결성했다고 소식이 전해졌다. 나머지 세 가문은 아직 동맹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류씨 가문의 류경요는 일찍이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이와 동맹을 맺겠다고 말했다. 맏이 양위가 그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련을 청했다고 전해졌으나, 승패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류경요가 아직까지 누구와 동맹을 맺겠다고 확언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과는 예상할 수 있었다.

곽씨 가문의 경우, 곽성진은 매일 음주가무를 일삼고 향락에 빠져 살면서, 계승 싸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곽정은 골치가 아팠다. 곽정도 계승 싸움에 개입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종일 헛짓거리만 하고 다니니 속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있으면 진작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었을 텐데.’

양씨 가문의 몇몇 공자들은 곽성진과 양준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곽성진을 찾아가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그에게 잡혀 기루에서 며칠 밤을 지내다가 하나같이 진이 빠진 채 기루를 빠져나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추씨 저택.

서재 안, 추씨 가문의 가주 추수성이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서른 살 정도로 보였으나, 실은 쉰이 넘는 나이였다. 타고난 곱고 부드러운 얼굴에 피부색이 여인보다도 훨씬 희다 보니 외모는 실제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의 아래쪽 양옆에는 남녀가 각각 앉아 있었다.

그들은 추씨 가문 장녀 추억몽과 추씨 가문 공자 추자약(秋自若)으로 두 사람은 이복남매 사이였다.

계승 싸움이 시작된 만큼, 추씨 가문에서도 당연히 줄을 서야 했다. 그러나 추수성은 양씨 가문 공자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줄곧 그들에 대해 알아보려 했으나 별반 알아낸 것이 없었다.

7대 세가에서 계승 싸움에 참가하는 것은 가문의 자제들을 단련시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계승 싸움에서의 승패는 그들 가문의 저력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누군들 지는 싸움을 하고 싶겠는가. 따라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추수성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몽아, 너는 이번 계승 싸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버지의 질문에 추자약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추씨 가문에서 그는 계승 서열 1위지만 실력도, 수완도 이복누이보다 많이 떨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누이부터 찾았고, 그는 옆에 앉아 들으면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러했다.

추억몽은 살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접한 소문에 따르면, 이번에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양씨 가문의 공자는 모두 여덟 명입니다. 이미 사망한 넷째 양신무를 제외하고, 나이 순서대로 양위, 양소, 양철, 양항, 양신(楊愼), 양영(楊影), 양천(楊泉) 그리고 양준입니다.”

추수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끼어들지 않고 딸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짓했다.

“그중 둘째 양소와 다섯째 양항, 그리고 여섯째 양신과 일곱째 양영은 각각 친형제입니다. 이들은 최후의 관문에 이르기 전까지는 서로를 도우며 공격하지 않을 거라 예상됩니다. 혈연으로 따진 관계는 이 정도입니다.”

추억몽은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며 똑 부러진 말투로 담담히 말했다.

“지금까지 다른 7대 세가의 지지를 얻은 공자는 네 명입니다. 맹씨 가문의 맹선의(孟善衣)는 맏이 양위와 동맹을 맺었고, 엽씨 가문의 엽신유는 둘째인 양소, 고씨 가문의 고양풍은 다섯째 양항, 강씨 가문의 강참은 일곱째 양영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7대 세가의 힘이 워낙 강해서 계승 싸움의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 양씨 가문이 중도에 있으니, 세력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다른 7대 세가와 교류가 있어야 하겠지.”

추수성은 딸의 치밀한 사고와 정보력에 매우 만족해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추억몽이 딸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유감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옆에 단정하게 앉아 있지만, 어딘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추자약을 보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양소와 양항 형제가 승기를 잡고 있습니다. 둘 다 큰 세력이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추수성은 딸의 말에서 또 다른 속뜻을 알아채고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실제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우선 둘은 서로 다른 세력이고, 설령 서로 도움을 준다고 해도 계승 싸움에서 절대적 우세를 차지하지는 못할 겁니다. 역대 계승 싸움에서 7대 세가도 관례에 따라 지나치게 강한 고수는 내보내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형평성이 떨어지고 많은 사상자를 내지 않기 위해 지켜지고 있는 불문율입니다. 때문에, 양씨 가문의 혈시를 제외하고, 신유 경지 5단계 이상의 고수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공자들이 외부에서 수련하면서 쌓은 인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겁니다. 사귄 이가 많아야 포섭할 조력자와 동맹이 많을 게 아닙니까. 게다가 공자들의 어머니는 모두 일등 세가 출신이니, 외가의 세력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됩니다. 외가 세력까지 있으니 그들이 단시간에 패배할 일은 없을 겁니다.”

추수성은 칭찬하는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셋째인 양철이 가장 먼저 탈락할 것만은 확신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셋째는 혈시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밖에서 지내는 몇 년간 얻은 수확이 없다시피 해서 혈시를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무공도 그리 출중한 편은 아니고요. 아마 계승 싸움 첫날에 탈락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추억몽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탈락할 공자는 아마 여덟째인 양천이겠지요. 7대 세가의 지지도 얻지 못했을뿐더러, 어머니도 이등 세력 출신이기 때문에 외가에서 큰 도움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 세 번째는…….”

추수성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쉬이 판단하기 어려운 자들이라, 다섯째 양항, 여섯째 양신, 일곱째 양영, 이 셋 정도가 가능성이 있습니다.”

추억몽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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