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97화 (397/853)

제 397장. 계승 싸움의 시작

추자약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추수성은 한참 동안 추억몽을 지켜보다가 담담하게 물었다.

“정녕 그래야겠느냐?”

“네. 제가 한 번도 아버지께 뭔가를 요구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부디 허락해 주세요.”

“좋다. 가문의 추우당(秋雨堂)을 네게 넘겨주마.”

추수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추억몽은 쓴웃음을 지었다.

추우당은 추씨 가문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조직으로, 인원도 많지 않은데다 다들 경지도 높지 않았다. 추수성은 지금 추우당 전체를 희생시킬 각오까지 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처럼 단호하게 나오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추우당조차 넘겨주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걸 시간에 맡기자. 때가 되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그리고 누가 추씨 가문을 계승하기에 더 적합한지 알 수 있겠지.’

추억몽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그 가운데는 은은하게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만 물러가거라.”

추수성이 손을 흔들자, 추억몽은 몸을 굽혀 인사하고 물러갔다.

문밖을 나서자 방 안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이 조용히 이야기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는 그녀의 마음을 더 씁쓸하게 했다.

*깊은 밤,

통천객잔 뒤뜰 대전, 죽절방 본거지.

양준은 눈앞에 쌓인 은표를 보면서도 표정이 담담했다.

그의 등 뒤에는 우람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서서 여태껏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바람에 얼굴에는 험상궂은 기색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갔다. 큰 통증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또한 그들의 옷은 안쪽에서부터 피에 물들어서 마치 송이송이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수놓은 것만 같았다.

그들의 발밑에는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죽절방의 방주 방지와 부방주 목남두는 조심스럽게 한쪽에 서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눈길을 돌려 금방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두 남자를 훑어보았다. 그들은 양준이 왜 이런 자들을 데리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간 힘을 합쳐, 두 개의 작은 세력을 흡수했습니다. 현재 죽절방의 세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많은 물자와 돈을 확보했습니다. 장부는 똑바로 기재했고, 한 푼의 오차도 없습니다. 공자님, 한 번 살펴보시지요.”

방지가 공손하게 장부를 양준의 앞에 내밀었다.

“됐어.”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은표를 모두 재료로 바꿔 와. 최소한 천급은 되어야 하고, 그보다 귀할수록 더 좋아. 그리고 북성구에 흡수할 만한 세력이 몇이나 남았지?”

“목 형의 정보가 맞다면, 네다섯 정도가 더 있을 겁니다.”

방지가 대답했다.

“알겠어. 그럼 두 사람은 각자 한 명씩 데리고 가서 그 세력들을 거두고 오도록 해.”

양준은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 둘을 데리고 말입니까?”

방지와 목남두는 깜짝 놀라 양준의 등 뒤에 서 있는, 피가 낭자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런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방지와 목남두는 지금 목소리도 낮춰 말하는 중이었다. 괜히 목소리가 너무 커서 두 사람이 쓰러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준이 이처럼 말하자,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의아해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양준 뒤의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불만 있소?”

바로 죽을 것 같던 한 명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곧이어, 강한 신식이 뿜어져 나왔다.

방지와 목남두는 신식에 내재된 힘을 감지하고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들은 그제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보이던 이들이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한 신식만으로도 북성구에 있는 작은 세력들을 모두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곧 놀란 표정을 거두고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럼 다녀와.”

양준이 손짓했다.

양준의 뒤에 서 있던 철탑 같은 두 남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지와 목남두는 어떤 힘에 싸여 순식간에 대전에서 사라졌다. 공기 중에는 옅은 피비린내만 남아 있었다.

곡고의와 영구가 사라진 뒤에야,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두 혈시가 자신을 따른 지도 닷새가 되었다. 두 혈시는 원래 중상을 입었기에 쉬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양준은 그들의 현 상태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치 그들이 하루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마냥 어디를 가든지 그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닷새 동안 양준은 그들과 이야기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두 혈시는 씁쓸함이나 원망 같은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그들은 전성기 실력의 3할밖에 발휘하지 못했지만, 북성구의 작은 세력들을 흡수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양준은 원래 방지와 목남두가 작은 세력을 천천히 흡수하게 하려 했으나 계승 싸움이 곧 시작되기에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혈시 두 명을 출동시켜 돕게 했다.

양준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한쪽에 서 있던 다른 죽절방 책임자에게 말했다.

“창고로 안내해.”

“예.”

죽절방은 작은 세력 두 개를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양준의 요구에 따라 적지 않은 연단, 연기(煉器) 재료를 사 두었고, 지금 그 재료들을 모두 창고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양준은 창고 안에 들어가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걸어 나왔다. 검은 책 공간에는 금세 좋은 물건들이 가득 쌓였다. 닷새 전, 장로전의 양진이 보내온 재료들까지 더하면, 지금 양준에게는 재산이 꽤 많았다. 장로전의 일처리는 매우 빨랐다. 양준이 남은 공로를 모두 재료로 바꾸겠다고 요구하자, 바로 그날 저녁에 재료를 보내 준 것이다.

두 마차에 가득 실린 수많은 재료들을 보는 순간, 양준의 부모님과 양준 모두 깜짝 놀랐다. 장로전에서 보내온 재료들은 모두 천급 이상으로, 심지어 그중 1할은 현급이었다. 연단, 연기 재료가 각각 반반씩이었다. 양씨 가문의 경제력이 탄탄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재료를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양응봉은 양준이 혈시 두 명을 선택하고서도 이렇게 많은 공로가 남았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양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부자는 멍하니 있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지금 그 물건들도 모두 검은 책 공간 안에 있었다.

“방지에게 계속 재료를 모아 두라고 전해라. 충분히 모이면 전성(戰城)으로 보내라고 하고.”

양준은 한마디 당부하고는 두 손을 뒷짐 지고 성큼성큼 떠나갔다.

전성은 양씨 가문에서 오직 계승 싸움만을 위해 축조한 성으로, 중도에서 백 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예.”

죽절방의 책임자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양준이 떠나가고 그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공자님은 왜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바로 나오셨지? 아무것도 안 들고 나오신 것 같았는데?’

그 책임자는 창고 안쪽을 기웃기웃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 넋이 반쯤 나가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원래 창고 안에 두었던 재료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이… 이걸 어쩌면 좋아!”

*사흘 뒤, 양씨 가문 제천대(祭天臺).

커다란 건물, 반듯한 바닥 위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고, 제천대는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커다란 돌기둥 두 개에는 용이 비상하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등 여러 가지 그림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었다.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양씨 가문의 붉은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펄럭 나부끼고 있었다.

거의 천 명에 달하는 양씨 가문의 무인들이 검은색 무복을 모두 갖춰 입고서 제천대 주위에 모여 있었다. 천 명의 무인들이 호흡과 기운마저 하나가 되자, 그 분위기에 마치 주변의 천지가 흔들릴 것만 같았다.

제천대의 바로 아래쪽에는 이미 목욕재계한 양씨 가문 공자 여덟 명이 나이 순서에 따라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제천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씨 가문의 추수성 가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엽씨 가문의 엽광인(葉狂人) 가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맹씨 가문의 맹서평(孟西平) 가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몇십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은 중도를 넘어, 천하에서 가장 큰 축제였다. 중도의 다른 7대 세가들도 당연히 이 계승 싸움을 중시했고, 모든 가주들이 직접 식솔들을 이끌고 왔다. 양씨 가문 자제들이 손님들을 정해진 자리로 안내했고, 손님들은 앉아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면 되었다.

반 시진 사이에 7대 세가의 가주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윽고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양씨 가문의 가주 양응호가 신유 경지 이상의 태상 장로 몇 명을 데리고 제천대에 나타났다. 주인이 나타나자, 손님들은 너도나도 일어서서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양응호가 답례하고 나서 우렁차게 말했다.

“오늘은 우리 양씨 가문이 하늘과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날입니다. 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추수성, 엽광인, 맹서평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동자를 밝게 빛내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양준은 양응호를 지켜보았다. 양응호는 그의 백부로, 실제 나이는 양응봉보다 열몇 살이 더 많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백발이 성성해 노년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으며, 심지어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창운사지와의 전투 이전의 그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 그는 중년으로, 젊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늙지도 않았었다. 이렇게 폭삭 늙은 원인은 바로 창운사지와의 전투에서 음명귀왕과 절멸독왕에게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양응호는 가문에 돌아온 뒤, 양씨 가문의 생사윤회결(生死輪廻訣)을 써서 30년의 수명을 대가로 상처를 치료했다.

양씨 가문 가주의 자리가 중요한 만큼, 30년의 수명이라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양응호는 어쩔 수 없이 지금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는 단순한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니라 직접적인 생명력을 잃은 것이었다.

현재, 양응호는 이미 무척이나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이처럼 서둘러 양씨 가문 공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계승 싸움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양소와 양항은 아버지를 보면서 한동안 괴로워했다. 그러나 양응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계승 싸움의 규칙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이렇다 할 규칙은 따로 없었다. 양씨 가문에서는 후보자의 안전을 지켜 줄 혈시만 제공했다. 그러나 계승 싸움에서 혈시에게는 많은 제한이 있었다. 혈시 외에 양씨 가문에서는 어떤 직접적인 도움도 주지 않았다. 어떤 계략과 술수를 쓰든, 마지막까지 웃는 자가 바로 계승 싸움의 승리자였다.

“모두 이해했느냐?”

양응호가 아래에 서 있는 여덟 공자를 내려다보며 묻자,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사를 시작하라!”

양응호는 손을 흔들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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