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98화 (398/853)

제 398장. 관심 가지는 이가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장엄한 제천대 앞에서 향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보기 힘든 6급 요수 한 마리가 제천대로 들려왔다. 양응호는 요수를 죽여 피를 제천대에 뿌렸다. 피로 하늘에 제를 지내고, 짐승을 바쳐 조상에게 제를 지냈다.

의식이 복잡했지만, 양씨 가문의 공자 여덟 명은 양응호의 인도 하에 빈틈없이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 과정에서 7대 세가의 가주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몰래 후보자들의 활약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선택한 후보자가 어떠한지, 적이 얼마나 강한지 등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양씨 가문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서야 모든 의식이 마무리되었다.

“이제부터는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

양응호가 나지막하게 당부하고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출발!”

늠름한 답운구 여덟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오더니 여덟 공자의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각자 몸을 날려 답운구에 올라탔다.

여덟 명의 공자는 모두 미소를 띠고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제로 태어났으나 중도를 벗어나면 적이다. 손속에 자비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먼저 가 보마.”

양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답운구를 타고 빠르게 달려갔다.

“우리도 가 보자.”

양소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답운구 여덟 마리가 양씨 가문 전용 통로에서 앞다퉈 달리면서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가서 구경 좀 해야겠는걸.”

강씨 가문의 가주 강예(康銳)가 허허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순수한 진원으로 자신과 식솔들을 감싸고 번개처럼 사라졌다.

“같이 가세, 같이!”

고씨 가문의 가주 고묵(高墨)도 뒤따라갔다.

“나도, 나도!”

곽정도 뒤지려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7대 세가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예의도 모르는 것들!”

양응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7대 세가 가주들이 인사도 없이 가 버린 것이 아니꼬웠다.

땅 위에서는 답운구 여덟 마리가 매섭게 달리고, 하늘에서는 일곱 무리의 사람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풍당당했다. 얼마 안 되어 모두들 남쪽 정문을 나서게 되었다.

남쪽 정문 밖은 제천대보다도 더 복작거렸다. 오늘은 계승 싸움 첫날이었다. 크고 작은 수많은 세력들이 지지하는 양씨 가문 공자와 함께 전성으로 가기 위해 일찍부터 이곳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들로 붐볐고, 심지어 몇 리 밖에서 몰래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너희 장양곡(長陽谷)은 어느 공자님을 따를 생각이야?”

서로 안면이 있는 이들끼리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연히 여섯째 양신 공자지.”

“거기 가지 마. 질 게 뻔해. 우리 비운장(飛雲莊)이랑 같이 둘째 공자인 양소를 따르자. 그분이 여섯째 공자보다 훨씬 승산이 있어.”

“진짜?”

“당연히 진짜지. 자자, 내 얘기 좀 들어 봐. 내가 그래도 내부 소식은 훤히 꿰고 있다고.”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한쪽에 밀담을 나누러 갔다.

장양곡과 비운장 같은 삼등 세력은 양씨 가문 직계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계승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양씨 가문의 공자들을 만날 수 없기에, 이곳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고 대부분 어느 공자가 마음에 들면 따라가거나, 아니면 친구의 요청을 받아 함께 가기도 했다.

*남쪽 정문에 일곱 무리의 사람들이 요란하게 등장했다. 원래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무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멀리 밀려났다. 사람들은 몸을 가누고서 놀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더니 분노하기는커녕 모두 기뻐서 들뜬 표정이었다.

‘7대 세가의 가주들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야! 이번에 중도에 오기를 잘했어. 7대 세가의 가주들을 본 것만으로도 헛걸음이 아니야.’

많은 무인들은 모두 흥분한 표정으로 가주들을 우러러보았다.

7대 세가의 가주들은 중도 성안을 지켜보며 관심 어린 표정을 드러냈다. 중도를 벗어나는 순간은 양씨 가문 공자들 개인의 능력을 시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당연히 남쪽 정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세력들이 어느 공자를 따라갈 것인지 궁금했다.

말발굽 소리가 한동안 들려오더니 답운구 여덟 마리가 연이어 나타났다.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 후보자들이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맹선의는 탈것을 몰고 가서 양위를 마중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공수했다.

“양위 공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양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오래됐으므로 이처럼 가깝게 지내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엽신유가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피부가 눈처럼 희고 몸매가 아리따웠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피어올랐고, 표정은 수줍음 속에 요염함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애교 있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양소 공자!”

양소는 크게 웃더니 허리를 굽혀 엽신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 오시오.”

엽신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소의 손을 잡더니 몸을 날려 답운구를 탄 양소의 앞에 단정하게 앉았다.

나머지 6대 가문의 가주들은 엽광인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많은 이가 보는 앞에서 남녀가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동맹 관계처럼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중에는 또 다른 엄청난 내막이 있을 수도 있었다.

엽광인의 표정은 냉담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딸의 대담함을 탓할 기색도 없어 보였다. 이와 동시에 고양풍은 양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강참은 양영과 마주 보며 웃었다.

4대 가문은 이미 입장을 밝혔고, 그들과 손잡은 양씨 가문 공자들은 득의양양했다.

“추 가주, 당신네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건가?”

곽정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애간장을 태우며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자신의 못난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곽성진이 또 어디에서 주색에 빠져 있을 것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마침 곁에 추수성이 외롭게 서 있었다. 그는 왠지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었다.

“저기 이미 정하지 않았는가?”

추수성이 빙그레 웃었다.

곽정이 당황해서 다시 후보자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에 추자약이 여섯째 양신과 함께 있었다. 양신은 반색하며 예의를 차려 추자약과 얘기하고 있었다.

곽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엥? 이번 계승 싸움에는 아들놈이 나서기로 했나? 몽이는 어찌하고?”

다른 이들도 추수성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추수성은 일남 일녀를 두었지만, 두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추억몽은 이미 중도에서 이름을 떨쳐 중도 젊은 세대 중 둘째가는 인물이 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모두 이번 계승 싸움에서 추억몽이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계승 싸움이 시작되자 추자약이 이곳에 나타났던 것이다.

“아들도 컸으니, 경험을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계승 싸움은 쉬이 오지 않는 기회이니 말일세.”

추수성이 허허 웃었다.

곽정은 입을 삐죽거리면서 코웃음을 쳤다.

“이보게, 기분 나빠하지 말고 잘 듣게나. 우리 집 아들놈이 쓸모없는 놈이지만, 자네 아들놈도 걔보다 조금 낫지, 별반 다르지 않아. 내가 봤을 때, 가주 자리는 딸이 계승하는 것이 나을 거 같구먼. 아들놈한테 물려주면 추씨 가문은 조만간 끝장날 거야.”

추수성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남의 집 일에 왈가왈부하지 말게.”

곽정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한마디 했다.

“사람이 걱정해 주는데도, 원 참.”

5대 가문이 모두 후보자를 선택하자, 줄곧 지켜보기만 하던 다른 세력들은 점점 초조해졌다. 결국 그중 한 명이 급히 뛰쳐나와 양위에게 다가가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저는 삼성종(三聖宗)의 수석 대제자 선력(宣力)입니다. 대공자님을 따르며 견마지로를 다하고 싶습니다.”

양위는 그를 흘끔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자 선력은 기쁨에 찬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고서 얼른 양위의 뒤에 가서 섰다.

삼성종의 선력이 물꼬를 트자, 크고 작은 세력의 젊은이들은 서둘러 이미 선택해 두었던 양씨 가문의 공자를 찾아갔다.

한동안 장내는 시끌벅적했다. 결과적으로 맏이 양위와 둘째 양소가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무릇 누가 찾아오면 양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양소는 미소를 머금고 친절하게 응대했다. 확연히 다른 두 형제의 성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양위와 양소를 제외하고, 기타 7대 세가와 동맹을 맺은 양항, 양신, 양영도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세력을 포섭했다. 양철, 양천과 양준에게는 찾아오는 이도, 관심을 가지는 이도 없었다. 형제들의 인맥과 개인의 능력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양철과 양천은 서로 눈길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이미 계승 싸움에서 패배할 거라고 확신들 하고 있나 보군.’

“준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양철이 작은 목소리로 양준을 위로했다.

“그래. 그래도 넌 우리보다는 낫지 않니. 혈시도 둘이나 있고. 게다가 일등 세력인 외가의 힘까지 있잖아. 우리는… 휴우!”

양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쓸쓸함과 무기력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둘 중 한 명은 혈시가 하나뿐이고, 다른 한 명은 아예 혈시가 없었다.

“전 신경 안 씁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서는 조금도 상심한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줄곧 맞은편에 있는 십여 명의 혈시 중 두 명에게 머물러 있었다.

혈시들은 모두 양씨 가문 공자들이 선택해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혈시들이었다. 그중 곡고의와 영구는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혈시가 중상을 입고 기혈이 허해 실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만약 치료와 휴식을 더 늦춘다면 죽지는 않아도 거의 폐인이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 혈시는 의연한 표정으로 그곳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양준이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을 때만 두 혈시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나 양준이 바라본 것은 그들이 아니라 도봉과 당우선이었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양준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로 적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둘은 결국 양씨 가문의 다른 공자에게 선택되었다. 이번 계승 싸움에서는 양준과 적대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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