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05화 (405/853)

제 405장. 현명한 생각이 아니야

향천소는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며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군! 형님과 있었던 일은 따져 묻지 않겠지만, 내 도움을 얻고 싶다면 먼저 한 수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하하, 쟤랑 싸우게?”

곽성진은 크게 웃더니 짓궂은 표정으로 향천소를 지켜보았다.

“이봐, 향 공자. 내가 널 무시하는 건 아닌데, 쟤랑 싸우려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니야.”

추억몽도 한쪽에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습다는 듯이 향천소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양준과 싸운 적이 있었다. 추억몽이 양준과 맞붙었을 때, 양준은 진원 경지 3단계밖에 안 되었다. 그때에도 양준은 그녀와 막상막하로 싸웠으며 심지어 살짝 웃도는 느낌도 있었다. 지금 양준은 진원 경지 8단계였고, 추억몽은 성공적으로 신유 경지 1단계가 되었지만, 그녀는 감히 양준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곽성진으로 말하자면, 그날 밤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어쨌든 그 역시 8대 세가의 자제로서 더욱이 가문의 독자로서, 몇 년간 주색잡기에 열을 올리고 헛짓거리를 하고 다녔지만 천재지보를 수없이 복용했기에 실력이 낮지 않았다. 그리고 등급이 높은 비보도 적지 않게 지니고 있었다. 이런 실력으로도 양준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양준에게 사로잡혔었다. 이 점에서 양준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곽성진은 향천소가 무공으로 양준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 양준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오직 류경요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를 제외하고 양준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향천소는 곽성진과 추억몽의 표정을 보고, 순간 두려움이 생겼다.

그의 안목으로 당연히 곽성진과 추억몽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젊은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을 갖추었다면 8대 세가 출신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이 길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과 말투가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양준이 좀 대단한가 보군?’

향천소는 다시 한번 양준을 훑어보고 몰래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양준의 실력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온몸의 진원이 평온하고 기운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실력을 이 정도로 숨기려면, 양준의 실력이 그만큼 대단하거나, 아니면 비보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향천소는 양준이 정말로 실력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술수를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진짜 실력은 오직 직접 싸워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와서 그 역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만약 혈시를 믿고 우리 형님을 그렇게 만든 거라면 너도 별거 아니겠지. 내가 진심으로 너를 돕게 만들고 싶다면 먼저 나를 이긴 다음에 말해.”

곽성진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더니 추억몽의 곁으로 걸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자식, 저거 글렀구먼!”

추억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향천소는 그들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신유 경지 무인들도 불쾌한 표정으로 곽성진을 바라보았다. 곽성진이 향천소를 얕잡아보는 것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양준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네 형님이 그때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 네 형님이 말하지 않은 건 별수 없지만, 왜 사촌 형인 남생조차도 아무 말 안 해 줬지?”

양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추억몽의 긴 속눈썹이 흔들렸다. 그녀는 일찍이 들었던 풍문을 떠올리고 다시 향천소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향천소는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소문을 어떻게 다 믿지? 싸우려면 지금 바로 싸우고, 안 싸울 거면 난 돌아가겠다. 이 사람들은 너에게 넘길 테니, 네 마음대로 부려. 이것으로 향씨 가문과의 원한은 마무리 짓는 거야.”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우두머리도 없는 집단을 어디에 쓰라고!”

향천소가 없다면 이 무인들을 남겨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보아하니 이들은 모두 향천소에게 충성하는 무인들인 듯했다.

양준은 말하는 한편,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와 향천소에게 한 손을 뻗어 가볍게 손짓했다.

양준의 행동에 향천소는 저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곧 심호흡을 하더니 얼굴에 비친 분노와 마음속 울분을 금세 가라앉혔다.

이윽고 그는 기운을 가다듬고 냉엄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향천소의 이처럼 빠른 변화에 양준은 눈이 번쩍 뜨였다. 적과 대적할 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마음이 들뜨고 성격이 급한 것이었다. 때문에 무인들은 대치 상황에 부딪치면 보편적으로 말로 상대방을 자극했다. 상대방의 감정 기복이 심하면 범하지 말아야 할 실수도 범하기 마련이었다.

향천소가 한 번 호흡하는 사이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은 통제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둘째 공자님, 조심하십시오.”

향씨 가문 무인들은 서둘러 물러섰다. 신유 경지 4단계 고수는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당부했다.

“알겠다.”

향천소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말하는 사이 손짓을 한 번 하자, 전체적으로 짙은 남색을 띤, 거대한 검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천급 비보였다.

검을 손에 쥐는 순간, 향천소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방자하기 그지없었고, 눈빛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향천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신호도 없이 갑자기 비보를 휘둘렀다. 순간 하늘을 가득 뒤덮은 빛이 날아가더니 한데 모여서 사납게 양준을 덮쳤다.

“이거 기습 아니야?”

곽성진이 놀라서 물었다.

추억몽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양준이 이미 향천소에게 공격하라고 했는데 무슨 쓸데없는 말을 더 하겠는가.

향천소도 진원 경지 9단계로,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추억몽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녀는 양준이 이 공격을 어떻게 받아 내는지 보고 싶었다. 또한 그녀는 그동안 양준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도 알고 싶었다.

향천소가 검을 휘두르며 날린 빛이 폭풍우처럼 덮쳐 왔으나, 양준은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빛이 가까이 다가온 순간,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가 다시 밀어냈다.

그러자 진원이 거세게 손바닥을 뚫고 나오더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커다란 수인(手印)이 다가오는 빛을 맞받아쳤다.

콰앙!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원기가 기승을 부렸다. 하늘을 뒤덮는 빛과 커다란 수인이 맞부딪쳤다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흙먼지가 흩날리는 가운데, 향천소는 어느새 검을 잡고 양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검 끝에서는 짙은 남색 원기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는데, 섬뜩한 빛이 반짝이는 것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맷돌만 한 크기의 원기 덩어리는 살기등등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우레와 번개의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우레와 번개의 힘이 더해지자 향천소의 속도는 최대치에 이르렀고, 공격하는 가운데 등 뒤로 기다란 잔영을 남겼다.

뇌도섬(雷刀閃), 이는 향천소의 필살기로 거의 무적에 가까웠다. 그가 이 초식을 날리는 순간, 상대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향씨 가문의 무인들은 모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준이 이 초식에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을지 지켜보았다.

향천소의 이 초식은 향씨 가문의 비전 공법에서 스스로 각성해 오랫동안 갈고 닦은 것이었다. 초식에는 우레와 번개의 힘까지 섞여 있어 대적할 자가 없기에 가문 내 여러 고수들의 칭찬을 받았었다.

이는 그의 필살기로 여태껏 강적을 상대할 때에만 썼으며, 위력이 대단해 대부분의 경우 일격에 승기를 잡곤 했다.

향천소가 필살기를 꺼내 들자 향씨 가문의 무인들은 그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살기등등하게 공격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막아 내나 보자!’

신유 경지 무인 몇몇은 몰래 기뻐하며 연신 냉소를 지었다. 향천소가 양준을 이기면 그들은 계승 싸움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진흙탕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물자는 남씨 가문에서 양준에게 배상해 주는 것이므로 남겨 두어도 별문제가 없었다.

추억몽은 깜짝 놀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향천소의 전투력이 이처럼 강할 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시작부터 살초를 날리다니. 이런 초식은 신유 경지 이하의 무인들의 경우, 거의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양준이 막아 낼 수 있을까?’

양준이 강한 건 알지만, 오랫동안 다시 대련해 보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는 그녀도 정확히 알지 못해 내심 불안했다. 그러나 문득 그날 남강(岚江)에서 양준이 홀로 신유 경지 3단계 무인을 죽인 것을 떠올리자, 그녀는 순식간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향천소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신유 경지 3단계 무인보다 더 강할 수는 없었다.

커다란 굉음 소리와 함께, 향천소의 검 끝에 있던 번개 덩어리가 여러 갈래로 나뉘더니 다시 촘촘한 번개 그물로 엮여 사방 몇십 장을 모두 감쌌다.

수천 갈래의 번개 빛이 뱀처럼 꿈틀거렸고, 번개 빛마다 검의 기운이 숨어 있어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번개 빛들은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양준을 겹겹이 포위해 오고 있었다.

곽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줄곧 방자하던 표정이 드디어 진중해지고,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양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차디찬 표정으로 한데 엉겨서 날아오는 번개 빛들을 무덤덤하게 지켜보았다.

향천소는 차분한 표정이었으나, 저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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