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6장.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초식에 갇히면 신유 경지 이하 무인은 누구도 벗어날 수가 없고, 검의 기운과 번개의 힘 때문에 쓰러지게 돼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눈부시게 환한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양준의 신형이 흐려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넓게 펼쳐졌던 번개 빛이 폭풍우 같은 진원 속에서 산산조각 났다.
커다란 수인 하나가 향천소의 눈앞에서 빠르게 커지더니 마치 하늘 전체를 가리는 듯했다. 순간, 그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수인이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나지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향천소는 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멀리 나가떨어졌다. 날아가는 도중, 그는 공중에서 창백한 얼굴로 피를 왈칵 토했다.
“둘째 도련님!”
양준이 당하는 꼴을 보려던 향씨 가문의 신유 경지 무인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다음 순간, 그들은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향천소를 받아 들었다.
승패는 이미 갈렸다. 양준은 마치 전혀 움직이지 않은 듯,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표정은 담담하고 침착했다.
곽성진은 문득 그날 밤 양준이 자신과 대적할 때 많이 봐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향씨 가문의 무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향천소의 입가에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휘청거리면서도 자신을 부축하려는 무인들의 손을 뿌리쳤다. 미간을 잔뜩 구기고 서 있는 그의 눈에는 씁쓸함이 서려 있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씁쓸함이 점차 사라지더니, 대신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같은 경지의 무인에게 자신이 이처럼 허무하게 질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가문에서는 향초보다 자질이 훨씬 더 뛰어난 그를 공을 들여 양성했고, 그 또한 가문의 기대에 부응해 젊은 나이에 신유 경지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여태껏 전투에서 이기기만 했지, 오늘처럼 완패한 적이 없었다. 그의 초식은 심지어 상대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이는 그에게 있어 엄청난 충격이었다.
“둘째 도련님……!”
향씨 가문의 신유 경지 4단계 무인은 향천소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낙담할까 두려워 서둘러 위로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입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향천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 속의 실망감은 곧 사라졌다. 다시 양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전의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양준은 이 모습을 보고 몰래 감탄했다.
‘향천소… 정신력이 뛰어나군. 만약 수련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앞으로 8대 세가의 몇몇 공자들보다 더 훌륭한 무인이 될 수 있겠어.’
한쪽에서 추억몽은 기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반면, 곽성진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더니 혀를 내둘렀다.
“제길! 이렇게 강하다니… 도대체 뭘 먹고 수련한 거야?”
“추억몽, 향천소가 데려온 사람들을 알아서 배치해 줘. 그리고 추우당 사람들한테 저 상자들을 내 방으로 옮겨 놓으라고 해.”
양준은 무덤덤하게 지시하고는 향천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관저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그는 무심코 한쪽 방향을 힐끗 보았다.
그곳에 있던 신유 경지 8단계 고수 두 명은 저도 모르게 흠칫 했다. 그중 한 명이 잠깐 당황하더니 의구심에 차서 물었다.
“방금 양준 공자가 우리를 발견한 건가?”
다른 한 명도 놀란 얼굴빛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럴 리가. 우리가 적대감을 표출한 적도 없고, 꼭꼭 숨어서 몰래 지켜보기만 했는데 들켰을 리가 없어.”
“그럼 왜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 거지?”
“글쎄, 이상하군.”
“일단 신경 쓰지 않는 거로 합세. 가주님께서는 오늘 밤 양준 공자를 지켜보라고만 했어. 만약 오늘 밤 탈락하면 우린 도련님만 빼내서 돌아가면 돼. 어휴, 도련님께서는 왜 하필 이런 가망이 없는 공자를 선택하신 건지… 나 원 참!”
“그런데 양준 공자의 전투력은 정말 강하더군. 내가 보기에 갓 신유 경지에 진입한 사람은 아예 그의 상대가 안 될 걸세.”
*관저 밖, 추억몽은 방글방글 웃으며 향씨 가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신유 경지 4단계 무인이 서둘러 공손하게 인사했다.
“향씨 가문의 향비(向飛)가 추 소저를 뵙습니다.”
향비의 얼굴에는 의혹이 서려 있었다. 추씨 가문은 여섯째 양신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당연히 그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추씨 가문 장녀는 지금 왜 양준의 관저에 있지? 게다가 양준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도 마치 하인을 부리는 듯하군. 도리어 세상에 이름을 널리 떨친 추 소저가 아무 불평도 없이 그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있다니.’
향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릿속이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향천소도 공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추억몽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예의를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부터는 같이 일을 도모하는 사이니까요.”
향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 공자께서 저희 둘째 도련님을 이기셨으니, 향씨 가문도 이제부터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양준 공자께서 계승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는 이상, 저희도 전심전력으로 돕겠습니다.”
추억몽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추 소저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
향비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전 양준의 동맹이니까요! 호호!”
추억몽은 웃으며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향천소와 향비는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양준이 소리 소문 없이 8대 가문의 자제 두 명과 동맹을 맺었다니. 이는 양씨 가문 공자들 가운데서 유일했다.
“이제 들어가죠. 제가 업무를 배치해 드릴게요.”
추억몽은 그들에게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 와서 총관 역할이나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추억몽이 향씨 가문 사람들을 거느리고 안쪽으로 걸어가는데, 곽성진이 접선을 흔들며 걸어 왔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향천소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할 형제여! 내가 술 한잔 사주지.”
“좋아!”
*똑똑똑-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양준은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방문이 열리고 추억몽이 단아한 모습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직접 찻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그녀의 뒤로는 추우당 사람들이 상자 네 개를 들고 와서 방 안에 내려놓은 다음, 허리를 굽힌 채 물러갔다.
추억몽은 나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향씨, 남씨 가문은 언제 저리 큰코다치게 했어?”
“너하고 낙소만이랑 헤어지고 석 달 뒤에.”
“나한테 좀 자세히 얘기해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향천소에게 물었지만, 그도 잘 모르는 거 같더라고. 그는 향초와 남생이 너를 무지 싫어하면서 무서워한다고 했어. 그리고 남생이 너 때문에 스스로 손가락 두 개를 잘랐다던데, 사실이야? 너 진짜 독하다. 남생도 일등 세가의 공자야. 무려 남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그들이 자초한 일이야.”
양준은 냉소를 짓고는 미간을 구긴 채, 당시의 상황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추억몽은 두 눈을 반짝이며 듣다가, 속으로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특히 향씨, 남씨 두 가문이 모욕을 당하고도 전혀 반항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더욱 좋았다.
“네 말을 듣고 나니, 두 가문에서 그런 일을 당한 게 그리 놀랍지는 않네. 양씨 가문의 직계 공자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 특히나 너희 집 넷째가 죽고 나서는 더더욱. 만약 누가 마음먹고 두 가지 일을 엮었더라면 향씨, 남씨 가문은 끝장났을 거야.”
“향씨 가문, 특히 향천소와 향초의 관계에 대해 알려줘.”
양준은 일어서서 상자 쪽으로 다가가 그 속의 물자를 살펴보는 한편, 추억몽에게 말했다.
“하여간 여우처럼 약아빠졌다니깐.”
추억몽이 입을 삐죽거렸다.
“향초가 일의 전말을 향천소에게 안 알려준 게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향천소가 그런 태도를 보일 리가 없지. 형이 동생에게 그런 일을 숨기는 걸 보면, 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잖아. 이것도 못 알아보면 내가 바보게?”
애당초 양준은 향씨, 남씨 두 가문에 석 달 안으로 중도에 찾아와서 성의를 보이라고 했었다. 이에 남씨 가문에서는 네 상자의 물자를 보내왔고, 향씨 가문에서는 향천소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이에 대해 양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깐 나눴던 향천소와의 대화로 그는 내심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추억몽에게 상황을 물어본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달리 오랫동안 중도에서 생활했기에 세상의 대소사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았다. 특히 추씨 가문의 저력과 수단으로는 향씨 가문의 내막에 대해서도 풍문을 들었을 터였다.
그녀는 양준의 말에 연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로서는 양준의 영리함을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향초는 너도 만났었잖아. 향씨 가문의 대공자로 가문의 후계자야. 하지만 향천소는 첩실 소생으로 가문에서 당연히 형님보다 지위가 낮지. 그런데 그는 타고난 재능과 자질을 모두 갖춘, 몇십 년 동안을 통틀어 향씨 가문 내 가장 최고의 천재야. 네가 방금 전 그와 겨루어서 알겠지만, 그렇게 젊은 나이의 진원 경지 9단계는 보기 드물어.”
“맞아.”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씨 가문 공자들 중에서도 진원 경지 9단계는 몇 안 되었다. 다만, 이는 그들이 모두 밖에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수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향천소가 자질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향초가 이해타산이 빠르고 속셈이 많다면, 향천소는 정반대로 정직하고 실력이 뛰어났지. 그래서 가문에서도 신망이 두터운가 봐.”
추억몽이 살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되니까 문제가 생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