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08화 (408/853)

제 408장. 잠시 다녀올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마치 보석들을 박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낮에 그렇게도 소란스럽던 전성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수만 쌍의 시선들이 전성 내 여덟 공자의 관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수많은 신식들이 전성 안에서 얽히고설킨 채 사방을 살폈다. 실력이 강한 고수들은 아예 신식을 활짝 펼치고서 주변의 각종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했다.

전성의 중심부 봉신전(封神殿).

이곳은 웅장한 궁전으로, 대전 안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여덟 명이 팔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평온하게 각자 공법을 돌리면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여덟 명의 신식은 진작 전성의 구석구석에 침투되어 있었다.

그들은 각각 8대 세가에 속해 있는, 모두 신유 경지 이상의 절정 고수였다.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이 전성에서 벌어지면 천하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이는 거의 모두가 각 세력의 후계자이기에 그들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때문에, 매번 계승 싸움이 시작될 때면 8대 세가에서는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를 각각 한 명씩 보내 전성에서 진을 치게 했다. 계승 싸움의 승부를 감독하는 동시에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가문의 후계자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창운사지에서 찾아와 전멸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면 손실이 막대했다.

여덟 명은 모두 백 세가 넘는 고령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심지어 이미 이백 세가 되었다. 그들은 가문 내 크고 작은 일이나 세상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수련하며 무도를 깨우치는 데 힘썼다.

이곳에 진을 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계승 싸움에 간섭하지 않았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실력이든, 나이든 그들과 같은 정도에 이르면, 살아 있는 동안 신유 경지 이상의 신비함을 파헤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목표였다.

*공자들의 관저에서 누군가는 의욕을 불태우고, 누군가는 초조해하며, 누군가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다가 어부지리를 챙기려 하고 있었다. 장악한 힘이 다름에 따라 각자 마음가짐도 달랐다.

밤이 깊어졌지만 공자들의 관저는 여전히 아무 기척도 없었다. 이에 목 빠지게 기다리던 수많은 구경꾼들은 조바심이 났다.

양준은 관저의 중전(中殿)에 서서 두 손을 뒷짐 지고 맨 위쪽에 걸려 있는 영기(令旗)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계승 싸움에서 후보자를 탈락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후보자를 직접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제압된 공자는 계승 싸움 자격을 잃게 된다.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영기를 빼앗는 것으로, 영기를 빼앗기면 마찬가지로 실격으로 처리된다. 그리고 영기는 몸에 지니고 다니면 안 되고, 중전 한가운데 위쪽에 걸어 놓아야 했다. 때문에, 계승 싸움에서 영기는 아주 중요했다.

이는 양씨 가문에서 대대로 지켜온 규칙이었다. 아마 계승 싸움에 참가하는 공자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는 동시에, 계승 싸움의 난이도를 높이고 공자들의 지혜를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을 넓히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영기가 중전에 걸려 있는 것은 일종의 견제가 되었다. 영기를 남에게 빼앗기거나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옆에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영기를 지키면서 남의 영기를 노려야 하니, 계승 싸움은 그야말로 지혜와 용기를 겨루는 싸움이기도 했다.

양준은 영기에 쓰인 커다란 ‘준’ 자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추억몽, 곽성진, 향천소가 함께 중전으로 들어왔다. 현재 양준과 함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조력자들이었다.

“양준, 금우응을 내게 선물할 준비는 되었겠지? 미리 말해 두는데, 난 네가 공격받는 순간, 첫 번째로 항복할 테다. 내 도움은 바라지도 마.”

곽성진은 야릇하게 웃더니 껄렁껄렁한 모습으로 접선을 펼치면서 말했다.

추억몽이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꾸 주둥이 놀리면 내가 지금이라도 먼지 나게 패 버리는 수가 있어.”

“여자가 왜 이리 폭력적이야?”

곽성진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향천소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방어할 거지? 우리 가문에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할게.”

“네 마음대로 해.”

양준은 그를 힐끗 보고는 무심코 말했다.

향천소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조용히 뒤돌아 나가 버렸다. 데려온 인원들을 배치하러 간 모양이었다. 그가 데려온 이들은 실력이 높지 않았다. 신유 경지가 네 명 있다고는 하나, 진정한 고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계승 싸움의 첫날이기에 다른 공자들 수중에도 쓸 만한 힘이 별로 없을 터였다. 때문에, 오늘만큼은 그들 역시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네 생각을 얘기해 줄 때도 되지 않았어? 숨겨 둔 조력자도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추억몽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숨겨진 조력자 같은 건 없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이들이 우리 세력의 전부야.”

“설마, 아니지?”

추억몽의 얼굴빛이 살짝 바뀌었다.

“이번에는 거짓말 아니야.”

양준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방어하게?”

추억몽은 순간 당황했다. 두 혈시가 강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전투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향씨 가문과 추우당 사람들을 더한다 해도 절대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신유 경지 7, 8단계 고수 두 명만 출동해도 이곳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정도의 고수를 동원할 수 있는 공자는 적어도 세 명이나 되었다.

“여기로 온 게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양준은 추억몽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추억몽은 그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웃으며 말했다.

“아냐, 난 널 믿어.”

“난 믿지 않아. 난 이만 독수리 먹이를 찾아보러 간다. 조금 뒤에 독수리를 가지게 되면 잘 먹여야지.”

곽성진은 웃으면서 밖으로 걸어 나가더니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양준은 추억몽과 둘만 남게 되자, 입을 열었다.

“나 잠시 밖에 다녀올게.”

추억몽은 순간 안색이 변하며 깜짝 놀라 물었다.

“밖에? 뭐 하러 가는데?”

“네 생각에는 내가 뭐 하러 갈 것 같은데?”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살짝 벌린 채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평온한 얼굴에서는 농담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말이야?”

“당연하지. 계승 싸움에서 후보자를 한 명 탈락시키면 얻는 이득도 많거든. 오늘은 첫날이니 분명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거야. 이건 기회이기도 해.”

상대를 탈락시켜도 아무 이득이 없다면, 공자들은 함부로 남을 공격하지 않을 터였다. 시간과 힘을 소모하는 데다, 본인의 영기를 빼앗길까 걱정까지 해야 하는데 누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는가. 때문에, 가문에서는 만약 후보자 중 한 명을 사로잡거나 영기를 빼앗을 경우, 많은 물자를 보급해 주었다.

“너 미쳤어?”

추억몽은 고개를 저으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로는 영기를 지키기도 벅차. 뭐 먼저 공격하겠다고? 누구를 데리고 가게? 추우당? 향씨 가문 사람들? 아니면 혈시 둘?”

추우당이나 향씨 가문 사람들은 데리고 나가도 별다른 힘이 되지 못했다. 혈시 둘을 데리고 나가면 관저의 방어력이 약해져 더욱 쉽게 격파당할 수 있었다.

“나 혼자!”

“난 동의 못 해!”

추억몽은 화가 나서 가슴을 들썩이며 이를 악물고 양준을 노려보았다.

양준은 씩 웃더니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난 네 의견을 물어본 게 아니야. 미리 말해 주는 것뿐이지. 내가 하는 일에 네가 참견할 필요 없어.”

추억몽은 금세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흰 이를 으드득으드득 갈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그래. 네가 결정했다고 하니 나도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을게. 오늘 밤, 네가 지면 그냥 내가 눈이 삐어서 너 같은 남자를 잘못 따라왔다고 생각해야지.”

“남들이 오해할 말은 하지 마. 그리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는 아직 모르잖아.”

양준이 냉소하며 말했다.

*밤이 깊어졌다.

축풍객잔(逐風客棧) 천자(天字) 1호실, 동경한은 수련을 하고, 풍운쌍위는 양옆에 서서 신식을 풀어 놓은 채 그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 밤은 계승 싸움 첫날 밤으로 잠잠할 수가 없었다. 여덟 공자는 공격하든, 방어하든 틀림없이 모두 움직일 터였다.

풍운쌍위는 동경한이 왜 양준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 하지 않기에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때, 문밖에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집중해 경계하던 풍운쌍위의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온통 놀라움과 두려움뿐이었다.

둘은 분명 신식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문밖의 이가 언제 왔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게 만약 적이라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한다면, 도련님께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풍운쌍위는 삽시간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들은 급히 몸을 일으켜 몰래 진원을 돌리는 동시에 정신을 가다듬고 경계했다.

그들의 이상한 점을 감지한 동경한은 눈을 뜨고 미간을 찌푸린 채 가볍게 물었다.

“누구?”

“나야!”

문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고서 동경한뿐만 아니라 풍운쌍위의 낯빛도 크게 바뀌었다.

“도련님, 속임수일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풍위가 낮은 목소리로 당부한 뒤, 운위에게 눈짓했다. 둘 중 한 명이 동경한 옆으로 옮기고 나서야, 다른 한 명이 문 쪽으로 걸어가 경계하는 한편, 방문을 열었다.

입구에서 사람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흑의를 뒤집어쓴 사람이 급히 들어왔다. 그는 머리와 얼굴을 커다란 모자로 가리고 있어, 문을 열던 운위는 그의 밝은 눈동자만 볼 수 있었다.

“양준?”

동경한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가볍게 불렀다.

그러자 방으로 들어온 사람이 풍운쌍위의 경계 어린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모자를 젖히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동경한에게 씩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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