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09화 (409/853)

제 409장. 사람을 빌리다

동경한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제길! 진짜 너였어!”

무공이 비범하고 나이도 많은 풍운쌍위였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눈을 희번덕거리고 싶었다. 다행히 둘 다 통제력이 뛰어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어르신들을 뵙습니다.”

양준이 풍운쌍위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양준 공자, 오랜만입니다.”

풍운쌍위는 놀란 표정을 거두고 서둘러 답례했다.

“너 이 자식.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동경한은 얼른 일어나 창문을 꼭꼭 닫고 풍운쌍위에게 계속 경계하라고 눈짓한 다음에야 서둘러 양준 쪽으로 다가갔다.

“내 휘하에 정보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 하나 있어.”

양준이 설명했다.

며칠 전부터 죽절방의 일부 인원들을 전성 곳곳에 투입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동경한의 거처 정도는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제법이네. 근데 너 지금 자신이 뭐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동경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양준을 자리에 앉혔다.

‘후보자로서 관저에서 수비만 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렇게 뛰쳐나오다니…….’

그러나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 동경한은 살짝 흥분되어 물었다.

“설마 네가 먼저 공격하려고?”

“그럴 생각이야.”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네가 아무 대비도 안 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몇 명이나 데리고 가려고?”

동경한이 들뜬 말투로 다그쳤다.

“나 혼자.”

동경한의 얼굴에 비쳤던 흥분과 미소가 금세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표정을 가다듬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난 네 사촌 형이야. 나한테도 이러기야?”

양준은 정색하고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 나 혼자야.”

동경한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그의 볼살이 실룩거렸다. 풍운쌍위마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혼자 이곳까지 왔다고? 미친 게 아니라면 어찌 이처럼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놀랍게도 양준은 도중에 잡히지 않고 안전하게 이곳까지 도착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양준의 휘하에 전문 정보 조직이 있는 만큼, 다른 후보자들에게도 전문 정보 조직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후보자들은 시시각각 서로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있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넌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혈시들은 그런 널 말리지도 않고 내버려 둔 거야?”

동경한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혈시들은 몰라.”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관저를 떠나면서 추억몽에게만 말했다. 아니면 혼자서 이곳까지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네 관저는……?”

동경한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양준이 없으면, 관저에는 통솔자가 없는 셈이었다.

“그쪽은 문제없어.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내가 여기 찾아온 건 사람을 좀 빌리려고 온 거야.”

양준이 손을 내저으면서 끊임없이 캐묻는 동경한을 저지했다.

“사람을 빌린다고? 장로님들을?”

동경한은 그의 말을 금방 눈치채고 풍운쌍위를 가리켰다.

“그래.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 큰일을 해내기는 역부족이야.”

“저 분들만으로 되겠어?”

동경한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설령 풍운쌍위까지 더해도 겨우 셋밖에 안 되었다. 이 정도 인원으로는 결코 큰일을 할 수가 없었다.

“글쎄, 그래도 기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양준도 쉽게 단언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의 목표물 쪽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밤 그곳 역시 자신의 관저와 마찬가지로 매우 시끌벅적할 테니까.

“장로님들은 얼마든지 모셔 가도 돼. 단, 나도 따라갈 거다.”

동경한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 돼. 너는 실력이 너무 약해. 같이 가면 짐이 될 뿐이야.”

양준이 단박에 거절했다.

“너……!”

동경한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혀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양준은 허허 웃으며 동경한의 어깨를 다독였다.

“내가 너를 얕보는 건 아닌데, 지금의 너는 내가 한 손으로 싸워도 이기거든. 오늘은 우선 쉬어.”

풍운쌍위는 묘한 표정을 짓고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내일 우리 관저에 오면 그때 다시 자세히 얘기해 줄게. 풍운쌍위 어르신들은 내가 모셔 간다.”

양준은 동경한에게 말하고 나서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빨리 꺼져!”

동경한이 낮게 소리쳤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풍운쌍위를 손짓해 부르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저 나쁜 자식, 도대체 얼마나 성장한 거야?”

양준과 풍운쌍위가 떠난 다음에야 동경한은 천천히 어깨를 움직여 저린 몸을 풀었다. 방금 전에 양준이 아무렇지 않게 두드렸는데도 그는 몸의 반쪽 경맥이 다 봉인된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또한 한 손으로도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양준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능소각에서 백운풍과 싸울 때, 양준은 한 끗 차이로 이겼을 뿐이었다.

‘어떻게 몇 년 사이에 이토록 무섭게 성장했지?’

“정말 괴짜라니까!”

동경한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성 안, 검은 그림자 셋이 날아가고 있었다. 성안에 불이 환히 켜져 있어도, 수많은 신식들이 펼쳐져 있어도, 아무도 세 사람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객잔을 나서자마자 풍운쌍위는 자신들이 신비하고 강한 신식의 힘에 온전히 감싸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기운과 생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 남들은 그들의 행적을 감지할 수 없었다.

이 신식의 힘은 풍운쌍위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오묘했다. 이는 그들이 본 얼마 안 되는 초고수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신식의 힘이었다.

그들은 노출될 걱정 없이 조심스럽게 양준을 뒤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양준이 어떻게 혼자서 안전하게 동경한의 거처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이것이 양준의 신식인 줄 모르고, 등급이 높은 신혼 비보를 사용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양준에 대한 기대치와 평가는 조금 더 높아져 있었다.

‘양준 공자는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군!’

이 신식의 힘으로 몸을 숨기면 그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남들은 그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습격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뒤, 선두에 있던 양준이 순간 방향을 틀어 어느 천막 속으로 번개같이 날아가 숨었다. 풍운쌍위는 서둘러 따라갔으나 그가 왜 갑자기 몸을 숨겼는지 알 수 없었다.

풍운쌍위가 입을 열어 물어보려는데, 양준이 손짓으로 주의를 주었다. 둘은 재빨리 숨을 죽이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잠시 뒤, 사방에서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인영(人影)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풍운쌍위는 안색이 바뀌었다. 양준은 그냥 행동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고수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던 것이다.

‘대단한 감지력이야!’

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신중을 기해 신식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신유 경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무인으로서의 직감은 여전했다. 그런데 그들이 감지하지 못한 것을 양준이 감지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앞으로 날아가는 인영들을 보고 있던 양준의 입꼬리가 야릇하게 곡선을 그렸다.

지금 이 무리들은 신형뿐만 아니라 신분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앞장선 이는 다섯째 양항이었다. 당우선이 거들먹거리며 가고 있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도봉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양항의 관저에 남아서 영기를 지키는 모양이었다. 영기도 아주 중요하기에 반드시 강한 혈시를 남겨 지켜야 했다. 남을 공격하면서 본인의 관저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양항의 뒤로는 실력이 꽤 높은 고수들이 따르고 있었다. 모두 그와 동맹을 맺은 세력의 무인들로,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전성 동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방향은 양준의 목표물이기도 한, 셋째 양철의 관저였다.

양항의 무리들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수많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하늘을 뒤덮는 인영들이 지붕을 넘어 양항 일행의 뒤를 따라 동북쪽으로 날아갔다. 이는 구경하러 따라가는 인파였다.

오늘 밤의 전투는 수만 쌍의 눈이 지켜보고 있었다. 일상이 지루한 이들은 직접 두 눈으로 양씨 가문 공자들의 계승 싸움을 구경하고 싶어 했다. 구경꾼들이 이리 큰 볼거리를 놓칠 리 없었다.

양준은 풍운쌍위에게 눈짓을 하고서 여봐란듯이 구경꾼들과 함께 앞으로 날아갔다.

구경꾼들은 모여서 하나같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양항 무리를 따라 동북쪽으로 날아갔다.

전성의 면적은 중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른 성곽들과 비교하면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렇게 큰 공간이 아니면 지구전으로 벌어지는 계승 싸움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양항의 무리들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고 표정도 홀가분했으며 날아가는 도중에도 여유롭게 한담을 나누었다.

일행은 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전성의 동북쪽에 도착해, 양철의 관저 앞에 침착하게 착지했다.

뒤따라온 구경꾼들도 서둘러 좋은 자리를 찾고서는 그쪽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양준은 풍운쌍위와 함께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멈춰 서, 조용히 볼거리를 기다렸다.

“셋째 형님, 다섯째가 왔습니다.”

양항은 관저 밖에 서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큰 소리로 외쳤다.

“왔으면 어서 들어오거라.”

양철의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양항은 빙그레 웃고는 무리들을 이끌고 여유 있게 양철의 관저로 들어갔다.

양철의 말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누구나 그 속에 서려 있는 무기력함과 쓸쓸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밖에서 수련하는 몇 년 동안 내놓을 만한 공로를 쌓지 못해 혈시를 한 명도 바꾸지 못했다. 혈시의 보호도, 어떤 동맹도 없는 그로서는, 외가의 힘만으로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었다.

애당초 추억몽이 했던 판단은 정확했다. 양철은 첫 번째로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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