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10화 (410/853)

제 410장. 혈전

관저 안, 양철이 바른 자세로 서 있었고, 그 뒤로 신유 경지 7단계 고수 두 명이 서 있었다. 그 외에 실력이 꽤 높은 무인들이 일부 더 있었는데, 모두 양철의 외가인 단목 가문에서 보낸 이들이었다.

단목 가문은 이번 계승 싸움에서 양철의 유일한 지지 세력이었다. 양철이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단목 가문의 힘에 달려 있었다.

반면, 양항은 옆에 당우선과 같은 신혼기에 능한 혈시가 지키고 있는가 하면, 8대 세가 중 하나인 고씨 가문과 동맹을 맺었다. 고양풍은 신유 경지 5단계 무인 두 명을 거느리고 양항의 옆에 서 있었다.

신유 경지 5단계라고 해도 8대 세가 출신이기에 바깥 세력의 일반적인 신유 경지 8단계와 싸워서도 이기는 수준이었다. 이 밖에도 양항 쪽에는 다른 신유 경지 무인 대여섯 명과 진원 경지 무인 몇십 명이 더 있었다. 이러한 실력 차이에서 승부는 확연하게 갈렸다.

심지어 양항은 절반의 힘만 동원해도 양철 주변의 모든 힘을 견제할 수 있었다. 때가 되면 양철 본인을 사로잡거나 그의 영기를 빼앗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양철은 차분한 눈빛으로 여유롭게 양항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냉담했다.

양항은 양철에게서 열 장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형제 간에 잠깐 서로 마주 보다가, 양항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인데 제 얘기를 한번 들어 보고,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양철의 항복을 받아 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기에 그에게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 말에 양철은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양씨 가문에는 패배만 있을 뿐, 항복은 없다. 혈육 간에도 예외는 없어.”

“좋습니다. 형님께서 그리 나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양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물론 저라도 똑같이 말했을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제 손속이 매섭다고 탓하지나 마십시오.”

“얼마든지!”

양철의 표정이 냉엄해졌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단목 가문의 무인도 진원을 모으며 몰래 경계했다.

바로 이때, 그림자처럼 양항의 곁을 지키고 있던 당우선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무언가 말했다.

양항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뒤돌아 한 번 훑어보고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일곱째야,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거기 숨어서 뭐 하는 거냐?”

곧이어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또 한 무리가 밤하늘에서 날아오더니 양철의 관저 안에 착지하며 양항 무리와 쌍벽을 이루었다.

바로 일곱째 양영과 그의 동맹 세력들이었다.

양항은 고양풍과, 양영은 강참과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양영은 양항과 마찬가지로 혈시 한 명이 곁에서 지키고 있었으므로 실력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금세 들뜨기 시작했다. 양씨 가문 삼 형제가 모였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큰 볼거리가 생길 터였다. 지금은 양항과 양영 가운데서 도대체 누가 양철이라는 노다지를 차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셋째 형님, 다섯째 형님, 일곱째가 인사 올립니다.”

양영이 먼저 미소 띤 얼굴로 인사했다.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비겁하구나, 아우야. 우선이 네 기척을 잡아내지 못했다면 네가 내 뒤에 있는지도 모를 뻔했지 않느냐.”

양항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 말씀을, 계승 싸움에서는 어떤 수단이든지 다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잠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저는 오히려 구경꾼들 사이에 다른 형제가 있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고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양항과 함께 경계 어린 눈초리로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양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풍운쌍위도 왠지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더 오는 이는 없을 거다.”

양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큰형님께서는 오늘 밤에 움직이지 않고 계신다. 아무래도 맏이다 보니 동생들을 몇 수는 봐주려는 거겠지. 여덟째는 아마 두려워서 수비만 하고 먼저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여덟째 양천은 혈시 한 명이 보호하고 있지만, 외가가 이등 세력밖에 안 되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낮에도 동맹 세력을 얼마 포섭하지 못해 남을 공격할 처지가 안 되었다. 다만, 혈시가 한 명밖에 없다고는 하나, 혈시의 방어를 뚫기도 만만치 않기에 첫날에는 누구도 그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형님과 여섯째의 경우, 다른 쉬운 목표물을 찾아갔겠지. 그러니 여기는 우리 둘밖에 없을 거야.”

양준은 이 말을 듣자 눈썹을 치켜세우고 냉소했다.

다른 쉬운 목표물이란 자신의 관저를 일컫는 것일 텐데, 지금 그쪽 상황이 어떠한지는 양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양항이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하자, 양영은 실소하며 감탄했다.

“소식이 그리 빠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형님.”

양항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얘기는 여기까지. 그럼 이제 셋째 형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논해 보자.”

“다섯째 형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사람과 영기를 나눠 가지자. 어떠하냐?”

양항이 웃으며 물었다. 그는 양철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마치 무슨 물건을 나누는 것처럼 말했다.

양철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새파래졌고, 단목 가문의 고수들도 분노에 휩싸였다.

양영은 웃으면서 고개를 젓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다섯째 형님, 제가 욕심이 많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저는 셋째 형님도, 영기도 모두 갖고 싶습니다.”

양항은 깜짝 놀라더니 냉소를 흘렸다.

“그 욕심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봐야겠구나!”

양영도 차츰 미소를 거두고서 표정이 냉엄해졌다.

두 형제가 마주 보고 서 있는 가운데, 사방은 한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폭풍이 휘몰아치기 일보 직전처럼 분위기가 순간 가라앉았다.

슉- 슉- 슉-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 세력의 신유 경지 고수들은 동시에 신혼기를 펼쳤다.

무형의 힘이 부딪치면서 어떤 이는 신음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나고, 어떤 이는 기세 좋게 맹공격했다. 각종 무공과 비보의 화려한 빛이 한순간에 피어오르며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당우선은 양항을 호위하며 한쪽으로 날아가 전투를 피했다. 양영이 데리고 온 혈시도 그를 호위해 다른 한쪽으로 날아갔다.

양항과 양영은 몇십 장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았다. 차가운 눈빛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일었다.

계승 싸움의 핵심 인물로서, 두 사람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싸움에 직접 나서면 그들 스스로가 위험하고, 다음으로 그들의 실력이 높지 않아, 설령 싸우더라도 대세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곁을 지키는 혈시 역시 양씨 가문의 규칙 때문에 먼저 공격할 수 없었다. 혈시들은 불가피한 반격만 가능할 뿐, 그들 자신과 후보자를 공격하는 이가 없을 때에는 아무리 큰 위험에 빠져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두 세력의 무인들은 실력이 엇비슷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관저의 주인인 양철과 그의 지지 세력인 단목 가문의 무인들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이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양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정말 아무 준비도 안 했을 것 같으냐? 너희들 참 사람을 우습게 보는구나. 화살을 쏴라!”

이때, 담과 지붕에서 인영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저마다 손에 빛이 흐르는 경궁(勁弓)을 들고 있었다.

경궁은 형태가 눈에 띄었는데, 한눈에 봐도 등급이 낮지 않은 비보였다. 그리고 경궁을 손에 든 무인들은 모두 진원 경지 8단계 이상이었으며, 심지어 그중 한두 명은 신유 경지에 달했다.

무인들은 진원을 미친 듯이 돌려 끊임없이 경궁에 주입했다. 잠시 뒤, 그들은 순식간에 모든 진원을 소진한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날카로운 화살이 겨냥한 곳마다 사람들은 불안해서 안색이 크게 변했다. 횡포한 힘이 오고 가자, 관저 밖에 있던 구경꾼들마저도 지금 이 순간에는 마치 위험에 노출된 것처럼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슈욱-

슈욱, 슈욱, 슈욱-

동시에 예닐곱 개 경궁의 시위가 당겨졌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눈부신 빛을 뿌리면서 마치 별똥별처럼 겹겹의 빛무리를 일으키며 한창 싸우고 있는 무인들을 덮쳤다.

화살은 순식간에 날아가 화살 그물을 이루고서 양항과 양영의 무리들을 모두 감쌌다.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핏빛이 번쩍이고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조차 고막이 떨리면서 순간적으로 청력을 잃었다.

양항과 양영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래쪽에서 원기가 폭발하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당우선과 다른 혈시는 서둘러 진원을 돌려 양항과 양영을 지켰다.

한참 뒤, 날뛰던 기운이 점차 잦아들었다.

지면에는 곳곳에 구덩이가 생겼고, 구덩이 옆에서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땅바닥에는 온통 짓이겨진 살점들이 널려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계승 싸움은 어린애들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였다. 땅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나뒹구는 살점들이 잔혹한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양철의 관저는 순간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적막이 감돌았다. 이따금씩 신음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장내에는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구경꾼 중 적지 않은 여성 무인들이 시선을 돌리고 입을 막은 채, 쭈그리고 앉아 헛구역질을 했다.

양철은 싸늘한 얼굴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매서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양항과 양영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절대적인 열세에 처한 양철이 이런 초강수를 준비해 뒀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그 사람들은 지붕과 담벼락에 매복해 있었다. 사실 양항과 양영은 장내 모든 이들의 위치를 확실하게 꿰고 있었고, 당연히 매복 인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양철이 이토록 위력이 강한 살인 비보를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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