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1장. 영기 쟁탈전
쇄성궁(碎星弓)은 지급 상품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용자의 진원을 무한으로 흡수할 수 있어서 단 한 발로도 굉장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예닐곱 개의 쇄성궁은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감과 동시에 산산조각 났다. 그러면서 폭발한 기운으로 인해 활을 든 무인들도 몸에 구멍이 뚫려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양철의 목적도 이룬 셈이었다. 그는 양항과 양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지만, 패배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고 싶었다.
‘실패해도 괜찮다. 하지만 나를 공격하러 온 놈들은 누구도 무사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쇄성궁은 완벽하게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양항과 양영의 부하들은 적어도 열몇 명이나 죽었다. 그중에서 두 명은 신유 경지였다. 중상을 입은 사람도 스무 명이 넘었다. 경상을 입은 사람은 아예 셈에 넣지도 않았다.
계승 싸움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 이런 타격은 작은 손해가 아니었다. 양항과 양영이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저 자들을 죽여라!”
양항과 양영은 거의 동시에 분노에 차서 명령을 내렸다. 곧 짧은 정적이 깨졌다. 쇄성궁에 중상을 입은 무인들은 반항도 못해 보고 죽임을 당했다. 이들은 모두 단목 가문의 무인들이었다. 단목 가문은 일등 세력으로 가문에 훌륭한 무인들도 많았지만, 가문의 모든 힘을 계승 싸움에 쏟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양철은 승산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단목 가문에서는 이번에 사람을 적지 않게 보냈지만 그저 보여주기식에 불과했다. 양철에게 보낸 사람들은 이미 전부 희생시킬 각오로 보낸 것이었다.
“일곱째야, 난 셋째 형님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떤 것 같으냐?”
양항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양철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양영에게 물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양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 영기의 소유권은 각자 능력에 맡기는 걸로 하자.”
양항은 이렇게 말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일제히 양철을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양영도 공격 명령을 내렸다.
순간, 둘의 공격의 화살은 모두 양철과 단목 가문으로 향했다. 이번에 출동한 단목 가문의 무인들 중에서 가장 강한 이는 신유 경지 7단계 두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수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쇄성궁으로 겨우 체면을 세우기는 했으나 정면으로 붙으면 상대가 안 되었다.
두 신유 경지 7단계 고수는 양철을 호위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바로 이때, 양항과 양영의 무리에서 각각 한 명씩 몰래 전쟁터를 벗어나 슬그머니 관저의 중전으로 뛰어갔다. 그곳은 양철의 영기가 걸린 곳이었다.
양철은 저지할 힘이 없어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준비하시죠.”
줄곧 사태를 예의 주시하며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던 양준이 갑자기 나지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풍운쌍위의 안색이 날카로워졌다. 양준이 드디어 움직이려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게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두 분의 실력은 훌륭하지만 이렇게 인원이 많은 전투에서는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풍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들과 실력이 비등한 자들도 꽤 있네요. 이따가 어찌할지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저희 둘은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들어가서 두어번 휘젓고 바로 떠날 겁니다.”
양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러 두었다.
풍운쌍위는 동씨 가문의 고수인데다 오랫동안 동경한의 곁을 지켜왔다. 그런데 그들이 만약 이곳에서 죽는다면 동경한에게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양준이 그들을 데리고 온 것도 혼란한 틈을 타 이득을 챙기려는 것일 뿐, 그들을 데리고 모험할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풍운쌍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들어가 휘젓고 나오는 것이라면 위험은 없을 듯했다.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혈시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양항과 양영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혈시들도 그들을 공격할 리 없었다.
“그리고 두 분은 양영을 도와 양항의 사람들을 공격하십시오. 두 세력을 모두 공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쪽만 공격한다면 양항의 사람들은 그들이 양영의 동맹일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곧 눈치채겠지만 양준은 바로 이 잠깐의 틈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만약 두 세력을 다 공격한다면 이 계획은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셋이 대화하는 사이, 중전에서 두 사람이 뛰쳐나왔다. 두 사람은 각각 양항, 양영 세력에 속하는 이들로 둘 다 신유 경지 5단계였다. 그중 한 명은 영기를 들고 기쁜 얼굴로 달려나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 뒤를 바싹 쫓고 있었다.
앞에 선 이의 행동이 더욱 빨라서 영기를 얻은 듯했다.
양항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아래쪽의 상황이 어떤지 살피지 않고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리 가지고 와!”
영기를 든 이는 그 말을 듣고 다급히 양항 쪽으로 날아갔다. 영기를 양항의 손에 넘겨주기만 한다면, 당우선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양항이 영기를 뺏길 일은 없을 터였다.
“꿈 깨시지!”
양영은 코웃음을 치더니 혈시를 데리고 그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돌진해 갔다.
“일곱째, 넌 가만히 있지 그래!”
양항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 역시 그쪽으로 몸을 날려 그들을 막으려 했다.
양영의 혈시가 다급히 뛰쳐나와 도움을 주려고 하는 순간, 당우선의 신혼기가 작렬했다. 이내 양항 대 양영, 당우선 대 양영의 혈시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혼란을 틈타 양준은 풍운쌍위를 데리고 전장을 급습했다.
보는 눈이 많은 만큼, 그들을 발견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누구도 양항이나 양영에게 귀띔해 주지 않았다. 그저 세 사람이 뭘 하러 온 건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양항과 양영, 혈시 두 명, 중전에서 뛰쳐나온 신유 경지 5단계 두 명 모두 일 대 일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외 남은 사람들은 합심해 단목 가문을 공격하며 양철을 잡으려고 했다. 전장이 네 부분으로 나뉜 셈이었다.
단목 가문의 무인들은 모두 죽거나 다쳐 이제 겨우 네다섯 명 정도 남아 저항하고 있었다. 신유 경지 7단계 고수 두 명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양준은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풍운쌍위에게 지시하고는 영기를 두고 싸우고 있는 두 신유 경지의 무인들을 혼자서 공격하러 갔다. 그는 공격하기 앞서 먼저 신식의 힘을 전력으로 폭발시켰다. 곧이어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신식이 양철 관저 전체를 감쌌다. 그 힘은 마치 거대한 산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압박감을 주었다.
싸우고 있던 모든 이들의 표정이 급변하면서 공격용 초식이 순식간에 방어용 초식으로 바뀌었다. 두 혈시는 동시에 싸움을 그만두고 다급히 양항과 양영의 곁으로 돌아가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했다.
영기 쟁탈전을 벌이던 두 신유 경지 고수는 휘청거리다가 하마터면 땅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들이 넋이 나가 있는 사이,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곧 정신을 차리고, 동시에 검은 그림자를 공격했다.
이때, 기괴하고 흐릿한 자색 빛이 퍼지더니 고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잔물결이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신혼기다!”
두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꽃향기가 밀려오더니 핏빛 꽃잎들이 음산한 살기를 띤 채, 사방에서 흩날렸다.
두 사람은 막을 겨를도 없이 동시에 신혼기에 적중되었다. 식해에서 갑자기 얼음 같은 한기가 전해졌고, 밀려드는 추위에 그들은 순간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실력이 약하지 않은 터라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뒤이어 펼쳐진 천예혈해당이 그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바로 이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준은 얼른 영기를 들고 있는 무인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그는 새하얀 이를 드러낸 채,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양준의 얼굴을 확인한 그 무인은 너무 놀라 순간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영기가 이미 양준의 손에 들어간 뒤였다.
“당신은……?!”
영기를 빼앗긴 무인은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물론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양씨 가문 여덟 공자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막내 공자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순간, 꿈꾸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양준은 그 무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하늘 높이 날아올라 영기를 멀리 던졌다.
어둠 속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날카로운 발로 정확하게 양철의 영기를 잡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바로 금우응이었다.
“너 바보냐?”
양영 세력의 신유 경지 5단계 무인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눈에는 영기를 들고 있던 무인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영기를 빼앗긴 것으로 보였다. 그는 당연히 그 무인이 왜 그런 대처를 했는지 알 리 없었다.
“그분이셨어… 그그그…….”
영기를 빼앗긴 무인은 자신의 실수를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때, 양항의 옆을 지키고 있던 당우선이 미간을 찌푸린 채, 금우응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반짝였고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가린 양준에게 시선을 옮긴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