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12화 (412/853)

제 412장. 오늘 밤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렸지

손에 넣었던 영기를 코앞에서 빼앗긴 양항은 기분이 순식간에 곤두박질 쳤다. 게다가 영기를 빼앗은 사람이 공중으로 날아올라갔다 내려오자 손에 든 영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욕설만 퍼부을 뿐,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신유 경지 정상 실력의 거대한 신식의 힘이 여전히 양철 관저에 드리워져 있었다. 양항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그들은 눈앞에 고수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자기 편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신식을 경계하기 위해 무인들이 공격을 멈춘 덕분에 목숨이 간당간당했던 양철과 단목 가문의 무인들은 모두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풍운쌍위는 거리낌 없이 전장으로 쳐들어가 이리저리 이따금씩 양항 무리만을 공격했다. 양영 무리는 그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마음껏 전장을 휘젓게 내버려 두었다.

전장을 몇 번 휘젓고 다니던 풍운쌍위는 곧 양철의 앞에 다다랐다.

양항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뭘 넋 놓고 있어! 얼른 가서 셋째 형님을 잡아오지 못해!”

영기가 사라진 판에 사람마저 잡지 못한다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었다. 양항의 명령에 수비할 생각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영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저들을 막아!”

양측의 무인들은 또다시 한데 엉켜 싸움을 시작했다.

풍운쌍위는 드디어 양철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들은 양영 세력 무인들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양철의 앞을 지키던 단목 가문의 두 고수를 물리치고 양철을 단숨에 제압했다.

양영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풍운쌍위에게 소리쳤다.

“셋째 형님을 제 쪽으로 모셔와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풍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이어 그가 양철을 휙 던졌다.

순간 양영은 당황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영기를 빼앗아간 사람이 공중에 날아올라 양철을 잡아채더니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풍운쌍위도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청색빛을 감싼 채, 밤하늘에서 사라졌다.

“다섯째 형님, 일곱째 형님, 감사합니다!”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항과 양영은 얼굴이 시퍼래져서 소리를 질렀다.

“아홉째!”

구경꾼들은 이 말을 듣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홉째는 양씨 가문의 막내 공자 양준이었다.

방금 전, 양항은 오늘 밤 양소와 양신이 양준 관저를 공격하러 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양준이 낮에 보여 준 모습으로 봤을 때, 양철 쪽보다는 조금 낫겠지만 그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지금 양준은 자신의 관저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거지?’

게다가 그는 무인을 두 명밖에 데리고 오지 않은 듯했다.

‘간이 이리도 크다니!’

양항의 비명을 듣고, 그 속의 당황을 알아차린 구경꾼들은 왠지 모르게 흥분되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싸움이 그들이 바라는 계승 싸움의 묘미였다.

잠깐 사이, 양준은 이미 양철을 데리고 백 장 넘게 날아갔다. 온몸의 진원을 아낌없이 돌린 바람에 신형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등 뒤로 길다란 잔영을 남겼다.

“역시 막내 공자님이셨어!”

당우선은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방금 전, 밤하늘에 금빛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녀는 금우응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그리고 양준의 목소리를 듣게 되자 확신할 수 있었다.

“진작 알고 있었느냐?”

양항은 언짢은 얼굴로 그녀를 흘깃 보았다.

당우선은 전혀 흔들림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짐작만 했을 뿐, 확신은 없었습니다.”

양항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양준을 대하는 도봉과 당우선의 태도가 매우 공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두 사람을 선택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양준을 골탕 먹이려는 속셈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골탕을 먹은 사람은 그 자신이었다.

지금 영기와 사람을 모두 양준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그와 양영은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결국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그 답답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쫓아라!”

양항은 이를 악문 채, 소리치며 훌쩍 날아올랐다.

양영도 어두운 얼굴로 말없이 그를 뒤따랐다.

엉망진창이 된 양철 관저와 중상을 입은 단목 가문의 고수 네다섯 명만을 남겨둔 채, 두 무리의 사람들은 일제히 떠나갔다.

계승 싸움 첫날 밤 전투가 양준의 어부지리로 끝나다니. 이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일이었다. 구경꾼들도 흥이 가시지 않아 곧장 그들을 따라나섰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양준에게 많은 관심이 쏠렸다.

‘막내 공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일을 해낸 거지?’

사람들은 양준이 잡히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 계승 싸움이 더욱 재미있어지고, 기대감도 증폭될 수 있었다.

온통 피로 물들고 시체가 가득 널려 있는 곳에서 살아남은 다섯 명의 무인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말없이 쓴웃음만 지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천천히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그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단목 가문에서는 이번에 총 삼사십 명 정도가 왔는데 살아남은 이는 다섯 명밖에 안 되었다. 단목 가문은 무인들을 잃었지만 명성을 드날리기도 했다. 나중에 이번 계승 싸움을 떠올릴 때면 사람들은 단목 가문이 충성스럽다고 입을 모아 칭찬할 것이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인들을 보냈다고 말이다. 계승 싸움이 끝나면 단목 가문과 잘 지내려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터였다. 때문에, 멀리 내다보면 단목 가문은 손해를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얻은 셈이었다.

*양항과 양영은 각자 무리를 이끌고 양준의 뒤를 쫓았다. 처음에 그들은 양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림자마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유 경지의 무인들이 열심히 신식을 펼쳐 양준의 움직임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양준과 양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앞서 양준을 뒤쫓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자, 양항과 양영의 안색은 점점 더 암담해졌다.

“막내 공자의 속도가 대단한데요.”

고양풍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손에 사람을 든 채로 신유 경지의 무인들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다니, 정말 놀랍기 그지없었다.

“빠른 거야 그렇다 치고, 이렇게 많은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신식으로 살피고 있는데 어떻게 행적과 기운을 감쪽같이 숨긴 거지?”

강참이 고개를 저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양영은 눈빛을 반짝이며 당우선을 지켜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다섯째 형님, 형님의 혈시가 신혼기 쪽에서는 남들보다 조예가 깊다고 들었는데 그녀 역시 신식으로도 감지할 수 없답니까?”

양영이 이렇게 말하자, 양항도 답을 구하듯이 당우선을 바라보았다.

당우선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시도해 보았지만 막내 공자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양항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네가 막내와 친분이 있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지금은 계승 싸움 중이고, 넌 양씨 가문 혈시당의 혈시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당우선은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차분하게 대답했다.

“다섯째 공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님도 알아주십시오. 혈시는 언제나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해 왔습니다. 공자님께서 자신의 공로로 저와 도봉을 선택한 이상, 저희는 공자님이 탈락하기 전까지 전력으로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양항은 더는 트집을 잡을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뜻은 그게 아니라 너도 찾아내지 못했으니 분명 누군가가 막내를 도와주고 있을 거란 얘기다.”

“그 신식의 주인 말씀이십니까?”

양영은 문득 방금 전의 괴이하고 무시무시했던 신식이 떠올랐다.

“아마 그럴 거다. 그렇게 강력한 고수가 도와주고 있으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게지.”

양항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막내가 어디서 그렇게 강력한 조력자를 얻었을까?”

계승 싸움은 천하의 크고 작은 세력들이 참여하게 된다. 역대 8대 세가에서 보내준 사람들은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신유 경지 5단계를 넘지 않았었다. 다른 일등 세력에서도 신유 경지 정상의 인물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고수들은 나이가 많아 계승 싸움의 균형을 깨뜨리며 참여하기를 꺼려했다. 게다가 다른 세력에서도 이러한 고수를 잃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등 세력에서 보내주는 고수들은 가장 실력이 높은 이가 신유 경지 8단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등 세력에는 신유 경지 8단계 고수가 드물었다. 혈전방 같은 경우에는 방주인 호만만 신유 경지 8단계였다. 그러나 일개 방주가 어찌 계승 싸움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풍우루 같은 경우, 아예 신유 경지 8단계에 이른 이조차 없었다. 루주인 소약한도 신유 경지 7단계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이등 세력에서 보내준 고수들은 대부분 신유 경지 6, 7단계가 최고였다.

삼등 세력은 고수가 많을 수 없었다. 그들이 데려온 무인들은 일등, 이등 세력보다 훨씬 적었다.

계승 싸움은 목숨을 걸고 하는 전쟁이었다. 만약 어느 세력에서 고수가 많이 죽는다면 이는 그들로서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이었고, 세력 전체가 크게 휘청일 수도 있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어떤 세력이든 계승 싸움에 보내는 인원들은 모두 손해 보아도 괜찮은 정도에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신유 경지 정상의 고수를 조력자로 둔 공자는 아무도 없었다.

“막내가 이번에 크게 이득을 봤군!”

양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영기뿐만 아니라 양철도 모두 양준의 소유가 되었다. 사람과 영기로 가문에서 많은 물자를 바꿀 수 있는데 심지어 비보, 무공, 공법 등도 바꿀 수 있었다. 그것들로 다시 휘하 세력을 무장한다면 실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오늘 밤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렸지.”

양항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쯤 그쪽도 발칵 뒤집혔겠지? 막내가 관저를 비우고 나왔으니 말이야.’

양항이 보기엔 양준의 오늘 한 수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