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15화 (415/853)

제 415장. 하나라도 죽이자!

영기를 빼내려던 무인들이 어찌 신유 경지 8단계 혈시의 암살을 피할 수 있겠는가? 짧은 시간에 세 명이나 쓰러졌고, 눈치가 빠른 몇 사람은 신속하게 피했지만 그들도 부상을 피할 순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영구는 홀로 양손에 비수를 든 채,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중전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죽은 사람의 손에서 영기를 빼내 휙 던졌고, 영기가 다시 중전에 걸렸다. 곧이어 그의 신형이 다시 흐릿해지더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패혈광술이 아니야!”

양소는 정신을 가다듬고 놀라서 소리쳤다.

혈시가 패혈광술을 펼칠 때의 특징은 매우 뚜렷했다. 온몸의 기혈이 새빨간 빛을 내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구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 형님!”

양신은 화가 치밀었다. 방금 전, 양소의 판단을 믿고 움직인 탓에 막대한 사상자를 내버린 것이다.

양소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힐끗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그럼 제 손해는… 휴우.”

양신도 양소에게서 손실을 배상받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남의 말을 쉽게 믿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중전 앞.

영구가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세 사람을 죽이고 사라져 버리자, 양신의 부하들은 더 이상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하나같이 고개를 돌려 양신을 바라보았다. 다음 작전을 묻는 눈빛이었다.

양신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졌다. 그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더 이상 섣불리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양소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영구가 패혈광술을 펼치지 않고도 이렇게 강하다니. 그의 부상 정도를 보면 절대 이럴 리가 없는데.’

그는 양준의 관저로 오기 전에 미리 알아보았었다. 영구와 곡고의는 혈시당에서도 뛰어난 무인들이었지만, 중상을 입은 몸이라 지금 상태에서는 신유 경지 6단계 정도의 무인이라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상처가 이미 완전히 회복된 건가? 아니면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부상을 억제한 건가?’

양소는 오리무중에 빠져 이것저것 짐작해 보았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영구뿐만이 아니라 곡고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시종일관 입을 열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가끔씩 눈동자를 굴리는 것 말고는 죽은 사람 같았다. 그러나 네다섯 명에게 둘러싸인 뒤에도 그의 안색은 전혀 변하지 않고 무덤덤했다.

양소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와 양신이 데려온 사람들의 실력은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두 혈시가 전성기인 상태에서 영기를 빼앗아 가려면 위험 부담이 컸다. 지금의 가장 큰 난제는 양준의 두 혈시가 어디까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였다. 만약 그들이 그저 괜찮은 척하는 것이라면 양소는 그래도 오늘 밤에 양준을 탈락시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참 생각에 잠겼던 양소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여섯째야, 넌 영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구나.”

양신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 형님이 좀 도와줄게.”

양소는 아래쪽을 주시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소도 오늘 같은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도와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럼 영기의 소유권은…….”

양신은 한 번 손해를 본 뒤 조금 영리해졌다. 그는 미리 말을 잘해 둬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

양소라고 밑지는 장사를 하려 하겠는가? 지금 양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경솔하게 영기를 내주겠다고 말한다면 나중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양신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양소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따지지 않았다. 그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한꺼번에 네 명의 부하가 죽어 버렸으니 양신도 이겨서 체면을 되찾고 싶었다.

“그럼 나가라.”

양소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엽신유가 데려온 신유 경지 5단계 두 명과 향씨, 남씨 가문의 고수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양신도 똑같이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에게 눈짓을 했다.

두 형제가 손을 잡았다. 곧이어 신유 경지 무인 열댓 명과 한 무리의 진원 경지 무인들이 중전으로 다가갔다.

“미리 얘기해 두는데 싸울 땐 싸우더라도 날 엮지는 마. 난 그저 구경하러 온 거니까.”

곽성진은 두어 마디 떠들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추억몽은 냉소를 짓더니 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 앞으로 보내고, 향천소와 함께 성큼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추우당과 향천소의 사람들이 갑자기 주변에서 귀신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인원은 적지 않았지만, 실력이 강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

양소와 양신이 데려온 사람들은 전혀 겁먹지 않고 일제히 중전으로 몰려갔다.

이때, 제자리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던 곡고의가 갑자기 진원을 끌어올렸다. 그의 진원이 엄청난 기세로 몸을 뚫고 나왔다. 곧이어 보이지 않는 기운이 주변으로 확산되며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귓전을 때렸다.

“중전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나를 먼저 뛰어넘거라!”

그의 말은 기백이 넘쳐 흘렀고, 전혀 부상을 입은 사람 같지 않았다.

양소와 양신의 부하들은 원래도 숨어 있는 영구 때문에 겁을 먹은 상태였는데, 곡고의의 으름장을 듣고 흠칫 놀랐다. 그리고 심약한 무인 한 명이 깜짝 놀라, 곡고의에게 공격을 날리고 말았다.

곡고의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공격을 막아 내더니 섬뜩하게 미소를 지었다. 혈시는 가문의 규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기 전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공격을 당했으니 당연히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의 신형이 푸른빛으로 변하더니 다음 순간, 적진을 파고들어 모습을 드러냈다. 혈시당에서 가장 용감한 고수로서 곡고의는 순간 폭발력이 좋았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진원과 신식의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킬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를 이길 자가 없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신식의 힘들이 머릿속에서 폭발하며 광적인 신혼기가 주변을 덮쳤다. 동시에 그의 두 손에서 정교하면서도 살상력이 엄청난 무공들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며 전장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누구도 중상을 입은 혈시가 먼저 인파 속에 뛰어들어 공격을 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수비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오로지 공격을 퍼붓는데 집중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공중으로 날아가 뼈도 못 추리고 가루가 되었다.

양소, 양신, 향초, 남생, 추자약은 모두 눈동자를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이번 전쟁이 이토록 잔혹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양소와 양신의 곁을 지키던 두 혈시는 서로 마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곡고의가 이미 몸을 회복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어떻게 회복한 거지? 낮에 봤을 때만 해도 부상 입은 모습 그대로였는데. 어떻게 낮 동안에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온 거지?’

곡고의의 잔혹함과 용맹함에 적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몇 사람이 앞에서 죽어 나가자, 남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뭘 두려워하는 것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혈시 하나를 상대하지 못하는 것이냐?”

양소는 눈앞의 상황에 미친 듯이 분노했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칼을 뽑은 이상 끝장을 봐야 하는 법, 양준의 숨겨진 능력을 본 이상, 오늘 밤에 그를 반드시 탈락시켜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준은 반드시 그의 가장 큰 적이 될 터였다. 심지어 맏이인 양위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상대였다.

‘반드시 오늘 밤에 탈락시킨다!’

양소는 이를 갈았다.

그의 고함은 효과가 있었다. 곡고의를 공격하려던 사람들은 그저 혈시당 고수들의 명성에 위압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들은 혈시도 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곡고의는 수비 없이 공격만 하는 유형으로, 적들을 혼란에 몰아넣고 그 틈에 두 명을 죽였지만 자신의 몸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더구나 그들은 인원이 많아서 이리저리 피하며 협동 작전을 펼치면 곡고의의 공격을 피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따로 지원해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곡고의는 패혈광술을 펼치려고 해도 시간이 없었다.

순간, 사람들은 안색이 크게 바뀌며 용기가 생겼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각종 무공과 비보를 전부 꺼내 들었다.

열몇 갈래의 빛이 무지개처럼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더니 전부 가운데 있는 곡고의를 공격했다.

이렇게 많은 기운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곡고의가 아무리 혈시당의 고수라도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짧은 순간에 그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 늘어났다.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여전히 진원과 신혼기를 폭발시켰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최종적으로 곡고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신과 양소의 부하도 분명 절반 넘게 죽을 터였다.

추억몽은 눈을 깜빡이며 중전 입구를 지켜보다가, 다시 양소와 양신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영구는 지금 나설 수 없었다. 일단 그가 나서면 양소와 양신 중 아무나 혈시를 데리고 손쉽게 영기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 숨어 있어야만 양소와 양신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을 수 있었고, 적들을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 역시 이런 점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곡고의가 포위된 것을 보면서도 꼼짝하지 않는 것일 터였다.

영구가 나서지 않으면 곡고의 혼자의 힘으로는 적들을 이길 수 없었다. 추억몽도 이를 알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으로 봤을 때 영기를 지키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혈시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양준이 가진 힘은 크게 약해질 것이다.

“가서 도와!”

추억몽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나지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추우당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이어서 향천소가 손을 내젓자 향씨 가문의 무인들도 사방팔방에서 뛰어나왔다. 향천소는 솔선수범으로 그의 비보인 큰 칼을 휘두르며 용맹하게 달려나갔다.

그의 실력으로는 신유 경지의 무인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양소와 양신이 데려온 사람들이 전부 신유 경지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진원 경지의 무인들도 있었다. 향천소의 목표물은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향천소가 전장에 달려드는 것을 본 향초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그의 눈빛에는 멸시의 빛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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