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16화 (416/853)

제 416장. 너도 나가!

‘네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고 가문에서 인심을 얻고 있다 해도, 우리 향씨 가문의 가주는 될 수 없어!’

향천소는 싸움이 나면 언제나 앞장섰다.

어떤 가주가 솔선수범을 보이며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천하의 크고 작은 가문들은 며칠에 한 번씩 가주를 바꿔야 할 것이다. 가주는 가주답게 후방을 지키고 전체적인 상황을 관리하고 전략을 세워야 했다. 선봉에 서는 건 장수이지, 군주가 아니었다.

향천소의 모습을 지켜보던 향초의 시선이 점차 흉악해졌다. 그의 눈동자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너도 가!”

추억몽은 고개를 돌려 웃음 가득한 얼굴로 빈둥거리고 있는 곽성진을 바라보았다.

“나도?”

곽성진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당연하지, 넌 곽씨 가문의 공자인데 누가 널 감히 죽이겠어?”

추억몽은 나지막하게 말하면서 그의 옷을 잡아채 혼란스러운 전쟁터로 내던졌다.

곽성진이 괴성을 지르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땅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추억몽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도 감히 널 죽이지 못할 거야. 기껏해야 생채기나 내겠지.”

‘망할 년!’

곽성진은 잠시 잃었던 다리의 감각이 다시 돌아오자,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살살 웃으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날 치지 마. 난 곽성진이야. 곽씨 가문의 독자라고! 누구라도 날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곽성진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방탕하기 그지없는 곽 공자의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눈을 희번덕거렸다. 양소와 양신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곽성진은 전장에서 아주 껄끄러운 존재였다. 누구든 공격할 때면 조심스럽게 그를 피할 수밖에 없었고, 요동치는 진원도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정말 그를 다치게 한다면 그의 성격상 분명 나중에 앙갚음을 할 터였다. 그때가 되면 양소와 양신이 보호해 준다고 해도, 그를 다치게 한 사람은 보복을 당할 게 뻔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같은 8대 가문 출신의 사람만이 그를 제압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가 혼란스러워 양소와 양신은 직접 나설 용기가 없었다.

그때, 신유 경지 3단계 무인이 곡고의에게 맞아 뒤로 나가떨어지며 곽성진의 어깨에 부딪혔다.

곽성진은 곧바로 손을 들어 무인의 귀싸대기를 날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망할, 내가 곽성진이라고 했잖아. 눈이 어디에 달린 거야? 날 다치게 만든다면 배상할 능력은 있냐?”

그 무인은 안 그래도 곡고의에게 맞은 탓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온몸의 기혈이 들끓는 상태였는데, 또 사람들 앞에서 뺨까지 맞자 억울함과 분노를 어디 풀 데가 없어 입을 열자마자 피를 왈칵 토하고 쓰러져 버렸다. 화가 나 혼절한 것이었다.

“눈치라고는 없는 녀석!”

곽성진은 나지막하게 코웃음을 쳤다.

양소와 양신의 안색이 더욱 일그러졌다. 곽성진의 행동은 너무나도 망나니 같았다. 엽신유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피어올랐고, 추자약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든 이가 곽성진과 함께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반면 추억몽은 미소를 띤 채,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곽성진의 민망한 작태를 구경하고 있었다.

곽성진은 혼란스러운 전쟁터를 무인지경으로 누볐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피하자 그는 심심해서 제자리에 선 채 머리를 긁적이다가 뒤돌아 물어보았다.

“추억몽, 나 다시 돌아가도 돼? 아무도 날 안 건드리는데.”

그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누가 감히 그를 공격하겠는가? 그는 곽씨 가문의 독자였다. 후계를 이을 사람이 최소한 몇 명씩 되는 다른 가문과는 달랐다.

“그럼 거기 그냥 서 있어!”

추억몽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문득 곽성진이 발휘할 수 있는 효력이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지?!”

곽성진이 울상을 하며 되물었다.

전쟁터 밖에 서 있던 엽신유가 상황을 보며 눈동자를 굴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가서 곽 공자를 데려올까요?”

엽신유는 추억몽만큼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그녀 역시 중도 젊은 세대 중의 뛰어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추억몽을 ‘중도의 꽃’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그녀는 실력도 약하지 않았다. 거기에 높은 등급의 각종 비보까지 사용한다면 일반적인 신유 경지 1단계의 무인과도 겨룰 수 있는 정도였다.

그녀는 곽성진을 제압하는 데 자신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곽성진을 건드리지 못해도, 지위가 비슷한 8대 가문의 사람들은 그를 건드릴 수 있었다.

양소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엽 소저는 그의 상대가 안 될 것입니다.”

엽신유는 당황하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사람을 너무 얕보시네요. 제가 이렇게 나약해 보여도 능력은 있다고요.”

양소는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당연히 소저의 실력을 알고 있습니다. 소저를 얕본 건 더더욱 아니고요. 다만 소저께서 곽 공자를 얕보신 것 같습니다.”

엽신유는 경악한 표정으로 주저하며 말했다.

“그 말은 곽 공자가…….”

양소는 가볍게 웃었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중도로 돌아오기 전, 젊은 세대들 중에서 가장 이름을 떨친 세 명 중 곽성진은 3위지요. 소저께서는 그가 그저 망나니짓을 하고 호색한이라 이름을 날린 것 같습니까? 곽씨 가문의 저력을 너무 낮잡아 보셨습니다.”

엽신유는 낯빛을 가다듬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제가 그를 싫어해서 얕본 것일 수도 있겠네요.”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의 옆에 서 있던 향초는 몰래 향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에게 눈짓을 했다.

신유 경지 고수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전쟁터를 벗어나 진원 경지 정상의 무인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향천소에게 다가갔다. 혼란스러운 전쟁터에서 누구도 이 작은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향천소 자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뒤, 신유 경지 고수는 향천소의 옆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이내 그의 눈에 섬뜩한 빛이 번쩍이더니 신식의 힘이 폭발했다.

바로 이때, 곽성진도 무슨 영문인지 휘청거리다가 왼쪽으로 몇 걸음 움직였다. 이 결정적인 몇 걸음으로 인해 그는 때마침 향천소의 앞을 막아서게 되었다.

향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가 날린 신식의 힘은 그대로 곽성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폭발했다.

곧이어 곽성진의 몸에서 하늘색 빛무리가 퍼져 나왔다. 이는 그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신혼 비보가 방어 능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하늘색 빛무리를 본 곽성진은 의아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향천소를 습격하려던 신유 경지 고수와 눈을 마주쳤다.

곽성진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듯, 씨익 웃었다.

“젠장, 신혼기로 날 공격하다니… 간도 크군. 다행히 내가 몸에 신혼 비보를 지니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네놈에게 죽을 뻔했잖아?”

신유 경지 고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 넋이 나가 있었다.

방금 전에 누군가 조심하지 않아 곽성진에게 부딪혔다가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았는데, 신혼기로 곽성진을 공격한 그의 말로는 어떻겠는가?

순간,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다급히 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곽 공자님,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곽성진은 사악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럼 무심결에 그랬다는 말이냐?”

그는 말을 하면서 또다시 상대방의 뺨을 후려갈기려 했다.

신유 경지 고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막고 난 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 곽 공자님,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곽성진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향씨 가문 사람이지? 오늘 널 죽이지 않으면 내 성을 갈 것이다. 움직이지 말고 거기 딱 가만히 있어.”

신유 경지 고수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따귀를 후려쳐 기절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아까 본능적으로 곽성진의 손을 막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곽성진은 전쟁터를 한 바퀴 돌다가 시체에서 무기를 찾아내 두어번 휘둘러보고는 유유자적하게 돌아왔다. 다시 신유 경지 고수 앞에 선 그는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상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네가 정해. 천천히 죽여줄까, 아니면 단칼에 죽여줄까?”

신유 경지 고수는 실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향초에게 눈빛으로 구원 요청을 했다.

향초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가 향씨 가문 미래의 후계자이긴 하지만, 향씨 가문도 한낱 일등 세력에 불과한데 어찌 곽성진의 상대가 되겠는가? 향초는 망나니 같은 곽성진을 건드릴 자신이 없었다.

향초의 쓴웃음을 본 신유 경지 고수도 곤경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곽 공자님께서 알아서 하시지요.”

“이야, 그래도 제법 기개가 있네.”

곽성진은 상대가 조금도 반항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무척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에 든 칼에서 섬뜩한 빛이 번쩍였다.

이내 신음소리와 함께 곽성진 앞에 서 있던 신유 경지 고수의 한쪽 팔이 잘리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흥, 기개를 봐서 한쪽 팔만 잘라 주지.”

신유 경지 고수는 고통을 참기 어려웠지만, 여전히 반항하지 않고 진원을 운행해 피가 흐르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곽성진은 큰 소리로 떠벌렸다.

“향씨 가문 사람들은 원래 팔 하나씩 잘라야 해. 그리고 남씨 가문도 마찬가지야. 너희들 지금이라도 계승 싸움을 그만두고 꺼지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들의 팔을 전부 잘라 주지. 앞으로 너희들은 외팔이 향씨 가문, 외팔이 남씨 가문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하하하하!”

방자한 그의 웃음소리에 향초와 남생의 안색이 시퍼래졌다.

곽성진의 이 말은 당시 네 명의 고수가 양준에게 협박을 당해 팔 하나씩 잘린 일을 비웃는 게 분명했다. 이는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에게 있어 크나큰 수치였다.

향초와 남생 모두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에 그들은 양소를 따라 양준에게 보복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싸우는 동안 양준은 줄곧 나타나지 않고 있었고, 오히려 곽성진이 망나니처럼 그들의 세력을 박살내 버렸다. 심지어 향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 한 명은 팔까지 잘렸다. 이런 망신이 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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