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7장. 정말 나갔다 왔단 말이냐?
“저희를 위해서 한 번 나서 주시지요!”
향초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양소에게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담겨 있었다. 정말로 화가 났던 것이다.
양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그는 싸움에 직접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곡고의가 아직도 미친 듯이 공격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 요동치는 그의 기운 때문에 안전하지 않았고, 줄곧 양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인 막내 동생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은 모두 그에게 큰 힘이 되는 조력자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그들이 실망할 게 뻔했다.
양소는 한참 고민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직접 얘기해 보도록 하죠.”
그의 대답을 들은 향초와 남생의 표정이 밝아졌다.
양소는 혈시를 데리고 조용히 전장으로 날아갔다. 그가 직접 나선 것을 보고 곽성진은 얼른 방자한 표정을 갈무리하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제법 품위가 있네.”
양소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남들은 감히 곽 공자를 건드리지 못하니 제가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
곽성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큰일 났군.”
그는 고개를 돌려 추억몽에게 말했다.
“추억몽, 무슨 방법이라도 좀 생각해 봐. 안 그러면 나 양소 공자에게 잡힐 거 같아. 양준이 지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내가 잡힐 수는 없잖아.”
추억몽은 태사의에 앉은 채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차피 네가 있건 없건 큰 상관은 없거든. 마음 편히 가.”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어?”
“원래 가장 매정한 게 여자 마음이라잖아. 여자들 치마폭에 싸여서 놀던 우리 곽 공자께서 모르지는 않겠지?”
추억몽이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곽성진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곽 공자, 조심하십시오!”
양소는 웃으며 그에게 귀띔을 해 주고는 서서히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가 힘차게 굴렀다.
곧이어 땅 위에 갑자기 몇 줄기의 괴이한 줄이 생기더니 거대한 지네가 꿈틀거리듯이 움직였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아래쪽에서 전해지자, 곽성진은 저도 모르게 안색이 변했다.
지살룡술(地煞龍術), 천급 상품의 무공이었다.
양소는 처음부터 비범한 무공을 선보였다.
지살지룡은 전부 5급 요수의 신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양소는 이것을 몸속에 흡수했다가 적을 상대할 때 활용했는데, 항상 상대방이 무방비상태일 때 공격해 방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양소가 지금 움직인 지살지룡은 무려 일곱 마리나 되었다. 보통 같은 진원 경지의 무인을 상대할 때 이 초식을 사용하면 단시간에 이길 수 있었다.
곽성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신기하고 현묘한 보법을 펼쳤다. 그의 걸음마다 발 밑에서 연꽃 모양의 기운이 피어났는데, 연꽃들이 피고 지면서 지살지룡을 한 마리씩 삼켜 버렸다.
엄월련보(掩月蓮步), 역시 천급 상품의 무공으로 지살룡술의 맞수였다.
모두 일곱 걸음 물러나서야 곽성진은 걸음을 멈추고 양소를 바라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렇게 매정하게 굴 필요가 있나? 그래도 같이 풍류를 즐기던 사이인데, 지난번 기루에서 내가 한턱…….”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양소는 눈을 흘기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곽 공자도 역시 실력을 감추고 있었군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히히, 다만 양 공자가 먼저 공격을 했으니, 내 기꺼이 받아 주지.”
말하는 사이, 곽성진의 두 손에서는 동시에 속성이 다른 기운이 솟구쳤다.
한쪽은 바람, 한쪽은 우레였다.
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번개와 함께 우레가 울었다. 곧이어 두 개의 힘이 합쳐지더니 커다란 손이 되어 양소를 공격했다.
풍뢰합기대수인(風雷合氣大手印), 이는 곽씨 가문의 현급 하품 무공이었다. 바람과 우레가 어우러진 힘으로 위력이 엄청났다.
양소는 당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얼굴에는 느긋하고 덤덤한 미소만 걸려 있었다.
“저 자를 잡아와라!”
풍뢰합기대수인이 코앞까지 습격해 왔을 때, 양소가 덤덤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곽성진의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소리쳤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양소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볍게 웃었다.
“악은 더 큰 악으로 상대하는 법이죠.”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양소의 혈시가 이미 곽성진을 향해 손을 뻗어 왔다.
혈시들에게는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으나 지금 곽성진이 먼저 공격했으므로 당연히 반격할 수 있었다.
양소는 처음부터 혈시를 시켜 곽성진을 잡을 생각이었기에 곽성진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애초에 곽성진과 일 대 일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방금 전, 곽성진은 망나니 같은 수법으로 적의 세력을 발칵 뒤집었다. 양소가 지금처럼 약은 수로 상대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셈이었다.
혈시가 아무렇게나 손을 휘두르자 바람과 우레의 힘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곽성진이 시전한 현급 하품의 무공은 혈시들에게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다.
풍뢰합기대수인을 파괴한 뒤, 혈시는 더욱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 곽성진을 잡으려고 했다.
양소가 자신처럼 치사한 수를 쓸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곽성진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수상쩍은 복면인 두 명이 나타났다. 둘은 모두 검은색의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곽성진을 호위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중 한 명이 혈시를 향해 가볍게 공격을 날렸다.
혈시는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몸속의 진원이 미친 듯이 용솟음쳤다.
쿵-
혈시의 강렬한 기세에 복면을 쓴 사람은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나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반면 혈시는 평온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한 번의 대결로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혈시가 좀 더 강했으나, 두 복면인도 약하지 않았다.
“조력자가 더 있었어?”
양소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양준의 관저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매복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곡고의와 영구 두 사람만으로도 그와 양신이 데려온 세력의 절반 이상을 견제할 수 있었다. 그나마 곡고의가 진원과 신식의 힘을 거의 다 소진하게 되어 승리가 코앞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또 혈시와 수준이 비슷한 고수가 두 명이나 나타난 것이다.
양준의 관저에는 신유 경지 8단계 고수가 네 명이나 있는 셈이었다. 그 외에 추씨 가문의 추우당, 향씨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곽성진까지 있었다.
양소와 양신은 실력 면에서 상대에게 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훨씬 능가한다고 할 수 있었지만, 두 혈시는 먼저 공격을 펼칠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려 있었다.
‘양준의 관저를 접수하려 했는데 이미 글렀군. 막내는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조력자들을 얻은 거지?’
양소는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젠장!”
곽성진은 멍한 얼굴로 갑자기 튀어나온 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양소는 이 둘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수상쩍고 교활해 보이는 두 사람은 분명 오랫동안 그의 신변을 지켜온 이들로 곽성진은 눈을 감고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추억몽은 태사의에 앉아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크게 돈이라도 딴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양신의 안색은 흙빛이 되었다.
양측은 한참 대치했다. 이윽고, 양소가 이를 악문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자!”
오늘 밤에 양준 관저를 평정할 가능성이 없는데 남아서 뭘 한다는 말인가? 양소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명령에 곡고의를 둘러싼 채, 공격하던 무인들도 일제히 물러났다. 곡고의는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숨을 헐떡였다. 그는 추격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물러가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향천소가 데려온 무인들과 추우당 사람들도 신속하게 싸우던 상대들과 떨어졌다.
“이대로 물러난다고요?”
추자약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양준을 이겨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양소가 철수 명령을 내리자 그만 놀라서 멍해졌던 것이다.
“그럼 뭘 더 하겠습니까?”
양신은 가뜩이나 화가 나 있는 상태였던 터라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오늘 밤 전쟁에서 그의 세력은 양소 쪽보다 사상자들이 훨씬 많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양신이 한숨을 내쉬며 양소와 함께 떠나려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밖에서 날아 들어왔다. 동시에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가신다니 동생으로서 마음이 좀 불편하네요. 둘째 형님과 여섯째 형님께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드려야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을 뒤덮는 검빛이 쏟아졌다. 구성검파의 현급 무공 만검귀일이었다. 또한 흐릿한 자색 빛이 검빛 속에 섞여 신혼기가 작렬하였고, 호랑이와 소의 포효가 울려 퍼지며 수혼기도 함께 몰아쳤다. 연이어 붉은색의 예리한 꽃잎들이 하늘에서 눈꽃처럼 나풀나풀 춤추며 떨어졌다.
수많은 공격들이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내리며 모든 적들을 뒤덮었다. 잠잠해졌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살기를 내뿜었다.
“도련님, 조심하십시오.”
다급한 외침과 함께, 두 혈시가 빠르게 양소와 양신을 보호했다. 향씨, 남씨, 추시, 엽씨 가문의 고수들도 모두 자신들의 주인 옆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각종 무공과 비보를 아낌없이 시전하며 주인들의 안전을 보호했다.
천지간의 기운이 어지러워지면서 진원이 사납게 날뛰었다.
한참 동안 공격이 지속된 다음에야 천지를 뒤흔들던 기세가 천천히 누그러들었다.
양준의 관저를 공격하러 왔던 사람들 중 예닐곱 명은 쓰러졌고, 나머지 사람들도 안색이 좋지 못했다.
양소는 싸늘한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중에는 양준이 검을 든 채,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느긋하게 말했다.
“둘째 형님, 여섯째 형님, 좋은 밤입니다. 제가 외출을 다녀오느라 손님 접대를 제대로 못했네요. 그래도 형제지간이니 넘어가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양소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고, 양신은 놀라서 외쳤다.
“너 정말 나갔다 왔단 말이냐?”
곽성진과 추억몽이 양준이 집에 없다고 말했을 때, 그와 양소는 믿지 않았었다. 그들은 양준이 잡히기 싫어서 숨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양준이 정말 밖에서 돌아온 것을 보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