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0장. 옛 지인과 다시 만나다
양준은 누구 하나 관심 가지는 이가 없었는데, 한순간 중도 8대 세가 자제들 중 두 명의 지지를 얻은 양씨 가문의 자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소식에 전성의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도 곳곳에서도 양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달이 지고 해가 뜨며, 날이 밝아왔다.
양준이 마당에서 권법술을 수련하고 있는데 추억몽이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왔다. 그녀는 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새 뒤처리를 하느라 지금까지 바삐 보냈던 것이다. 십 장 밖에서 걸음을 멈춘 그녀는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예전에 양준이 이 권법술을 수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 권법술의 뛰어난 점을 알 수 없었다. 그녀도 손쉽게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그녀는 양준이 왜 유독 이 권법술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항상 해 뜨는 시간에만 수련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양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사촌 형님이 오셨어.”
추억몽은 이마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 뚱보가?”
“응, 그 뚱보가.”
“알아서 어디든 가 있으라고 해. 이따가 찾아갈 거니까.”
“그래.”
추억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깜빡했네. 오늘은 시간 좀 내 봐.”
“왜?”
“너한테 의탁하려고 찾아올 사람이 있을 거야.”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필요 없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느긋하게 권법을 펼쳤다.
오늘 의탁하려고 찾아온 이들은 분명 어젯밤에 전해진 소식을 듣고 온 이들일 것이다. 어제 낮에 많은 세력들이 중도의 남쪽 정문 앞에서 동맹을 선택했다. 하지만 더 많은 세력들은 암암리에 지켜보면서 어젯밤 공자들의 활약상을 보고 선택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가 어젯밤에 보여 준 활약으로 사람들이 의탁하러 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양준이 이렇게 말하자, 추억몽은 보기 드물게 반박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르는 이가 온 거면 이익 때문에 온 걸 거야.”
그녀는 드디어 양준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양준은 척을 진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보복하고, 겸손하고 부드러운 태도는 받아들이지만 오만하고 억압적인 태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겨우 서로의 관계가 좀 풀어진 마당에 그녀는 굳이 양준의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추억몽은 그대로 다시 일을 보러 갔다.
반 시진 뒤, 양준은 수련을 마쳤다. 온몸의 뼈에서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지금까지도 육체편을 다 수련하지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권법술에는 무도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고, 뒤로 갈수록 몸이 감당하는 압박은 더더욱 커졌다. 그의 지금 경지로는 기껏해야 절반밖에 수련할 수 없었다. 적어도 신유 경지 이상에 이르러야 육체편을 전부 수련할 수 있을 듯했다.
*양준 관저의 한 편전.
동경한은 차를 마시며 어젯밤 풍운쌍위가 돌아와서 그에게 말해 준 일들을 떠올렸다. 아직까지도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그때 당시 현장에 없었지만 풍운쌍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는 양준의 무시무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이 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동경한은 그런 양준이 부러웠다.
한참 지나자, 양준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너 이 자식.”
동경한은 일어나지 않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너 제법인데. 풍운쌍위를 빌려주길 잘했더군.”
양준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두 분이 없었으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도 못했겠지. 그리고 어젯밤, 두 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양준은 풍운쌍위를 존경했다. 사촌 형인 동경한을 항상 지켜주는 이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능소각에 재난이 닥쳤을 당시, 풍위가 혼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소식을 알려 주었기에 능소각의 백여 명이 사전에 대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약 풍위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능소각에 더 큰 피해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 정말 상황이 그러했더라면 지금 추억몽과의 관계도 좋아지지 못했을 것이다.
풍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랑 운위는 그저 가볍게 휘저었을 뿐, 크게 힘을 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실력이 뛰어나신 건 양준 공자시죠.”
운위도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두 사람은 감복하는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이토록 놀라게 한 젊은이는 없었다. 동경한도 젊은 세대에서는 뛰어난 편이었지만, 양준과 비교한다면 한참 부족했다.
풍운쌍위는 양준 같은 사람이 어느 정도로 성장할지 궁금했다.
“이번에 사람을 서른 명 데리고 왔어. 풍운쌍위를 제외하고도 신유 경지 다섯 명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진원 경지. 가장 경지가 낮은 사람도 진원 경지 5단계야. 그 외에 아버지가 보낸 물자도 가져왔어. 대부분은 단약이고, 재료도 좀 있어.”
동경한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양준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외삼촌께 감사하네.”
동씨 가문은 동소죽의 친정이고, 양준은 동소죽의 아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동씨 가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신유 경지의 고수, 그리고 단약 및 재료까지 보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전까지 양준이 계승 싸움에서 승리할 가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씨 가문에서는 전부 희생시킬 각오를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낸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신유 경지의 고수들을 잃는다면 동씨 가문에도 큰 타격이었다.
양준은 동씨 가문이 베푼 인정을 가슴 깊이 새겼다.
“사람이랑 물건은 전부 네 총관에게 맡겼어.”
동경한은 미소를 지었다. 퉁퉁한 얼굴에 드리운 미소가 매우 음흉했다.
“추억몽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누구겠냐. 자식, 전투도 이기고 애정 전선도 잘 풀리다니. 아주 잘 지내는구만. 경연이한테서 들으니까, 하루 종일 네 생각만 하는 청순가련형 절세미인도 있던데.”
동경한이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속에는 질투도 섞여 있었다. 일등 세가의 공자인 그는 양준처럼 여자 복이 많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양준은 마음이 움찔해서 다시 물어보려고 입을 떼는데, 추억몽이 밖에서 들어오며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두 형제분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어요? 제 험담을 들은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요!”
동경한은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양준을 대할 때는 편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추억몽 앞에서는 감히 함부로 하지 못했다.
양준은 가볍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금 놀란 시선으로 추억몽 옆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긴 머리를 폭포처럼 내려뜨린 여자는 반달 눈썹에 반짝이는 눈, 오똑한 코, 발그레한 볼,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과 백옥 같은 피부, 아름다운 몸매까지 더해져 요염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여인의 몸매, 용모, 기질은 추억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양준은 시선을 위로 옮기다 마침 여인의 함초롬한 눈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에는 기쁨, 후회, 그리고 약간의 흥분과 어색함이 담겨 있었다.
양준은 그녀의 복잡한 표정을 보고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여인도 입을 다문 채, 생긋 미소를 지었다.
“양준, 남 낭자를 기억하지?”
동경한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당연하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 사저,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한 삼사 년 만에 보는 건가?”
여인은 복잡한 시선을 거두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 여인은 바로 능소각의 남초접이었다.
양준은 과거 그녀에게서 양성을 띤 영초의 씨앗 두 알을 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전승동천에서 그녀와 동맹을 맺고 동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이가 틀어져 각자 갈 길을 가게 되었다.
나중에 일등 세력에서 능소각 주변에 전승동천이 나타나 많은 제자들이 그곳에서 이득을 챙겼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빼내러 찾아왔었다. 남초접은 바로 그때, 동경한에게 선택되어 동씨 가문으로 갔다. 그녀도 전승동천에서 많은 이득을 얻었던 것이다.
그때 당시, 남초접은 기동 경지 7단계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미 진원 경지 6단계였다.
양준은 남초접에 대한 인상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잇속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으로 욕심도 많고, 속셈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양준도 그때의 사소한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남초접이 여인의 몸으로 홀로 능소각에서 수련하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어려움이 있는 법이지!’
양준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실력이 이렇게 빨리 오르다니 대단하네요.”
양준은 한참 생각하다가 칭찬을 건넸다.
“어찌 사제보다 대단하겠어.”
남초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게 중도 양씨 가문 출신의 사제가 있었다니. 진작 알았다면 그 씨앗 두 개의 돈은 안 받았을 텐데.”
그녀는 어색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 만남에서 양준의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을 안 남초접은 적응이 좀 안 되는 듯했다.
추억몽은 옆에서 몰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 같은 건 전혀 없고, 두 사람의 사이가 너무 덤덤한 것 같았다. 그 속의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총명한 그녀로서는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동경한이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양준, 남 소저는 우리 동씨 가문 젊은 세대에서 으뜸이야. 동씨 가문에서 많은 이들이 그녀를 추종하고 있다고.”
“그래?”
양준은 조금 놀랍다는 듯이 되물었다.
“실력도 빠르게 오르지, 생긴 것도 예쁘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난리인데.”
동경한이 무심결인 척, 말했다.
남초접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홍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샐쭉해서 동경한을 흘겨보았다.
“도련님, 함부로 말씀하시지 마세요.”
말하는 동시에 몰래 양준의 반응을 살피던 그녀는 그의 무심한 표정에 살짝 실망하고 말았다.
“자, 자.”
추억몽이 손뼉을 치면서 둘의 의미없는 대화를 잘랐다.
“옛날 얘기는 이쯤 하시고 사람들이 모인 김에 양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얘기 좀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