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21화 (421/853)

제 421장. 여씨 가문에서 사람이 오다

“무슨 계획?”

양준이 놀란 얼굴로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추억몽은 눈을 깜빡이더니 대답했다.

“넌 이 관저의 주인이고, 어젯밤에 대승을 거뒀잖아. 설마 이후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계획도 없는 거야?”

“무슨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양천을 공격한다거나 하는 거지. 내가 알기로는 양천에게 신유 경지 8단계의 혈시가 있긴 하지만, 한 명밖에 없어. 지금 우리 세력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곡고의나 영구 둘 중 한 명으로 그쪽의 혈시를 붙잡아 두기만 하면, 양천과 영기 모두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거야!”

“넌 우리 형제들이 다 만만해 보여? 내가 여덟째 형님을 공격하는 동안 다른 형님들은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을까?”

“당연히 만만하지 않겠지. 하지만 어젯밤 전쟁으로 양위를 제외하고 나머지 공자들은 전부 어느 정도 손해를 보았어. 앞으로 며칠 동안은 그들도 사람을 모으고 힘을 비축하느라 바쁠 텐데, 널 신경 쓸 겨를이나 있겠어? 그럴 겨를이 있다 해도, 대충 귀찮게 굴기나 하고 말겠지. 그러니까 오늘 밤에 바로 양천을 탈락시켜 버리자는 거야.”

“참 욕심도 많네.”

양준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난 여덟째 형님을 공격하지 않을 거야.”

“왜 공격하지 않는데? 지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이렇게 좋은 기회가 다신 없을지도 몰라.”

추억몽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동경한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 소저의 말이 맞아. 나도 오늘 밤에 공격해야 된다고 생각해.”

어젯밤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그는 몸이 근질거렸다.

“설마 계승 싸움의 규칙을 모르는 건 아니지? 네가 양천을 이기면 그가 장악한 힘을 가질 수 있어.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는데 왜 망설이는 거야?”

추억몽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양준이었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오늘 밤 한 번 더 활약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더욱 크게 떨치려 했을 것이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형제간의 정 같은 소리를 하진 않겠지?”

추억몽이 냉소했다.

“잊지 마. 어젯밤 너의 두 형님은 널 공격했어. 그들은 언제 너를 배려해 줬니? 너희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은 약육강식의 세계야. 다른 가문 무인들의 피로 너희들 성공의 길을 닦는 거라고.”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추억몽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공격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추억몽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한 듯,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

“네가 양천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공격할 거야. 이득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느니 스스로 잡는 게 낫지.”

“사제가 그렇게 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남초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눈빛에는 이해심이 담겨 있었다.

추억몽은 괜히 심통이 나서 코웃음을 쳤다.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잘 생각해 봐. 영리한 추씨 가문 큰아가씨이니 분명 알 수 있을 거야.”

양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추억몽은 순간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흥분했던 마음이 점차 누그러들었다. 방금 전 공격적인 말투로 말한 것은 그녀가 무슨 제안을 하든, 양준이 받아 준 적이 없어 실망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추억몽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인 만큼 자신만의 상황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양준이 오늘 공격하지 않는 의도와 이해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동경한은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그저 묵묵히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편전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한참 뒤, 추억몽은 눈앞이 환해졌다. 그녀는 그의 뜻을 알아챘다는 듯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

“알겠으면 더는 공격을 제안하지 마.”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제 네 앞에서 왈가왈부하지 말아야겠어. 자꾸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기분이야.”

추억몽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 역시 여인은 말을 잘 들어야 해!”

양준은 ‘이제라도 알면 됐어’ 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이 말을 들은 동경한은 하마터면 입 안의 물을 뿜을 뻔했다. 그는 기침을 하면서도 양준을 더욱 감탄하게 되었다. 누가 감히 추억몽에게 이렇게 말하겠는가? 중도 8대 가문의 공자 중 이런 배짱이나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직 양준만 가능했다.

‘간도 크지! 그런데 추억몽도 반박하지 않는군.’

옆에서 듣고 있던 남초접은 어리둥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그녀는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 길이 없었다.

풍운쌍위는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제가 질문 좀 해도 되나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동경한은 호기심이 동했다.

추억몽은 가볍게 웃더니 풍운쌍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선배님께서 동 공자께 말씀해 주시죠. 많이 궁금해하네요.”

풍운쌍위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풍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문을 뗐다.

“저희 둘도 하나밖에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틀린 점이 있다면 두 분께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양준 공자는 한창 주목을 받고 있어, 겉으로 보면 지금은 기세를 몰아 공격하기 좋은 시기지요. 다른 공자들은 어젯밤의 손실이 막대해 남을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까요. 어젯밤에 양위 공자가 나서지 않은 것은 맏이로서 동생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번에 양준 공자가 정말로 양천 공자를 공격한다면 양위 공자의 성격상 몰래 움직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양준 공자와 손잡고 이익을 나누겠지요. 하지만 만약 양준 공자가 정말 그리한다면 연이어 후보자 두 명을 탈락시킨 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명성은 더욱 떨치겠지만, 명성 때문에 양준 공자는 벼랑 끝으로 몰릴 것입니다. 다른 다섯 공자들은 필히 양준 공자를 가장 큰 적으로 볼 것이고, 어쩌면… 연합해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풍위는 어두운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동경한과 남초접은 그제야 양준이 왜 추억몽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풍위의 분석은 딱딱 맞아서 정말 그럴 가능성이… 아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만약 정말 다른 후보자들이 연합하여 몰아붙인다면 양준도 고전할 터였다.

주목을 받는 일은 한 번이면 족했다. 두 번 반복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순간, 동경한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자신이 양씨 가문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양씨 가문에서 태어나 양준처럼 음험한 사람과 상대했다면,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실수했는지도 모른 채 탈락할 게 뻔했다.

풍위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희는 그저 이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양준 공자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게 끝이 아니라는 말이야?”

동경한은 깜짝 놀랐다. 그의 생각에 이것 하나만으로도 양준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이유도 있긴 한데, 지금 말하기는 좀 그래. 사람들이 날 건방지다고 할걸?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풍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하기 어려우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천천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추억몽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속을 점점 더 모르겠다니까.”

그녀마저도 양준이 공격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양준에게는 세 번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향천소가 씩씩하게 걸어 들어오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공수하며 말했다.

“의탁하려는 사람이 찾아왔어.”

“내가 분명 모르는 사람은 받지 않는다고 얘기했을 텐데?”

양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아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향천소가 대답했다.

“어느 가문이지?”

“여씨 가문.”

양준과 추억몽은 서로를 마주 보고 싱긋 웃었다. 여량이 사람을 보낸 것이다.

“왔으면 들어오라고 해.”

양준은 굳이 보지 않고도 여씨 가문에서 선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 뒤, 여송이 신유 경지 7단계의 고수 두 명을 데리고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

여송은 정말 양준에게 물자를 주기 싫었다. 그에게 있어 양준은 여씨 가문의 재산을 강탈하려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그는 여태껏 양준처럼 뻔뻔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는 이 물자를 가지고 양씨 가문의 다른 공자를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젯밤 양준의 활약을 알게 된 후, 여송은 그에게 물자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준이 계승 싸움에서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물건을 가져다주라던 여량의 지시는 둘째로 치더라도, 양준의 활약이 눈부셨던 것이다. 만약 그가 사적으로 이 물건들을 다른 공자에게 건네준다면 그는 돌아가서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더해, 양준의 태도가 여송을 더욱 화나게 했다.

여씨 가문에서 이번에 보내온 사람은 적지 않았는데, 신유 경지 7단계의 고수 두 명은 여송의 호위로 왔고, 그 외에 신유 경지 4단계가 한 명, 신유 경지 3단계가 두 명 그리고 진원 경지의 무인들도 스무 명이나 되었다. 이 정도의 세력이라면 어느 공자에게 의탁하든, 반드시 후보자 자신이 직접 관저로 맞아들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거드름을 피우며 한낱 부하에게 자신을 모시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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