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24화 (424/853)

제 424장. 도발

양준은 서소어를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소리없이 입을 움직였다. 그녀는 양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에 담긴 뜻은 알아챘다.

‘조급해하지 마!’

그녀의 기분은 많이 평온해졌다. 양준이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자,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떨어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진학서가 두 번이나 묻고 나서야 여송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거만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실수하신 것 없습니다. 다만 제가 좀 괴팍해 남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와는 더욱 할 말이 없고요.”

진학서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랬군요, 제가 괜히 나섰네요.”

여송이 시선을 들더니 진학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영월문에서 오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저와 사매의 사문은 영월문입니다.”

“이번 계승 싸움에 몇 명이나 데리고 오셨습니까?”

진학서는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당분간 저와 사매 두 사람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송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여송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뒷짐을 지고 걸어 나와 도도하게 말했다.

“진원 경지 7단계가 두 명이라… 그 실력으로 계승 싸움에 참여하시려고요? 애들 장난인 줄로 아시는 겁니까?”

이처럼 비꼬는 그의 말에 진학서는 할 말을 잃고 얼굴이 벌게졌다.

여송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몰래 추억몽을 훔쳐보았다. 추억몽은 마침 찬사를 보내듯이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에 빌붙으러 온 두 사람을 쫓아내야겠다는 그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번에 저희 여씨 가문에서 몇 명이나 왔는지 아십니까?”

여송은 진학서를 조소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

“신유 경지는 7단계 두 명, 4단계 한 명, 3단계 두 명. 그 외에도 진원 경지 무인 스무 명. 물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가져왔습니다.”

여송은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진학서를 비웃고 있었다.

동경한과 범홍은 옆에서 키득거렸다. 그들은 여송처럼 멍청하지 않은지라 당연히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양준과 추억몽이 달리 말을 하지 않으니 그들도 끼어들기 무엇하여 상황을 살피며 구경할 뿐이었다.

여송은 추억몽의 찬사 섞인 눈빛을 보고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었다. 그는 냉소하며 말했다.

“보상을 받고 싶으면 먼저 투자를 하셔야죠! 영월문에서는 얼마나 내놓을 수 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영월문이 이등 문파라는 것을 깜박했네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 여씨 가문의 절반 정도는 내놓으셔야죠. 이것도 안 된다면 그냥 돌아가세요.”

“도련님!”

여씨 가문의 신유 경지 7단계 고수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나이가 지긋하고 줄곧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어, 지금 양준의 표정이 얼마나 싸늘한지 알고 있었다.

‘남의 관저에서 주인보다도 말이 많은 것도 모자라, 양준과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친구들을 모욕하고 있다니… 이건 양준의 체면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방금 전, 양준이 진학서와 서소어를 소개할 때의 말투는 매우 진지했다. 두 사람의 신분이 높지 않아도 양준에게는 중요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여송이 계속해서 말하게 놔둔다면 일을 그르칠 게 뻔했다.

“도련님, 말씀은 충분히 하신 것 같으니 우선 앉아서 차 한잔하시지요.”

보는 눈이 많아서 여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도 대놓고 말해 주지 못하고, 그저 몰래 여송에게 눈치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송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냉소를 지으며 점점 더 심하게 나왔다.

진학서의 안색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여송!”

양준이 갑자기 차가운 눈빛으로 여송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양준 공자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여송은 수다스럽게 비웃던 것을 멈추고,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십시오.”

“네?”

여송은 순간 당황해서 멍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숫자를 서른까지 세는 동안 당장 이곳에서 나가시지요. 그동안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곳에 남게 해드리겠습니다.”

양준은 차가운 얼굴로 한기를 내뿜었다.

여송은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그도 이런 결말을 맞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준의 이 말은 사람을 쫓아내는 말이었다. 하지만 쫓겨나는 것이 왜 영월문의 두 사람이 아닌 자신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양준 공자, 농담하시는 거죠?”

여송의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쫓겨난다면 그의 체면도 바닥을 칠 것이다.

“농담이 아닙니다. 이제 다섯까지 셌습니다. 아직 스물다섯이 남았네요.”

양준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됩니다!”

여송이 크게 소리치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우리 여씨 가문에서 인력과 물자를 내놓으면서 계승 싸움을 돕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렇게 절 내치신다고요? 저희 세력이 필요 없으신 겁니까?”

양준은 대답하지 않고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찰나의 한기를 느낀 여송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그는 다시 소리쳤다.

“제 사촌 누님도 공자를 도와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누님은 분명 큰 힘이 될 텐데, 절 내치시면 누님도 함께 나갈까 걱정이 되지 않으십니까?”

“그녀도 눈치 없이 행동하면 함께 내칠 것입니다.”

양준은 연신 냉소했다.

“지금 열까지 셌습니다.”

추억몽은 양준에게 눈을 흘겼다.

“사촌 누님…….”

여송은 드디어 당황했다. 그는 방금 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 것을 후회하며 추억몽에게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추억몽이 그의 편을 들어 양준의 기를 꺾어 주기를 바랐다.

추억몽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여송, 너 그냥 가. 저 인간은 한 입으로 두말 안 해. 네가 쟤 심기를 건드려서 나도 도와줄 방법이 없어.”

“하지만…….”

“열다섯!”

양준이 최후의 경고를 날렸다.

“도련님, 그냥 가시죠.”

여씨 가문의 신유 경지 고수는 한심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으며 여송을 위로했다. 여송은 이번 촌극에 숨어 있는 꿍꿍이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지만, 그는 진작 눈치를 채고 있었다. 말을 해도 쓸데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다급히 다른 신유 경지 고수와 함께 여송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여송이 초라하게 쫓겨나는 모습을 본 서소어는 상기된 얼굴로 주먹을 꼭 쥐었다. 전에 받았던 수모와 비웃음을 이 순간, 전부 돌려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감동받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여송이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안 가. 내가 물자도 가져오고, 사람도 데리고 계승 싸움에 참여하러 왔는데 감히 날 쫓아내? 오늘 날 쫓아낸 걸 내일 만천하에 까발릴 거야. 그래도 널 지지하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두고 보자고!”

추억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송이 추태를 보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어찌 이런 음모를 꾸며 내쫓았겠는가? 여씨 가문은 그래도 추씨 가문에서 지지해 발전시킨 세력이라 서로 간에 약간의 정이 있었다. 만약 여송에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였다면 그녀도 어떡해서든지 남겼을 것이다.

여송이 이렇게 협박까지 하는 것을 들은 추억몽은 자신의 결정이 정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쫓겨나면 그래도 망신당하는 거로 끝나지. 남아 있으면 언젠가 양준의 손에 죽을지도 몰라.’

“네가 부추긴 거야?”

양준은 추억몽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여송이 멍청해 보이긴 했지만 추억몽이 없었다면 그렇게 양준 앞에서 제멋대로 날뛰지 못했을 것이다. 여송이 방금 전에 안하무인 격으로 날뛴 것은 분명 자신이 진학서와 서소어를 맞이하러 나갔을 때, 추억몽이 무언가 암시했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응, 대충 한마디 했더니 저러네. 그럼 안 돼? 쟤를 끼워 줄 생각도 없었잖아.”

추억몽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긴 했지. 그래도 사람들과 물자를 잔뜩 가져왔으니 내쫓기엔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고마워해야지.”

추억몽은 생글거리며 거리낌없이 말했다.

그녀는 양준과 예의를 차릴 생각이 없었다. 양준은 기가 너무 세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평생 코를 꿰인 채, 끌려 다닐 게 뻔했다.

양준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진학서를 바라보고 말했다.

“진 사형, 미안하게 됐어.”

진학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방금 전, 양준과 추억몽의 대화에서 그도 뭔가를 눈치챘다. 이건 여송을 겨냥한 함정인 듯했다. 그리고 마침 자신이 걸린 것이었다.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양 사제를 위해서라면 안 좋은 말 좀 듣는 게 뭐 어때서, 살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미간을 찌푸린 그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저 자를 쫓아내면 네 명성에 누가 될 것 같은데.”

양준은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를 끼워 주는 게 더 큰 손해야. 진 사형과 다투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거야.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절대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돼. 미리 잘라내는 게 맞아. 사촌 누님인 추억몽도 싫어하는 거 못 봤어?”

추억몽이 샐쭉해서 말했다.

“날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인 것처럼 말하지 마. 이렇게 쫓아낸 바람에 내가 또 여량에게 해명해야 하잖아. 어휴… 여량이 내 고충을 이해했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을 놔두고 왜 하필 쟤를 보냈대.”

추억몽의 난처한 처지를 눈치챈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밖에서 기운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 속에 비명소리도 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들은 갑자기 밖에서 왜 싸움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얼른 신식을 펼쳐 살펴보더니 곧 차분한 얼굴로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네가 수를 써서 여송을 내보내길 정말 잘한 것 같아.”

“밖에 무슨 일이야?”

추억몽이 깜짝 놀라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의문 어린 표정이었다.

“그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다니, 자업자득이야.”

양준이 냉소하며 말했다.

말하는 사이, 바깥의 싸움소리가 잦아들었다. 여송의 비명소리에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져 흠칫 떨었다.

“어떻게 된 거야?”

추억몽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어서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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