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25화 (425/853)

제 425장. 부디 날 내치지 말아 다오

“젠장, 감히 내 물건을 탐내!”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더니 잠시 뒤, 곽성진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그는 들어와서도 한참을 욕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높여 양준에게 물었다.

“이봐, 양준, 아까 그 자식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왜 보자마자 내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는 거야?”

“뭘 빼앗았는데?”

양준은 깜짝 놀랐다. 신식의 힘으로는 대략적인 상황밖에 살피지 못해, 구체적인 일은 알 수 없었다.

“내 보물 말이야!”

곽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들여와!”

그러자 사람들이 상자 몇 개를 들고 들어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곽성진은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말했다.

“그 녀석이 이걸 빼앗으려고 한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추억몽은 어이가 없어 다급히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늑골 좀 으스러트리고 내보냈지.”

곽성진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추억몽은 한시름을 내려놓고 양준과 눈을 마주쳤다. 둘 다 어이가 없다는 눈빛이었다.

여송은 물자를 빼앗기고 쫓겨나는 것이 배가 아팠던 참에 곽성진이 물건을 들고 들어오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마침 그의 옆에는 신유 경지 7단계의 고수가 두 명이나 있고, 곽성진의 옆에는 신유 경지 5단계의 무인만 두 명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우위를 차지한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곽성진의 옆에 있는 고수들은 일반적인 신유 경지 5단계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다행히 곽성진도 양준의 관저에서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여송은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추억몽이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곽성진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사촌 동생이었어? 그나마 내가 살살 때렸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거든. 그런데 추억몽, 네 동생은 왜 그렇게 못났어?”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너 어젯밤에 왜 갑자기 사라졌어? 뭐 하러 갔던 거야?”

추억몽이 되물었다.

곽성진은 어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집에 가서 아버지께 물건과 사람 좀 받아왔지.”

“너희 아버지가 가문의 고수를 보내 주셨어?”

추억몽은 기쁜 얼굴로 물었다. 곽씨 가문이 개입한다면 양준의 힘이 크게 강해질 것이다.

“주기 싫어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곽성진은 난처한 기분이 들어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상자 옆으로 가서 열어 보이며 양준에게 말했다.

“봐봐. 연단 재료 한 상자, 연기 재료 한 상자. 다 최소한 천급이고, 일부는 현급이야. 단약 한 상자도 있어. 상처를 치료하고 신혼 회복을 도울 수 있지. 이건 비보야. 음, 다 지급이라서 등급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이 사람들을 무장시킬 수 있을 거야. 그중의 몇 가지는 나름 괜찮아.”

말을 마친 그는 위풍당당하게 양준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네 상자의 물자와 나, 둘 중 뭘 고를래?”

곽성진의 말은 기운이 넘쳐 편전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편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한 얼굴로 멍하니 양준과 곽성진을 번갈아 보았다. 언제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심상치 않았던가?!

남초접과 낙소만은 놀란 얼굴로 입을 틀어막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자식, 말을 왜 오해 사게 하는 거야.’

그는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똑바로 얘기해.”

곽성진은 자신의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히죽 웃더니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오해하지 마. 내가 어제 양준과 탈락 여부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내 안목이 부족해서 졌지 뭐야!”

“뭘 걸었는데?”

흥미가 동한 추억몽이 물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의 내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지면 금우응을 넘겨주기로 했고, 쟤가 지면… 흐흐!”

양준이 웃는 얼굴로 곽성진을 바라보았다.

“발가벗고 전성 안을 열 바퀴 달리기로 했거든!”

곳곳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곽성진이 벌거벗은 채로 전성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우스꽝스럽기는 했다.

“내가 진 건 맞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곽성진은 기분이 상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어서 골라. 물건을 받고 싶으면 내기를 무효로 해줘. 네가 싫다고 하면 지금 당장 옷을 벗고 내기에 응할게. 하지만 물건과 사람을 가질 생각은 접어 둬. 나도 이곳을 떠날 거니까.”

그는 말하면서 부채질을 했다.

“난 내기를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어.”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쳤으며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양준이 반드시 고수와 물자를 선택하리라고 점쳤던 것이다. 그가 전성에서 발가벗고 열 바퀴 뛰는 것보다 고수와 물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였다. 양준이 바보가 아닌 이상, 뭘 선택할지는 뻔했다.

양준은 미소를 짓더니 소탈하게 말했다.

“그럼 곽 공자… 옷고름을 푸시지요!”

곽성진의 안색이 점차 굳어지더니 부채를 흔들던 손마저도 굳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양준… 이러지 말자.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추억몽은 옆에서 입을 다물고 가볍게 웃었다.

곽성진은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추억몽, 구경만 하지 말고 말 좀 해줘!”

추억몽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이 남자한테는 꼼짝 못 하잖아. 너도 알면서.”

곽성진은 하는 수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동경한이 저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뚱보 친구, 딱 봐도 양준과 친한 사이인 것 같은데, 말 좀 해주면 안 돼?”

동경한은 낯빛이 흐려졌다. ‘뚱보’라는 호칭에 그도 기분이 언짢아졌다. 하지만 곽성진의 신분 때문에 화를 내지 못하고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도 곽 공자를 변호해드릴 만한 발언권이 없어서…….”

난감해하며 말하던 동경한은 곽성진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초접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험한 눈빛을 본 동경한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헛기침을 했다.

“미녀군.”

곽성진은 전혀 거리낌 없이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낙소만을 발견했다. 그의 눈동자 속의 욕망의 빛은 점점 더 짙어졌고, 벌름거리는 콧구멍에서도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낙소만은 겁먹은 얼굴로 범홍의 옆으로 피했다.

그녀는 이토록 간이 큰 호색한을 본 적이 없었다. 호색가라고 얼굴에 써놓은 듯한 것이 양준보다도 더 뻔뻔스러웠다.

“양준, 이 사람들 전부 네 동맹이냐?”

곽성진이 갑자기 물었다.

“응, 모두 오늘 도착했어.”

곽성진의 낯빛이 진지해졌다. 그는 몇 걸음 가로질러 양준의 앞에 다가와서는 공수하더니 입을 열었다.

“양준, 전에 내기를 건 것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네가 너그러운 아량으로 내 무례를 용서해다오. 한량에 불과한 내가 어찌 너와 견줄 수 있겠어? 어젯밤의 전쟁으로 내 잘못을 확실하게 느꼈어. 그래서 밤새 중도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싹싹 빌어 사람과 물자를 가져왔지. 오늘부터 나 곽성진은 양준의 사람이니 부디 날 내치지 말아 다오.”

말을 마친 그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뚱해서 말했다.

“아무튼 난 여기 딱 들러붙어 있을 테니까 날 절대 쫓아내지 못할 거야.”

추억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쟤도 쫓아내는 게 어때? 남겨 두면 여인들이 불안해할 거야.”

양준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양준, 추억몽, 내가 잘못했어. 왜들 그래.”

곽성진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됐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더 이상 이 골칫덩어리와 엮이고 싶지 않아 손을 휘휘 저었다.

“네 사람들더러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라고 해.”

양준은 처음부터 곽성진을 괴롭힐 생각이 없었다. 또 곽성진이 사람과 물건을 가져올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곽성진 같은 망나니를 잘 다뤄 놓지 않으면 앞으로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에 일부러 혼내 준 것이었다. 이번 일을 겪고, 곽성진도 더 이상 그의 앞에서 제멋대로 굴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곽성진은 크게 기뻐하며 다급히 바닥에서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멍하니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물건을 들여놔. 그리고 우리 가문 사람들에게 행실 바르게 하라고 전해. 곽씨 가문이라고 으스대지 말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친구야. 알아들었어?”

“네!”

곽씨 가문의 사람들은 대답하고 나서 얼른 상자를 들고 물러갔다.

곽성진은 곧바로 낙소만의 옆으로 다가가 시시덕거렸다.

“미녀분, 이름이 뭔가요?”

낙소만은 겁을 먹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추억몽의 옆으로 다가가 옷자락을 잡았다.

“언니…….”

가련하게 보호 욕구를 자극하는 그녀의 모습에 곽성진은 더더욱 가슴이 떨렸다.

추억몽은 그녀의 손을 다독이고서 곽성진에게 냉소를 날렸다.

“너 소만이한테 추근대면 뼈도 못 추리게 할 거야!”

곽성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추억몽이 널 보살피고 있으니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할게!”

말을 마친 그는 또 남초접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초접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저는 양준의 사저입니다!”

곽성진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추억몽이 가볍게 호통쳤다.

“네가 아무리 호색가라고 해도 이 정도로 굶주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게다가 넌 곽씨 가문 공자의 신분인데 미인이 부족할 리가 있겠어? 이런 식으로 어색함을 해소하려는 네 방식 너무 구리거든?”

곽성진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알아챘으면 속으로만 알고 있지, 그걸 얘기하면 어떡해.”

말을 마친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방자하고 음탕한 표정을 거두었다.

곽성진이 조용해진 다음에야 추억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준, 내 생각엔 앞으로 계획을 잘 짜야 할 것 같아. 네 관저는 앞으로 점점 더 붐빌 것 같으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조용했는데 오늘은 무려 세 곳이나 찾아 왔잖아. 사람이 많은 건 좋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니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어.”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있는데 내가 걱정할 필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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