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6장. 너 인맥이 대단한데
추억몽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넌 진짜 내가 네 하인이라도 되는 줄 알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많이 하는 법이지요.”
동경한도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만약 추 소저께서 조율해 주신다면 저희 동씨 가문은 두말없이 따르겠습니다.”
“자미곡도 마찬가지입니다.”
범홍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두 일등 세력으로, 실력이 비슷했다. 하지만 추억몽은 달랐다. 중도의 추씨 가문 출신인 그녀는 개인의 능력도 출중해 전체 상황을 관리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저희 영월문도 추 소저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이의 없을 것입니다.”
진학서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이요?”
추억몽은 눈앞이 환해져서 캐물었다.
양준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학서는 웃으며 대답했다.
“계승 싸움에 참가하는 양준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양준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어, 저와 사매가 먼저 상황을 살피러 온 겁니다. 그 양준이 맞다면 저희 영월문에서는 양준에게 힘을 보탤 것이고, 아니라면 엮이지 않기로 했지요.”
“그렇군요. 그럼 문파의 분들은 언제쯤 도착하시나요?”
추억몽은 영월문이 이등 문파라 해서 깔보지 않았다. 진학서는 이 점에 안도를 느꼈다.
“사흘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미 떠났거든요. 저희가 소식을 전하기를 기다렸다가, 계속해서 올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진학서는 웃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영월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오는 길이야.”
“누구?”
양준은 깜짝 놀랐다.
“다 네가 아는 사람들이야.”
진학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영월문 말고도 수월당, 문심궁, 비우각, 만화궁!”
“만화궁 사람들도 계승 싸움에 참여한다고요?”
추억몽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고, 곽성진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재미있어. 눈요기를 제대로 하겠군.”
만화궁은 특별한 문파로, 모두 여인들로 구성된 일등 문파였다. 그곳은 모두 여인인 탓에 경쟁 의식이 강하지 않아 역대 계승 싸움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화궁 사람들은 계승 싸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 양준을 선택한 것이다.
“네, 이 문파들은 원래 창운사지와의 전투에서 손실이 막대하여 계승 싸움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양준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을 바꾼 겁니다.”
진학서가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고마운 일이지!”
양준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 창운사지와의 전투에 일등 세력들은 거의 다 참여했고, 각 세력마다 모두 어느 정도 손실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마저 거의 잊고 있던 이들이 오직 양준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문파의 웃어른들을 설득해 계승 싸움에 참여하러 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만화궁은 몇백 년의 관행을 깬 셈이었다. 설득하는 가운데 그녀들이 얼마나 많은 반대에 부딪쳤을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젯밤의 일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이곳의 상황과 양준의 현재 형세를 전혀 모르면서도 주저 없이 달려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양준이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유명산에서 사귄 이들은 모두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려고 찾아왔다. 애당초 양준이 천랑국 무인들의 손에서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각자 문파의 젊은 세대 통솔자들이었다.
“수월당, 문심궁, 비우각, 만화궁……!”
추억몽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환한 얼굴로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모두 일등 세력이야. 앞의 셋은 그렇다 쳐도, 만화궁이 네 편에 서서 계승 싸움에 참여하다니. 너 인맥이 넓긴 넓구나. 대체 밖에서 친구를 몇 명이나 사귄 거야?”
동경한과 범홍도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로서는 양준의 발이 어떻게 저리 넓은지 알 수가 없었다.
진학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직 두 문파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어. 그들에게도 소식이 간다면 분명 한달음에 달려왔을 거야.”
“네? 어느 문파인지?”
추억몽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바다 건너에 있는 수라문과 천랑국의 삼라전.”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바다 건너의 수라문! 이들 중에서 오직 추억몽만이 수라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일등 세력으로, 대한국의 일등 세력 못지않으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앞서고 있었다. 바다 건너의 문파들은 대부분 영기가 충만한 섬에 자리 잡고 있었고, 섬에는 대한국에 없는 재료들이 많았다. 이런 우월한 조건 때문에 바다 건너 문파의 무인들은 수련하기가 한결 쉬웠다.
삼라전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다.
천랑국의 초대형 세력으로, 대한국의 8대 세가와 같은 지위였다. 조금이라도 견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라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일등 세력 내지 대형 세가의 사람들로 삼라전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양준, 대단하다. 바다 건너 사람들과 교류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람과도 인연이 있다니. 이 범홍이 존경해 마지않는다.”
“너 이 자식……!”
추억몽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인맥과 조력자에 대해 물었을 때, 하나도 없다고 해서 난 또 믿을 뻔했잖아……. 이렇게 숨기는 법이 어디 있어!”
양준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진학서가 언급한 이들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이들이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이 의외였고, 이에 마음이 따뜻할 뿐이었다.
“양 사제, 이제 너인 줄 알았으니까, 가서 문파에 서둘러 오라고 연통을 넣을게. 그 외에 비우각, 문심궁, 만화궁 쪽에도 전갈을 보내야 해. 아마 그들은 아직도 네가 그때 그 양준이 맞는지 추측하고 있을 거야. 네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 기뻐할 거다.”
진학서가 흥분해서 말했다.
이에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부탁해.”
그러고는 잠깐 뜸을 들이고서 가볍게 불렀다.
“영구!”
대전 안에 흐릿한 그림자가 인기척 없이 나타났다. 아무도 그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언제 나타났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줄곧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흐릿한 그림자에서 겹겹의 잔물결이 퍼져 나가더니 점차 실체로 바뀌며 영구가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특히 각 세력 통솔자 뒤에 서 있던 신유 경지 고수들은 자신들마저 영구의 어떤 기운도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신출귀몰하는 혈시라… 역시 예사롭지 않군.’
“네.”
“진 사형을 성 밖으로 안전하게 모시도록!”
“예.”
진학서와 서소어가 방금 전 전성에 이르렀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양준 관저에서 한동안 있다가 나가면 분명 다른 이들에게는 적으로 비칠 것이다. 만약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가로챌 것이 분명했다.
양씨 가문 공자들에게는 모두 본인만의 정보 조직이 있으므로 당연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의 새로운 지지 세력을 탄압하려 들 것이다. 진학서도 이에 대해 알고 있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영구에게 공수하며 존경을 표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매, 이만 가자.”
“잠깐만요. 서 낭자는 남으시고 진 공자만 다녀오세요.”
추억몽이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방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아, 별 뜻은 없어요. 저는 그냥 유명산 수련이 궁금해서 여쭤 보려는 거예요. 양준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당신들이 이처럼 감격하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녀의 말에 진학서가 빙그레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매는 여기 남아서 추 소저랑 같이 있어. 금방 다녀올게.”
진학서는 말을 마치고 양준에게 공수하고서 뒤돌아 떠나갔다.
영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신형이 희미해지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추억몽, 새로 온 사람들 배치 좀 해 줘.”
양준은 추억몽에게 한마디 당부한 뒤, 다시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편한 대로 해. 아마 단기간 내에는 전투가 없을 거야. 그동안에 서로들 알아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어디 가?”
추억몽이 물었다.
“수련해야지.”
양준은 씩 웃고는 성큼성큼 가 버렸다.
“완전 수련광이야.”
추억몽이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군.”
곽성진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곧이어 경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내가 쟤 절반만큼만 노력해도, 실력이 아주 좋을 거야. 그지?”
추억몽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방 안, 양준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검은 책 공간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미친 듯이 모았더니, 지금 검은 책 공간은 각양각색의 재료와 물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완제품 단약과 비보도 있었지만, 곽성진이 오늘 가져온 지급 말고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완제품 비보들은 지금 휘하 여러 세력에 나눠 주어 무장시킬 수 있었다.
통제력이 좋은 양준이라도, 이렇게 많이 쌓인 각종 재료들을 보자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물자에는 연단용 영초와 묘약, 희귀 재료 그리고 각종 영단이 있었다. 훌륭한 연단사와 연기사(煉器師)만 있다면, 이 물자들로 영단과 비보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양준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중등 세가에 못지않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죽절방에서는 여전히 시장에서 유통되는 재료들을 끊임없이 사들이고 있었다. 또한 여러 세력들이 몰려오면서 가져오는 물자는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양준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자들도 마찬가지로 물자를 모으고 있었다. 양준이 그들보다 한 발 앞섰을 뿐이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첫 번째 현상은 바로 시중의 연단, 연기 재료의 가격이 모두 오른 것이었다. 재료 가격이 오름에 따라 연단사와 연기사의 지위도 점점 더 높아졌다. 지금 전성과 중도에는 적지 않은 연단사와 연기사들이 모여들어, 양씨 가문 공자들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는 계승 싸움 첫날이라 모두 첫 승에만 매달리다 보니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벌써 여러 관저에서 높은 등급의 연단사와 연기사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에 대한 대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등급이 높을수록 빠르게 중용되었다.
양천과 양준 관저에서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