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28화 (428/853)

제 428장. 소 대사의 양준 감싸기

“정말 안 좋아해요?”

동경연은 영특하게 눈알을 굴렸다.

하응상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양준 오라버니한테 시집가야지.”

동경연은 웃으며 깜짝 놀랄 소리를 했다.

“아……!”

하응상은 대경실색해 멍하니 동경연을 바라보았다.

“그만해, 경연아. 언니 그만 놀려. 더 놀리면 울겠다.”

향씨 이모가 보다 못해 동경연을 끌어당기며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하응상을 위로했다.

“얘 말 신경 쓰지 마. 너 놀리려고 그러는 거야.”

하응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둘은 원래 친척이잖아. 결혼까지 하면 더 가까워지겠네.”

이번에는 동경연이 놀라서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뇨! 양준 오라버니 따위는 제 눈에 차지도 않아요. 저는요, 그냥 평범하고 평생 저 하나만 좋아하는 남자한테 시집갈 거예요. 그래야 행복할 거 같아요.”

향씨 이모도 하응상의 대범함에 은근히 놀란 눈치였다.

하응상은 그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까만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부드럽게 화제를 돌렸다.

“향씨 이모, 이번에 약왕곡에서 사람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래도 괜찮을까요……?”

그녀는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네 명의 여인 뒤에는 몽무애가 따라오고 있었다. 몽무애는 근심 어린 얼굴로 거듭 탄식했다. 양준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면, 그는 왠지 하응상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하응상이 양준을 좋아하니,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남녀 간의 사랑은 그가 상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몽무애의 뒤로는 백의를 입은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실력이 가장 높은 이는 선두에 선 진택으로, 그는 신유 경지 2단계였다. 그리고 실력이 가장 낮은 이는 이합 경지 정상 수준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간다면 그야말로 일격에 격파당할 터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약왕곡 출신의 연단사였다. 무공 실력은 보잘것없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어디를 가든지 누구도 그들을 먼저 건드리지는 못했다.

연단사도 등급이 있었다. 우선 범금, 지급, 천급, 현급으로 나뉘고, 급마다 다시 상중하 삼품으로 나누었다. 연단사의 가슴에는 그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었는데, 꽃잎의 개수는 등급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금⋅은⋅백의 세 가지 색은 상중하 삼품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연단사의 옷에 수놓은 표식을 보면 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약왕곡 출신의 연단사들은 저마다 가슴에 수놓은 표식이 못해도 쌍엽화(雙葉花)였고, 절반은 삼엽화(三葉花)였다. 그중에서 진택은 가장 높은 사엽화(四葉花)였다.

사엽화는 곧 현급을 뜻했다.

전체 대한국에서 사엽화를 수놓은 연단사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그중 사 분의 일은 모두 약왕곡에 있었다.

삼엽화를 수놓은 이들은 천급 연단사로, 손쉽게 천급 단약을 제련할 수 있었다. 쌍엽화를 수놓은 이들은 지급 연단사였다.

“사숙, 하실 말씀이 있나요?”

진택은 하응상이 뒤돌아보자 서둘러 다가오더니 그녀의 옆에 서서 공손하게 물었다. 하응상이 무슨 일을 시키려는 줄로 안 모양이었다.

하응상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진 선배, 그리 부르지 마세요. 제가 나이도 적은데 그런 호칭은 부담스럽습니다.”

진택은 정색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 사숙께서는 소 사숙과 같은 항렬에 계시는 분이니, 나이와 상관없이 제 사숙입니다.”

하응상은 쓴웃음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양준이 계승 싸움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래 몽무애와 둘이서 중도에 가 도와주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부생의 명으로 약왕곡 제자 서른 명과 함께 가게 되었다.

하응상이 운은봉에 오래 머물러 있었지만, 그녀의 연단 실력을 아는 이는 운은봉 사람들뿐이었다. 연단사들은 모두 거만한 이들로, 진택 일행은 원래 하응상을 얕잡아보았었다. 하지만 소부생의 한마디에 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부생은 하응상의 연단술에 대한 조예가 그에 못지않으며 심지어 그를 뛰어넘어 언젠가 반드시 그가 닿지 못했던 등급에 이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진택은 당연히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누가 소 대사님과 비견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는 얼마 전에 현급 연단사로 진급했기에, 자신만만해서 하응상과 한 번 겨루기로 했다. 결과는 그의 참패였다. 그제야 그는 진심으로 하응상을 존경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연단사들은 대부분 고지식해 속고 속이는 술수를 몰랐다. 그들에게 존경받으려면 연단술로 굴복시키면 되었다.

약왕곡의 제자들은 평소에 소부생을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받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소부생과 견줄 만한 정상급 연단사가 나타난 데다가, 그보다 훨씬 더 젊었으니 당연히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같이 온 서른 명도 처음에는 하응상을 싫어했으나, 지금은 먼저 하응상을 따라다니며 그녀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하응상은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소부생은 무진 애를 써서 연단사 서른 명을 소집해 그녀를 따르게 했고, 더욱이 그녀와 자신이 같은 항렬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이는 겉으로는 연단사들에게 그녀의 가르침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실은 다른 방식으로 양준을 돕는 것이었다.

“응상이는 나와 얘기하던 중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향씨 이모가 손을 저었다.

진택은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즉시 물러가 연단사들을 이끌고 뒤따랐다.

“약왕곡은 단 한 번도 계승 싸움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경솔하게 참여했다가 남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을까요?”

하응상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향씨 이모는 빙그레 웃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아무도 약왕곡이 하는 일에 손가락질할 자격 없어. 그런데 대사님도 정말 양준을 신경 쓰시는 듯해. 그렇지 않으면 어찌 장로령(長老令)까지 써 가며, 한창 복구 중인 약왕곡에서 서른 명이나 보냈겠어? 심지어 나와 난씨 이모까지 보냈잖아. 아마 양준에게 사고라도 날까 봐 두려우신 모양이야.”

하응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부생이 양준에게 무관심할 수가 있겠는가? 양준은 일전에 두 번이나 그녀와 여사를 통해 가치가 엄청난 연단 영진 두 가지를 소부생에게 넘겨주었다. 소부생은 그동안 영진 연구에 빠져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그에게 있어서 두 영진은 어떤 보물보다도 더 중요했다. 그러니 양준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왕곡의 몇천 년간의 중립, 약왕곡의 외부 분쟁 불참여 선언 같은 것은 두 가지 영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소부생은 이 일로 약왕곡의 곡주와 도리를 따지다가 하마터면 다툴 뻔했다.

소부생이 고집을 부리며 양준을 감싸는 모습을 떠올리자, 하응상은 미소를 머금었다.

한참 걷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일행은 강가에 자리 잡고 쉬기로 했다.

저 멀리 전성 쪽을 바라보며, 하응상은 마음이 들떠 있었다.

‘내일이면 사제를 만나네. 만나면 첫마디로 무슨 말을 할까?’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양준 관저 어느 방 안.

향로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진양결은 마치 큰 산에 짓눌린 듯한 압박을 받으며 천천히 돌았다. 양준은 이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연단진결에서 전해지는 현묘함을 깊이 느끼고, 그 속에 내포된 복잡한 천지간의 이치를 각성했다. 심적 경지도 저도 모르는 사이 향상되었다.

연단진결은 깊이 파고들수록 그 소중함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었다.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흥분하고, 때로는 망연해하며 그 표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열정을 다해 연단진결을 전력으로 깨우쳐 갔다. 그리고 연단진결 각성에 푹 빠진 나머지, 외부의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단대사들의 각종 경험과 깨달음이 양준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머릿속에서는 마치 새로운 그림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연단진결을 파헤치면서 무도의 참뜻에 대해서도 한층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양준은 문득 스스로 연단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제련한 첫 단약이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순간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소부생이 말해 주었던 한마디가 떠오르자, 그는 마음속의 욕망을 애써 가라앉혔다.

‘신유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연단하지 않는다.’

지금은 하루빨리 신유 경지를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했다. 신유 경지에 오른 다음, 스스로 연단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무인의 실력이 향상되려면 진원의 축적과 육신의 수련만으로는 안 되었다. 스스로의 각성과 인지야말로 경지를 돌파하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때문에 무인들은 난관에 부딪히면 폐관 수련이 아니라, 발 닿는 대로 나다니기도 했다. 혹시라도 어떤 기연을 만나 기적적으로 난관을 돌파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연단진결의 비밀을 알아내면서 신식을 수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수련하다가 점차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 보니 진양결은 여전히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 상태였다. 몸속의 진원은 이미 현재의 압력에 적응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양결은 점점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원 경지 8단계도 크게 향상되었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일어서서 향로를 거두어 검은 책 공간에 넣었다. 순수한 진원이 손끝에 모여 빙그르르 돌면서 강한 흡입력이 생기더니 방 안의 향기를 모두 흡수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특이한 향은 위력이 너무 강했다. 양준처럼 금신을 가진 이를 제외하면, 신유 경지 아래 무인들조차 그 위력을 막아 내기 힘들었다. 만약 관저의 하녀가 들어왔다가 향을 들이마신다면 자칫 즉사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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