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30화 (430/853)

제 430장. 가로막혔어

추억몽은 이미 승리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진중하게 말했다.

“지금 네 조력자는 어느 공자보다도 많아. 내가 알아본 데 의하면 양소는 크고 작은 조력자들을 모두 합하면 스무 곳이 된다고 해. 하지만 그중에는 이등, 삼등 세력이 많아서 수적으로만 우세일 뿐, 질적으로는 너와 비길 수가 없어.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세는 점점 약해질 거야. 심지어 그들의 병력이 너를 초과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해.”

“알겠어. 그리고 아직 다 온 것도 아니니까.”

양준이 자신 있게 씩 웃었다.

추억몽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나중에 나한테 제대로 얘기해 줘. 안 그러면 정말 너한테 숨겨 둔 조력자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사람들은 추억몽의 나긋나긋한 모습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곧 무슨 큰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만화궁의 야함이 웃으며 말했다.

“추 소저 정도면 양준을 그냥 후려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양준에게 저는 눈에 차지 않나 보네요.”

추억몽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대답하며 몰래 양준의 반응을 살폈다.

양준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네 방으로 가서 자세한 얘기를 나눠 볼까?”

추억몽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흥, 호색한 기질이 어디 갔겠어.”

한소칠이 한쪽에서 입을 삐죽거렸다.

대사저여서인지, 한소칠은 기질이 조용하고 차가운 반면, 야함은 천진하고 사랑스러웠고, 유청여는 요염하며, 화약은은 얌전했다.

물끄러미 한소칠을 바라보던 양준은 그녀에게서 소안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예리하던 그의 눈빛이 무의식중에 부드러워졌다. 두 여인은 모두 문파의 대사저로서 비슷한 점도 더러 있었다. 다만 소안은 한소칠보다 더 차가웠다. 그러나 그녀의 차가움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양준 앞에서는 그 차가움이 초봄의 눈 녹듯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소칠은 목덜미가 빨개지며 양준의 불타는 눈빛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는 양준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뭘 봐! 내가 틀린 말 했어?”

추억몽은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면서 몰래 이를 갈았다.

‘남자는 역시 다 거기서 거기야. 미녀만 보면 음심을 품잖아.’

양준의 눈동자에 담긴 연정과 얼굴에 비친 다정함은 장님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양 형, 너무 대놓고 보네. 한 사저가 워낙 아름다워서 우리도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너무 티를 내는 거 아냐?”

좌방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소칠은 양준의 눈빛에 난처하던 터라,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지더니 좌방을 노려보았다.

“너도 똑같이 나쁜 놈이야.”

좌방은 겸연쩍게 웃고 말았다.

양준은 대답도, 해명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눈빛을 거두어들였다. 곧이어 그는 고개를 돌려 대전 밖을 내다보았다.

탁, 탁, 탁!

그리고 그 순간, 급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동경한이 초조한 표정으로 들어와서 다른 이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다급하게 말했다.

“양준, 큰일 났어! 어서 사람들 데리고 밖에 좀 가봐.”

“무슨 일인데?”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른 이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계승 싸움에서는 수시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은 양준을 돕기로 결정한 이상, 당연히 시시각각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경연이네 일행이 전성에 도착했는데, 성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혔어.”

“경연이네가 도착했다고?”

양준은 깜짝 놀라더니 얼굴에 기쁨이 넘실거렸다. 그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급히 밖으로 나가며 동시에 가볍게 소리쳤다.

“영구, 따라와!”

혈시의 보호 없이 대낮에 길가에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안 돼. 지금 적어도 동맹의 절반은 출동시켜야 해. 그쪽 상황이 어떤지 모르잖아.”

동경한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소식을 듣고 놀란 모양이었다.

양준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더니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곽씨 가문, 향씨 가문, 동씨 가문, 단목 가문의 분들은 절 따라오세요. 추억몽, 너는 남아 있어.”

“알겠어.”

추억몽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한소칠이 물었다.

“너희는 쉬고 있어. 별일 아니야.”

양준은 말을 마치고 동경한과 함께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달려 나가는 도중에 동경한이 휘파람을 크게 불자, 다음 순간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입구에 다다랐을 때, 곽성진, 향천소가 이미 사람들을 거느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계승 싸움 첫날 밤에 보았던 단목 가문의 신유 경지 다섯 명이 묵묵히 한쪽에 서 있었다. 그들은 양준을 보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

“양준 공자를 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양준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양준, 무슨 일이야?”

곽성진이 의아해서 물었다. 이는 양준이 처음으로 사람들을 소집해 출격하는 것이었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면서 말하자. 나도 잘 몰라.”

양준이 무심코 대답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위풍당당하게 밖으로 달려갔다.

“경연이네가 왜 가로막혔지?”

그제야 길을 재촉하던 양준이 상황을 물었다. 동경연은 소부생의 제자라고는 하나, 연단술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급 단약을 제련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소부생이 제자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볼 때, 아마 그녀는 아직 연단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연단사는 막을 가치가 없었다.

동경한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경연이 혼자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거야. 걔가 몇이나 데리고 왔는지 알아? 서른 명이야!”

그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약왕곡 출신의 연단사 서른 명. 그중에 절반은 천급 연단사고, 한 명은 현급 연단사야.”

“뭐라고?”

양준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평소 경망스럽던 곽성진마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약왕곡 사람들이 어떻게 계승 싸움에 참여하러 온 거지?”

곽성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동경한이 고개를 저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나도 몰라. 양준한테 물어봐. 아마 양준을 도와주러 온 것 같아.”

그는 말하는 한편,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짚이는 데가 있었다.

곽성진은 충격을 받았다.

“양준, 너 어떻게 그 무뚝뚝한 자들을 꼬신 거야? 그자들은 눈이 정수리에 붙어 있어서 나 같은 건 안중에도 두지 않던데. 너 정말 대단하다.”

양준은 눈썹을 찌푸린 채 곽성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속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 동경연이 왔으니 하응상도 틀림없이 왔을 것이다.

‘형님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그들을 가로막다가 사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고, 온몸의 진원이 미친 듯이 꿈틀댔다.

그의 옆에서 동행하던 동경한과 곽성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양준의 분위기가 순간 포악하게 바뀌었고, 그중에는 은은하게 피비린내도 섞여 있었다. 둘은 그 살벌한 기운에 등골이 서늘해져 저도 모르게 살짝 거리를 두었다.

한참 가다가 양준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돌려 향천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따라오지 마.”

향천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준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양준은 손짓으로 향천소를 부르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향천소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양준은 다시 단목 가문의 다섯 고수에게 공수하고 말했다.

“모두 향 공자를 따르세요. 추억몽이 하셔야 할 일을 알려드릴 겁니다.”

단목 가문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향천소는 그제야 본인 가문의 사람들과 단목 가문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뭐 한 거야?”

곽성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에는 상황을 몰랐는데, 이제 알게 되었으니 밑작업을 좀 해 놔야 해. 안 그럼 사람들을 데려가지 못할 수도 있어.”

“누가 감히 약왕곡 사람들을 건드리겠어?”

곽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상 상황인 만큼 대처를 잘 해야 돼.”

양준은 심호흡을 하고서 침착하게 말했다.

“만약 나라면 설령 약왕곡을 건드리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큰 세력이 적에게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그냥 핑계를 대서 잡아가겠지.”

그의 말에 동경한과 곽성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약왕곡을 심하게 건드리는 것이 아니기에 훗날 다시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서 사죄하면 되었다.

*전성, 가운데 지역.

약왕곡의 제자들은 모두 멈춰 서 있었다. 동경연과 하응상은 나란히 서 있었고,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도 한쪽에 서 있었다.

사방팔방에서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씨 가문 공자들이 많은 고수들을 거느리고 끊임없이 몰려왔다. 약왕곡 사람들은 포위된 상태였지만, 표정이 거만하고 하나같이 눈동자에는 경멸과 고고함이 서려 있었다.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도 낯빛이 평온했다.

오직 동경연만이 이를 갈며 씩씩거렸다. 하응상은 애간장을 태우며 근심 어린 눈빛으로 수시로 서북쪽을 힐끗거렸다. 양준의 관저가 있는 쪽이었다.

약왕곡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무리들은 모두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하나같이 얼굴에 아부성 짙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서 멀리서 공수했다.

양소, 양항, 양신, 양영이 네 방향에 나뉘어 서 있었다. 언짢은 표정의 양항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서로를 경계했다.

양항은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약왕곡 사람들은 마침 그의 관저에서 천 장 떨어진 곳을 지나쳐 전성에 진입했다. 전성에 흰옷을 입은 연단사 서른 명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서둘러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약왕곡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막기는 했지만, 소식이 재빨리 퍼져 양소, 양신, 양영도 사람을 거느리고 달려왔다. 지금 다른 공자들 모두 연단사와 연기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연단사들이 전성에 나타났으니 당연히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양항이 피를 토할 만큼 억울한 것은 연단사들이 모두 약왕곡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일반 세력 출신의 연단사는 아예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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