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1장. 그럼 누구를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이들의 선두에 선 자는 약왕곡의 소곡주 진택이었다.
진택은 마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계시기에 여전히 소곡주라 불려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연단계에서 명성이 높고 연단 자질이 뛰어나 시간이 지나면 소부생과 같은 수준에 이를 수도 있었다.
얼마 전 그는 약왕곡 장로들의 시험을 통과해 현급 하품 연단사로 진급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는데, 과연 사실이었다. 그의 의복 가슴에 수놓은 사엽화가 확실한 증거였다.
다른 연단사들을 둘러봐도 절반 이상이 천급 연단사였고, 나머지는 모두 지급 상품 연단사였다. 양씨 가문 공자들은 연단사들의 가슴에 수놓아져 있는 표식들을 확인하면서 눈앞이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시샘도 났다.
‘이들을 우리 세력으로 끌어온다면 얼마나 많은 단약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단약으로 또 얼마나 많은 무인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네 공자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이내 석 달이면 휘하 무인들의 실력을 모두 한 등급씩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달리 말하면, 이들이 있으면 앞으로 계승 싸움에서 아주 큰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공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눈이 붉어지고 숨결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옛날부터 약왕곡 출신의 연단사들은 하나같이 안하무인에 거만하기 그지없어 다루기가 매우 힘들었다.
“진 사형! 보세요. 그러게 제가 변장을 좀 하고 오자고 했죠. 제 말을 기어이 듣지 않으시더니. 지금 아주 우리를 원숭이 구경하듯 하잖아요. 어쩔 거예요?”
동경연이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괜찮다. 감히 약왕곡 제자들을 공격하지는 못할 거야. 내가 다 쫓으마.”
진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러고는 냉담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공자들은 지금 우리를 이렇게 둘러싸고서 약왕곡과 척을 지겠다는 건가?”
진택이 다짜고짜 이렇게 큰 덤터기를 씌우자, 네 공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 일제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진택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얼마 전에는 창운사지에서 우리 약왕곡에 대거 쳐들어와 불사르고 제자들을 죽였지. 이제 당신네 양씨 가문도 우리를 안중에 두지 않는군. 좋아. 양씨 가문은 역시 중도의 제일가는 세가답군. 담이 어지간히 크네.”
네 공자들은 모두 목을 움츠리며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양 가주조차 내 앞에서는 언사를 조심하거늘.”
진택은 말투가 강경하고 태도가 악랄했으며 더하여 끈질기기까지 했다.
공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했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못하고 억지로 웃으면서 사죄했다.
공자들이 약왕곡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는 것은 그들을 본인의 세력에 끌어들여 단약을 만들게 하려는 것뿐이었다. 어찌 감히 약왕곡과 척을 지려 하겠는가. 때문에 모두 공손하기 그지없었고, 진택이 아무리 비아냥대도 말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사방을 막고 있었다. 약왕곡 사람들을 놓아주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양소는 진택이 분통을 다 터뜨린 다음에야, 빙그레 웃으며 정중하게 말했다.
“진 선배, 귀하신 손님인데 제 관저에 오셔서 차 한잔 하시지 않겠습니까?”
양항, 양신, 양영도 얼른 진지한 말투와 겸손한 자세로 약왕곡 사람들을 본인의 관저에 초대했다.
진택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이유 없는 대접은 받지 않네. 비키게. 우린 가야 할 데가 있네.”
네 공자는 마치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약왕곡 사람들은 일반 신유 경지 고수보다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들과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로만 설득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양소가 신경 쓰이는 것은 이들이 왜 전성에 나타났는가였다. 약왕곡에서는 여태껏 계승 싸움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서른여 명이 이곳에 나타났다. 이 가운데 숨어 있는 정보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나서서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가 보자고 할 텐데… 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한 양소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제가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는데 혹시 괜찮으십니까?”
진택은 화가 나서 불쾌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렇게 길을 막고 못 지나가게 하는데, 괜찮아 보이나?”
양소는 그의 언짢음을 알기에 더는 자극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밖에서 수련하는 동안, 한 번은 깊은 산에 잘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쉬고 있는데 문득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닙니까. 호기심이 일어 살펴보니 신비한 영물이 보였습니다. 아기의 얼굴이 달린 꽃 한 송이가 무지갯빛을 내뿜고 있었지요…….”
진택은 원래 안색이 흐려져 있었지만, 양소의 말을 듣자 들뜬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진택은 무지갯빛을 내뿜는 꽃의 정체가 궁금해서 급히 캐물었다.
양소가 영약으로 진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을 본 다른 공자들은 뒤늦게 후회했다. 이내 그들도 지난 몇 년간 어떤 천재지보를 얻었는지 열심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물이 지능이 있어, 제가 손을 뻗어 꺾으려 하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 멍청한 짓을!”
진택은 욕을 내뱉었다.
양소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오히려 얼굴에 미소를 띠고서 계속 말했다.
“예, 제가 아둔했습니다. 그때 당시는 생각이 깊지 못해서 놓쳤습니다.”
“그럼 어찌 되었나? 그 영약은 그대로 놓쳐 버린 건가?”
“다행히 제가 속도가 빨라 끝까지 쫓아서 손에 넣었지요. 그리고 문파에 돌아온 뒤, 여러모로 알아보고 나서야 그것이 현급 상품의 칠채귀영화(七彩鬼嬰花)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연단사의 말에 따라 모래와 자갈에서 키우는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금씩 시들고 있어 걱정입니다.”
“이런 돌팔이 같으니! 누가 칠채귀영화를 자갈에 키우라고 하던가?”
진택은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
“선배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시지요.”
양소는 간절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진택은 노여움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영약을 함부로 다룬 데 대한 못마땅함을 드러내며 내친 김에 설명했다.
“칠채귀영화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네. 그 소리를 무인이 오랫동안 들으면 신식을 수련할 수 있지. 그리고 신식을 보양하는 현급 단약을 만들 수도 있다네.”
“네,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영약의 등급이 너무 높아 소 대사님 외에는 제련할 이가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태껏 키우고 있습니다.”
양소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대사님밖에 제련할 수 없다고 하던가?”
진택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영약은 차가운 것을 좋아하지. 짧은 기간 동안 자갈에서 키우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나, 오래 놔두면 약 기운이 빠지면서 점차 시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네. 양씨 가문은 재력이 탄탄하니 영기가 있는 빙정(氷晶)을 얻는 건 문제없겠지? 그리고 자갈에 키우라는 조언을 한 그 연단사는 정말 연단사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이야.”
“그렇군요.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소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이 대답했다.
진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만하게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지만, 그대로 몇 개월 더 방치했다가는 아무 가치도 없을 것이네.”
“네.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선배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양소는 낯빛을 가다듬고 한마디 덧붙였다.
“제 손이 둔하여 옮겨 심기가 쉽지 않은데, 혹시 선배님께서…….”
진택이 냉소했다.
“안 가네! 자네가 아무리 거창한 걸 들이밀어도 난 가지 않을 걸세.”
양소는 깜짝 놀랐다. 진택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닌데. 평소라면 연단사들은 현급 상품 연단 재료라는 말만 들어도 눈을 반짝이며 보러 가자고 했을 텐데?’
진택이 양소를 거절하자, 다른 공자들은 은근히 쾌감을 느끼다가 곧이어 미간을 찌푸렸다. 당근도, 채찍도 통하지 않으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다들 어찌할 방법이 없어 쩔쩔매는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네 형제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뜻밖에도 양위가 왔던 것이다.
계승 싸움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양위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약왕곡 사람들이 전성에 나타나자, 그마저도 사람을 이끌고 나온 것이다.
맏형님에 대해 형제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몰래 경계하는 한편, 양위가 다가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양위가 선배님을 뵙습니다.”
양위는 약왕곡 사람들의 앞으로 다가가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음.”
진택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태도도 미적지근했다.
“한 가지 청이 있는데, 선배님께서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택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를 도와 연단해달라는 청이 아니라면 말해 보시게.”
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연단을 부탁하려는 것입니다.”
양위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약왕곡 사람들을 막고 있는 것은 다 연단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서로 지켜보면서 각자 다른 수단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맨 나중에 온 양위가 이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 몰랐던 것이다.
순간, 모두들 긴장했다. 진택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진택이 단번에 승낙한다면, 네 공자는 아마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뜻밖에도 진택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양위를 바라보았다.
“양씨 가문 맏이라. 음, 솔직한 성격은 마음에 들지만, 내가 전성에 온 이유는 자네를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네.”
양위는 전혀 당황하거나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진택의 말을 듣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공수했다.
“그렇군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양위는 아무 미련 없이 깔끔하게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그러나 양소는 진택이 방금 한 말에서 뭔가 다른 뜻을 알아채고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진 선배, 그럼 이번에 누구를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