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32화 (432/853)

제 432장. 인재 뺏기 전쟁

“아무도 돕지 않을 걸세. 우린 그저 연단술을 배우러 온 것이야.”

진택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

양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단술을 배운다고? 약왕곡 제자들이 또 누구한테서 연단술을 배운다는 거지? 그것도 진택이? 이미 세상에 몇 없는 현급 연단사가 되었잖아? 이유가 너무 억지스러워!’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계승 싸움에 참가하는 후보자들 중에서 이미 다섯 명이 왔고, 그 누구도 진택을 설득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이는 둘뿐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순간 양소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가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어디선가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많은 이들이 빛에 싸여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양준은 앞장 서서 약왕곡 사람들에게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의 뒤로 곽성진이 옅은 미소를 띠고서 접선을 흔들며 무척이나 친한 것처럼 양씨 가문 공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양준의 곁에는 혈시가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신유 경지 8단계에 이르는 무인이라면 어딘가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한 쌍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었다. 바로 영구였다.

신출귀몰하는 영구는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누군가 양준을 건드리는 순간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죽여 버릴 것이 분명했다. 혈시들이 즉시 이 사실을 각 공자들에게 보고했다.

“다 왔군.”

양항은 불쾌하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맨 먼저 온 그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약왕곡 사람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전성의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와 인재를 다투려는 경쟁자가 더욱 늘어나 버렸다.

인파 가운데서 아름다운 눈 한 쌍이 양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마음은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찼다.

양준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에 서렸던 살기와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부드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가 떠올랐다.

하응상은 양준의 눈빛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분명 양준이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저도 몰래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면사포 때문에 하응상의 실제 외모를 본 이는 없었지만, 누구도 그녀가 절세가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은은하고 깊이가 있었다. 면사포를 쓴 탓에 특별히 이목을 끌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신비로움 때문에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면사포 뒤에 어떤 절세미인의 모습이 숨겨져 있을지 모든 이가 궁금해했다.

양준과 그녀 사이의 눈빛 교류는 눈치 빠른 이들의 눈을 속일 수가 없었다. 순간 양씨 가문 공자들의 얼굴빛이 모두 어두워졌다.

‘아홉째와 저 여인 사이에는 뭔가 있는 거 같군. 아홉째야말로 이득을 보게 생겼구나.’

“양 사제!”

줄곧 거만한 태도를 보이던 진택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서 양준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게다가 사제라는 호칭도, 공자들로서는 무슨 영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진 사형!”

양준이 빙그레 웃으며 답례하고서 다시 시선을 앞쪽에 있는 두 부인에게 돌리더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향씨 이모, 난씨 이모.”

두 부인은 상냥하게 웃으며 응대했다.

“몽 주인!”

몽무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이 약왕곡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양소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두 부인의 신분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부인은 소문으로만 듣던 운은봉에 살면서 소부생을 모신다는 이들로, 소부생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몇십 년 동안 운은봉에 은거하면서 단 한 번도 산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던 그녀들이 오늘 전성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전성에 보내다니… 소부생의 뜻인가? 그럼 소부생의 의도는 무엇이지?’

양소는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항, 양신, 양영도 장내의 묘한 분위기를 알아챘다. 약왕곡 사람들이 양준과 이처럼 살가운 것을 보아서는 분명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만약 다른 세력이었다면, 한 번 밉보이더라도 강경한 태도로 사람들을 이곳에서 가로막거나 아예 전성에서 내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왕곡이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순간 세 공자는 모두 양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양소도 눈앞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지간해서 약왕곡에 미움을 사서는 안 되지만, 이번만큼은 밉보이더라도 반드시 저지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형세는 더욱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양소는 심호흡을 하고서 우렁차게 말했다.

“진 선배, 약왕곡은 여태껏 한 번도 계승 싸움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왜 균형을 깨뜨리면서까지 참여하는지 설명 좀 해주시지요.”

진택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

“말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그저 연단술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라고. 양씨 가문 계승 싸움은 우리 약왕곡과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일세.”

양소는 빙그레 웃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희 저택으로 오셔서 연단하는 건 어떠하십니까? 필요한 재료는 모두 공급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말했던 칠채귀영화도 드릴 수 있습니다.”

진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웃기는 소리. 자네 휘하에 우리 제자들에게 연단술을 가르칠 만한 연단 고수라도 있다는 말인가?”

“제 휘하에는 없지만, 막내 쪽이라고 있겠습니까?”

양소의 말투가 점점 강경해졌다. 말만으로는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연단사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그렇다면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하는 한편, 다른 세 형제들에게 눈짓했다. 나머지 셋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몰래 준비했다.

“있지.”

뜻밖에도 진택이 단박에 대답했다.

양소는 쓴웃음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어쩜 저리 구차한 구실을 대지!’

양준은 요 며칠간 연단사를 모집하지 않았다. 설령 그가 모집했다고 해도, 어떤 연단사가 약왕곡의 연단사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양소는 얼굴빛이 점점 차가워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 뜻이 그러하시다면,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약왕곡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천하의 훌륭한 연단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약왕곡이 몇천 년 동안 매사에 중립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배님께서 이번에 몇천 년을 내려온 전통을 깨뜨리려 하시니, 저희도 움직일 수밖에 없네요.”

진택이 노하여 일갈했다.

“지금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어쩔 수 없습니다. 양해해 주시지요. 약왕곡의 제자들을 다치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소는 얼굴빛이 담담했다. 그는 최대한 예의를 갖췄으니, 훗날 이 일이 밖으로 전해진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양소가 말하는 사이,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고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이와 함께 양항, 양신, 양영도 주저하는 낯빛을 보이며 명을 내렸다. 그들 셋은 양소처럼 과감한 기백이 없었다. 그리고 약왕곡에 밉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우선 양소와 손잡고 진택 일행을 압박하는 수밖에. 그들은 몰래 속으로 기도했다.

‘저 연단사들이 너무 강하게 나오면 안 되는데. 그냥 각자 한 걸음씩 양보해 평화적으로 해결했으면.’

장내는 일촉즉발의 긴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입을 딱 벌리고, 양씨 가문 공자들의 대담함에 감탄했다.

약왕곡은 지난번 창운사지의 습격을 받아 손실이 막대했고, 심지어 단성 유상마저 파괴되었다. 하지만 약왕곡이라는 세 글자는 여전히 비할 바 없는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여태까지 감히 약왕곡에 밉보이려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처음으로 이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저는 안 보이시나 봅니다. 제 사람을 건드리기 전에 저랑 먼저 얘기하시죠.”

양준은 줄곧 사태를 냉담하게 지켜보다가, 그제야 냉소를 날리면서 사방을 둘러보더니 살기등등해서 말했다.

양소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막내야, 네 실력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만, 그리 적은 인원으로 우리에게서 저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괜히 나섰다가 먼저 탈락하지나 말 거라.”

양항, 양신과 양영은 좋지 않은 낯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싸우려는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약왕곡에 밉보일까 두려웠지만, 양준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없애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둘째 형님, 어디 한 번 해보시지요.”

양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소는 어두운 얼굴로 양준이 데리고 온 이들을 훑어보았다.

단 두 세력밖에 없었다. 곽씨 가문 사람들 중에서 두 명은 신유 경지 5단계로 일반 신유 경지 7, 8단계 고수 못지않았다. 다른 한 곳은 동씨 가문으로 신유 경지 7단계 두 명에, 경지가 그다지 높지 않은 신유 경지 몇 명, 그리고 진원 경지 무인들이 있었다.

영구는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이 정도 인원이면 약하지는 않지만, 그들 넷의 연합과 비교했을 때는 절대적인 열세에 처했다.

‘그런데 막내는 왜 저리 침착할까?’

첫날밤의 일을 통해 양소는 양준이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준은 아주 음험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으며, 일 처리 수단도 무척이나 독특했다.

‘준비 없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죽으러 오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세력들은 어디 갔지? 정보에 따르면 며칠 사이에 모두 열한 개 세력이 그의 휘하에 모였다고 했는데. 이곳에는 두 세력밖에 없잖아. 다른 아홉 세력은 어디 갔지?’

순간 양소는 얼굴빛이 바뀌더니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의 얼굴에는 괴이쩍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양소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가볍게 일갈했다.

“우리 손잡고 막내에게 장유유서가 무엇인지 알려 주자꾸나!”

“형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세 형제는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각종 무공과 비보의 빛이 동시에 번쩍이며 일제히 양준 무리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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