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5장. 연단진결을 전수하다
하응상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는 탁상에 턱을 고이고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위의 등불은 지금 진정되지 않는 그녀의 마음처럼 일렁였다. 그녀의 귓가에는 양준이 낮에 했던 ‘보고 싶었어요’ 한마디가 맴돌고 있었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달콤해졌다.
그녀의 여리여리한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양준은 한 번도 그녀에게 이처럼 직설적이고 낯간지러운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더 깊이 생각하자, 하응상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능소각에 있었던 그때가 그녀에게는 가장 달콤하고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이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곧이어 그림자 하나가 회오리바람처럼 들이닥쳤다.
하응상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순간,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금 전에 끌어 모았던 그녀의 진원과 신식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찾아온 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한 냄새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일렁이는 등불 아래서, 하응상은 양준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양준의 품에 안겨 겁먹은 표정으로 몰래 양준을 힐끗 보고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귓불은 금세 빨개졌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양준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의 뜨거운 눈빛은 마치 하응상을 녹여 버릴 것만 같았다.
둘 사이에는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간단한 신체 접촉만으로도 그동안의 그리움을 풀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오직 달콤함과 행복뿐이었다.
하응상은 처음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도 양준은 정감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오늘처럼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양 사제 마음속에 아직 내가 있었어…….’
하응상은 이런 생각을 하자,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녀의 몸이 양준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때, 무형의 신식이 덮쳐 왔다. 신식에는 일부 전음이 섞여서 양준의 머릿속에 전해졌다.
“이놈, 내가 바로 옆방에 있거늘! 죽고 싶은 게로구나!”
전음을 들은 양준은 빙그레 웃더니, 똑같이 신식으로 옆방에 전했다.
“몽 주인! 제자의 방을 훔쳐보다니! 얼마나 부도덕한 일입니까. 자중하십시오!”
전음을 보낸 뒤, 사방에 있던 몽무애의 신식이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한순간 흠칫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뒤에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께서 어쩐 일이셔?”
하응상은 얼른 고개를 들고 물었다.
“별일 아니에요. 악몽을 꾸시는 것 같아요.”
하응상은 양준이 허튼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양준이 이렇게 말하자, 몽무애는 더는 숨길 수가 없어 옆방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시간이 날 때 날 찾아오거라. 내 긴히 물어볼 것이 있다.”
“예. 저도 마침 여쭤 볼 것이 있었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대답했다.
몽무애는 조용히 신식을 거두어들였다.
양준과 하응상은 마주 보고 싱긋 웃었다. 둘 다 홀가분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몽무애가 좋은 마음에서 그리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몽무애 같은 고수가 신식으로 지켜보면 꼭 손발이 묶인 것만 같았다.
양준은 하응상을 끌어안고서 그저 따뜻함을 즐길 뿐이었다. 하응상의 몸은 뼈가 없는 것처럼 유연했고, 향기롭고 상큼한 냄새가 났다.
“사저, 정말 대단하네요. 벌써 신유 경지 1단계라니.”
양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지난번 그가 운은봉을 떠날 때만 해도, 하응상은 진원 경지 7단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성공적으로 신유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이런 수련 속도는 그에 못지않았다.
“다 사제 덕분이야. 나한테 주고 간 게 도대체 뭐야? 매일 한 방울씩 복용했더니 수련 속도가 전보다 훨씬 빨라졌어. 그리고 한동안은 소 대사님과 함께 연단술을 연구하고, 또 네가 보낸 영진을 연구하느라 거의 수련을 하지 못했어.”
양준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별로 수련을 하지 않고도 벌써 이 경지에 이르렀는데, 작정하고 수련하면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경지가 오를까?
‘사저는 과연 뛰어난 체질을 가지고 있군.’
“만약영액이라고 하는데 경맥을 씻어 주고 체질을 개선할 수 있어요. 부족하면 말해요. 아직 많아요.”
하응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좀 남았어. 매일 한 방울만 복용하고 있거든. 사부님도 복용하셨는데, 상처 회복에는 큰 효력이 없는 것 같더라고.”
“몽 주인이 부상을 입었어요?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
양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응상은 고개를 갸웃하고 까만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잘 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해주셔. 사부님께서 부상을 입으셔서 내가 열심히 수련해야만 그분을 도와 치료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야.”
양준의 안색이 이상해졌다.
‘몽 주인 같은 고수도 부상을 입다니…….’
양준은 몽무애의 강한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었다. 몽무애는 일반 신유 경지 정상 고수보다 훨씬 강했다. 아마 신유 경지 이상의 사람만이 그를 이길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겉모습을 보아서는 다친 흔적도 없는데. 아니면 오래된 상처인가?’
단지 오래된 상처라면 만약영유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었다. 양준은 시간이 나면 몽무애를 찾아가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몽무애는 줄곧 그와 하응상이 같이 있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지만,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특히 능소각에 있을 때 양준을 많이 돌봐 줬었다. 양준은 그런 점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있었다.
“소안의 소식은 혹시 들은 거 없어?”
하응상이 물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고는 있는데, 아직 들어온 소식은 없어요.”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면 분명 찾아오겠지.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하응상이 부드럽게 말하는 한편,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러기를 바라야죠.”
양준은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곧 화제를 바꾸었다.
“낮에 사저께서 사용한 초식은 뭐예요? 일격에 여러 고수를 물리치던데.”
하응상은 입을 오므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돌리자 낮에 보았던 성환이 눈부신 빛을 띠고서 다시금 나타났다.
“이건 내가 신유 경지에 오른 다음, 사부님께서 주신 장성환(藏星環)이라는 현급 중품의 비보야. 안에는 사부님만의 세 가지 초식이 들어 있는데, 내가 약간의 진원과 신식만 주입하면 쓸 수 있어.”
양준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시에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줄곧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응상의 체질이 독특하고 신유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비보 하나로 그렇게 강한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설령 비보가 현급이라도 해도 말이 안 되었다.
비보의 위력은 결국 무인의 실력에 따라 결정되었다. 지금 그녀의 설명을 들어 보니 납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온전히 몽무애가 전력으로 날린 초식이기에 신유 경지 7, 8단계의 무인들이 막아 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역시 몽 주인께서는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양준은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마음속으로는 몽무애에게서 현급 비보 몇 개를 얻어 낼 수 있을까 궁리했다. 그러나 몽무애의 옹졸함을 생각하면, 어려울 듯했다. 그는 모든 보물을 오직 하응상에게만 주었다. 양준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에게서 득을 볼 수가 없었다.
“그건 다음에 얘기해요.”
양준은 정신을 차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이렇게 왔으니 앞으로 바삐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연단하는 일은 모두 사저에게 맡길 거예요. 최대한 저희들의 실력을 끌어올려 주세요.”
“난 연단하는 게 좋아. 연단하는 게 나한테는 바로 수련이야. 그리고 네 계승 싸움도 도울 수 있잖아.”
하응상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저를 돕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아니면 몽 주인이 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양준은 싱긋 웃더니 곧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저, 식해를 열어 주겠어요?”
“응?”
하응상은 양준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 의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연단술에 관해서 말해 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두 개의 영진과 관련 있는 거야?”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은 즉시 식해의 방어를 풀었다.
곧이어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신식이 순식간에 그녀의 식해로 흘러 들어왔다. 이 신식은 강하고 공격성이 있어 마치 예리한 칼 같았고, 음침하고 사악한 기운까지 섞여 있었다. 다행히 신식이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하응상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식해 속에서 하응상은 신식을 형상으로 만들어 넌지시 물었다.
“사제?”
“네.”
양준 역시 신식을 형상으로 만든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어떻게…….”
하응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신식보다 훨씬 강한 신식을 바라보았다.
‘진원 경지 8단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나보다 더 강한 신식을 가지고 있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나쁜 건 아닐 거예요.”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응상의 식해는 그녀의 성격처럼 담백하고 상큼했다. 아래쪽은 갈래갈래 신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드넓은 바다였다. 신유 경지에 오른 무인은 모두 자신만의 식해가 생기며 실력이 향상되고 신식을 수련함에 따라서 바다도 점점 더 넓어졌다. 물론 그 가운데 내재된 기운도 점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양준은 일찍이 선경라의 식해를 본 적이 있었다. 두 여인의 식해를 비교하면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요미여왕 선경라의 식해는 몽롱하고 유혹적인 기운이 흐른다면, 하응상의 식해는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하응상의 식해는 마음속의 사악함과 조급함을 정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식의 바다 위에 형상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전 아직 신식을 잘 다루지 못해서 하나하나 말해 줄게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양준이 당부했다.
그는 신식으로 신혼기만 시전할 줄 알았다. 만약 신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이렇게 번거로울 필요가 없었다. 그냥 머릿속의 연단 지식을 신식으로 감싸 빛 덩어리로 만들어 한꺼번에 하응상에게 전하면 되었다.
하응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