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39화 (439/853)

제 439장. 현급 하품 혼원단

양준은 빙그레 웃고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만들어 낸 단약은 약왕곡 연단사들의 솜씨가 아니라 모두 하응상 혼자서 제련한 것이었다. 약왕곡 일행은 아직 하응상에게서 연단술을 배우는 단계라 며칠 지나야 본격적으로 단약 제련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하응상의 재주가 너무나 뛰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경험을 쌓아야만 연단술을 익힐 수 있었다.

“추억몽, 단약을 나눠 줘.”

양준이 지시했다.

추억몽은 그제야 손뼉을 쳤다. 곧 추우당 사람들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마다 단약 두 병이 놓여 있었다.

“손이 크기도 하네. 세력당 두 병씩이나 주는 거야?”

곽성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원체 시간이 짧아 세력당 한 병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의 예상치의 두 배였다.

‘근데… 양이 많은 만큼 단약의 등급이 낮은 건 아니겠지? 아마 천급 정도겠지!’

모두들 단약을 받아 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천급 단약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실망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천급이라 해도 등급이 낮은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나눠 주어야 하니 이 정도도 대단했다.

“이것은 수련할 때 사용하는 혼원단(混元丹)입니다.”

잠깐 뜸을 들이다가, 추억몽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한마디 덧붙였다.

“현급 하품이에요.”

대전 안, 떠들썩하던 소리가 순간 잦아들었다. 모두들 미소가 가시지 않은 채, 놀란 눈빛으로 추억몽과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들은 건지, 아니면 추억몽이 잘못 이야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추 낭자는 참 농담도 잘하네.”

곽성진이 크게 웃었다.

사람들은 잠깐 당황하다가 마치 추억몽이 농담을 할 줄 몰랐다는 듯이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추억몽은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한참을 기다린 다음, 말했다.

“농담 같나요?”

모두들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제가 농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에요. 직접 확인해 보세요. 현급 하품 혼원단이 맞습니다.”

추억몽은 전혀 농담하는 기색이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수가? 혼원단은 나도 전에 복용했었는데. 어떻게 천급 상품의 단약이 현급이 됐지?”

곽성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현급과 천급은 등급이 하나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가치의 차이는 엄청 났다. 현급 이하의 단약은 일반 단약이지만, 현급 단약부터는 현단(玄丹)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현단은 만들기 어려웠다. 필요한 재료를 수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연단사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약왕곡 사람들이 전성에 도착한 지는 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연단사들의 등급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짧은 시간 내에 천급 상품의 단약을 이렇게 많이 제련했다 해도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추억몽이 현급 혼원단이라고 말하니, 믿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우선 약왕곡 사람들이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이에게 나누어 줄 현급 단약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고, 다음으로 혼원단도 현급은 아직 나타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곽성진은 말하면서 병 하나를 열어 그 안에서 한 알을 꺼냈다. 순간 경망스럽던 그의 표정이 달라지더니 경악에 찬 눈빛으로 손에 든 단약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도 단약을 꺼내는 순간, 놀라움과 의문이 함께 터져 나왔다.

“여기 계신 분들은 각자 문파에서 지위가 있으니 모두 혼원단을 복용해 봤을 겁니다. 안목이 있는 분들이니 알아보시겠지요.”

추억몽은 살짝 미소 짓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침에 그녀가 혼원단을 보았을 때도, 눈앞의 곽성진처럼 양준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직접 확인해 보고는 확실히 현급 하품 혼원단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곽성진은 넋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현급 혼원단은 너무나 이례적이었다. 놀란 가운데, 그는 모든 단약을 쟁반에 쏟아 놓고 하나하나 검사했다. 모두 현급 단약이 확실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곽성진은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한순간 현실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보십시오. 단약에 마치 신체의 경맥처럼 생긴 무늬가 있습니다.”

누군가 대단한 것을 발견이라도 한 듯 비명을 질렀다.

“단문(丹紋)입니다.”

“세상에. 제가 받은 거에도 단문이 있는 현단이 몇 개 있습니다.”

“저도요! 무려 네 개나 있습니다. 하하하… 소문으로만 듣던 단문이 있는 단약을 이리 직접 보게 되다니.”

무려 단문이 있는 현급 단약이었다. 또한 한두 알만 단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삼 할 정도의 단약에 모두 단문이 있었다.

모든 이가 깜짝 놀라 얼굴빛이 바뀌었다. 하지만 흥분과 설렘이 더 짙었다.

연단사들이 단약을 만들 때 수준이 높으면 신체의 경맥과도 같은 무늬가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단문이었다.

일단 단문이 있는 단약은 가치가 배가 되었다. 단문이 있는 경우, 효력이 일반 단약에 비해 강했다. 또한 오래 두어도 약 기운이 빠지지 않았다. 도리어 시간의 누적에 따라 단문이 천지간의 영기를 흡수해 영성을 키우면서 효력이 더욱더 강해졌다.

단문 위로는 단운(丹暈)이 있었다. 몽환적인 구름 모양으로 효력이 단문보다 더 강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전설에 불과했다.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신분이 낮지 않았지만, 단문이 있는 단약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들 문파가 가난해서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연단사들이 단문이 있는 단약을 제련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연단에 심취해 있는 연단사들이 기연을 만나 간혹 단문이 있는 단약을 제련해 내는 정도였다.

단약의 등급이 높을수록 단문이 나타날 확률이 더 낮았다. 단문은 최고 연단사의 상징이자 최상급 단약을 의미하기도 했다.

지금 모든 이들이 나눠 가진 단약 중에서 적어도 이 할은 모두 단문이 있었다. 이처럼 높은 비율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했다. 단문이 있는 단약은 어떤 보물보다도 더 사람을 들뜨게 했다.

천원성의 소성주 류비생은 가슴이 설렜다. 그는 현단 두 병을 손에 쥔 채 얼굴이 상기되고, 호흡마저 뜨거워졌다.

‘역시 양준 공자를 지원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어. 아직 별로 큰 전투가 없었는데도 세력마다 현단 두 병을 가지다니.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을 거야.’

심지어 만화궁의 네 소녀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차가운 성격의 한소칠은 흥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사저의 풍모를 지켰다. 다만 이채가 서린 눈빛으로 끊임없이 양준을 바라보며 감사의 뜻을 표할 뿐이었다. 하지만 성격이 활발한 야함은 단약을 하나하나 검사하면서 단문이 나올 때마다 아우성을 쳤다. 다른 사저들은 그녀를 흘겨보며 몰래 예의를 지키라고 당부했다.

“진택 선배도, 약왕곡 연단사분들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비우각의 저경산이 한마디 칭찬했다.

“그러게요. 앞으로 소부생 대사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겠습니다.”

수월당의 풍천흔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곽성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현단 하나를 쥐고서 양준을 빤히 지켜보았다.

일등 세력 출신들과 달리 곽성진은 부잣집 도련님이라 사용하는 물건들의 등급이 그들보다 높았다. 곽씨 가문에도 여러 명의 현급 연단사가 있지만 설령 그들이 모두 함께 제련한다 해도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현단을 제련해 낼 수 없었다. 아마 그들에게 십 년을 더 준다 해도 단문이 있는 단약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진택이 약왕곡의 소곡주라고 해도 현급 하품 연단사일 뿐, 이만한 재주는 없을 텐데.’

추억몽의 시선이 곽성진에게로 향했다. 8대 세가 출신의 젊은 남녀는 서로의 눈빛에서 의혹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일은 너무나 이상했다.

현단을 나눠 가졌으면, 당연히 서둘러 수련해야 했다. 이리 훌륭한 단약의 도움을 받는 이상,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오직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인사를 건네고 각자 건물로 돌아가서 폐관 수련을 했다. 곽성진마저 어서 빨리 현단의 효력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추억몽은 빙그레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한테 누가 이 많은 단약을 만들었는지 말해 줘야 할 차례 아냐?”

“묻지 마. 때가 되면 알아서 얘기해 줄게.”

양준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응상과 관련된 일이기에 남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연단방에는 약왕곡 사람들과 양준만 들어갈 수 있을 뿐, 다른 이들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때문에 추억몽도 섣불리 연단방에 찾아가지 않았고, 따라서 단약의 출처를 알 수가 없었다.

추억몽은 눈알을 굴리더니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네 사저가 만든 거 아니야?”

그녀는 영리한 사람이라 진택이 그렇게 큰 재주가 없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단방에는 양준과 약왕곡 제자들을 제외하고, 오직 하응상만이 출입이 가능하므로 당연히 단서를 추측해 낼 수 있었다.

“함부로 억측하지 마. 내 손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양준은 그녀를 쏘아보며 경고했다.

추억몽의 얼굴빛이 살짝 바뀌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 한마디는 무심코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양준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번 단약은 정말로 하응상과 연관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심지어 양준과 따질 겨를도 없이 낯빛이 진중해졌다. 그제야 하응상이 단순히 양준이 좋아하는 여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면사포를 쓴 것 말고 별다른 점이 없었는데. 실력은 신유 경지 1단계로 꽤 강하더만! 정말 이 단약들을 모두 혼자 제련했단 말인가?’

추억몽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언젠가 네 비밀을 모조리 파헤치고 말겠어.”

그녀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몰래 다짐했다.

그녀는 양준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이 신경 쓰였다. 이제 그의 옆에 있는 여인마저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으니 당연히 그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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