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1장. 양씨 가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달려왔던 이들이 신속하게 흩어졌다. 그들은 각자 돌아가서 추억몽에게 상황을 말해 주었다.
“피해는 없습니다.”
추억몽은 피해가 없다는 말에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침입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마음에 걸렸다. 내부에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적어도 양준은 내부 사람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경우, 침입자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연단방 근처까지 잠입했다는 것이 된다.
추억몽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지금 양준의 관저에는 고수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다, 그중에는 신유 경지 8단계의 고수도 있었다. 또한 연단방의 수비는 매우 삼엄했다. 그런데도 침입에 성공했으니 그자의 실력이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성공적으로 침입할 수 있었는데 왜 굳이 발견되어 행적을 남긴 거지?’
그녀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영구, 그자의 모습은 제대로 봤어?”
양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어둠 속에서 영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요.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경지인지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구는 은신술과 자객술에 매우 뛰어난 혈시였다. 그런데 상대와 겨루기까지 했으면서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했다니. 갈수록 침입자의 정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자의 실제 경지는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영무살을 감당하지 못했을 리도 없지 않습니까?”
영구는 무거운 목소리로 추측했다.
그자는 도망치는 것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결국 상처를 입었다. 바닥에 난 핏자국도 침입자가 남긴 것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비보의 위력을 빌렸거나 아니면 특별한 공법을 수련했을 거야! 재미있군. 누가 이런 고수를 포섭했을까?”
이번에 자신과 몽무애가 동시에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자는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얻었을 수도 있었다.
연단방 근처에 잠입한 의도는 확실했다. 분명 약왕곡의 연단사들을 해코지하려는 속셈이었다. 만약 연단사들이 정말로 양준의 관저에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일이었다.
“양 사제, 별일 없으면 나는 다시 연단하러 가 볼게.”
진택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이번 일로 전혀 겁을 먹은 기색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기뻐하는 것도 아니었다.
“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택이 떠나간 뒤,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불렀다.
“소순(簫順).”
“예.”
키가 남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신유 경지 8단계의 고수가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양씨 가문의 혈시로 양천이 탈락된 뒤, 찾아온 이였다. 그는 지난 전투로 중상을 입었지만 양준의 도움으로 이틀이 지나지 않아 전부 완치된 상태였다.
“앞으로 연단방에 상주해라.”
소순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자님. 이 소순이 살아 있는 동안, 누구도 연단방에 접근할 수 없을 겁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깊은 눈매로 신비로운 고수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냉소했다.
약왕곡 사람들의 등장이 형님들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그들을 해코지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까지 보냈을 리가 없었다.
‘누구의 부하인지, 참 간도 크군.’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기자, 그 누구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추억몽은 관저의 방어 체계를 다시 편성하느라 분주히 보냈다.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보며 방금 전에 신식으로 살펴본 상황을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역시 그자가 무슨 경지인지,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자가 사용한 게 공법이든, 비보든 신기하긴 하군.’
이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추우당의 한 무인이 다급히 걸어와 공수하며 말했다.
“양씨 가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가문에서?”
양준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지금 대전에 계십니다. 양씨 가문의 장로령(長老令)을 들고 오셨는데 공자님과 말씀을 나누길 원한답니다.”
“알겠어.”
손을 저어 그를 보낸 뒤, 양준은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준비해 주십시오. 아마 오늘 할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하하,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좋아, 좋아. 여태까지 수련만 하느라 답답해 죽을 뻔했다고.”
“양준 공자, 이번에는 뭘 하든 우리를 데리고 가요.”
젊은 남녀들이 주먹을 문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껏 계승 싸움에 참여했는데 활약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듯했다.
“그건 다시 얘기할게요. 아직 자세한 상황은 모릅니다. 각자 준비를 해주십시오.”
양준이 미소를 짓고는 대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추억몽이 다급히 따라가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아?”
양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가문에서 계승 싸움의 속도를 높이고 싶어하는 것 같아. 여덟째 형님이 탈락한 뒤로 우리 여섯 명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 그게 벌써 한 달째야. 이렇게만 지낸다면 좋을 거야 없지.”
“설마 너희들더러 본격적으로 나서라고 명령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저급한 수는 쓰지 않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짐작만 하는 것이라 가문에서 어찌할지는 알 수 없었다. 찾아온 사람을 만나봐야 명확히 알 수 있을 듯했다.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 안에는 누군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힐끗 훑어본 양준은 경악하며 서둘러 다가갔다.
“아버지?!”
양응봉은 고개를 돌리고 아들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몽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녀는 인사를 올리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추억몽이 넷째 나리를 뵙습니다.”
양응봉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추 소저, 별말씀을요. 준이를 도와주니 다 한 식구죠.”
그러더니 곧 인사를 건넸다.
“준이를 도와주시느라 고생이 많네요.”
“백부님, 별말씀을요. 양준을 도와주는 것은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고생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양응봉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준이가 아직 어려 부족한 점이 많으니 너그럽게 품어 주세요. 여기서 억울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제게 얘기하세요. 제가 준이를 혼내 줄게요.”
“백부님, 감사합니다.”
추억몽이 생긋 웃었다.
“그럼 앞으로 백부님만 믿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위엄을 부리듯 양준을 힐끗 보았다.
‘앞으로 날 괴롭히기만 해 봐. 일러바칠 거야!’
그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양준은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다가 호칭을 바꾼 것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가문의 지령을 전달하러 왔다.”
본론을 얘기하자 양응봉은 곧 엄숙해졌다. 그는 양씨 가문 장로령을 들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시진 뒤, 전성 동쪽 50리 밖 파경호(破鏡湖)에서 비보들이 나타날 것이다. 원하는 자는 가져가도록 해라.”
양준은 이 말을 듣자 눈앞이 환해지며 가슴이 설렜다. 추억몽도 똑같이 눈을 반짝거렸다.
무인이 강해지려면 가장 근본적인 것은 몸을 수련하는 것이지만, 그것 말고도 외부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외부의 힘에는 단약, 비보, 그리고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비법 세 가지가 있다. 그중 비법이 구하기 가장 어려웠고, 단약 같은 경우는 하응상과 약왕곡 사람들이 제공해 주고 있는 덕분에 양준이 누구보다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양준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비보였다. 무인에게 높은 등급의 비보가 있으면 전투력을 높일 수 있었다. 비교를 해본다면 비보로 실력을 높이는 것이 더욱 직접적이고 효율적이며 쉬웠다.
비보는 지금 양준 관저의 약점이었다. 지금 관저에 있는 각 세력의 무인들이 사용하는 비보는 모두 스스로 가져온 것으로, 사람당 한두 개밖에 없었다. 만약 비보가 좀 더 넉넉하다면 관저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은 바로 한 등급 상승할 수 있었다.
추억몽과 눈을 마주친 양준은 서로의 마음이 일치함을 깨달았다.
“지령은 이미 전달했으니 갈지 말지는 너희가 알아서 선택하여라.”
양응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갈 이유가 있나요?”
양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비보는 가문이 내놓은 겁니까?”
“양씨 가문뿐만 아니라 중도의 8대 가문들이 모두 내놓은 것이다. 그래도 우리 가문에서 많이 내놓긴 했지. 다른 가문에서는 성의를 표시한 정도야.”
“얼마나요?”
“천 개 정도 된다.”
양응봉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양준과 추억몽은 신분도 낮지 않고 견식도 짧지 않았지만 이 말을 듣고 숨이 가빠졌다.
‘비보가 천 개나 된다고?’
지금 관저에는 기껏해야 인원이 삼백 명 정도 있었다. 만약 이 비보를 전부 손에 넣는다면 사람당 세네 개씩 가지게 되는 셈이었다. 물론 이는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중 팔 할은 지급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천급이다. 현급도 몇 개 있긴 해.”
“그럼 더더욱 가야겠네요.”
양준은 씨익 웃었다.
현급 비보가 발휘할 수 있는 효과는 엄청났다. 만약 쟁탈전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남 좋은 일만 하는 셈이었다.
단번에 비보를 천 개나 내놓다니. 중도 8대 가문의 저력은 비범했다. 등급이 낮은 비보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충분히 놀랄 만한 양이었다.
“백부님, 다른 유용한 소식은 없으신가요?”
추억몽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아내 기선을 잡으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비보들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며 또 구체적으로 어디에 나타나는지. 이런 정보를 알아낸다면 그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물어봤자 소용없어. 가문에서 우리 아버지를 보내 지령을 전달하게 한 것은 알려도 되는 소식만 전해줬다는 말이야.”
양준이 손을 내저었다.
양응봉은 아들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내가 아는 건 전부 별 볼일 없는 정보뿐이다. 다른 사람들 쪽도 마찬가지야. 다들 공평하게 시작하는 거지. 나중에 수확이 어떨지는 스스로의 방식에 달렸단다.”
“한 번 물어본 것뿐이에요.”
추억몽은 순순히 받아들이며 무슨 영문인지 양응봉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군.”
양준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씨익 웃었다. 그의 눈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 별 일 없으시면 여기서 며칠 쉬다 가십시오.”
양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양응봉에게 말했다.
양응봉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네 엄마가 널 걱정하고 있어. 빨리 돌아가서 네 상황을 말해 줘야 해.”
“그러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