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43화 (443/853)

제 443장. 류경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류경요는 미간을 찌푸리고 하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은 능력이라고 할 수 없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역시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남에게 뒤처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50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일 각이 되어 세 사람은 차례로 파경호 호숫가에 도착했다.

양준은 동쪽에, 양소는 서쪽에 멈춰 섰다. 류경요는 대수롭지 않게 그들의 중간 위치에 내려섰다.

그제야 양준은 비로소 소문난 중도 제일 공자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청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화려하지도 않고, 또 고리타분해 보이지도 않았다. 또한 몸집이 우람하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담고 있었고, 세상 만사에 관심이 없는 듯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두 눈에는 패기가 서려 있었다.

그 패기는 일부러 꾸며낸 거만함이 아니라 오랫동안 최정상의 위치에 있던 고수가 자연스레 내비치는 기운이었다. 그는 마치 구름 위에 선 것처럼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만만한 놈은 아니군!’

살짝 훑어봤을 뿐인데 양준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의 경지는 신유 경지 3단계 정도로 보였지만, 일반적인 신유 경지 3단계와는 달랐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겨루어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류경요가 전에 호언장담했던 것을 떠올린 양준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미묘한 행동은 류경요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나른하지만 또렷한 눈동자가 단번에 양준의 몸에 고정되었고, 거리낌 없이 신식으로 마구 그를 훑어보았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류경요의 행동은 양준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신식으로 남을 살펴보는 것은 실례되는 일이었다. 이런 행동은 불필요한 다툼과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보통 무인들은 이렇게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이는 류경요가 그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식으로 훑어본 뒤 류경요는 더 이상 양준을 주목하지 않고 조용히 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지 못했다.

파경호 호숫가에는 이미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양위의 사람들이었다. 양위는 양준과 양소를 보자,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만 했다. 다시 류경요에게 시선을 옮겼을 때, 그의 눈동자가 흠칫 떨리며 온몸의 진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문에 의하면 양위는 중도로 돌아온 뒤, 류경요와 접전을 벌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의 최종 결과가 어찌되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금 쌍방이 또 마주쳤으니 불꽃이 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신유 경지 2단계라니. 대공자의 수련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뜻밖에도 류경요가 먼저 양위에게 인사를 건넸다.

“류 공자 덕분입니다. 그날의 전투를 통해 깨달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양위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류경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더 많은 깨달음을 원하신다면 언제든 기꺼이 도와드리죠.”

양준과 양소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의 눈에 드리운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양위와 류경요는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말속에 담긴 뜻은 충분히 되새길 만했다.

‘정말 소문대로 양위 형님이 류경요와의 전투에서 패했나 보군.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그게 아니라면 류경요가 저리 말할 리 없잖아!’

류경요의 무례에도 양위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가서 류 공자께서는 제 실력에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류경요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제 상대가 되지 못하니까요.”

이 말을 들은 양위의 조력자들이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류경요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앞에서 주인을 이렇게 깎아내렸으니 양위의 조력자들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위는 여전히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주변 사람들의 화를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지금의 저는 당신의 상대가 못 되지만 이후에도 그러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설령 이후에도 제가 당신의 상대가 안 된다 한들, 우리 양씨 가문에 당신의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류 공자, 전 우리 가문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이 류씨 가문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압니다. 당신은 류씨 가문의 한계지요. 하지만 우리 양씨 가문의 한계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류경요의 표정이 드디어 흔들렸다. 그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양씨 가문 젊은 세대 중에서 당신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습니까?”

말을 멈춘 그는 시선을 양소에게 돌리며 물었다.

“둘째 공자입니까?”

“이봐요……!”

양소는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도 참, 전 당연히 아니지요.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제 얘기는 빼시고요.”

류경요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둘째 공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는 말씀입니까? 양씨 가문 직계의 젊은 세대 중에서 맏이인 당신과 둘째만 좀 괜찮고, 나머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는 양준을 힐끗 보더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줄곧 빈틈없는 표정으로 일관하던 과묵한 성격의 양위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류 공자,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니 당신도 확실히 그의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류경요는 표정을 굳히더니 멀리서 양위를 바라보았다. 그는 양위가 왜 이토록 단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양씨 가문에서 자신을 이길 사람이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조차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내 눈을 피했다면 이미 한 수 이긴 건데!’

“대공자, 당신의 말이 사실이길 바라겠습니다.”

류경요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켜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양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줄곧 싸늘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양위의 시선이 무심코 몇 번이나 자신에게 향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는 의구심이 들었다.

‘큰형님이 뭘 알아내신 건가?’

한참 뒤, 곽성진이 사람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마찬가지로, 양소의 사람들도 곧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도착하자, 양소는 그제야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몰래 경계를 풀었다. 방금 전까지 그는 양위가 홀로 남은 자신에게 손을 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곁에 혈시가 있었지만, 이처럼 무모하게 홀로 먼저 온 것은 위험했다.

해가 중천에 뜨자, 파경호 호숫가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양항, 양신, 양영도 차례로 사람들을 거느리고 도착했다.

기나긴 모집 기간을 거쳐, 이제 여섯 형제들에게 조력자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세 사람의 인원수는 비슷했다. 실력의 차이는 있었지만 뚜렷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이들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셋은 모두 8대 가문 중 한 가문과 동맹을 맺었지만 인간적인 매력과 인맥이 부족해 많은 조력자를 얻지 못했다.

이 점을 알아챈 양항, 양신, 양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첫날밤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양준마저 이미 그들을 앞섰기 때문이었다. 형세가 이렇게 지속된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질 것이다.

세 사람은 돌아간 뒤, 반드시 조력자를 모으는 데 공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양준보다 못하면 안 되지.’

*양씨 가문의 여섯 공자가 파경호에 모였을 뿐만 아니라 전성에서 구경하러 온 무인들도 파경호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눈치가 있는 편이라 파경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경할 뿐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고수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곳에 잘못 엮여 들어가기라도 하면 새우등이 터질 수도 있었다.

아까 여인숙 대청에 있던 쌍둥이 자매도 그 속에 섞여 있었다. 그녀들은 멀리서 양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몇 달 못 본 사이에 양준은 또 많이 강해진 듯했다. 신분이 달라진 탓인지 지금의 그는 전보다 더욱 매력적이고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자매 중 한 명은 눈빛을 반짝이며 요염한 표정을 띤 얼굴로 양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런 기분은 다른 한 명에게도 영향이 갔는지 그녀 역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쓴웃음을 지었다. 동기연지신공을 수련한 뒤로 자매는 마음이 서로 통하면서 천천히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양준이 그리워졌지만 동생 앞에서 드러낼 수도 없어 답답함을 풀 길이 없었다.

이번에도 진작 전성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체면을 내려놓고 찾아갈 용기가 없어 줄곧 양준 관저에서 1리 떨어진 여인숙에 숨어 지냈다. 매일 창문으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며 그가 언제 관저를 나설지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양준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양준이 겨우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녀는 우물쭈물 뜸을 들이다 하마터면 기회를 놓칠 뻔했다. 그녀는 말과 행동이 다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동생처럼 좋아하는 만큼 다 드러내고 숨기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희, 가서 안 도와줄 거야?”

함께 있던 젊은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돕긴 뭘 도와? 우린 겨우 세 명인데. 이렇게 엄청난 곳에서 무슨 쓸모가 있겠어?”

“에휴, 여인은 상대하기 힘들다더니! 너희 둘과 함께 오는 게 아니었어.”

남자는 복장이 터졌다. 진작 이렇게 엄청난 상황일 줄 알았으면 여인숙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렀을 것이다. 지금은 세 명뿐인데다, 모두 진원 경지다 보니 양준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모든 이가 숨을 죽이고 비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또한 양씨 가문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곳에 비보 천 개를 투입할지 다들 궁금해했다.

양준도 몰래 살피고 있었다. 그는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강한 신식으로 주변의 기척을 수시로 살폈다.

구경꾼들 중에도 고수가 많았다. 이를 발견한 양준은 깜짝 놀랐다. 이 고수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8대 가문의 고수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파경호 밑바닥에서 숨은 기운의 파동이 전해졌다. 양준도 미묘한 파동을 어렵사리 감지했다. 물론 남들은 알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일부 비보는 진작 호수 바닥에 배치해 놓고 시간이 되면 선보이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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