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4장. 비보 쟁탈전
비보가 호수 바닥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 양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파경호를 둘러싼 사람들은 암암리에 힘을 모으며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했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비보가 나타날 수 있는 위치를 찾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도 경계하고 있었다.
비보를 쟁탈하다 보면 분명 전투가 일어날 것이다. 양씨 가문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계승 싸움의 속도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양준과 달리, 다른 다섯 공자들은 단지 추측으로 수면을 중점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씩 곁에 있는 혈시와 두어 마디 얘기를 나누며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분위기는 점점 더 긴장되었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파경호 바닥에서 하늘을 찌르는 빛이 쏘아졌다. 강렬한 기운의 파동이 폭발하더니 호수 아래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밝은 무늬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무늬들은 하나로 모여 호수 바닥 전체를 뒤덮는 진법으로 변했다.
동시에 천지간의 기운이 순간 멈췄다.
“나왔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들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슈슈슉-
한 줄기, 또 한 줄기의 빛이 파경호 바닥에서 쏘아지더니 하늘까지 닿았다. 그 빛에 싸여 있는 알록달록한 비보들이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했다.
순식간에 거의 백 개의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일으킨 물방울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눈빛으로 빛에 싸인 비보들을 바라보았다.
빛줄기는 삼십 장 가까이 올라갔다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더니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빛줄기는 아무런 질서 없이 주변으로 흩어졌고 속도도 엄청 빨랐다.
“양준!”
곽성진이 초조해하며 양준을 바라보고 재촉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양준 측 사람들 중 절반 되는 인원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비보를 향해 각종 수단을 펼쳤다. 그들은 희열을 느끼며 비보를 하나하나 손에 넣었다.
젊은 세대의 통솔자들과 대다수의 신유 경지 무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뛰쳐나간 사람들 모두 진원 경지와 신유 경지 3단계 이하의 무인들이었다.
다른 공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처음 나타나는 비보의 등급이 높지 않을 것임을 다들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비보 때문에 우왕좌왕할 필요는 없었다.
비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기에 각자 손에 쥐여준 것과 다름없으므로 서로 빼앗거나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웅다웅 쟁탈하는 일도 없었다.
구경꾼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끊임없이 침을 삼켰다. 그들은 실력이 그다지 높지 않기에 이렇게 많은 비보들이 동시에 나타나자 마음이 흔들렸다.
여섯 공자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거의 팔백 명 가까이 되었다. 절반밖에 출동하지 않았다고 해도 백여 개의 비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비보는 파경호를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 계승 싸움에 참여한 무인들의 손에 들어갔다. 비보를 가지고 대열로 돌아간 무인들은 하나같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로 나타난 비보들은 여섯 공자의 세력들 모두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그럴듯한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고, 가져간 양도 비슷했다.
“다 지급 중하품이잖아.”
곽성진은 가져온 비보들을 보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8대 가문이라면서 쪼잔하긴.”
한소칠은 덤덤한 얼굴로 귀밑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곽 공자는 명문 세가 출신이라 하층 무인들의 고달픔을 몰라요. 이런 비보는 당신 눈에 안 찰지 모르겠지만 남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요.”
곽성진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인이 그리 말씀하시면 선을 긋는 것이지요. 전 곽씨 가문 사람이긴 하지만 우린 지금 다 같은 친구가 아닙니까? 이 문제는 심사숙고할 만하네요.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한번 얘기를 나눠 보죠.”
한소칠은 바로 입을 꾹 다물고 양준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곽성진이 접적거리지 않게 꾸짖어 달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시각,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파경호 아래의 신비한 진법에 머물러 있었다.
반짝이는 무늬는 여전히 빛을 내뿜고 있었고, 호수 밑바닥까지 일렁이는 듯했다. 곽성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수 바닥에서 백 줄기에 가까운 빛이 또 쏘아졌다.
곽성진은 양준을 힐끗 보더니 양준의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빼앗아.”
방금 전, 출동했던 무인들이 또 나가려고 하는 찰나에 양준이 갑자기 말했다.
“모두 조심해.”
사람들은 비보를 쟁취하는 희열에서 벗어나지 못한지라 양준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보가 날아오르는 궤적을 살펴보자 바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비보들은 방금 전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비보는 전부 파경호 한가운데 공중에 빼곡히 모여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진원을 모으며 힘을 폭발시킬 준비를 했다. 무공과 비보의 빛이 피어오르며 여섯 세력의 인원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 갔다.
곧이어 순식간에 전투가 일어났다.
사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들었다. 그중 9할은 진원 경지의 무인이었고, 일부 경지가 높지 않은 신유 경지의 무인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경호 한가운데 공중으로 모여들다 보니 매우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약삭빠르게 비보 하나를 차지하면 바로 네다섯 명의 목표물이 되었고, 다음 순간 두려움과 후회 속에서 사살되었다. 엉망이 된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맑은 호수를 붉게 물들였다.
구경꾼들이 연이어 비명과 함성을 터뜨렸다. 이런 혼란스러운 전쟁이야말로 그들이 기대했던 바였다.
잠깐 사이,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사상자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세력이 접전에 휘말렸다. 젊은 세대의 통솔자들은 어두운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바로 뛰어가서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양씨 가문의 여섯 공자들은 누구도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들도 분노에 가슴이 뜨거웠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지금 흐트러진다면 앞으로 영원히 열세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점차 백여 개의 비보들은 모두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비보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의 목표물이 되었다. 각 세력에서는 자기 쪽 인원을 보호하며 싸우는 한편 물러났다. 그 바람에 시체들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영리한 이들은 비보를 손에 넣은 순간, 전력을 다해 자신의 대열로 던진 다음, 뒤돌아 남의 비보를 빼앗았다.
난투가 점차 끝나가고, 여섯 세력의 사람들은 서로의 거리를 벌리며 경계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났다. 모두 수확도 있고, 손해도 있었다.
붉게 물든 파경호에는 쉰여 구의 시체들이 둥둥 떠 있었다.
“역시 양씨 가문의 수단은 무섭군.”
동경한은 심호흡을 하더니 눈앞의 참극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한 달 동안이나 아무런 전쟁 없이 평화롭게 보내왔었다. 하지만 양씨 가문의 장로령 하나 때문에 평온하던 분위기가 깨지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새는 먹이 때문에 죽고,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지. 양씨 가문은 이 점을 이용한 거야.”
곽성진이 냉소했다.
“너무 참혹해.”
진학서는 학을 뗐다. 전성에 와서 전투에 처음 참여한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쉰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월문도 손해를 보았기에 당연히 속이 편치 않았다.
“너무 쉬워.”
양준은 깊은 눈빛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쉽다고요?”
류비생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양준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번쩍 들고는 양위와 양소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둘도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양준의 시선을 느낀 두 사람은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교류한 양준은 그들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비보의 쟁탈 과정이 그저 이렇게 단순하다면 쉬워도 너무 쉬웠다. 양씨 가문에서 이렇게 할 리가 없었다. 양씨 가문의 고위층은 죽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할 텐데 어떻게 천 개나 넘는 비보가 계속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겠는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여섯 세력의 사람들은 합의를 보고 비보를 공평하게 나누면 되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겠지만.
양준도, 양위와 양소도 모두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생각하고 있었다.
계승 싸움은 지혜와 용기의 싸움이었다. 용맹하기만 해서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었다.
사람이 죽은 탓에 여섯 세력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다들 차가운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다음 접전에서 원수를 갚으려고 다짐했다.
“이번에 나온 비보는 등급이 좀 높지만 그다지 좋은 건 아니야.”
곽성진은 사람들이 가져온 비보를 살펴보고는 계속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곽성진의 눈에 천급과 현급 이외의 다른 비보는 모두 쓰레기였다. 천급이라고 해도 최소한 천급 중품은 되어야 그의 눈에 찰 수 있었다.
“다음번에 우리는 나서지 않는다.”
양준이 갑자기 지시했다.
“뭐라고? 안 나설 거라고?”
곽성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
“다들 듣게 소리를 더 높이지 그래?”
곽성진은 난감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더니 말했다.
“왜 안 나서는데? 우리가 안 가지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거야.”
곽성진뿐만 아니라 만화궁의 네 소녀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전의 접전으로 만화궁에서도 여제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데 양준이 갑자기 나서지 말라고 하니 다들 이해할 수 없었다.
“상황을 보면서.”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다음번에 나올 비보는 지급 상품일 거야. 챙기지 않아도 손해가 크지 않아. 하지만 굳이 나선다면 변수가 생길지 몰라.”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양준이 과하게 조심스럽다고 여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