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49화 (449/853)

제 449장.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방금 전, 양위는 뭔가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혈시들더러 바로 물러나라고 소리친 것이었지만, 결국 늦고 말았다.

양소가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지만 양위는 냉담한 얼굴로 직접 알려줄 뜻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하늘색 기운에 묵인 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류경요를 보더니 결국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보들이 공개되어도 계승 싸움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각자 돌아가서 혈시들에게 물어보면 영문을 알 수 있을 터였다.

류경요는 수월벽도갑의 위력으로 하늘색 기운이 몸속으로 침입하는 것은 막았지만, 온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양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역시도 귀를 기울였다.

“우리 양씨 가문에는 태상장로 네 분이 계신다. 가주님까지 더하면 신유 경지 이상이 총 다섯 분이지. 다른 7대 가문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른 분들은 나이가 지긋하셔서 보통 다른 사람들과 겨루지 않아. 그래서 창운사지와의 접전에서도 한두 분만 출동하신 거지. 그중 속박술로 이름을 떨친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혈시당 출신으로 태상장로에 오르신 분이다.”

양위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구주(皇九州) 태상장로님이요?”

양소가 경악하며 물었다.

양씨 가문의 태상장로 중에서 혈시당 출신은 황구주뿐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양씨 가문의 혈시였지만 양씨 가문을 위해 많은 공을 세운 데다, 또 신유 경지 이상을 돌파해 무도의 정상에 오른 뒤로 가문의 태상장로가 되었다.

양씨 가문에서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지금 혈시당에 있는 혈시들은 모두 그를 우상으로 삼으며 수련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들도 황구주와 같은 높이에 오르길 바라면서.

“맞다.”

양위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류경요를 가리키며 말했다.

“봉원주(封元咒)는 그분만의 수단이지. 봉원주에 당하면 온몸의 진원이 경맥에 갇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제 보니 그분이 손을 쓰신 거군요. 그럼 저희 혈시들은…….”

양소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들도 진원이 봉인된 거다. 그들의 실력으로 봉원주를 풀 수는 있으나 적어도 2, 3개월은 걸려야 할 거야.”

양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원래도 혈시가 두 명밖에 없었는데, 한 명은 그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다른 한 명은 영기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황구주의 음험한 수단 때문에 둘 중 한 명이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여섯 공자 모두 앞으로 출격하거나 수비할 때 전력이 줄어든다는 소리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자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양준을 부러움과 시기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직 양준에게만 혈시가 세 명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공자들에 비해 그만 피해가 적었다.

황구주가 여덟 개의 비보에 봉원주를 걸어 둔 것은 양씨 가문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이 또한 계승 싸움의 진행 속도를 높이려는 수단이었다. 여섯 명의 혈시가 줄어든다면 상황은 한층 더 뚜렷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꼴 좋습니다.”

양항은 공중에서 봉원주와 싸우고 있는 류경요를 바라보며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류 공자, 우리 양씨 가문의 혈시도 감당하지 못하는 봉원주에 당했으니 그만 굴복하시죠. 순순히 손에 든 비보를 내놓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이번 일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류경요는 차가운 얼굴로 콧방귀를 뀌더니 양항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양항은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류경요, 염치 좀 있으시죠. 이번 비보 쟁탈전은 우리 양씨 가문의 일인데 당신이 왜 끼어드는 겁니까?”

“현급 비보는 저도 가지고 싶으니까요.”

류경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말투가 덤덤한 것이 곤경에 처한 사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현급 비보는 수가 많지 않았다. 양씨 가문에서 이번에 여덟 개나 내놓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여덟 개의 비보는 8대 가문에서 하나씩 내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숫자가 딱 맞아떨어지겠는가?

류경요가 현급 비보에 욕심이 생겨 쟁탈전에 참여할 만했다. 이는 그가 왜 이번에 전성까지 왔는지에 대한 해명도 되었다.

다만, 그 누구도 맨 마지막에 나타난 여덟 개의 비보에 방어 장치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황구주의 봉원주까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들이 무례하게 군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양항이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우리 먼저 류 공자가 가져간 비보부터 가져오고 나서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

그 비보에 담긴 방어 장치와 봉원주는 이미 모두 폭발한 뒤라 손에 넣기만 한다면 사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비보 하나는 파경호에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양항의 제안에 양신과 양영은 마음이 흔들리고 욕심이 생겼다.

류경요가 최상의 상태일 때는 그들도 감히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없었겠지만, 지금 그는 봉원주의 침식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어찌 다른 사람과 싸울 여력이 있겠는가?

양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양소는 미소 띤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양항은 두 형님의 의견을 묻기가 무엇하여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막내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양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막내야.”

양항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다들 경쟁자라지만 지금은 형님 체면 좀 살려줘라. 그가 가진 것이 원래 우리의 것일 수도 있었다.”

양준은 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물건은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그러거라.”

양항은 냉소하고는 더 이상 양준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류경요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류 공자, 발버둥 쳐 봤자 소용없습니다.”

류경요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온몸의 진원이 용솟음치더니 그의 몸에 걸친 수월벽도갑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이내 강과 물고기, 조각달의 모양이 점차 그림자처럼 희미해졌다.

양항을 포함한 몇몇 공자들의 안색이 변하더니 그를 향해 소리쳤다.

“류 공자, 미쳤습니까? 그건 현급 비보란 말입니다.”

류경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진원을 돌렸다.

퍼억-

수월벽도갑 위에 있던 강물이 사라지면서 봉원주도 한층 어두워졌다.

퍼억-

연이어 조각달도 사라지며 봉원주는 훨씬 더 어두워졌다.

퍼억-

마지막으로 물고기마저 부서지자, 하늘색의 봉원주는 마치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났다.

류경요가 입은 수월벽도갑도 동시에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하늘에서 빛이 우수수 흩뿌려지더니 점차 어두워졌다. 현급 비보 하나가 그렇게 수명을 다하고 사라져 버렸다.

류경요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겨우 봉원주 따위로 나 류경요를 묶어 둘 생각이었다니, 당신네 양씨 가문은 사람을 너무 얕보는군요.”

양항을 포함한 몇몇 공자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류경요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양준은 실눈을 뜨며 몰래 류경요를 탄복했다.

‘절개가 대단한 사람이군.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굽히지 않겠다니.’

여섯 명의 혈시가 봉원주를 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실력이 류경요보다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류경요 같은 저력이 없었다.

류경요는 수월벽도갑을 희생해 봉원주의 속박을 풀 수 있었지만,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모든 비보가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수월벽도갑이 마침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명씩 싸울 겁니까, 아니면 같이 덤빌 겁니까? 제가 다 상대해드리지요.”

류경요는 양씨 가문 여섯 공자들을 둘러보며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순간, 양항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방금 전까지 그는 류경요를 얕잡아 보았지만 상황이 급변했으니 감히 나설 수 없었다. 만약 이곳에서 류경요에게 패배한다면 그는 체면을 구기게 될 것이다.

양신과 양영도 어두워진 얼굴로 양위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바랐다.

류경요가 이렇게 말했는데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양씨 가문의 체면을 깎는 꼴이었다. 만약 소문이라도 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양씨 가문의 젊은 세대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비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류경요는 방금 전에 얻은 비보를 손에 들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든 제 초식 세 번을 막아내면 제가 직접 비보를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연이은 도발에 양씨 가문의 공자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심지어 어지간해서 내색하지 않는 양소도 화를 내려고 했다. 형제들이 아무리 치고받고 싸워도 결국 내부 싸움이었다. 하지만 류경요가 연이어 망발을 쏟아 내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중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양위도 신유 경지 2단계에 불과했는데, 심지어 그는 전에 류경요와 싸운 전적도 있었다. 전투의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류경요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양위도 지금 류경요의 도전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모든 공자들의 얼굴이 난감함으로 얼룩졌다. 중도 제일 가문이라는 명성을 어깨에 짊어진 그들이었기 때문에 더했다.

양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이렇게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류경요가 이렇게까지 말을 내뱉었는데도 도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면 아래쪽 구경꾼들은 양씨 가문을 얕볼 것이다. 하는 수없이 그는 실력차를 감수하더라도 양씨 가문의 명성을 지키고자 도전에 응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양준이 미소를 짓더니 공중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누구라도 당신의 초식을 세 번 받아내면 된다는 말이지요?”

류경요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 양준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당신의 초식을 세 번 받아내면 비보는 제 소유가 되는 겁니까?”

“네.”

“그럼 꼭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혀 긴장하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양위가 다급히 막아섰다.

“막내야, 충동적으로 나서지 말아라.”

“괜찮습니다.”

양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큰형님께서는 가만히 보고 계시면 됩니다. 우리 양씨 가문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양위는 순간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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