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51화 (451/853)

제 451장. 한 초식 남았습니다

걸음 수가 늘어날수록 모든 사람들의 눈에 비친 류경요의 모습은 빠르게 거대해져 갔다. 지금 이 순간, 중도 제일 공자는 이미 거인이 되어 머리로 하늘을 이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여덟 걸음, 아홉 걸음.

구경꾼들의 눈에는 전성의 반 만한 크기로 커진 류경요의 발이 느릿하고도 괴이한 속도로 양준의 머리를 밟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꼼짝없이 당하겠지. 밟혀서 가루가 될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한 많은 이들은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얼굴이 사색이 되거나 창백해져 온몸을 덜덜 떨었다.

구곡보는 현급 중품의 무공으로 류씨 가문의 비전 공법이었다. 아홉 걸음을 내디디면 천지를 모조리 즈려밟을 듯한 기세를 내뿜었다.

거대한 발에 밟히려는 순간, 양준이 드디어 움직였다.

그가 오른손 주먹을 움켜쥐자 대낮에 갑자기 몽롱하고 눈부신 별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별빛이 반짝거리며 눈부신 빛을 뿜었다.

성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초식이었다. 사용하기 싫었던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손등의 성도 공간에 내재된 모든 기운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거대한 발에 맞섰다. 기운은 드높은 기세와 함께 놀라운 빛을 방출하면서 천지를 뚫을 것만 같았다.

쿠웅-

격렬하고 방대한 기운이 한데 부딪히며 사방으로 휘몰아치더니 서로 약화되었다.

별빛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세상을 짓밟을 것만 같던 류경요의 거대한 발은 성흔의 위력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양준은 이제 겨우 진원 경지 8단계였지만, 류씨 가문의 구곡보를 정면으로 막아 냈다.

모두들 경악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난폭한 기운은 한참 지나서야 서서히 잦아들었다.

양준은 뒤로 열몇 장 물러나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류씨 가문의 현급 중품 무공은 성흔으로도 온전히 막아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경지는 원래도 여러 단계나 차이가 있는 데다 신유 경지라는 분수령도 존재하지 않는가?

양준이 힘든 만큼, 류경요의 몸도 살짝 휘청거렸다. 이내 사람들의 눈에 비춰지던 거대한 모습이 산산조각 났다.

무시무시하던 압박감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살펴 보니 두 사람은 마치 접전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이십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양준이 이토록 강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실력이 약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막내 동생을 얕잡아 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으로 봤을 때 정말 단독으로 그와 붙는다면 양씨 가문에서는 그의 적수가 없을 듯했다. 진원 경지 8단계일 뿐인데 신유 경지 3단계인 류경요와 비등하게 싸우다니…….

양소와 다른 형제들의 안색이 암담해졌다. 계승 싸움에서 개인의 실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무인으로서 누구나 무도의 정상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한 신유 경지 이상에 올라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기를 바랐다. 이는 계승 싸움과 후계자 자리를 다투는 것과 상충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직 양위만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초식 남았습니다.”

양준은 호흡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으며 류경요를 바라보았다.

류경요는 어두운 얼굴로 더 이상 양준을 얕잡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지금의 공자는 내 상대가 안 되지만, 나와 싸울 자격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수중의 현급 비보를 양준에게 던져 주고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기다리겠습니다. 신유 경지에 오르면 그때 다시 싸워 보죠.”

양준은 손을 들어 비보를 낚아챈 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류경요가 방금 전의 두 초식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류경요는 양준 역시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양준이 굳이 나선 것은 흔하지 않은 현급 비보를 얻을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였다. 현급 비보만 아니었어도 그는 류경요를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니 류경요는 오만하지만, 방자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원하던 비보를 손에 넣었으니 굳이 더 따질 필요가 없었다.

수월벽도갑을 희생하면서까지 겨우 얻은 비보를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양준에게 던져 주는 것을 본 공자들은 눈알이 빨개지며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눈 깜짝할 새에 양준이 또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양준은 무려 현급 비보를 두 개나 얻은 것이다.

고개를 돌리고 양위를 바라본 류경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대공자, 양씨 가문의 한계가 어딘지 알았습니다. 막내 공자는 확실히 당신보다 잠재력이 뛰어나군요. 하지만 저 류경요도 아직 한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앞날이 기니 우리 세대에서 누가 더 대단한지 나중에 다시 겨뤄 봅시다.”

말을 마친 그는 곧 사라졌다.

양씨 가문의 공자들은 모두 복잡한 표정이었다. 다시 양준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양준은 류경요가 떠나간 뒤, 바로 아래로 날아갔다.

“젠장, 하나 더 있잖아.”

양항도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쫓아갔다. 여덟 개의 현급 비보 중, 여섯 공자들이 하나씩 챙겼고, 하나는 류경요가 낚아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파경호에 떨어졌지만, 현급 비보 속에 내재된 방어 장치와 봉원주를 알게 된 뒤로 누구도 무모하게 호수로 들어가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현급 비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양항의 말에 공자들은 모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앞다퉈 내려갔다. 남이 이득을 보게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또 아무도 양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현재 혈시들의 진원이 봉인된 탓에 그들 모두 혈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보여준 양준의 실력으로 보았을 때, 형제들을 제압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만약 비보 쟁탈전에서 양준에게 제압당해, 계승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양준도 그들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헛수고를 하려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여섯 명은 각자의 대열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아직도 아홉 번째로 나타난 천급 비보를 다투고 있었다. 지금 절반이 넘는 비보들은 주인을 찾았고, 일부만이 아직도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싸움은 아까보다 더욱 격렬해져 있었고, 여섯 대열에서도 연달아 사상자가 나타났다.

곽성진은 이미 돌아와 있었는데, 곽씨 가문의 인원 피해는 크지 않았다. 두 신유 경지 5단계의 무인이 모두 부상을 입었지만 상처가 심하지 않았고, 진원 경지의 무인들 중 두세 명이 목숨을 잃은 정도였다.

“양준!”

곽성진이 음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향씨 가문과 남씨 가문을 밟아 버릴까?”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 곽성진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향초와 남생이 사람들을 데리고 오로지 우리만 집중해서 공격하잖아. 젠장, 감히 날 무시하다니. 네가 한마디만 하면 내일 아버지더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두 가문을 박살내라고 할 거야.”

양준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것도 못 참을 거면 계승 싸움에 끼지 말았어야지.”

곽성진은 눈을 흘기더니 화난 말투로 말했다.

“못 참는 게 아니고, 그것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니까 짜증 나서 그러는 거잖아. 나도 계승 싸움의 규칙을 알고 있어. 계승 싸움에 참여한 각 세력들은 사적으로 복수할 수 없다는 거. 하지만 내가 누구야? 중도의 망나니 곽성진이잖아. 난 규칙이고 뭐고 없어.”

양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들은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양준도 이러한 상황들을 눈치채고 있었다. 향초와 남생이 그에 대한 원한이 커서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적으로 향씨와 남씨 가문에 보복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세력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나중에 누가 또 계승 싸움에 참여하러 오겠는가?

“그래, 네 말대로 하지 뭐.”

곽성진이 깔끔하게 물러났다.

“하지만 향씨와 남씨 가문뿐만 아니라 눈치 없는 여송도 마찬가지라는 걸 기억해. 나중에 만나기만 해봐라.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런 날이 올 거야.”

양준은 냉소하며 말했다.

“그리고 추자약 이 녀석도 수상해. 향씨, 남씨 가문이나 여송 녀석처럼 뚜렷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사사건건 우리를 견제하고 있어. 내 생각엔 이번 기회에 널 이기고 추씨 가문에서의 후계자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것 같아. 추억몽 같은 누님을 두었으니 그 자식도 참 힘들 거야. 모두 같은 중도 사람이니 목숨은 살려줘야겠다.”

곽성진은 마치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했다.

“그 얘기는 그만하고, 호수에 떨어진 비보는 지금 어떻게 됐어?”

양준이 시선을 파경호로 돌리며 물었다.

“아직 호수 밑에 있어.”

곽성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다 그걸 노리고 있지만 감히 덤벼드는 사람은 없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보의 방어 장치와 봉원주로 인해 사람들은 겁을 먹고 있었다. 지금 누구라도 맨 먼저 내려간다면 손해만 볼 것이고, 이득은 남이 채갈 것이 뻔하므로 누구도 애먼 희생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방어 장치를 폭발시킨 뒤의 공격을 감당하려면 적어도 신유 경지 8단계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비보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고 해도 끝이 아니었다. 봉원주는 혈시들도 피하지 못했는데, 일반적인 신유 경지 8단계가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비보에 내재된 방어 장치와 봉원주를 풀려면 적어도 신유 경지 8단계의 고수 한 명을 희생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다른 공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탐욕과 고민이 섞인 얼굴이었다.

양준은 이미 현급 비보를 두 개나 얻었다. 그가 앞으로의 공격과 수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주인 없는 비보에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모든 이가 속수무책으로 잠자코 있을 때, 호수 바닥에서 갑자기 격렬한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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