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2장. 그자입니다!
호숫가에 모여 있던 양씨 가문의 여섯 공자들은 표정이 급변하며 다급히 고개를 들고 호수 아래를 살펴보았다.
원기 파동은 비보의 방어 장치가 폭발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설마 누가 벌써 호수 밑에 들어간 건가? 누구 쪽 사람이지?’
주변을 훑어본 양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형제들의 표정이 그와 마찬가지로 모두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다. 깊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는 강한 신식의 힘을 호수 밑으로 침투시켰다.
쿵-
곧이어 굉음이 들려오더니 파경호에서 큰 변고가 일었다. 피로 빨갛게 물든 호수가 격렬한 원기에 힘입어 바다를 벗어난 교룡처럼 열 장 높이로 폭발했다가 폭포수처럼 쏟아진 것이다.
양준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호수 안을 살펴보았다.
호수 안에서는 은은한 빛이 눈에 띄었다. 바로, 호수에 떨어진 현급 비보였다.
비보가 나타난 동시에 하늘색 기운이 쏘아졌다.
봉원주는 허공을 감싼 채, 연거푸 여러 바퀴를 돌았다. 흐릿한 그림자가 호수에 나타날 듯, 말 듯했고 봉원주에 온몸이 묶여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그자입니다!”
항상 과묵한 영구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양준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제자리에서 위로 솟구쳤다가 곧장 파경호로 뛰어들었다. 그는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지은 채, 온몸의 진원을 가동했다.
슉-
양준의 손에 수라검이 나타났다. 날아가는 그의 옆으로 하늘을 뒤덮는 검빛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이내 검을 휘두르자 검빛이 일제히 날아갔다.
흐릿한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파경호로 오기 전 몰래 연단방 근처에 침입했던 신비한 고수였다.
‘간도 크네. 감히 여기까지 잠입하다니. 내가 류경요와 접전을 벌일 때 호수 아래로 들어간 거겠군.’
혈시들도 진원이 봉인되어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고, 유일하게 기운을 감지할 수 있던 양준도 류경요와 접전을 벌이는 탓에 시선을 빼앗겨 그가 호수에 접근하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비보가 누구 손에 들어갈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드러냈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도망치는지 봐야겠어!’
양준이 냉소를 머금은 순간, 봉원주에 속박된 흐릿한 그림자가 새벽에 도망쳤을 때와 똑같이 별안간 부서지며 물안개로 변했다.
양준은 깜짝 놀랐으나 순간 눈빛이 예리해졌다. 곧 강한 신식의 힘을 한 곳으로 모아 비보 근처를 살펴보았다. 이윽고 그는 강한 기세로 한 방향을 향해 손에 든 수라검을 휘둘렀다.
이내 흐릿한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지만, 그림자는 비보를 움켜쥐고 무지갯빛으로 변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천 장 거리를 날아갔다.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에 양준은 공격을 더 펼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신비한 고수가 비보를 손에 들고 사람들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양씨 가문의 다른 공자들은 나서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파경호에는 검붉은 호숫물만 출렁일 뿐, 무지갯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양준은 수라검을 든 채로 공중에 서 있었다.
벌써 두 번째였다. 하루 사이에 두 번이나 그자를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그것도 대놓고 도망을 쳤다.
‘괴이하고 신비한 사람이야.’
이때, 손을 뻗어 공중에서 떨어지는 무언가를 잡고 확인한 양준은 경악했다.
그는 손에 든 물건을 품에 넣고 재빨리 자신의 대열로 돌아왔다.
누구도 그가 뭘 잡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행동을 본 사람들은 모두 궁금증이 일었다.
여섯 공자들은 여전히 서로를 지켜보며 안색을 살폈지만, 누구의 얼굴에서도 기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갑자기 나타난 신비한 고수가 다른 형제의 부하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비보 쟁탈전은 이미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덟 개의 현급 비보는 모두 주인이 정해졌고, 소량의 천급 비보만 아직도 쟁탈 중에 있었다.
잠시 뒤,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여섯 대열의 무인들은 싸움을 끝내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맨 처음 시작할 때처럼 공자들은 파경호를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서 있었다. 하지만 각 대열마다 최소 사분의 일 정도 되는 인원들이 줄어들어 있었다. 줄어든 사람들 중에는 신유 경지 무인도 있었다.
양항, 양신, 양영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세 번째 비보가 나타났을 때, 세 대열의 사람들이 무방비상태로 크게 당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열세는 더 심화되었다. 다행히 싸움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전멸할 수도 있었다.
모든 무인들이 노기 띤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승 싸움에서 척을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계승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적으로 보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승 싸움이 끝난 뒤, 서로 척을 진 세력들 사이에 일어나는 생사를 건 싸움은 불가피했다. 따라서 비보 쟁탈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장내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양준도 손해를 입었지만 수확이 더 많았다. 그의 대열에서 얻은 비보의 수가 남들보다 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양준은 혼자서 현급 비보 두 개를 얻었다. 이것은 어떤 비보보다도 큰 수확이었다.
양위는 뒷짐을 지고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보들을 가지고 돌아갔다. 곧이어 양소와 양항이 함께 떠나갔고, 양신과 양영도 아쉬운 마음으로 물러갔다.
큰 전투를 치른 탓에 모두 다른 사람에게 시비 걸 여력이 없었다.
“몸 상태는 좀 어때?”
양준은 봉원주에 맞은 뒤로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있는 영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구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진원을 돌릴 수 없습니다. 봉인된 경맥을 푸는 데 최소한 두 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가 손쓴 것이기에 혈시라도 쉽사리 풀 수 없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영구가 진원이 봉인되면 그에게도 큰 손해였다. 영구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 어떤 적수에게도 위협적이었다. 지금 이 위협감이 사라졌으니 곡고의와 소순 두 사람밖에 의지할 수 없었다. 그들도 강하긴 했지만, 은신술 쪽으로는 영구가 훨씬 더 뛰어났다.
‘돌아가서 몽 주인한테 해결책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네. 만약 몽 주인도 안 된다고 하면 영구는 정말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하겠군.’
“돌아가자.”
양준이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거 받아.”
동경한이 걸어오더니 양준에게 손바닥만 한 단검을 넘겨주었다. 바로 양준이 마음에 들어 했던 신혼 비보였다.
“챙겼네?”
양준이 미소를 짓더니 사양하지 않고 건네받았다. 단검을 손에 쥐는 순간, 차가운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신식으로 감지해 보니 그의 신식과 매우 부합하는 비보였다. 잘 흡수한다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듯했다.
“이 형님이 나섰는데 안 될 리가 있겠어?”
동경한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송 녀석, 나와 맞서려고 하다니. 흥,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고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이 비보를 얻을 때 한 여인의 도움을 받았어.”
“여인?”
양준은 손에 든 단검을 만지작거리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응. 예전에 본 듯한데 당최 떠오르지가 않는단 말이야. 그 여인이 이걸 나에게 던져 줬어.”
동경한은 좀 전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느 대열의 사람인데?”
양준이 깜짝 놀라 물었다.
“구경꾼이었어.”
“예뻤어?”
곽성진은 여인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여 음흉한 얼굴로 물었다.
“예쁘다마다. 게다가 아주 요염하기까지 했어.”
동경한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히죽거렸다.
“게다가 쌍둥이인지 옆에 그녀와 똑같게 생긴 여인이 있더라. 여송도 진원 경지 7단계이니 실력이 약한 편은 아닌데 그 여인에게 맞아 데굴데굴 굴렀지 뭐야. 무척이나 강해 보였어.”
“쌍둥이라고?”
양준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는 왠지 쌍둥이가 꼭 호교아와 호미아일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혈전방과 풍우루의 사람들은 진작에 그의 관저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니 자매가 아직도 화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경한은 잠시 멍해 있다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아까 저쪽에서 구경하고 있더만,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비보 쟁탈전이 끝나고 구경꾼들도 흩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양준은 동경한이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았지만 찾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급히 신식을 펼치자, 사방 이십 리 범위의 모든 것이 손바닥 안이었다.
신식을 펼치자마자, 그는 두 갈래의 남다른 생명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이 달랐다. 사람의 용모처럼,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의 기운은 판에 박힌 것처럼 완전히 똑같았다. 또한 몸속의 진원도 서로 어우러지며 흐르고 있었다. 현묘한 법칙이 그녀들의 몸을 감싸면서 둘은 마치 한 몸처럼 보였다.
‘찾았다!’
양준은 싱긋 웃더니 신형이 번쩍하고 날아갔다.
“뭐 하는 거야?”
곽성진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망나니인 그라도 지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급히 사람들을 지휘했다.
“빨리 따라가.”
계승 싸움에 참여하는 양씨 가문의 공자는 언제 어디서 노려질 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었다.
사람들은 얼른 비보들을 챙겨 들고 일제히 양준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