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6장. 의문의 중년 남자
“고의, 우리 관저에는 신비한 사람이 여럿 있는 것 같아.”
영구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곡고의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무애는 말할 것도 없었다. 황구주의 봉원주를 손쉽게 해제한 것만 봐도 수단이 대단했다.
그리고 새로 온 쌍둥이 자매도 매우 신기했다. 분명 진원 경지 8단계밖에 되지 않는데, 영구나 곡고의 모두 그녀들이 정말 싸운다면 신유 경지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일반적인 신유 경지 3, 4단계도 그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할 듯했다.
또 양준의 사저도 마찬가지였다. 면사포를 쓰고 매일 연단방을 출입하면서 그 안에서 각종 단약들을 만들어 내는데, 그녀가 만든 단약들은 등급이 아주 높은 데다 단문까지 있었다. 그녀 덕분에 현급 단약은 양준의 관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것 외에도 그녀의 실력 역시 놀라운 속도로 향상되고 있었다. 이곳에 왔을 때는 갓 신유 경지를 돌파한 수준이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신유 경지 2단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완벽하게 안정적으로 경지를 굳히고, 신유 경지 3단계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녀가 폐관 수련하는 것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경지가 그렇게 빨리 오르는 거지?’
게다가 그녀가 만든 단약을 먹은 뒤로 관저의 공자, 낭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멋져지고, 여인들은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모두 환골탈태한 것 같았다. 실력이 하응상처럼 무시무시하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인 수준보다 훨씬 빨리 오르고 있었다.
가장 신비로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양준이었다.
곡고의와 영구의 상처는 진작에 완치되었다. 완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생긴 내상도 모조리 사라졌다. 나중에 들어온 소순도 며칠 사이 고질병도 훨씬 좋아졌고, 수련 속도도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분명 양준이 그들에게 나눠 준 지급 단약 덕분이었다.
‘그 안에 도대체 뭐가 담겨 있는 건지 알 수 없단 말이야.’
그리고 양준의 수단 역시 신기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미 수많은 활약을 펼쳐 두 사람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인재가 계속 나온다지만 이번 세대에는 왜 이렇게 천재들이 많은 거지? 게다가 그들 모두 공자님 곁에 모여 있어.’
“고의, 그러고 보니까 나 조금만 있으면 신유 경지 9단계에 오를 것 같아.”
영구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흠흠, 나도 그래.”
곡고의도 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 수련 속도가 원래 이렇게 빨랐었나?”
영구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곡고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냥 이렇게 많은 천재들이 공자님 곁에 있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져. 그들이 공자님한테 몰려든 걸까? 아니면 공자님이 그렇게 만드신 걸까?”
영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곡고의는 안색이 변하더니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영구가 일깨워 주자, 그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천재들이 한 공자의 관저에만 모여들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도 처음에는 그다지 출중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자질이나 실력이 일반 무인들보다 좀 강하다고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같이 뛰어난 기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양준의 관저에서는 연이어 하나둘 정체기를 돌파하고 더욱 높은 경지로 진급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양준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가정했을 때, 도대체 무슨 수단을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양씨 가문의 화룡지도 이렇게 뛰어난 기능은 없었다.
*전성에서 멀리 떨어진 석성(石城)의 한 술집.
장사가 잘되어 2층에는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창가에 있는 탁자에 피골이 상접한 중년 남자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탁자에는 크고 작은 술 주전자 몇십 개가 놓여 있었다. 중년 남자는 이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전혀 술 마신 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음산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래쪽 길가의 행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실력이 좀 뛰어난 무인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음침한 그의 눈동자에서는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먹잇감을 만난 듯한 눈빛으로 사람을 통째로 삼킬 것만 같았다.
살인을 저지를 것만 같은 그의 낯빛은 한동안의 갈등과 망설임을 거쳐 겨우 진정되었다. 그는 탄식하며 눈앞의 술 주전자를 들고 호탕하게 들이켰다. 그러고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배고파 죽겠네.”
그의 눈동자는 2층 손님들의 몸을 끊임없이 훑고 있었고, 목에서는 억눌린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났으며, 표정은 수시로 바뀌었다. 마음속 욕망을 힘들게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창운사지가 좋았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중년 남자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심부름꾼은 거듭해서 술을 가져다주고는 매번 두려움에 싸인 채 물러갔다. 이 귀신과도 같이 말라빠진 중년 남자에게 접근할 때마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중년 남자가 한순간 악마가 되어 자신을 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중년 남자가 한창 갑갑해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 전성에서 있었던 비보 쟁탈전에 대한 이야기로, 몇몇은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실감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희 아직 모르지. 중도 제일 공자는 이제 더 이상 류씨 가문의 류경요가 아니래.”
“류경요가 누구한테 진 거야?”
여러 사람들이 놀랐다.
“진 건 아닌데, 양씨 가문 막내 공자가 진원 경지 8단계인데도 류경요의 두 초식을 막아 냈거든. 류경요는 신유 경지 3단계야. 경지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도 막상막하로 싸웠다는 말이지. 시간이 지나 막내 공자가 류경요와 같은 경지가 되면 반드시 그를 이길 수 있을 거야.”
“진짜?”
“당연하지. 내가 직접 봤어. 막내 공자가 정말 보통이 아니야. 나이가 어린 데도 무공이 강하고 휘하에도 일등 세력이 열몇 개나 모였잖아. 내가 봤을 때, 이번 계승 싸움에서 마지막 승자는 막내 공자일지도 몰라.”
“그래? 근데 막내 공자는 아무 인맥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실력을 감춘 거지.”
“막내 공자 이름이 양준이었나?”
“그래, 맞아. 양준 공자야…….”
양준이라는 말을 듣자, 술을 들이켜고 있던 중년 남자는 문득 그 화제에 흥미가 동했는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탁자에 앉아 있던 이들이 쉬쉬하지 않았기에 2층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이때, 누군가 비웃으며 반박했다.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류 공자가 그날 전력을 다하지 않아 양준이 두 초식을 받아 낸 거야. 그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 류 공자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알아?”
그자는 가볍게 웃으며 뜸을 들이다가 다시 여유 있게 말을 이었다.
“‘양 공자, 당신은 지금 내 상대가 못 된다. 그러니 수련을 쌓은 뒤에 다시 싸워 보자’라고 했어. 이것이야말로 중도 제일 공자로서의 기품이지. 류 공자가 두 초식을 양보해 준 거잖아. 양준이 그렇게 대단한 놈인 줄 알아?”
좀 전에 말하던 무인은 수긍하지 않았다.
“류경요가 말만 그렇게 한 거지. 세 번째 초식을 펼쳤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양준이야말로 현재 중도 일인자야.”
“헛소리!”
둘의 말다툼은 곧 2층 전체로 퍼졌다. 현재 대한국의 무인들은 모두 계승 싸움을 주목하고 있어 계승 싸움의 추세와 앞으로의 국면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2층에 있던 무인들은 두 세력으로 나뉘어 다퉜다.
오직 창가에 앉은 중년 남자만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점점 더 음산해져 소름이 끼쳤다.
사람들은 반나절을 다퉜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말을 꺼냈던 무인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중년 남자에게 소리쳤다.
“이봐! 당신이 얘기해 봐! 지금 중도의 일인자는 누구지?”
“이 늙은이의 의견이 궁금한가?”
중년 남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래.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니 분명 확실한 당신만의 의견이 있는 거겠지. 말해 보게. 그런데 그 나이에 스스로 늙은이라고 하다니? 하하하.”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두들 중년 남자가 늙은 티를 내기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2층은 금세 조용해졌고, 모든 이의 시선이 중년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중년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야 말했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양준 공자가 중도 일인자일 것이네! 중도뿐만 아니라 장래의 천하 제일도 양준일 것이야. 하하하!”
모두들 깜짝 놀랐다. 심지어 양준을 지지하던 이들도 중년 남자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해 몰래 고개를 저었다.
양준이 현재 중도 일인자라는 것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지만, 미래의 천하 일인자까지는 너무 멀리 간 것이었다.
무도는 끝이 없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신유 경지 이상의 절정 고수들도 감히 천하무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이 자가 미쳤나…….”
류경요를 지지하던 무인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양준이 뭐라고 천하 제일이니 뭐니…….”
그는 말도 채 못 하고 순간 굳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목을 조이듯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다가 다들 안색이 급변했다.
무인의 얼굴빛은 중독된 듯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고, 눈동자에는 검붉은 실핏줄이 가득했으며 눈, 코, 입, 귀에서 죄다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 순간, 눈으로 볼 수 있는 원기가 그의 정수리에서 튀어나오더니 공중에서 몇 바퀴 돌고는 창가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에게 날아갔다.
중년 남자는 입을 크게 벌려 바로 원기 덩어리를 삼켜 버렸다.
이상한 것은 원기를 삼키자 피골상접하던 중년 남자의 몸이 불어났다는 것이다. 여전히 깡말랐지만 방금 전보다는 나아 보였다.
낯빛이 칠흑같이 변한 무인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