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58화 (458/853)

제 458장. 일촉즉발의 상황

서둘러 떠난 일행은 보기종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몇몇 무리의 목표물이 되었다.

사실 보기종 밖은 매일같이 시끌벅적했다. 약왕곡과 마찬가지로 무기를 제련하러 오는 무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러나 이 몇몇 무리들은 이상하게도 뒤쫓기만 할 뿐 말도 걸지 않아 무척이나 신경 쓰이게 했다.

그들에게 하루 종일 뒤쫓긴 후 다음 날, 보기종의 한 신유 경지 무인이 참지 못하고 직접 가서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양씨 가문의 공자들이 보기종을 포섭하려고 보낸 세객(說客)들이었다.

약왕곡 사람들은 이미 양준을 찾아갔으므로 보기종의 무기 제련에 능통한 고수들이 인기가 높아졌던 것이다.

양소, 양항, 양신, 양영 심지어 양위까지도 모두 세객을 파견했다.

양준을 돕기 위해 계승 싸움에 참가하려던 도양 일행은 당연히 그들의 포섭에 응할 수가 없었다.

보기종에서 거절해도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경계하는 한편,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내가 못 가지면 남에게도 못 준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며칠을 따라다니다가 그들은 드디어 기회를 엿보았다.

귀왕곡의 한 제자가 부주의로 신분을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몇몇 무리들은 곧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오씨 어르신, 귀왕곡 놈들만 내어 주시면, 보기종의 제자들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보기종은 무기를 제련하는 데 있어서 천하 제일이니, 언젠가 저희가 신세를 질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왼쪽 무리 중 신유 경지 6단계 무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너도나도 맞장구쳤다. 그들은 보기종에서 귀왕곡 제자들을 내놓기만 한다면 사파와 결탁한 사실을 묻어 주겠다고 은연중 암시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오암(伍巖)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그들의 의도를 모를 수가 있겠는가? 바로 그들의 의도를 알기에 더욱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도양! 이리 오거라.”

화가 잔뜩 난 오암은 발산할 곳이 없어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도양이 목을 움츠린 채, 앞으로 나아가 공손하게 물었다.

“사숙, 분부할 일이 있으신지요?”

오암은 냉소했다.

“이놈의 자식아, 담도 어지간히 크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귀왕곡의 사람을 받아들인 것이야?”

오암도 며칠 전에 귀왕곡의 제자가 들통난 뒤에야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진작 알았다면, 보기종의 고위층이 어떻게 귀왕곡의 제자들을 문파에 들이겠는가?

도양은 개의치 않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함께 고난을 이겨 낸 사이가 아닙니까! 저와 조용 사매는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미 저세상으로 갔을 겁니다.”

오암은 눈을 부라렸다.

“너를 도와준 이는 양준이 아니더냐? 어찌하여 귀왕곡이 됐느냐? 도대체 진실이 무엇이냐?”

“다들 함께 도와주었습니다.”

도양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사숙, 저희 보기종도 약왕곡과 마찬가지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으니, 세상 사람을 다 같은 형제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파니 정파니 다 부질없는 것 아닙니까?”

“어찌 됐든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놈이 해결하도록 해라. 그러지 못하면 이번에 돌아가서 네놈을 파문할 것이다.”

“사숙! 고정하세요. 제가 지금 열심히 방법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도양이 금세 울상을 했다.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게 좋을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도양도 자신이 없었다.

귀왕곡은 모두 젊은 제자들로 신유 경지가 한 명도 없었다. 보기종은 신유 경지 몇 명과 여러 가지 비보들이 많았지만, 정말로 싸우게 되면 그들의 상대가 안 되었다.

‘몰래 사람을 보내 양준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양준이 만약 이쪽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마중하러 올 것이다. 그렇다면 전성에 들어가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 사형, 미안해. 우리 때문에 어르신한테 혼나고.”

냉산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니야. 사숙께서도 말씀만 저렇게 하는 거지, 정말로 날 쫓아내지는 않으실 거야.”

도양은 빙그레 웃더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보기종은 인원이 적어 원래부터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매번 제자를 들일 때도 약왕곡보다 더 엄격했다. 대신 보기종의 제자들마다 무기를 제련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다들 대성을 이루었다. 그리고 도양은 이번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도양이 보기종을 더욱 빛내기를 기대하는 오암이 그를 파문시킬 리가 없었다.

도양은 말을 하면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주위에 다섯 무리가 호위하며 따르고 있어 보기에는 그럴듯했지만 사실은 답답할 뿐이었다. 싸워서 이길 수도 없고, 말로는 통하지 않았다. 상대가 그의 말을 들을 리도 없었다. 게다가 전성에 가까워짐에 따라 다섯 무리도 점차 인내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서는 곧바로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만 같았다.

보기종은 약왕곡처럼 든든하고 뛰어난 지위를 갖고 있지 못했다. 약왕곡 사람들은 밖에서 돌아다녀도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보기종은 어느 정도 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세력들이 알게 모르게 보기종을 흡수하려고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다.

다행히 보기종의 인맥도 적지 않아, 매번 재난이 닥쳐올 때마다 어렵사리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되면 위험했다. 반드시 강력한 세력의 보호를 받아야만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바로 이런 원인 때문에 보기종 고위층은 계승 싸움에 참여하겠다는 도양의 청을 들어준 것이었다. 양씨 가문에서 보기종을 보호해 주기만 한다면 양준을 도와주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행은 또다시 반 시진쯤 빠르게 이동했다. 이제 전성과는 팔백 리 정도 남겨 두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를 남겨 두자 뒤쫓아오던 다섯 무리는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 간에 눈빛을 교류하는 것이 이제는 행동에 나서려는 것이 분명했다.

보기종과 귀왕곡 사람들도 긴장한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낯빛이 싸늘해지면서 몰래 경계했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 무리에서 먼젓번에 말했던 신유 경지 고수가 차갑게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사파 무리를 감싸 주기로 하신 모양입니다. 그리 하신다니,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잠시 뒤에 무례한 점이 있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오암이 차가운 표정으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

“무엇을 하려는 건가?”

그자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정파와 사파는 양립할 수 없으니, 저희는 사파를 멸할 생각입니다. 어르신께서는 보기종의 제자들더러 얌전히 있으라고 이르십시오. 싸우면서 혹여 그쪽으로 불똥이 튈지도 모르니까요.”

오암이 냉소하며 말했다.

“내 뒤에 있는 젊은이들을 모두 사파로 점찍은 거 아닌가? 그들이 싸우든, 안 싸우든 자네들은 모두 잡아갈 테니까.”

“그럴 리가요. 보기종의 대제자인 도양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사파인지, 아닌지는 잡아 가서 문초하면 다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귀왕곡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보기종까지 잡아들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대로 보기종의 제자들을 잡아다가 양씨 가문 공자들을 위해 일을 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정말 싸움이 벌어진다면 보기종의 제자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이는 상대가 떳떳하게 사람을 잡아 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속셈이 이미 훤히 다 보였다.

오암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보아하니 싸움은 피하기 어렵겠구나. 저들이 공격하면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거라. 못 도망쳐도 반항은 하지 말고. 너희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도양, 넌 최대한 빨리 전성으로 가 양준을 찾아서 이 일을 직접 처리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도양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양준에게 보기종에서 단 한 명이라도 죽거나 다치면 다시는 그를 위해 무기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도 전해라.”

오암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미 결정을 내리신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신유 경지 고수가 거듭 다그치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말이 끝나자, 다섯 무리는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목표물은 인파 속의 보기종 제자였다.

보기종은 이번에 스무여 명을 동원했기에 똑같이 나눠 가져도 적지 않았다. 적어도 전성에 돌아가 양씨 가문 공자들에게 할 말은 있었다.

보기종과 귀왕곡 사람들은 빠르게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 방금 전에 오암이 분부한 대로 사방으로 흩어져 살길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그림자 하나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줄곧 신형을 감추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무시무시한 신식이 장내를 뒤덮었다.

공격하던 다섯 무리는 순간 멈칫하고서 하나같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서둘러 진원을 돌려 거대한 압박을 막아 냈다. 동시에 떨리는 눈동자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반면 보기종과 귀왕곡 사람들의 얼굴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냉산은 중년 남자가 나타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파동이 전해졌다. 그녀가 이상한을 알아차리고 자세히 감지하려고 하자 파동은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중년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며 까만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중년 남자도 그녀를 무심코 힐끗 보더니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곧이어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점차 차가워지더니 음산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지마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쪽수로 밀어붙이려 하다니, 재미있군.”

그의 태도는 어쩐지 묘하게도 우호적이라 할 수도, 그렇다고 적대시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지나가던 고수가 싸움을 구경하는 듯했다.

아무도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공포스럽고 음산한 신식이 뒤덮인 가운데, 어떤 미세한 동작이나 표정 변화도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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