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60화 (460/853)

제 460장. 우리 가문의 도련님이시네

오암은 중년 남자의 기이한 수단에 깜짝 놀라 조용히 감지해 보았다. 놀랍게도 원래 신유 경지 6단계였던 무인은 지금 놀라운 진원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온몸의 기운도 포악하고 잔인하게 변해 있었다.

“크아악……!”

그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짐승 같은 포효가 울려 퍼지자, 날씨가 급변하면서 커다란 구름이 그의 머리 위에 모여들었다. 곧이어 그의 이마에 난 혹에서 붉은빛이 튀어나오더니 하늘을 갈랐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피로 먹여 살린 값은 하겠네.”

지마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손을 쫙 펼쳤다. 신유 경지 6단계 무인은 곧 핏빛으로 변해 날아오더니 지마의 손바닥으로 숨어들며 사라져 버렸다.

모두들 놀라서 넋을 잃었다.

중년 남자가 연이어 선보인 수단들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수단인 것 같았다.

중년 남자의 잔인함과 악랄함을 지켜본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은 금세 우울해졌다. 그야말로 늑대 굴을 벗어나자마자 호랑이 굴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중년 남자는 다섯 무리를 죽이는 것이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처럼 쉬웠다.

‘우리를 죽이는 건 그냥 눈썹만 찌푸려도 가능할 거 같은데?’

지마는 핏빛을 거두어들인 다음, 놀랍게도 좀 전의 흉악한 표정을 지우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땅 위에 내려서더니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됐다. 잔챙이들은 다 처리했으니 이만 출발하지.”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들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자네들을 죽일까 두렵나?”

그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실소했다.

오암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얼른 말했다.

“아닙니다. 대협께서 저희를 구해 주셨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들이 양준을 도와주러 가는 이상, 죽일 생각이 없네. 나도 마침 양준을 찾으러 가는 길이니 말이야. 흐흐!”

지마가 부드러운 표정을 보이자, 사람들은 금세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자네들이 양씨 가문의 다른 공자를 도우러 간다면 결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것이네.”

방금 풀어졌던 분위기가 다시 긴장되었다.

오암이 얼른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양준 공자를 도우러 가는 길입니다.”

‘양씨 가문의 막내 공자는 도대체 밖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다닌 거야? 이거 혹시 전설 속의 사주는 아니겠지?’

인파 속에서 냉산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를 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혹시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오암의 귀가 움찔했다. 그 역시 얼른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나 지… 음, 지씨로만 알고 있으면 되네.”

“지 대협이셨군요.”

냉산은 더 캐묻지 못하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의혹을 담고서 다시 물었다.

“지 대협, 혹시 저희 이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귀왕곡 제자들은 대경실색하며 얼른 몰래 냉산에게 눈짓했다.

중년 남자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귀왕곡보다 몇천 배는 더 잔인했다.

‘사매는 피하지 못할망정, 무슨 생각으로 저런 사람과 친한 척하려 하는 거지?’

뜻밖에도 지마는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냉산은 더욱 망연해졌다. 그녀는 까만 눈썹을 찌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익숙한 느낌만 들 뿐, 대협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죠?”

냉산은 귀왕곡의 떠오르는 신예로 기억력이 비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난 적 있는 이는 거의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눈앞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처럼 실력이 강한 이를 만난 적이 있다면 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냉산은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익숙함은 낯이 익은 것이 아니라 느낌일 뿐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눈앞의 남자는 천랑국의 자맥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와 자맥은 신혼에 양준의 낙인이 찍혀 있기에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왜 지 대협에게 자맥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지? 이렇게 강한데 양준이 지 대협의 신혼에 낙인을 찍었을 리도 없고.’

냉산은 자신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몰래 고개를 저었다.

지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내가 자네를 봤을 뿐, 자네는 날 본 적이 없기 때문이네.”

냉산은 더욱 혼란스러웠지만 계속해서 캐묻기가 난감했다.

“됐네. 우선 가면서 얘기하지. 여기서 전성까지는 팔백 리밖에 안 되네.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걸세.”

지마는 손을 흔들며 앞장서 나아갔다.

귀왕곡과 보기종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눈치였다.

오암은 머뭇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가자꾸나.”

‘이 자는 너무 무서운 인간이야. 왜 이유 없이 우리를 도와주는 지와 상관없이, 만약 정말로 우리를 죽이려 했다면 그의 무공으로 아마 순식간에 전멸시켰을 거야. 복이든, 화든 일단 지금은 저 자의 뜻에 따르는 게 좋겠군. 확실한 것은 전성에 가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터이니.’

일행 서른여 명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채 그를 뒤따라갔다.

한참을 걷다가, 지마가 문득 고개를 돌려 냉산에게 손짓했다.

“자네, 이리 와봐.”

냉산이 대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심혁이 나지막하게 당부했다.

“조심해.”

“응.”

그러나 냉산은 아무 걱정도 없이 태연하게 앞으로 나아가 지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손하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허허, 긴장을 풀게나.”

지마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냉산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이때 지마가 한 손을 쫙 펴고 그녀를 잡으려 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반항하려 했으나 진원을 채 모으기도 전에 지마가 먼저 손을 거두어들였다.

귀신이 울부짖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자, 냉산은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보다가 얼굴빛이 급변했다. 그녀의 체내에 있던 귀왕인이 지마에게 잡혀 나온 것이었다. 흐릿한 망령은 발버둥치고 꿈틀거리며 울부짖었지만 지마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귀왕곡에는 사람마다 수련하는 귀왕인이라는 무공이 있었다.

귀신을 잉태하는 곳에서 생겨난 영체(靈體)를 귀왕곡 제자들이 특수한 방법으로 체내에 흡수한 다음, 수시로 본인의 정신과 기운으로 사육하는 무공이었다.

적과 대적할 때면 귀왕인으로 불시에 기습이 가능했다. 때문에, 귀왕곡 제자들은 상대와 싸울 때, 언제나 이 대 일로 싸울 수 있었다.

냉산과 같은 젊은 세대 제자들은 아직 귀왕인을 그 정도로 수련하지 못했기에 귀왕인의 위력을 다 발휘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귀왕곡 제자의 몸속에서 강제로 귀왕인을 잡아냈던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고수는 냉산이 전혀 감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체를 잡아내었다.

그녀가 질문하려는데, 지마가 검은 안개를 토해 귀왕인의 영체를 내리쳤다.

울부짖으며 발악하던 귀왕인의 영체는 마치 영양을 흡수한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방금 전의 초조함과 불안함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일그러졌던 얼굴에서는 아주 만족한 듯한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냉산은 어안이 벙벙해 입가에서 맴돌던 말을 얼른 삼켜 버렸다.

“자, 받아.”

지마는 미소를 띤 채 귀왕인의 영체를 돌려주었다. 냉산은 얼른 그것을 체내에 다시 흡수했다.

“사매!”

심혁은 방금 전의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그는 울화가 치밀어 어두운 표정으로 달려와 냉산을 감싸며 지마를 노려보았다.

“배짱이 두둑하군.”

지마가 냉소했다.

냉산이 급히 말했다.

“사형, 오해야. 이 분께서는 날 도와주신 거라고.”

그녀는 말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뭐?”

이에 심혁은 황당해했다.

“내 귀왕인이 이제 잠들었어.”

냉산이 설명했다.

“뭐라고?”

심혁은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귀왕인의 영체는 숙주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는데,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매번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면 실력이 대폭 향상되었다.

냉산 체내에 있는 귀왕인의 영체는 이미 세 번 진화한 상태였다. 다음번 진화는 그녀가 신유 경지를 돌파할 때에야 진행될 듯했다. 그때가 되면 귀왕인의 영체는 일반 신유 경지 고수의 실력 못지않게 될 것이다. 이는 적어도 일이 년 뒤에나 진행될 일이었지만, 지금 지마에 의해 진화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냉산은 심지어 이번 진화를 거쳐 귀왕인의 영체가 환골탈태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마가 토해 낸 검은 안개 덕분이었다.

“고맙습니다. 대협!”

냉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얼른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별거 아니야. 자네들이 양준을 도와주러 가는 것에 대한 보상이지. 앞으로 영체를 잘 다루도록 해. 깨어나게 되면 영적 지능을 갖게 될 거고, 자네의 충실한 친구가 되어 줄 거야.”

지마가 의미심장하게 가르쳐 주었다.

“영체에 영적 지능이 생긴다니…….”

귀왕곡 제자들은 입을 딱 벌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귀왕인의 영체가 영적 지능이 생긴다는 것은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귀왕곡의 기록에 따르면 확실히 이런 일이 있었다. 이는 몇백 년 전에 귀왕곡 제자 중 한 명이 신유 경지 이상에 이르렀을 때 생긴 변화였다. 지금은 현임 귀왕곡 곡주인 귀려 체내의 영체도 아직 영적 지능을 지니지 못한 상태였다.

귀왕곡 제자들은 그제야 이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깨달았다.

냉산은 흥분해서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대협께서는 양준과 어떤 사이신가요?”

“그게… 양준이 우리 가문의 도련님이시네.”

지마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휴, 하마터면 말실수할 뻔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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