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61화 (461/853)

제 461장. 올 사람이 또 있어?

“그럼 지 대협은 양씨 가문 사람이신가요?”

냉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음, 딱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지마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대협, 대협……!”

심혁이 수줍은 얼굴로 다가와서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굽신거리며 말했다.

“저희도 사매와 마찬가지로 양준을 도우러 가는 길인데 저도 좀…….”

지마는 그를 힐끗 보고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체내의 영체를 진화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나? 그게 다 내 힘을 깎아서 해주는 것이네.”

심혁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아쉬운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스스로 수련하면 죽을 때까지 수련한다 해도 그의 체내 영체에 영적 지능이 생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 눈앞에 이런 기연이 있는데,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아마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이다. 그런데 지마가 자신의 힘을 깎아서 해주는 것이라고 하자, 다시 청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뜻밖에도 지마가 생각을 바꿨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자네들을 도와주지.”

심혁은 기뻐하며 감사의 인사를 거듭하고는 등 뒤로 손짓해 동료들을 불렀다.

“다들 여기로 와! 빨리!”

나머지 귀왕곡 제자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달려왔다. 그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아부를 늘어놓았다.

지마는 방금 전과 같이 그들의 체내에서 귀왕인을 하나하나 잡아내 입김을 불어서 다시 놓아주었다.

얼마 안 되어 귀왕곡 제자들의 귀왕인이 모두 안정되었다.

귀왕곡 제자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서로의 눈에서 흥분과 기대감을 읽었다. 방금 전, 지마의 말만 들었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귀왕인의 영체가 몸 속으로 다시 돌아오자, 그들은 이번 진화가 평소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전성에 가서 양준을 만나지도 못했는데, 도중에 만난 양준과 인연이 있는 고수가 이런 큰 선물을 주다니. 전성에 도착해 지 대협과 함께하면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귀왕곡 제자들의 기연에 보기종 제자들 모두 부러워했다.

도양은 아예 달려와 히죽거리며 말했다.

“대협, 저희 역시 양준을 도우러 가는 길입니다. 혹시 저도…….”

“자네는 뭘 원하지?”

지마도 화내지 않고 미소 지으며 그를 힐끗 보았다.

도양은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혹시 진원의 순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으십니까? 한 번에 두 단계를 뛰어넘을 정도로요.”

연기사들이 무기를 제련하는 것과 연단사들이 단약을 만드는 것은 같은 이치였다. 때문에 체내 진원의 순도와 응집력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다. 도양은 연기사 출신이기에 당연히 이런 방면의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양의 질문에 지마는 냉소를 지었다.

“그건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어. 다 스스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야.”

“그렇군요…….”

도양은 조금 실망했다.

“듣자 하니… 자네들은 보기종이라고?”

“맞습니다.”

“무기를 제련하는 일로 말하자면 내가 또 조금 가르쳐줄 수 있지. 흐흐, 자네들이 얻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네.”

오암은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으며 지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기를 제련하는 방면에서 이 세상에 보기종을 따를 자는 없었다. 지마가 아무리 실력이 강하고 무공이 괴이하다고 해도 무기 제련에서는 보기종을 넘지 못할 터였다. 설령 신유 경지 이상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암은 지마의 말을 그냥 허풍으로 받아들였다.

“대협께서도 연기(煉器)를 할 줄 아십니까?”

반면 도양은 눈이 번쩍 뜨였다.

지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할 줄 아네. 그리 자신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네들을 가르쳐줄 정도는 되지.”

이에 도양마저 표정이 미묘해지면서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세상에 보기종 앞에서 연기의 도를 뽐내는 이가 있다니.’

하지만 상대는 손속이 잔인하여 혹시 심기를 건드렸다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도양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르침을 청했다.

도양은 아무 기대감 없이 그저 그가 화낼까 두려워 가르침을 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간 이야기를 나눈 뒤, 그의 얼굴빛이 진중해졌다. 지마는 연기의 도에 능통하지는 않았다. 아마 직접 무기를 제련해 보지 않은 탓인 듯했다. 그러나 그가 이해하고 있는 기법과 연기 지식은 도양의 이해와 견식을 훨씬 뛰어넘어 들어 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도양뿐만 아니라 좀 전에 지마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오암까지 얼굴빛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다.

반 시진이 지난 뒤, 오암은 끝내 참지 못하고 토론에 참여해 연기의 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피력했다. 지마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여유 있게 대응했다.

*전성의 양준 관저 내 하응상의 방.

양준은 심호흡을 했다. 수중의 뼈 방패가 드디어 빛이 되어 그의 체내에 흡수되었다.

현급 비보 하나를 흡수하는 데 양준은 족히 닷새나 들였다. 그것도 진원을 끊임없이 공급했기에 이 정도 걸린 것이었다. 만약 같은 경지의 다른 무인이었다면 현급 비보를 흡수하는 데 적어도 열흘 내지 보름은 걸려야 했을 것이다.

뼈 방패를 흡수하면서 양준은 그것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현급 비보답게 방패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듯했다. 잘 사용한다면 공격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거울이나 단검이 아닌 뼈 방패를 먼저 흡수한 것은 양준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거울은 등급이 뼈 방패보다 높지만 흡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단검은 신혼 비보로, 양준의 신식이 강하기는 하지만 아직 식해가 없으므로 흡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뼈 방패가 우선 순위가 되었던 것이다.

뼈 방패가 흡수되자 양준은 거기에 새겨진 법진(法陣)과 현급 비보의 현묘한 법칙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저도 모르는 사이, 경지가 크게 향상되었다. 만약 거울마저 흡수한다면 진원 경지 9단계에 오를 수 있을 듯했다.

실력이 향상된 다음, 지금의 고비를 돌파하려면 힘의 축적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적 경지와 무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했다.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힘의 축적은 한결 수월했다.

뼈 방패의 현묘함을 연구하던 양준은 문득 머릿속에서 전해지는 파동을 느꼈다.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문밖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다.

“드디어 왔구나!”

양준은 씩 웃으며 천천히 일어나 대문을 열고 나갔다.

“공자님!”

영구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양준은 담담하게 그를 흘끗 보고는 다시 신식으로 그의 몸을 한 바퀴 훑었다. 이내 영구가 완쾌된 것을 확인하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우선 혼자 수련하고 있어. 당분간은 찾을 일이 없으니까.”

“예.”

영구의 신형이 점차 사라졌다.

‘왜 공자님께서는 내 상태를 보고 놀라지 않으시지. 몽 주인이 봉원주를 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그때, 옆방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몽무애가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어느 한 방향을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

“사마의 기운이 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기운이야.”

그러면서 무심코 양준을 힐끗 보았다.

“몽 주인께서도 만난 적이 있는 자입니다.”

양준이 씩 웃었다.

몽무애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실눈을 뜨고서 말했다.

“그 마두인 것이냐?”

“네, 맞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곤룡골 아래에서 몽무애는 일격으로 지마를 양준의 몸속에서 잡아냈었다. 그 당시 몽무애는 영체인 지마를 어찌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준은 몽무애가 지마를 꺼려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눈치챘다.

“그럼 나도 더 이상 관여치 않으마. 도착하거든 날 찾아오라고 하거라.”

몽무애가 덤덤하게 말했다.

양준은 놀라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늙은이의 괜한 노파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두와 엮이는 일은 최대한 조심하도록 해라. 그자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자더러 기운을 좀 누그러트리라고 해라. 전성에 있는 여덟 명의 고수들의 감시도 피해야 하지 않느냐. 어쩌면 벌써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지.”

양준은 순간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마의 기운은 봉신전 태상장로들에게 숨길 수가 없었다. 그가 지켜준다 하더라도, 지마가 도를 넘은 일을 하면 그들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몽무애는 몇 마디 더 하고 뒤돌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양준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마중 나갔다. 지마가 몇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지마뿐만 아니라 냉산의 신혼 파동도 감지할 수 있었다. 냉산이 왔다면 귀왕곡의 제자들도 왔을 터, 이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양준은 나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에게 짧게 지시했다.

“추억몽을 좀 부르거라.”

“네.”

그 무인은 대답하고 서둘러 추억몽을 찾아갔다.

양준이 대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추억몽도 때맞춰 나타났다. 그녀는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왜 불렀어?”

“손님 맞이하려고.”

“손님 맞이? 올 사람이 또 있어?”

추억몽은 까만 눈썹을 살짝 찡그리더니 곧이어 화색이 돌았다.

“그래.”

양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몽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사람이 온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봐서는 틀림없었다.

“사람이야 많으면 좋지. 우리 힘도 점점 커질 테니까.”

“이번에 오는 이들은 좀 다를 거야. 관저 내의 다른 세력이랑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네가 신경 써 줘.”

“무슨 뜻이야?”

추억몽은 양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전까지 누가 오든 양준은 이처럼 당부한 적이 없었다. 강력한 세력이든, 일등 세가이든, 이등 문파이든 똑같이 대했다. 바로 이런 차별 없이 대하는 양준의 태도에 관저의 모든 이들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양준은 그녀에게 새로 오는 이들을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들이 양준과 도대체 어떤 사이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창운사지에서 오는 이들이야. 이제 이해됐어?”

양준은 그녀를 흘끔 보았다.

추억몽은 문득 두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물었다.

“여왕이 부하들을 데리고 오는 거야?”

“아니, 귀왕곡 사람들이야.”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추억몽은 순간 당황하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창운사지에서 왔다면 사파였다. 지금 관저에 있는 문파나 세력들과 원한이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내부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 자식은 언제 또 귀왕곡이랑 연을 맺었지?’

추억몽은 다시금 양준의 넓은 인맥에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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