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63화 (463/853)

제 463장. 그자는 여인입니다

대전에는 양준과 추억몽 둘만 남게 되었다.

“저 분이 누구인지 물어봐도 될까?”

추억몽의 호기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 어차피 네가 숨기는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나도 이제는 익숙해졌어.”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비보로 수련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양준이 물었다. 며칠간 그가 비보를 흡수하는 동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비보를 흡수하고 있었다.

“이틀 정도 지나면 절반은 폐관 수련에서 나올 거야. 너는?”

추억몽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방금 하나 끝냈어.”

“이렇게 빨리?”

그녀의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양준이 얻은 비보는 모두 현급이었다. 그의 경지로 그것들을 흡수하기에 닷새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순간적으로 놀랐다가, 그녀는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동안 양준이 보여 준 상상 이상의 일들이 너무 많아 이제는 면역력이 생길 정도였다.

“보기종에서 왔으니, 너도 이제 바빠질 거야. 그들이 일할 곳은 이미 마련해 두었어. 재료도 많이 쌓아 두었고. 네가 그들을 안내해줘. 그리고 연단방 쪽에 진원을 빨리 회복시킬 수 있는 단약도 만들라고 해. 연기하는 데 진원이 많이 소모되니, 피로 회복에 써야 해.”

“알겠어.”

“그럼 난 이만.”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나 안쪽으로 걸어갔다.

추억몽은 점점 멀어져 가는 양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실룩이다가 그 말들을 다시 삼켜 버렸다. 무슨 영문인지 요 며칠 그녀는 특별히 양준과 몇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다.

양준이 떠나간 다음에야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양준의 신비함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양준이 숨기고 있는 모든 비밀을 파헤쳐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이튿날, 양준은 보기종 처소에 찾아가서 오암과 한참 동안 흥정해 합의를 보았다.

보기종은 약왕곡과 달랐다. 약왕곡 사람들은 하응상에게 연단술을 배우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보기종은 비호를 받기를 원했다.

도양이 문파 고위층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양준을 대신해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그 조건은 바로 양준이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된다면, 대외적으로 보기종이 양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또한 양준이 계승 싸움에서 이기지 못해도, 훗날 그의 힘으로 다른 세력으로부터 보기종을 지킬 수 있어야 했다.

양준은 이 모든 것을 승낙했다.

도양은 양준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문파의 안위에 연관되는 일이기에 젊은 제자로서 그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협의가 끝난 뒤, 보기종 사람들은 곧 일에 착수했다.

오암이 며칠 전 파경호에서 얻은 비보 중에서 현급 이하는 모두 다시 정제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 등급 더 올릴 수도 있고, 설령 등급을 올리지 못한다 해도 원래 것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양준은 마음이 동했다. 비보를 정제하는 것과 제련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정제하는 것은 완제품을 다시금 담금질해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만 남기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정력과 재료를 절약할 수 있었다. 하여, 양준은 그 자리에서 추억몽에게 이를 원하는 무인은 보기종을 찾으라고 소식을 전하게 했다.

보기종의 일을 처리하고 난 뒤, 양준은 쉴 틈도 없이 몽무애의 방으로 달려갔다.

지마는 어제 몽무애를 만나러 간 후로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었다. 두 늙은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양준은 왠지 걱정되었다. 둘이 정말 싸운다면, 아마 그의 관저는 순식간에 가루가 될 것이다.

곧 양준은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몽무애의 방에 들어서 보니,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냉소하고 있었다. 서로 접전을 치른 것 같기도 하고 화기애애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분위기가 묘했다.

“두 분 회포는 충분히 푸셨겠죠?”

양준이 가운데 끼어들면서 웃는 얼굴로 물었다.

“음, 그래.”

몽무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마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마 지마가 손해를 좀 본 듯했다.

“두 분 이야기를 다 나누었으면, 제가 좀 가르침을 청할까 합니다.”

양준이 낯빛을 가다듬고 말했다.

“주인, 무슨 일인가?”

지마가 얼른 물었다.

“그 신비한 고수 말입니다.”

양준은 몽무애를 힐끔 보았다. 몽무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그는 곧 양준이 무엇을 물으려는지 알아챘다.

지난번, 그와 양준은 동시에 신비한 고수의 기운을 감지했으나, 양준이 도착했을 때 그자는 이미 도망쳐 버린 뒤였다. 그리고 그자는 파경호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 현급 비보를 가로채 갔다. 신비한 고수는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양준을 답답하게 했다.

지마는 신비한 고수에 대한 일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궁금해서 바로 물었다.

양준은 그자와 두 번 맞붙은 과정을 간단히 말해 주었다. 이에 지마도 살짝 놀라며 몽무애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그자를 제대로 보지 못한 건가?”

몽무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자가 특수한 기운으로 외부의 탐지를 차단했어. 신유 경지 이상이라도 그자를 탐지하는 건 아마 어려울 걸세. 그자가 자신을 숨기려 한다면 누구도 찾을 수가 없을 거야.”

“대단하군.”

지마가 한마디 감탄하고는 다시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그자가 주인과 혈시랑 싸운 얘기를 들어 보면,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아 보이네.”

신비한 고수는 연단방 근처에서 영구의 영무살에 맞아 경상을 입었었다. 또 파경호에서는 양준이 검으로 습격하자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만약 실력이 몽무애나 지마 정도였다면 그런 상황이 생길 리가 없었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다고 경지가 그리 낮은 것도 아니야. 고수는 확실해.”

“주인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마가 들뜬 표정으로 섬뜩하게 웃었다.

“미리 얘기하는데 이 일에 나를 끌어들일 생각은 말아라.”

몽무애는 양준을 힐끔 보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는 응상이를 지키기 위해서야. 전성의 다른 일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 한마디 중얼거렸다.

“이 나이 먹고 젊은이들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전 두 분의 의견이 궁금할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자를 끌어낼 수 있을지 말입니다.”

몽무애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지마도 조용히 있었다. 몽무애마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데, 지마 역시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자가 다시금 양준의 관저에 나타난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이미 한 번 걸렸는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분간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주인, 그자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서 방법을 찾기 어렵네.”

지마가 웃으며 말했다.

“정보는… 하나 있어.”

양준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자 몽무애와 지마가 동시에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여인입니다.”

양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몽무애는 미간을 찌푸렸다.

양준은 빙그레 웃더니 품에서 머리카락을 꺼내 두 사람 앞에 내놓으며 말했다.

“제가 파경호에서 그자와 겨루던 중 잘라 낸 머리카락입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이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머리카락이 왜 이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두 분은 무공이 뛰어나고 견식이 넓으니 혹시 이런 색의 머리카락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몽무애와 지마는 머리카락을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머리카락은 일반 여인의 머리카락과 전혀 달랐다. 일반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카락이 모두 검은색이지만, 이 머리카락은 담청색이었다. 머릿결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는데 유독 색깔이 특이했다.

한순간 당황하던 몽무애와 지마는 저도 모르게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양준은 둘의 안색을 살피면서 그들이 뭔가 떠올렸을 거라고 추측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몽무애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여인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이러한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추측하자면 그녀가 익힌 무공이나 체질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거야. 양준, 그 여인을 얕보면 안 된다. 평범하지 않은 내력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몽무애의 말속에는 또 다른 뜻이 있었다.

양준은 그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마가 음험하게 웃었다.

“주인, 만약 이 머리카락이 정말 그자의 몸에서 잘라 낸 거라면 내게 찾을 방법이 있을 것 같네.”

“정말이야? 확실해?”

양준은 그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낄낄… 신혼과 목숨을 탈취하는 것은 내 장기지. 그자에게서 잘라 낸 머리카락이 있으면 절대 내 앞에서 도망가지 못할 것이네.”

지마는 자신감이 넘쳤다.

“사파의 요사스러운 술법이로다.”

몽무애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지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더 즐겁게 웃었다.

양준은 신비한 고수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지마가 무슨 수단을 쓰든 상관없었다.

양준이 다급히 물었다.

“얼마나 걸려?”

“열흘 정도면 준비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운도 필요하지. 그 여인이 근처에 오지 않으면 나도 행적을 찾아낼 방법이 없네.”

“그럼 어서 준비해.”

그 여인이 어떤 목적으로 연단방에 접근했든지 간에, 지난번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양준은 그녀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가 파경호에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대담하기 그지없으며 세상의 무인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다. 이런 사람은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치기에 사소한 실패로 절대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그녀가 방법을 찾아 자신의 기운을 감출 수 있을 때가 되면 다시금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다시 찾아오는 날이 곧, 스스로 그물에 걸려드는 날이었다.

이내 양준은 담청색 머리카락을 지마에게 건네고 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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