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4장. 무슨 의도로 찾아온 것이냐?
양준은 연기방 근처에서 한창 바삐 보내고 있는 추억몽을 찾아내 몰래 몇 마디 일러주었다. 그 누구도 양준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양준의 말을 듣고 흥분해서 단호한 태도로 반박했다. 심지어 두 손으로 양준의 팔을 잡아끌면서 어떻게 해도 놔주려 하지 않았다.
추억몽이 이처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고귀한 출신과 훌륭한 가정 교육을 받은 그녀는 남보다 뛰어난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많은 이들 앞에서 마치 양준을 가지 못하게 막는 듯이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오가던 무인들은 모두 곁눈질하며 무슨 사정인지 몰래 추측했다.
결국 양준은 그녀의 손을 풀어 내고 성큼성큼 떠나갔다. 추억몽만 자리에 남아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추 소저, 사제가 또 무슨 일을 했나요?”
남초접은 비보 하나를 흡수하고 밖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마침 그 광경을 보고는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추억몽은 곧 표정을 가다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남초접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의 지금 신분으로는 더 이상 그녀에게 캐물을 자격이 없었다.
다른 한편, 호씨 자매는 창가에 기대어 멀리서 이 광경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봤어? 양준이 저런 호색한이야. 남들 다 보는 데서 추 낭자하고 시시덕거리며 장난이나 치고. 너무 뻔뻔스럽단 말이야. 너도 조심해. 괜히 저 수작에 넘어가지 말고.”
호교아가 이를 갈며 동생을 일깨워 주었다.
호미아는 턱을 괸 채 얼이 나간 모습으로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여동생의 푹 빠진 모습에 호교아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여동생의 코를 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수련이나 하러 가자.”
“알았어.”
호미아는 그제야 아쉬워하며 눈길을 거두었다.
혈전방과 풍우루는 늦게 찾아온 편이었지만, 추억몽은 단약을 공급할 때 그들을 차별 대우하지 않았다. 연단방에서 제공한 단약 덕분에 호씨 자매의 수련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동기연지신공은 또 돌파 단계에 이르렀다. 게다가 단약을 복용한 다음, 호씨 자매는 몸속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천지의 영기를 쉽게 흡수할 수 있었고, 경맥이 더욱 단단해졌으며 공법도 전보다 훨씬 더 빨리 운행되었다.
양준의 엄청난 자질과 강한 실력에 그녀들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노력하지 않으면 그에게 점점 더 뒤처질 것이 분명하기에 감히 수련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전성 동쪽, 양위 관저.
며칠 전 얻은 현급 비보를 흡수하던 양위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공자, 손님이 왔습니다.”
맹선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누구입니까?”
양위가 눈을 번뜩였다. 맹선의는 그가 현급 비보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찾아온 이의 신분이 남다르지 않다면, 이렇게 그를 방해할 리가 없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맹선의의 말투가 저리 이상한 것이지?’
“제 생각에는 양준 공자인 것 같습니다.”
“막내가 왔다고?”
양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역시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곧 방문이 열리고, 양위가 숙연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서 맹선의의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막내가 왔습니까?”
맹선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제대로 확인은 못 했지만, 근처에 영구가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양준이 온 것이 아니라면 영구가 따를 리가 없지요.”
양위는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영구가 왔으면 분명 막내겠군요.”
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대담하게 나오다니, 역시 막내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파경호에서 있었던 비보 쟁탈전에서 그가 양준에게 호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둘은 여전히 적수였다. 지금 양준이 영구 한 명만 데리고 찾아온 것은 어지간히 대담한 행동이었다.
“대공자, 이건 기회입니다.”
맹선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계승 싸움이 시작되고 지금까지의 활약을 보면, 양준은 필히 둘째 공자보다 더 강한 적입니다. 그가 밤에 혼자 찾아온 것을 틈타…….”
그러고는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양위는 냉소를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대공자! 대사를 도모할 때는 이런 일도 있는 겁니다. 지금 그를 탈락시키지 못하면 나중에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맹선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로서는 양위가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모두가 승리의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던 양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데다 이번 계승 싸움에서 그가 승리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양준 관저의 변화와 발전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갈수록 그의 우세는 조금씩 커질 것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질 터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적을 쓸어버리고 흡수하면서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맹선의는 이미 그날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양위의 동맹으로서 그는 조급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양위는 형제의 정에 얽매여 눈앞의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있으니,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제게 다 계획이 있으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양위는 손을 내저으며 성큼성큼 가 버렸다.
맹선의는 답답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단호한 표정을 하고서 뒤돌아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편전,
양준이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채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 영구가 묵묵히 서서 신식을 펼쳐 사방을 경계했다.
영구는 전혀 두려움 없이 담담한 표정의 양준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못내 감탄했다.
밤이 되어, 양준은 그에게 나갈 테니 따라나서라고 했다. 그는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고 따라나섰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에야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양위의 관저였다. 영구는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경계를 높였다.
그는 낮에 있었던 양준과 추억몽의 다툼을 떠올렸다. 그제야 무슨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추억몽은 양준이 지금처럼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홀로 양위 관저에 찾아오는 걸 반대했던 것이다.
편전에 들어서면서부터 영구는 여러 갈래의 신식이 줄곧 알게 모르게 이쪽을 훑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종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양위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양위 관저의 고수들이 몰래 편전을 지켜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양준도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양준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막내야, 대담하기도 하구나. 혼자서 내 관저에 오다니. 내가 너를 못 가게 할까 두렵지 않느냐?”
갑자기 차갑게 일갈하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고막이 울릴 정도로 편전에서 메아리쳤다.
“아니면 내 휘하에 사람이 적다고 얕보는 것이냐?”
양준의 귓가에는 온통 양위의 목소리만 윙윙거릴 뿐이었다. 동시에 신식이 그에게로 덮쳐 왔지만 어떤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괜히 그를 시험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며칠 전, 양준과 류경요가 접전을 치를 때 양위는 백 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당시 양준의 실력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기에 그도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담담하게 신식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게 내버려 두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두렵냐구요? 형님이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다면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하하!”
양위가 호탕하게 웃으며 드디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양준의 앞에 다가왔다.
영구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양위는 혈시 한 명도 없이 혼자 걸어 나왔다. 편전 주위에 많은 고수들이 경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구가 양위를 사로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 두 공자는 서로를 이토록 신임하는구나.’
영구는 혼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머리를 감쌌던 모자를 벗어 얼굴을 드러내고는 미소를 지으며 양위를 바라보았다. 양위는 가볍게 손뼉을 쳐 하녀에게 차를 올리게 했다.
하녀가 물러간 뒤에야 양준이 입을 열었다.
“형님, 저희끼리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구나.”
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과묵하다는 인상 때문에 어느 형제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더욱이 양준과는 이번에 전성에 올라오며 처음 보게 된 것이었고, 오늘처럼 그와 마주해 오롯이 둘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막내야, 무슨 의도로 찾아온 것이냐?”
양위는 짚이는 데가 있어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물었다.
“가문에서 저희 계승 싸움의 진행 속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보 천 개를 투입하면서까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겁니다. 가문에서 원하면 우리는 당연히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죠. 아니면 더 많은 수를 써서 우리를 재촉할 테니까요. 형님도 물론 알고 계시겠죠?”
“알고 있다. 다른 동생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만약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남에게 기선을 빼앗기게 될 겁니다.”
가문의 태도는 이미 분명했다. 비보 천 개를 투입하면서 재촉의 뜻을 알렸기에 다른 공자들도 모두 알아챘을 것이다. 일단 각 세력에서 비보를 다 흡수하고 나면, 누군가는 분명 참지 못하고 움직일 것이 뻔했다.
양준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는 가장 먼저 공격받을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위는 그를 힐끗 보더니 정색하고 말했다.
“뻔한 걸 왜 물어보는 것이냐? 너 아니면 나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양준은 씩 웃었다.
나머지 여섯 명의 후보자들 가운데서 양소와 양항, 양신과 양영은 친형제였다. 서로 적수이기는 하지만, 계승 싸움에서 다른 적이 있을 때에는 서로 지켜주고 도와줄 것이다. 만약 큰 움직임이 있다면 분명 두 쌍의 친형제가 협력하여, 만만해 보이는 양준이나 양위를 공격할 것이다.
양위는 큰형님이고, 계승 싸움 첫날 밤에 형제들에게 한 차례 양보한 전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네 사람은 먼저 양위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열흘 이내로 각 세력의 습격을 받을 이는 양준이 분명했다.
지금 양준은 한창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데다가 며칠 전에 현급 비보를 두 개나 가져갔다. 다른 형제들이 그에게 비보를 흡수할 시간을 줄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