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5장. 아주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양준은 네 명의 형제 중 어느 한 명의 실력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네 명이 협력하는 경우, 방어하려고 해도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몽무애와 지마가 함께 나서야만 손실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상황을 꿰뚫고 있기에 양준은 밤을 틈타 양위 관저로 달려와 큰형님과 상의하려고 한 것이다.
“넌 누구를 치고 싶으냐?”
양위는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섯째 형님이요.”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양위는 잠깐 생각하다가 곧 상황을 알아차리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다섯째가 도봉과 우선을 선택한 것은 참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지.”
남은 여섯 형제의 실력을 비교해 보면 양항은 절대 밀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양준은 여전히 그를 첫 번째 공격 목표로 삼았다. 이는 도봉과 당우선 때문인 게 틀림없었다.
애초에 계승 싸움이 시작되기 전 변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원래 두 사람은 양준을 따랐을 것이다. 양준이 이처럼 양항을 겨냥하는 것은 결국 두 사람을 신경 쓰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얼 하면 되겠느냐?”
양위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둘째 형님을 견제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둘째 형님이 소식을 들으면 훼방을 놓을 게 분명해서요.”
“그건 문제없다.”
양위는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다시 야릇하게 웃으며 물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이냐?”
그와 양준은 여전히 적수였다. 양위 또한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무상으로 양준을 도와줄 수는 없었다. 설령 양위 본인이 동의한다고 해도, 그의 휘하 조력자들이 동의할 리 만무했다.
양준이 양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충분한 패와 성의를 보여줘야 했다. 친형제라도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하는 법이었다.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양준은 찾아오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이 있기에 전혀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위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네 관저에 있는 연단사들이 탐이 나는구나. 많이는 말고 딱 다섯 명만 넘겨줄 수 있겠느냐?”
양준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형님, 욕심도 많으십니다.”
“이 정도면 양반이지.”
양위는 빙그레 웃었다.
“네 쪽에 연단사만 서른 명인데, 다섯 명밖에 요구하지 않았잖느냐.”
“그 사안은 제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형님도 연단사들 성질머리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제 관저에서 연단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제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대신 현단을 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현단?”
양위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현단을 떡하니 내놓다니, 역시 손이 크구나. 알겠다, 받아들이지.”
그 역시 자신이 내놓은 조건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조건을 제시한 것도 일단 내지르고 흥정하려는 속셈이었다.
양위는 얼굴빛을 가다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움직일 생각이냐?”
“내일 밤입니다.”
양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에는 미심쩍은 표정이 떠올랐다.
양준이 이처럼 급하게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고작 하루였다. 정상적인 상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내일도 많은 무인들은 며칠 전에 얻은 비보를 흡수하고 있을 것이다. 양준이 이 시간대를 선택해 공격하려는 것은 비보의 힘을 이용하려는 게 분명했다.
‘다만… 그때 얻은 현급 비보를 지금 쓸 수 있으려나?’
그가 얻은 현급 비보는 적어도 여드레가 걸려야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알겠다. 소식 기다리고 있으마.”
양위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비보를 쓰든, 못 쓰든 모두 똑같은 상황이기에 누가 먼저 쓸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말하는 한편, 알게 모르게 영구를 슬쩍 훑어보았다. 눈동자 깊은 곳에는 의문이 서려 있었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에서 혈시 여섯 명 모두 봉원주에 맞았었다. 영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양위는 영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그는 봉원주의 속박을 받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벌써 봉원주를 푼 건가?’
“자, 그럼 일 얘기는 다 끝났고, 다른 얘기를 좀 해볼까요?”
양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양위는 깜짝 놀랐다.
“할 말 있으면 숨어 있지 말고 빨리 튀어나와.”
양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이와 동시에 영구의 신형이 공기 중에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곧 그 자리에 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양위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정신을 집중해 사방을 살펴보고는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슉- 슉- 슉-
많은 그림자들이 사방팔방에서 나타나 양준을 겹겹이 포위했다. 그리고 맹선의가 편전 정문에서 품위 있게 유유자적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선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양위가 어두운 낯빛으로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말하는 사이, 그의 온몸의 진원이 난폭하게 꿈틀거렸다.
맹선의는 양위를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고 공수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공자! 이 기회에 양준 공자를 붙잡아 두려고 제가 독단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양준 공자. 공자가 스스로 찾아와 빌미를 준 것이니 제가 독하다고 탓하지는 마십시오. 이번 일은 대공자와 무관하고 제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앞으로 복수하려면 저를 찾으십시오.”
양준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큰형님께서 이러실 생각이었다면 나와 이리 오래 대화를 나누지는 않으셨겠죠.”
그의 말에 맹선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양위는 음침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선의, 이번에 아주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맹선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대공자께서 형제의 정에 얽매여 큰일을 도모하지 못하시기에 제가 대신 나서는 것입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양위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막내가 믿는 바 없이 혼자 왔을 거라 생각합니까? 그리고 겨우 이 정도 인원으로 막내를 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번 해보시죠.”
맹선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양위가 그의 독단적인 월권 행위를 저지하지 않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한순간 당황하다가 곧이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공자.”
양위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오히려 안쓰럽게 그를 힐끗 보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양준 공자!”
맹선의는 낯빛이 차가워더니 손을 흔들었다.
삽시간에 신유 경지 6단계 이상의 고수 십여 명이 사방에서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이곳은 양위 관저의 편전으로, 공간이 작지 않지만 그렇다고 퍽 큰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사람을 많이 배치할 수 없었다. 십여 명 중에서 신유 경지 8단계도 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이 정도 인원이면 양준을 사로잡는 것은 거의 누워서 떡 먹기였다.
맹선의는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영구의 위치를 찾았다.
신유 경지 무인들은 양준과 불과 3장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영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양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음산하고 차가운 빛이 그의 몸속에서 피어오르더니 어둡고 스산한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신유 경지 고수들의 비명과 함께, 그들이 날린 무공은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모두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보다가 살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양준의 손에는 어느새 뼈 방패가 쥐어져 있었다. 뼈 방패는 맷돌만 한 크기에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방패 한가운데는 커다란 짐승의 입이 있었다. 예리한 이빨을 드러낸 짐승의 입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뼈 방패에서는 옅은 빛이 흐르고 있었다. 양준이 방패로 앞을 막고서 그곳에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철옹성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양위의 얼굴은 의아함으로 가득했다. 맹선의도 마찬가지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뼈 방패는 분명 며칠 전 류경요가 가져갔다가 양준에게 준 현급 비보였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흡수했단 말인가?’
현급 방어 비보를 뚫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고수들이 방금 전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신유 경지 무인들이 전력을 다해 일격을 날린다면 뼈 방패의 방어를 충분히 뚫을 수 있었다.
맹선의는 이것저것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다시 명령했다.
“공격!”
신유 경지의 무인 열몇 명은 냉혹하고 매서운 표정으로 더는 여지를 두지 않고 전력을 다해 무공과 비보를 펼쳤다.
곧이어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 양준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