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68화 (468/853)

제 468장. 전화위복

양준은 한참 출구를 찾지 못해 막 물어보려는데 천둥 같은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안 가고 뭐 하느냐?”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거대한 힘이 그의 몸을 밀어냈다.

순간 눈앞이 아찔하더니, 양준은 다시금 전당으로 되돌아왔다. 눈앞에는 여전히 원탁이 있었고, 여덟 명의 장로들은 그곳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한가운데는 여전히 눈부신 커다란 구체가 떠 있었고, 여덟 명은 끊임없이 그 속에 원기를 주입하면서 각자 무도에 대한 각성을 토론하고 있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뒤로 넘어지듯 물러섰다. 영구가 이를 보고 놀라서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

몸을 가눈 뒤에도 양준의 체내 진원은 한동안 들끓었다. 머릿속 신식 또한 혼란해져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그는 피를 울컥 토하고 나서야 그나마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구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는 양준이 무슨 일을 당해 경상까지 입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온 다음부터, 양준은 줄곧 일언반구도 없이 그곳에 서 있었다. 영구도 묻기가 무엇하여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이런 변고가 생기자, 그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가자.”

양준은 입가를 닦고는 원탁을 힐끗 보더니 영구를 데리고 신속하게 떠나갔다.

신비한 작은 세계, 여덟 명은 전투를 멈추었다. 다른 일곱 명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양립정을 바라보았다. 처음 입을 열었던 조금 퉁퉁한 노인이 말했다.

“어린 자손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러게 말이네. 눈빛이 좀 강렬하고 날이 서긴 했다만, 젊은 나이인데 혈기가 왕성할 때 아닌가? 그리고 자네 앞에서 화낸 것도 아니고.”

“까딱 잘못했으면 그대로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을 텐데, 녀석이 제법이구먼. 훗날 양씨 가문의 미래는 저 아이한테 달린 것 같은데, 마음이 아프지도 않은가?”

일곱 명의 노인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방금 양립정이 어린 자손에게 왜 그렇게 대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양립정은 콧방귀를 뀌었다.

“쓰러지면 쓰러지는 거지. 양씨 가문의 뒤를 이을 사람이 어디 저 녀석뿐인가? 내 말을 흘려듣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네. 지금쯤 내 말을 곱씹고 있을 것이야.”

“그래도 너무 지나친 것 같구먼.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이가 어린애랑 신경전이나 벌이다니?”

“양씨, 이번에는 정말 너무했어. 온전히 혼자 힘으로 우리 여덟 명의 의식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자질이 평범하지 않은 아이이거늘. 양씨 가문에 또 그런 이가 있겠는가? 양씨 가문뿐만 아니라 우리 일곱 가문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그걸 할 수 있는 이는 없다네.”

노인은 말하는 한편 연신 고개를 저었다.

“됐네. 내가 다 생각이 있어 한 일이니, 자네들이 왈가왈부할 필요 없네. 그래서 안 싸울 건가?”

양립정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일곱 명이 모두 질책하자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싸워야지! 그 녀석이 정말 잘못됐을 때 자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구먼. 하하하!”

“음… 뭔가 이상해.”

그때, 추씨 가문의 태상장로인 추도인이 문득 놀라서 입을 열었다.

다른 일곱 명도 너도나도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보아하니 녀석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모양이군.”

조금 퉁퉁한 노인은 크게 웃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양립정을 바라보았다.

“오, 정말 그렇군.”

“설마 이러려고 부른 건 아니겠지?”

어떤 이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양립정을 바라보았다.

양립정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감지해 보고는 살짝 놀랐다. 방금 전 그는 양준과 자신의 실력 차이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공격했다. 온전히 양준에게 사마와 지내는 건 잘못된 것임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 외로 그의 거대한 압박으로 말미암아 양준은 도리어 경지를 돌파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상한데…….’

양립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녀석은 어떻게 충격을 받은 다음, 곧바로 심리적 속박을 벗어 던지고 돌파의 계기를 찾을 수가 있지?!’

*봉신전 안,

양준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곧이어 그의 표정이 점점 고통스럽게 변했다.

영구는 영문을 모른 채 그가 내상을 입은 줄 알고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

양준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넌 먼저 돌아가 추억몽에게 내일 밤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알려. 모든 것은 추억몽에게 맡기면 잘 해낼 거야.”

“공자님께서는…….”

“난 아직 볼일이 남았어.”

양준은 말을 마치고, 주위를 살펴보고는 아무 방이나 찾아 들어갔다.

영구는 놀라서 잠깐 당황하다가 망설이지 않고 곧장 봉신전을 떠났다.

봉신전은 매우 컸지만, 안에는 태상장로 여덟 명밖에 없었다. 여덟 명은 시중 들 필요가 없으므로 하녀도 없었다.

양준이 찾아 들어간 방은 물론 주인이 없는 방이었다.

그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몸에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 경지가 돌파할 때가 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양준의 상황은 특이했다. 원래는 돌파할 기미가 없다가 양립정의 거대한 압박에 의해 몸의 진원과 내적 욕망, 강렬한 감정이 파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방금 전 압박에 대한 반동으로 그는 진원 경지 9단계의 문턱까지 바싹 다가서게 되었다.

‘조금만 힘내면 돼!’

내일 저녁 전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양준도 더욱 높은 경지로 전투에 임하고 싶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진양결을 가동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서 방금 전 작은 세계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리고는 몸속 기운이 마음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아주 잠깐밖에 보지 못했으나 태상장로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천지 간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 동작에 내포된 깊은 뜻을 파헤치는 것은 그들의 무도를 터득하는 것과 같았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나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격한 감정이 점차 진정되었다. 양준은 자신이 본 것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가운데 귓가에는 또다시 현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꽃향기가 넘쳐나며 온몸이 편안해졌다.

*양준 관저.

콩알 같은 촛불이 일렁이는 가운데, 추억몽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턱을 괸 채 탁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관저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그다지 강하지 않은 신식으로 수시로 훑어보고 있었다.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몰래 주시했다. 하지만 매번 실망하고 말았다.

낮에 양준이 그녀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얘기했을 때, 그녀는 체면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잡고서 놓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양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뿌리쳤다.

밤이 되자, 양준은 정말 자신이 얘기했던 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녀는 조마조마해서 마음만 졸일 뿐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너무나 괘씸한 나머지, 양준이 오늘 밤에 돌아오지 못하기를 바랐다.

‘이거 뭐야? 나 지금 무슨 홀로 독수공방하며 지아비를 원망하는 부인 같잖아.’

그녀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얼른 고개를 젓고는 온갖 잡생각을 떨쳐 버렸다.

이때,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일갈했다.

“누구냐?”

“추 소저, 접니다.”

영구의 목소리였다.

추억몽은 기쁜 얼굴로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영구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영구의 등 뒤를 힐끔 보고는 정색하고 물었다.

“그 자식 돌아왔어?”

영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추억몽은 저도 모르게 얼굴빛이 변했다.

영구는 줄곧 양준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영구가 혼자 돌아오고 양준은 종적이 묘연했다.

‘설마…….’

그녀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공자님께서는 아직 할 일이 있어 봉신전에 계십니다.”

영구는 사실대로 말했다.

“봉신전에?”

추억몽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저도 모르게 붉은 입술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그녀도 당연히 봉신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곳에 신유 경지 이상의 태상장로 여덟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전성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부름이 없다면 누구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양준이 봉신전에는 어쩐 일로 간 거지? 그분들이 양준에게 가르침이라도 주려고 부르신 건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좋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얼굴에 기쁜 표정을 띠고서 마음속으로 양준에게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가 봉신전에 남아 있는 이상, 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내일 밤에는…….”

“공자님께서는 추 소저께 전권을 위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입술을 가볍게 악물며 욕을 내뱉었다.

“나쁜 놈, 날 어떡해서든 이용해 먹으려고.”

“공자님 말씀은 전달했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구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방으로 들어온 추억몽은 잠이 확 달아났다. 그녀는 서둘러 종이와 필을 꺼내 쌍방의 동맹 세력과 고수들의 수를 일일이 적으면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이른 아침, 많은 무인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폐관 수련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새로 흡수한 비보의 위력을 점검했다.

추억몽은 지난번 파경호에서 얻은 비보를 모든 세력에게 나누어 주었고, 며칠간 다들 비보를 흡수하다가 오늘에야 폐관 수련을 마쳤던 것이다.

밤을 지새운 추억몽은 서둘러 각 큰 세력의 통솔자들을 불러 모아 저녁에 있을 전투에 대해 의논했다.

그녀는 상세하게는 말하지 않고 호명한 이들에게 준비해 두라고 이른 뒤 밤에 움직일 것이라고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들 흥분한 표정으로 단단히 별렀다.

“호씨 동생들도 같이 가시지요.”

추억몽은 웃는 얼굴로 호교아와 호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교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혈전방에서는 사람이 적게 왔을 뿐만 아니라 고수도 몇 되지 않았다. 추억몽이 이렇게 배치하는 것은 혈전방에 공로를 세울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냉산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귀왕곡은 이번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동안 사용할 수 없는 초식이 있어서요.”

“그럼 귀왕곡 분들은 관저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추억몽은 상황에 알맞게 배치했다.

“고맙습니다.”

냉산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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