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9장. 미친 거 아니야?
반나절이 지난 뒤, 추억몽은 모든 세력들을 적당하게 배치했다. 관저에 남기든, 출동시키든 각 세력의 사정을 충분히 헤아렸으므로 모두들 기꺼이 받아들였다.
배치가 완료되자, 각 세력들은 각자 처소로 돌아가 정비하며 기력을 가다듬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을 겪은 지 며칠 안 된 지라, 누구도 오늘 밤 대규모로 접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위 관저.
맹선의가 양위의 방 밖에 서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대공자, 그쪽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양위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움직이겠습니다.”
“대공자, 뭔가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막내 공자가 다섯째 공자를 공격하고 우리가 둘째 공자를 견제하면, 여섯째 공자와 일곱째 공자 쪽은요? 그들이 소식을 듣고 이 기회를 틈타 공격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양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양준 공자 쪽에는…….”
맹선의는 말을 하다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양준 공자가 다섯째 공자를 이긴다 해도 본인 관저를 방어하지 못하겠군요.”
양위는 미묘한 표정으로 맹선의를 힐끗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 장면이 보고 싶어 안달나신 모양입니다. 그렇게 막내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맹선의는 계면쩍어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러는 대공자는 아무 걱정도 없으십니까?”
“걱정해서 무얼 하겠습니까? 전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실력으로 진다면 할 말이 없지요.”
양위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밤, 막내가 여섯째와 일곱째가 미처 반응할 겨를이 없이 행동한다면 본인 관저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느리면… 분명 피해를 입게 되겠죠.”
맹선의는 당황해서 양위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곧 그가 한 말이 설령 양준의 움직임이 늦더라도 손실은 입을지언정, 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막내 공자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영구와 현급 방어 비보 두 가지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양준이 양항을 재빨리 사로잡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양항 관저.
양항은 한창 새로 얻은 현급 비보를 흡수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며칠간 진원을 주입했더니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현급 하품 비보를 완전히 흡수할 수 있을 듯했다. 그때가 되면 그의 실력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현급 비보를 지니고 있으면 신유 경지 고수를 상대하더라도 전력이 뒤지지 않았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을 통해 양씨 가문 몇몇 공자의 실력은 모두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렇게 양항이 한창 비보를 흡수하고 있는데,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는 순간 당황했다. 미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어둠 속에서 가늘고 긴 그림자가 몇 번 번쩍였다. 그리고 비수 두 개가 빛을 번쩍이며 그를 향해 덮쳤다.
양항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 굳으며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공자님, 조심하십시오.”
당우선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신혼기가 폭발했다.
깡마른 신형은 양항을 공격하지 않고 재빨리 입구 쪽으로 물러갔다.
달빛이 비추자, 양항은 그림자의 용모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며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영구!”
영구가 씩 웃어 보였다. 곧 그의 신형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당우선이 양항의 옆에 나타나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양항은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점차 마음속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밀어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네가 제때 와 주어서 다행이다.”
방금 전 당우선이 신혼기로 저지하지 않았다면 영구의 실력으로 단번에 양항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신출귀몰하고 그림자도 없이 다니는 혈시가 잠입해 암살한다면 양항의 실력으로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영구는 다시 한번 시도할 수 있는데 왜 포기했을까? 게다가 마지막에 그 미소는 뭐지?’
양항은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나를 너무 업신여기는 것 아니냐.”
혈시는 계승 싸움에서 먼저 공격할 수 없고 오직 방어만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방금 전에 양항이 가만히 있었다고 해도 영구는 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영구는 공격하는 척만 한 것이지 실제로 그에게 손댈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반응이 더욱 웃음거리였다.
“영구는 왜 아무렇지도 않지?”
당우선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 다른 문제를 생각했다.
파경호 비보 쟁탈전에서 양항이 데리고 갔던 도봉은 봉원주에 맞아 지금까지 폐관하면서 봉원주를 풀고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봉원주에 맞은 영구는 이곳에 나타났다.
“막내!”
양항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영구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바로 그때, 당우선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공자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어느 쪽 사람들인데?”
양항이 놀라서 물었다.
“제게는 소순과 다른 막내 공자 관저 고수들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막내 공자님께서 오신 모양입니다.”
“미친 거 아니야?”
양항은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서둘러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
‘지금 제정신인가? 다들 지난 쟁탈전에서 입은 상처를 회복 중인데다 비보를 흡수하고 있을 텐데. 왜 관저에 조용히 있지 않고 본인한테 아무 이득이 없는 짓을 하지? 지금 싸우면 나뿐만 아니라 자신이 비보를 흡수하는 시간도 지체될 텐데? 이렇게 하면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지?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다른 형제들이 비보를 다 흡수하고 나면 그들이 우세를 점할 텐데.’
양항이 급히 밖으로 나가는데 귓가에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이번에 정말로 작심하고 공격하려는 모양이었다. 일부러 술수를 부리거나 공격하려는 척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인사치레 한마디도 없이 곧바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양항 관저 밖,
많은 사람들이 허공에 서 있었다. 추억몽을 중심으로 대략 이백 명가량 되었다.
양준의 동맹은 약왕곡과 보기종을 제외하고 모두 열네 곳의 세력이 있었다.
이번에 출동한 이들로는 추씨, 곽씨 가문, 혈전방, 동씨 가문, 자미곡, 문심궁, 천원성, 단목 가문 모두 여덟 세력이었다. 그중 추우당 사람들은 고수가 아닌지라 추씨 가문의 실력은 강하지 않았다. 곽씨 가문에는 신유 경지 5단계 무인이 두 명밖에 없었고, 혈전방에도 신유 경지 고수가 몇 명 안 되었다. 이 외에, 나머지 세력에는 대부분 신유 경지 고수가 네다섯 명 정도씩 있었다.
전체 실력과 수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양항 관저의 고수들과 견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추억몽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건 바로 혈시 두 명과 신비한 고수 지마도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으나 혈시보다 강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세 사람이 있기에 양항 관저의 무인들을 이기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때문에, 이곳에 도착한 뒤 그녀는 인사도 없이 곧장 공격을 퍼부었다.
양항 관저의 무인들은 급습당하는 바람에 무공과 비보의 빛이 만발하는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이미 열몇 명을 잃게 되었다.
모두들 정신을 차리고서 급히 방어하며 반격했지만, 저마다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양항이 나타나지 않자, 이들은 통솔자가 없었다. 고양풍 혼자서는 상황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추 소저, 저희 다섯도 싸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단목 가문의 한 고수가 얼굴에 살의를 띠고서 조용히 말했다.
단목 가문은 원래 셋째 양철의 동맹이었다. 그러나 계승 싸움 첫날 밤 양철은 탈락하고, 단목 가문은 다섯 명의 고수만 남고 전멸했었다.
그날 공격했던 세력들 중에는 양항 관저의 무인들도 있었다. 지금 원수를 다시 만나게 되자, 단목 가문 사람들은 당연히 분노가 치밀어 죽은 식구들을 위해 복수하려고 했다.
“아직 이릅니다. 싸움이 좀 더 진척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억몽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양항 관저의 무인들은 기습을 받았지만, 방어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반면 자신들은 절반 정도의 사람들만 출동했기에 경솔하게 움직이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추억몽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양준을 기다리는 한편, 무인들을 지휘해 멀리서 양항 관저를 공격했다.
이곳저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추억몽 쪽 무인들은 양항 관저의 무인들과 정면으로 맞붙지 않았다. 그들은 얍삽하게 공중에 서서 진원을 마음대로 쏟아부으며 각종 무공과 비보의 위력을 발산했다.
짧은 시간 내에 양항의 관저는 산산이 부서졌다. 많은 곳들이 무너졌고, 무인들은 방어하면서 공격을 피하느라 허둥지둥했다. 곧 몇 명의 고수들이 더는 이런 모욕감을 참을 수 없어 공중으로 날아올라 자존심을 되찾으려 했다.
고양풍이 미처 저지할 겨를도 없이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던 몇몇 고수들은 추억몽의 지휘 하에 깡그리 죽임을 당했다.
형세가 점점 좋아지자, 추억몽 쪽 무인들은 사기가 진작되었다. 그들은 바로 달려들어 양항을 사로잡거나 영기를 탈취해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곽성진이 한쪽에서 꿍얼거렸다.
“추억몽, 영구를 잠입시키면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 규칙에 위배되는 거 아냐?”
추억몽은 고개를 저었다.
“영구는 사리 분별이 확실해서 괜찮아. 만약 양항 앞에서 언뜻 비쳤다고 규칙을 위배한 거면 혈시들을 데리고 와서 뭐 하게?”
“영구가 잠입해 봤자 혈시라 선공도 못 하고, 영기도 못 빼앗아 오잖아. 왜 보냈는데?”
곽성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짝 겁만 주는 거지.”
추억몽이 싱긋 웃었다.
곽성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입을 실쭉거렸다. 추억몽은 그 정도로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눈알을 굴리더니 곧 추억몽의 목적을 짐작했다.
‘양준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게 하려는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