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70화 (470/853)

제 470장.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야

사실, 그 역시 오늘 밤 양준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양준은 어제부터 보이지 않았다. 영구는 언제나 양준의 곁에 붙어 있으므로, 영구가 나타났다면 양준은 반드시 어딘가에 숨어서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터였다.

곽성진은 본인의 짐작을 확신하며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양항 공자는 어디 계시지?”

아래쪽에서 고양풍이 초조해하며 소리쳤다. 고양풍은 고씨 가문의 후계자로 젊은 나이에 무공 실력도 높았지만 계승 싸움에서는 보조자일 뿐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어두운 낯빛의 양항이 당우선과 함께 허물어진 건물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음산하고 차가운 눈동자로 위쪽을 훑어보고서 저도 모르게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추억몽이 사람들을 끌고 와서 저희가 무방비로 당했습니다. 이미 스무 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양항이 나타나자, 고양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급히 그의 곁에 다가가 보고했다.

“알겠습니다.”

양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여 일갈했다.

“양준! 나와라, 얘기 좀 하자.”

“양항 공자!”

추억몽이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공중에 우뚝 선 그녀는 큰 키에 날렵한 몸매가 돋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바로 옆에는 남초접과 낙소만 두 여인이 서 있었고, 호씨 자매의 절세 미모까지 더해져 많은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양항 관저의 무인들은 마음속으로 양준 관저의 남자들을 더없이 부러워했다. 그들은 문득 양준 관저에 절세 미녀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항 관저에는 미녀들이 별반 없었다.

추억몽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양항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녀의 휘하 무인들은 여전히 무공과 비보의 위력을 발산하며 끊임없이 아래쪽을 맹공격하고 있었다.

“양준은 어디 있습니까?”

양항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양준이 나와서 그와 대화해야 했다. 추억몽이 신분이 낮지 않다고는 하나, 이런 장소에서 아직 그와 대화할 자격이 없었다.

“양준 공자는 현재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잠시 부재중입니다. 이곳의 전투는 제가 책임지고 있죠. 다섯째 공자께서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억몽은 말을 마치고 몸을 흔들며 깔깔 웃었다.

양항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더니 음침하게 웃음을 흘렸다.

“좋아. 날 이리도 무시한다는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겠다. 올 때는 네들 마음대로지만, 갈 때는 아니다.”

양항은 화가 치밀었다.

계승 싸움이란 결국 양씨 가문 가주의 상속권을 두고 형제들 간에 인맥과 인간적인 매력을 겨루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 양준은 공격하면서 본인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양항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역시 자부심이 강한 사람으로, 이런 멸시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양항은 화를 참지 못하고, 곧바로 위쪽으로 돌격해 적진을 교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고양풍은 깜짝 놀랐다. 양준 쪽 무인들이 수적으로나 전체적인 수준에서 그들과 비할 바가 안 되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방어하는 쪽이 더 나았다. 그들의 진원이 다 소진되기를 기다렸다가 반격하면 단박에 승기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게다가 양준 관저의 무인들이 이처럼 맹공격하다 보면 다른 공자들도 소식을 듣고 움직일 터였다. 지금은 그냥 시간을 끄는 것이 나았다. 양준의 관저가 공격당할 때까지 시간을 끌면 그들은 결국 전투를 포기하고 돌아가서 방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가 되어 우리가 쫓아가 공격하면, 다른 공자들과 앞뒤로 협공하는 태세가 되고 양준을 쉽게 탈락시킬 수 있잖아!’

그러나 양항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이런 것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재빨리 체면을 되찾으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정말 돌격하게 되면 결국 적들이 습격하는 데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고양풍이 급히 저지했다.

“그래도 방어를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들과는 나중에…….”

고양풍이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양항이 귀찮다는 듯이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지금 상대가 우리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똥물을 끼얹잖습니까? 그런데도 저더러 참으라고요? 당신이라면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양풍은 순간 당황하며 얼핏 양항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하지만 양항은 고양풍을 신경 쓰지 않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많은 무인들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무공과 비보의 빛이 활짝 피어오르며 그들은 신속하게 추억몽 일행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곽성진은 크게 웃었다.

“역시 양항이 고지식하네.”

추억몽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들이 쪽수가 많다 이거지.”

양씨 가문 공자들 가운데서 바보는 하나도 없었다. 양항이 남들보다 좀 못하다고 해도 자기편을 스스로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이곳은 그의 관저로 모든 동맹과 인력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추억몽이 데리고 온 사람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사이, 추억몽은 또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양항 쪽 무인들은 하늘을 뒤덮은 진원 공격을 무릅쓰고 기세등등하게 진격했다. 그들이 추억몽과 10장 정도의 거리를 남겨 두고 있을 때, 추억몽 쪽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격해 온 무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으로 흩어진 적들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어느 쪽을 추격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양항은 여전히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제때에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양항 쪽 무인들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곧 아무렇게나 사방으로 흩어져 추격했다.

“포위해!”

추억몽이 차갑게 일갈하자 그녀 쪽 무인들이 홱 뒤돌아 잔인하게 웃으며 무공을 시전했다.

하늘에서 수많은 빛들이 피어오르며 한순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피가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양항은 그제야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심장이 철렁했다.

하늘에서 추억몽이 데려온 무인들이 마치 꽃봉오리가 활짝 피는 것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세력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퍽- 퍽-

하늘에서 시체가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시체는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잠깐 사이, 첫 번째 접전이 끝났다.

양항 관저는 피해가 막심했다.

“추 낭자,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 있나? 그냥 저 밑에 있는 녀석을 잡기만 하면 이기는 거 아닌가?”

지마가 추억몽의 곁에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습니다.”

추억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나서면 되겠군. 저 자의 곁에 있는 여인은 실력이 제법이지만 나를 막기에는 부족하네.”

추억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지 대협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만약 양씨 가문의 혈시가 패혈광술을 시전하면 그 힘은 능히 신유 경지 정상의 고수와 비견됩니다. 그럼 짧은 시간 내에 저 여인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어… 그럼 좀 어려워지는데.”

지마는 순간 당황했다. 그는 당우선이 그 정도로 실력이 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지금 신유 경지 정상의 수준으로 실제로 당우선과 맞붙는다면, 당우선은 물론 그의 상대가 안 되었다. 하지만 그를 잡아 둘 수는 있었다.

양준이 자리에 없고, 소순과 영구는 자리에 있지만 출동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당우선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해도 나머지 인력으로 양항을 사로잡으려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 자식은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야?’

추억몽은 울화통이 터졌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만약 양준이 자리에 있어 소순과 영구를 거느리고 양항을 공격한다면 이렇게 번거로울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지 대협의 도움이 필요한 때네요.”

추억몽은 계획을 변경했다. 양준이 없으므로 반드시 지마가 나서야 했다. 그녀의 원래 계획은 지마를 한동안 숨겨 두었다가 다른 공자들을 상대할 때 쓰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양항은 이미 한 번 손해를 보았으므로 다시 출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 쪽에서 정면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좋았어. 누굴 조지면 되나?”

지마가 흉악하게 웃었다.

“특정할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대협께서 전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신유 경지 8단계처럼 실력이 좀 높은 이들을 몇 명쯤 죽이면 좋을 것 같군요.”

“그거야 쉽지.”

지마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뻗어 아래쪽으로 검은 빛을 쏘았다. 지마가 쏜 검은 빛은 짙은 핏빛을 띠고 있었다.

검은 빛은 피비린내와 함께 음침하고 흉포한 기운을 띠고서 날아들었다. 양항 관저의 무인들은 얼굴빛이 크게 변하며 너도나도 검은 빛을 막아 내려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 해도 검은 빛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콰앙-

검은 빛이 지면을 내리쳐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커엉……!”

곧이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포악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구덩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보던 양항 관저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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