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73화 (473/853)

제 473장. 현급 비보끼리 부딪치다

두 혈시는 평온한 안색으로 마주 보았다.

곧이어 두 사람의 진원이 용솟음치더니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당우선과 영구는 몸속의 기혈이 점점 들끓으면서 기세와 진원 모두 속박을 한 층, 또 한 층 돌파하며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바로 패혈광술이었다!

지금 두 사람의 경지는 신유 경지 정상에 이르게 되었다.

슈슉-

두 사람은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밤하늘에서는 그저 두 갈래의 빨간 빛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것만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껏 누비고 있던 지마도 이 파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살짝 무거워졌다.

지마는 두 사람이 패혈광술로 무장해도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도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당우선은 영구에게 견제되었고, 도봉은 봉원주에 걸려 힘을 쓸 수 없었다. 양항의 옆에는 더는 그를 지켜 줄 사람이 없었다.

“다섯째 형님, 가시지요.”

양준은 그를 바라보며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양항은 엄숙한 표정으로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눈빛에서는 섬뜩한 한기가 비쳤고, 그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풍겼지만 표정은 오히려 평온해졌다.

‘좋은 눈빛이군.’

양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젊은 세대 중에서 양항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전투 중에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수록 수동적인 자세에 놓이게 된다. 무인들은 싸울 때 기세, 경지, 수단, 경험을 겨루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겨루는 도중, 외적인 원인으로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치명적인 약점을 보일 수도 있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무인일수록 전투 중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상대에게 끌려 가며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양항은 전투 준비를 할 때면 바로 냉정해질 수 있었다. 이미 고수의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이십 년 정도 지난다면 분명 한 지방을 제패할 수 있는 패자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그는 아직 너무 젊었다.

양준은 그보다 더 젊었지만 겪은 일들과 자질, 마음가짐 모두 달랐다. 그래서 상황을 보는 시야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막내야, 넌 류경요의 초식을 막아 냈으니 난 네 상대가 못 될 게 분명하다.”

양항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또한 이 말을 하면서 조금도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날 이기려면 너도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가 말을 하면서 손목을 뒤집자 나침반 모양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양준은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경악한 눈빛으로 양항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굳이 그럴 것까지 있습니까?”

“나는 양씨 가문의 사람이다. 양씨 가문 사람의 성격은 너도 알지 않느냐.”

양항은 냉소하였지만 표정은 더욱 침착해졌다.

이때, 나침반에서 갑자기 번개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양항 주변의 공간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이내 더없이 위험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양준은 여유롭게 움직이며 망설임 없이 빠르고 단호하게 양항에게 일격을 날렸다. 그의 새빨간 손바닥에는 진원이 일렁이고 있었다.

양항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양준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퍽-

그는 신음을 흘리며 나가떨어졌지만 여전히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야, 이 형님이 가진 현급 비보의 위력을 느껴 보아라.”

나침반은 마치 그의 온몸의 진원을 모조리 삼킬 듯이 빛을 거세게 내뿜었다. 곧이어 허공에서 불안한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콰앙-

나침반에서 사람 허벅지만큼 굵은 번개가 쏘아졌다. 번개는 교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 뿔이 두 개나 달려 있었고, 십몇 장에 달하는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번개 교룡은 기다란 몸통을 이끌고 양준을 향해 입을 쩍 벌리며 그를 물어뜯으려 했다.

양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날려 백 장 넘게 떨어진 곳으로 피했다.

번개 교룡은 밤하늘에서 사라졌지만, 양준은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천예혈해당을 시전했다. 천 송이의 꽃잎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바람 하나 새지 않는 완벽한 보호막을 이루었다.

방금 전에 사라졌던 번개 교룡이 아무런 조짐도 없이 양준의 주위에 나타나더니 또 한 번 맹공격을 펼쳐 왔다.

꽃잎이 춤을 추고 용이 꿈틀댔다. 무공이 서로 부딪치며 격렬한 폭발음을 만들었다.

번개 교룡에 둘러싸인 양준을 바라보며 양항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는 탐색전을 펼치지도 않았고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첫 초식에 가장 강한 일격을 날렸다. 그도 양준의 경지를 알기에 자신에게 공격할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비보를 절반 밖에 흡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침반은 양항이 파경호 비보 쟁탈전에서 얻은 현급 비보였다. 그 안에는 번개의 오묘함과 힘이 담겨 있었다. 번개는 신속하고 날카로우며 매우 강력했다. 만약 완전히 흡수했다면 양항은 나침반으로 신유 경지 5단계의 고수와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그에게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절반만 흡수한 현급 비보로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치르는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비보는 양항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번개를 쏜 순간, 양항도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번개는 한 번 쏜 이상, 거두어들일 수 없었다. 일격이 끝나자 나침반 또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연기사가 보수해 다시 번개의 힘을 모으지 않는 한, 처음처럼 회복할 수 없었다.

이런 공격법은 사람에게도, 비보에도 모두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항은 만족스러웠다.

‘막내의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현급 비보의 공격은 피할 수 없겠지?’

양준을 다치게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내가 지더라도 너도 무사히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마!’

추억몽은 번개에 둘러싸인 양준을 바라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그녀도 번개의 난폭함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양준이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옆에서 소순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자, 그녀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양준에게 정말 생명의 위험이 있다면 소순이 모르는 척 신경 쓰지 않을 리 없었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양준에게 큰 위험이 없다는 뜻이었다.

촥-

하늘에서 갑자기 빨간색 꽃잎이 나타났다. 꽃잎들은 코를 찌르는 향기를 풍기며 하늘하늘 내려앉았다.

천예혈해당의 방어가 무너진 것이다.

추억몽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미처 숨을 돌리기도 전에 양준이 있는 위치에서 갑자기 강한 흡입력이 전해졌다. 소용돌이 같은 그것은 강한 힘으로 번개 교룡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번개 교룡이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다.

곧 몸통을 흔들며 빛를 내뿜던 번개 교룡이 사라졌다. 양준은 멀쩡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커다란 뼈 방패가 들려 있었다.

뼈 방패의 쩍 벌린 짐승의 입 안에서 번쩍거리는 번개 빛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현급 비보는 역시 대단해.”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예혈해당은 현급 비보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하는 수 없이 뼈 방패를 꺼내 번개를 삼켰다.

“젠장!”

이 광경을 본 양항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곧 휘청거리며 공중에서 추락했다. 나침반이 그의 모든 진원을 흡수한 탓에, 그에게는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강한 일격으로 양준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는데. 부상당하면 더 좋고 말이야.’

양준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양준의 경지가 높아 죽일 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죽일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어쨌든 형제였다.

하지만 양준이 뼈 방패를 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양항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소순은 양준을 힐끔 보았다. 양준이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순이 곧장 몸을 날려 공중에서 머리부터 떨어지고 있는 양항을 받아 안고 땅에 내려놓고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다섯째 공자님, 좋은 승부였습니다.”

“네가 왜 으쓱해하는데? 네가 날 이긴 것도 아니면서.”

양항은 코웃음을 치며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아까 번개 공격을 펼칠 때, 그도 번개에 맞아 부상을 입은 데다가 마음속의 실망감 때문에 안색이 좋을 리 없었다.

소순은 웃음기를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째 공자님, 화 푸시고 중도에 가셔서 치료에 전념하시지요.”

“너랑 무슨 상관이야.”

소순도 더 이상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양씨 가문 공자들의 싸움은 공격 한 번에 승부가 갈렸다. 이내 남은 무인들도 반항을 멈췄다. 장내는 천천히 잠잠해졌다.

양항은 이미 제압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계승 싸움에서 지지하는 공자가 탈락했다면 아무리 반항해도 의미가 없었다. 다른 한편, 고양풍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곽성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곽 공자, 여기서 마무리 지으시죠. 양항 공자도 졌으니 저희도 싸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아직 승부가 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십니까? 쟤네는 쟤네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계속하자고요.”

곽성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고양풍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제가 곽 공자의 실력이 더 우위임을 인정하면 어떻겠습니까? 전 곽 공자의 상대가 못 됩니다.”

그도 어이가 없었다. 이 망나니 같은 부잣집 도련님의 실력이 자신보다 위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곽성진이 언제부터 이렇게 강해졌지?’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곽성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고양풍이 굴복하자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고 형, 싸운 건 싸운 거고, 우리 관계는 문제없는 거 맞죠?”

“그럼요.”

말은 이렇게 해도 두 사람은 사실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

“그럼 나중에 제가 기루에서 한 턱 쏠게요.”

이에 고양풍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더듬거리면서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다 남자인데 알면서.”

곽성진은 능글맞게 눈썹을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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